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임지현=오랫 만에 뵙겠습니다. 건강하신 모습 뵈니
반갑습니다. 정치적 민주화에도 불구하고 적과 동지의 경직된 이분법이 요즈음 한국 사회를 지배하다 보니, 새삼 선생님과 같이 공부하던 서강대
사학과 대학원의 리버럴한 분위기가 그리울 때가 많습니다. 다른 생각들 사이의 대화나 차이에 대한 관용 등의 덕목은 여전히 찾기 어려운 덕목이
아닌가 합니다.
차하순=적과 동지의 이분법이야 어느 시대에나 존재하니 작금의 현상만은 아니지요. 예컨대 조선시대의
당쟁이나 사화 등에서도 그러한 현상은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정치적 민주화와 더불어 그런 현상이 격화되고 있는 것은 다소
예외적이고 또 분명해 보입니다. 기본적으로 그것은 유신과 5공의 정치적 후유증이 아닌가 합니다. 이 지배체제가 20년 가까이 적을 양산해냈고,
그래서 한이 많은 사람들을 체제적으로 산출한 결과겠지요. 그래서 모두가 입으로는 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서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가 다르고
그 민주주의를 수식하는 언어가 다릅니다. 문제는 그 차이가 아니라, 그 차이를 민주적으로 드러내고 조정해나가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지요.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평등을 인정하는 바탕이라면, 생각의 차이는 오히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성숙될 수 있는 좋은 계기이기도
합니다.
임=그런 면에서 21세기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여전히 과거의 유산에서 자유롭지 못한 셈이지요.
차이를 차별의 메커니즘으로 전화시켜버리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폭력적으로 배제하려는 관행은 여전히 사회에 깊이 뿌리박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면
유신과 5공의 암흑시대에 서강대 사학과 대학원은 예외적으로 독특한 리버럴의 ‘섬’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그것은 나와 내 동료들이 상식으로 지니고 있었던 지적 자유에 대한 확신 같은 것 때문이 아니었나
합니다. 인간이 지적인 자유로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은 학문하는 사람에게는 당연한 상식이고, 또 그 상식을 견지하는 한 리버럴한 기풍은 당연한
귀결이겠지요. 가톨릭 교회에 대해 누구보다도 신랄한 비판을 가했던 에라스무스에 대한 논문을 쓴 내게 예수회가 설립한 서강대학교가 교수직을 제의한
것도 당시 서강대가 가졌던 리버럴한 기풍을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니겠는지요. 또 1980년대 초 민주화의 봄 당시 대학 민주화에 대한 지식인
선언에 서명해서 신군부에 끌려가 고초도 겪었지만,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대학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방패막이를 해준 덕분입니다.
정치적 자유주의의 문제를 떠나서 지적인 진실을 추구하려면, 사유의 폭을 넓히고 상대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물론 학문적
훈련과정이야 엄격하고 엄밀해야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지성인으로서의 사고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이러한 기풍이 사회적으로 확대되지
못한 것은, 기본적으로 우리 사회에 자유주의가 부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임=대학원 다닐 때 저희들끼리 종종 ‘유격코스’라는 농담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훈련 과정이야
힘들었지만,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 선생님과 다르거나 차이가 있다는 이유 때문에 불이익을 받거나 어려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덕분에 저도
제 생각을 항상 다른 생각에 열어두고자 노력했고, 그런 노력들이 상대적으로 유연한 사고를 가능케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상사적 관점에서
보면, 프랑스혁명 이래 자유는 항상 평등과 긴장된 갈등관계에 놓여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선생님의 연구 자체도 자유에 대한 강조와 평등에
대한 강조 사이에서 어떤 건강한 균형을 찾으려는 시도가 아니었는지요?
차=르네상스 휴머니즘에 대한 연구에서는 자유에 일차적인 관심을 두었지요. 그러다가‘형평’에 대한
연구에서는 평등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형평’의 개념은 기계적 평등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안고 있습니다. 즉 평등이
사회적으로 구체화될 때에는 기계적 평등이 아니라 직능이나 필요성 등등의 다양한 변수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불평등에도 사회적으로
인정해야 하는 공정한 불평등이 있을 수 있고, 평등도 그 자체가 아니라 공평하고 정당한 평등이냐가 중요하다는 거지요. 볼테르가 잘 예를 들었듯이
추기경과 그의 요리사는 평등하기도 하고 또 불평등하기도 한 것입니다. 또 예컨대 대통령의 차량 행렬은 교통신호를 어기지만 일반 시민은 교통신호를
준수해야 한다는 것은 불평등이 아니라 직분에 합당한 평등이자 정당한 불평등입니다. 일인이 하나의 투표권을 가진다는 민주주의의 선거원칙은 기계적
평등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실제로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정당한 불평등이나 아니면 불공평한 불평등이냐의 문제가 더 많이 제기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공정한 평등과 정당한 불평등이 아닌가 합니다. 이것은 고전적 민주주의의 평등 개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기에
‘형평’이라는 개념을 발견한 것이지요.
임=제 개인적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형평’ 개념이 현실 사회주의의 기계적 평등이나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개체적 자유에 대한 일방적 강조를 넘어서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데 중요한 개념적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 어느 면에서
그것은 사상사의 중요한 모티브였던 자유와 평등의 긴장과 갈등 관계를 건강하고 생산적인 긴장과 갈등 관계로 전화시키는 데 유효한 개념 장치라고도
생각됩니다. 양자의 긴장과 갈등을 무시한 채 어느 하나를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사고가 인간 사회에 가져올 수 있는 파국을 우리는 이미 20세기
세계사를 통해 잘 경험한 바 있습니다.
차=그렇습니다. 그것은 나의 형평 연구의 밑바닥에 깔려 있는 문제의식이기도 했습니다. 인간이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행위를 교환하는 방식 그 자체를 일방적인 수평관계로 환원시킨 현실사회주의나 사회적 약자를 무자비한 공격의 대상으로 삼았던
자본주의나 모두 ‘형평’의 잣대로 사회를 보는 데 실패했던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렇기에 형평 개념은 단지 사상사가뿐만 아니라 캐나다의 경우처럼
경제학자, 사회학자, 철학자들이 함께 모여 학제간 연구의 주제이기도 한 것입니다. 내 개인의 힘으로는 도저히 완성할 수 없는 큰 주제지요. 현재
한국 사회의 극심한 이념적 대립은 사상사의 관점에서 보면, 자유를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구세력과 평등을 일방적으로 강조하는 신세력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난을 개인적 게으름의 결과라고 차치할 수 없듯이, 부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인 비판이 아니라 공정한 부인가의 여부가 그 판단기준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보수세력이 전자의 경우라면, 현 집권세력인 이른바 민주화세력은 후자의 경우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일방의 주장이 21세기의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대안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형평’의 개념이 중요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일 겁니다.
임=그런데 한편으로 신자유주의의 질서가 전지구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은 민주주의의 의미에 대해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는 것 같습니다. 80대 20 사회에서도 드러나듯이, 80의 다수가 민주주의적 절차를 통해 20의 소수를 억압하고 배제하는 억압과
배제의 민주주의적 정당화라는 현상이 세계적으로 목격됩니다. 다수의 힘을 관철하는 대중민주주의와 소수자를 고려하는 민주주의라는 민주주의 내부에서의
갈등을 어떻게 해소하는가도 역시 어려운 문제입니다.
차=민주주의가 안고 있는 그런 문제들은 이미 루소와 같은 계몽사상가들도 깨닫고 있었지요. 민주주의는
소규모 사회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정치 현실은 국민국가의 규모가 지배적입니다. 80의 다수가
20의 소수의 권리와 복지를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부정할 수 있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입니다. 민주주의에서 소수자 문제의 해결은 정치사상이나
정치원리의 문제라기보다는 인간이 행위를 교환하는 방식이랄까 태도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입장을 바꾸어놓고 생각해보는
것이지요.‘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도 있습니다만, 입장을 바꾸어 놓고 볼 수 있는 권리는‘형평’의 또 다른 중요한 측면이기도 합니다. 여당과
야당의 관계, 다수자와 소수자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보고 상대방을 존중할 때 단선적 대립을 넘어서 대화의
실마리가 풀리는 것이지요. 더 상식적으로 말한다면 한 마디로 사람이 고급해지고 질이 높아져야 된다는 거지요.
그런데도 그렇지 못하니까 ‘차이’를 두려워하고 자꾸 의견을 통일시키려고만 합니다. 예컨대 지금
언론이나 사회가 국회에 대해 ‘상생’의 정치를 하라고 주문하는데, 그것 역시‘차이’를 소화하고 상대방을 존중하는 성숙한 문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회는 기본적으로 말싸움을 하는 곳입니다. 서로 다른 의견과 정책들이 나와서 충돌하고 어느 주장이 더 합리적이고 타당한가를 가늠하는 정치의 장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꾸 말싸움이 본연의 임무인 국회에 대해 싸움을 중단하라고 외치고‘상생’을 주장하는 것은 무언가 잘못된 거지요. 국회가
본연의 임무인 말싸움의 장으로 인식되기 위해서는 우선 서로 다른 의견이 경쟁하고 거기에서 합리적인 견해가 이길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합니다. 나만이 옳다는 아집을 서로 버리고 상대방과 차이를 존중해주는 풍토가 필요하지 않은가 합니다.
임=말 싸움이 아니라 몸 싸움을 하니까 자꾸‘상생’을 주문하는 것이겠지요. 세계사적인 냉전구도와
유신/5공의 독재체제를 겪으면서 아무래도 적과 동지의 이분법적 사고가 체제 진영이나 저항 진영을 막론하고 지배적인 기조가 된 것이 아닌가
합니다. 혁명 전 러시아의‘최대주의’와 같은 사고방식이 그 역사적 선례가 되겠지요.
차=사실 정책이라는 것은 몸 싸움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서로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자기 교리의 타당성을 주장하면서도 어떻게 종교간 대화가 가능한가 하는 점을 생각한다면, 정치적 대화가 불가능할 수가 없습니다. 성숙한 태도가
필요하다는 거지요. 사실상 민주주의는 일상적 생활의 성숙성이 뒷받침될 때 실현될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제도적인 것으로만 본다면 일면적인
것이지요. 제도적인 면에서의 거시적 민주주의도 필요하지만, 일상생활의 민주화 즉 미시적 민주주의가 못지않게 중요하지요. 정치적 후진국에서
민주주의가 실패하는 주요 원인은 제도적 민주주의만 이야기할 뿐, 일상의 민주화라는 부분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임=저도 같은 맥락에서 ‘일상적 파시즘’론을 주장한 적이 있습니다. 파시즘의 청산은 제도적 청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 침투된 혹은 사회의 결이랄까 기층문화를 지배하는 파시즘적 아비투스의 극복이 중요하다는
논지였습니다.
차=그렇습니다. 민주주의는 제도이면서 문화입니다. 문화로 정착된 민주주의가 중요한 것이지요. 거시
민주주의와 미시 민주주의의 격차가 좁혀질 때, 그 사회는 진정으로 민주적인 사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도적 민주주의만으로는 불충분한
것입니다.
임=선생님을 비롯한 서양사 연구자들은 대개 민족주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견지해 오셨는데요.
거기에는 민족주의가 민주주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라는 판단이 작용했던 것은 아닌지요?차=민족주의를 간단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요. 개인의 자유와
평등처럼 민족의 자유와 평등도 기본적으로는 부정할 수 없는 권리입니다. 어느 민족이나 자유와 평등을 향유할 권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민족의
자유와 평등을 주장하는 그 순간 민족주의는 그 민족의 외부에 대해서는 닫힌 논리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역사적 경험이
잘 보여주지만, 주변국의 저항민족주의도 배타성을 일정하게 내장하고 있습니다. 세계화가 진전되면서 일부 역사가들은 민족주의가 단명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사회문화적 단위 공동체로서의 민족은 상당 기간 역사를 움직이는 현실적인 힘으로 작동할 것입니다. 말하자면 민족국가가 하나의
단위로서 역사에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아직 많다고 생각됩니다. 어느 사회학자는 그래서 인류에게는 여전히 ‘부족적’ 느낌이 남아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지요. 따라서 중요한 것은 민족주의와 세계주의의 조화를 어떻게 이룰 것이냐의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임=영국의 세계적인 역사학자 홉스봄도 그래서‘1789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의 초판에서는
민족주의의 소멸을 예견했다가, 유고 내전이 터지자 재판에서는 자신의 결론을 황급히 수정해야 했습니다.
차=비단 홉스봄 뿐만 아니지요. 후쿠야마도 그랬지요, 아마.
임=그런 예외를 제외하면, 세계화 추세로 많이 약화되었다고 해도 현실로서 움직이는 민족국가의 힘을
부정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그러나 현실로서의 민족국가를 인정한다는 것과 그것에 대한 비판을 유보한다는 것은 다른 일인 것 같습니다.
자칫하면 서구적 근대의 산물인 민족국가가 마치 가장 자연스러운 정치조직이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주게 되고, 그것은 결국 미래의 정치조직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불행히도 동아시아의 현실은 ‘역사전쟁’이라는 수사에서 보듯이 민족주의의 물결이 여전히 거세고 또
일부 역사가들이 여기에 기여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후배 역사가들에게 당부하실 말씀이 없는지요?
차=역사가들은 과거지향적 학문 태도를 버리고 현실의 정치사회적 움직임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고대사냐 중세사 또 아시아사냐 유럽사냐의 전공 구분에 상관없이 현대사회에 대한 관심은 역사가들의 의무이기도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거의 사건이나 사람에 대한 역사적 진실이 오늘날의 문제해결에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역사학은 문제해결의 지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동아시아의 일부 역사가들이 권력이 주도하는 민족주의적 선동에 말려들고 있는 것은 그들이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으로 말해서 현실에 대한 고민의 부재가 정치현실에 이용당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현실에 대한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다듬고 학문적 연마를 소홀히 하지 않는 한, 역사학이 이 땅의 현실에 기여할 부분은 생각보다 많습니다.
임=오랜 시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정리=임지현 교수 )
[조선일보 2004.08.16 18:5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