6.25 動亂史

사진으로 보는 한국전쟁(1)

이강기 2015. 9. 16. 09:40
 
   




1945. 9. 9. 미군이 서울에 입성하고 있다



1945. 9. 9. 미군들이 서울시민들의 환영 인파에 싸여 있다



1945. 9. 9. 조선총독이 총독부 홀에서 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항복문서에 서명하고 있다



1945. 10. 12. 부산항 부두에서 일본군인들이 본국으로 떠나기 전 미군들에게 철저하게 검색을 당하고 있다



1946. 1. 16.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측 대표가 기조 연설을 하고 있다



1947. 5. 25. 개성 인근의 38선 미군 초소, 그때만 해도 요란한 철조망은 없었다.



1948. 5. 8. 다가올 5. 10 총선거를 앞두고 경찰들이 선거 방해를 염려해 죽창을 거둬들이고 있다



1948. 5. 10.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5. 10 총선거에 유권자들이 투표하고 있다



1948. 5. 10. 선거방해사범으로 체포된 5인, 맨 왼쪽 여인은 장택상을 암살하려다 체포됐다고 기록돼 있다



1948. 5. 31. 국회 개원식 날 국회의사당 앞에서 서북청년단들이 소련 철수를 주장하며 데모하고 있다



1950. 9. 29. 미군 전차가 서울시내 중심가로 들어오고 있다



1950. 9. 27. 경인가도에서 국군 수복을 환영하는 사람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1950. 10. 1. 서울시청 일대



1950. 10. 1. 소공동 일대



1950. 10. 1. 남대문에서 바라본 서울역



1950. 10. 1. 반도호텔(지금의 롯데호텔)에서 바라본 서울 시가지, 멀리 중앙청이 보인다



1950. 10. 1. 반도호텔에서 바라본 을지로



1950. 9. 30. 서울의 아침, 폐허가 된 시가지에 사람들이 부산하게 오가고 있다



1950. 9. 29. 서울 탈환 환영대회 직전의 중앙청 홀, 이승만 대통령 내외와 맥아더 장군



1950. 9. 29. 중앙청 광장, 서울 탈환 환영대회가 끝난 직후 바로 옆 건물이 불타고 있다



1950.9. 15. 인천상륙작전을 함상에서 진두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1950. 9. 15. 인천 월미도로 상륙하는 함정들



1950. 9. 16. 인천에 상륙한 후 시가지를 활보하는 유엔군들



1950. 9. 16. 인천부두로 상륙하는 맥아더 장군



1950. 9. 16. 인천시가지에서 생포한 북한군들



1950. 9. 16. 월미도에 나뒹구는 북한군 시신들



1950. 9. 15. 인천에서 생포한 포로들



1950. 9. 17. 서울 진격 작전



1950. 9. 23. 서울 탈환을 눈앞에 둔 노량진에서 바라본 끊어진 한강 철교



1950. 8. 24. 모정 무한, 젖을 먹이는 어머니



1950. 8. 23. 머리에 이고 등에 업고 앞에 붙들고... 고단한 피난 행렬



1950. 8. 18. 낙동강 전선에서 쌕쌕들이 폭격을 가하고 있다



1950. 8. 25. 폭격에 불타고 기총소사에 죽어가다



1950. 8. 15. 마산 부근, 피난민들이 배를 기다리고 있다



1950. 8. 15. 전란으로 폐허가 된 마을



1950. 8. 22. 불을 뿜는 전함



쌕쌕이의 융단 폭격으로 초토가 된 경북 왜관



1951. 1. 2. 누가 이 여인을 모르시나요? 부산 임시 포로수용소에서



1950. 8. 포항 부근의 한 마을이 포화에 불타고 있다



1950. 8. 18. 애송이 북한군 소년 포로를 미군 포로심문관이 취조하고 있다. 곁에는 통역 겸 여비서



1950. 8. 18. 임시포로수용소에서 포로들의 신상명세서를 만들고 있다



1950. 8. 18. 포로수용소 전경



1950. 8. 18. 포로수용소 천막 안에서 밥을 먹고 있다



1950. 8. 18. 포로들이 줄을 서서 밥을 타고 있다



1950. 8. 11. 그해 여름 피난민들의 움막



1950. 8. 13. 잠깐의 휴식시간에 LMG(기관총) 병기 손질하고 있다



1950. 8. 13. 박격포 사격 훈련



1950. 8. 15. 피난민 행렬



1950. 8. 15. 창녕 남지철교. 국군의 최후 방어선으로 격전의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