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제대로 바라보기
전공이 조선시대 한문학이다 보니 조선시대 연구자를 만날 기회가 잦다. 모두 많이 배우신 분들이다.
이상한 것은 조선시대가 끝난 지 한참인데 아직도 노론이니 남인이니 하고 따지는 분이 더러 있다는 것이다. 양반 동네란 곳으로 답사를 가면 은근히
자기 집안이 뜨르르한 양반가였음을 내놓고 자랑하기도 한다. 이분들에게는 조선시대가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셈이다. 하기야 이건 약과다. 신문이며
방송에서 조선시대를 놓고 하는 이런저런 말을 들어보면 으레 '민족의 전통'이니 '우수한 민족문화'니 하는 찬사 일색이다. 듣고 있노라면
조선시대는 정말 살기 좋은 세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과연 그럴까?
'하멜표류기'를 보면, 하멜 일행의 짐에서 물건을
훔친 좀도둑을 절도사가 처벌하는 장면이 나온다. 절도사는 하멜 일행이 보는 앞에서 아이 팔뚝만한 몽둥이로 도둑들의 발바닥을 30, 40대를
쳤는데, 발가락이 떨어져 나간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하멜 일행도 탈출을 시도하다가 엉덩이에 곤장 25대를 맞고 한 달 동안 누워 지낸다.
짐작이 가는가. 재판도 없이 즉각 발가락이 끊어지거나 한 달을 앓아 누워야 할 정도의 가혹한 체형(體刑)을 공개리에 아무렇지도 않게 가하는
사회가 조선사회다.
김구(金九)의 '백범일지'를 보자. 일본인 쓰치다(土田讓亮)를 죽이고 복역 중이던 23세의 김구는 1898년
3월 탈옥에 성공한다. 삼남(三南) 지방으로 도피하던 중 그는 해남(海南)의 윤씨 집안에서 하루를 묵는다. 밤이 이슥한데 주인이 사랑방 앞
말뚝에 상놈 하나를 묶어 놓고 가혹한 사형(私刑)을 가한다. 이유인즉 자신이 정한 품삯을 받지 않고 상놈 마음대로 품삯을 올려 받았다는 것이다.
상놈은 죽을죄를 지었다면서 살려 달라고 입이 닳도록 애원을 한다.
김구는 궁금하여 물었다. "양반이 정한 품삯은 얼마고 상놈이 제
마음대로 올려 받은 것은 얼마인가요?" 양반의 말인즉 이렇다. "내가 올해에는 동네 품삯을, 년은 두 푼, 놈은 서 푼씩 정했는데, 저놈이 어느
댁 일을 하고 한 푼 더 받았기에 버릇을 고치려고 징치(懲治)하는 게요."
김구가 다시 물었다.
"노상의 행인들이
주막에서 먹는 밥값도 한 끼에 최하 5, 6푼인데, 하루 품삯이 밥 한 상 값의 반액도 안 되면 혼자 살아가기도 어렵거늘 하물며 처자식을 데리고
어떻게 살아간단 말이오?"
주인에게도 할 말이 있다.
"저놈 집에 장정이 연놈 합쳐 두 명이라 하면, 매일 한
사람이라도 양반집 일을 안 할 때가 없고, 일을 하는 날은 그놈 집 식구가 다 와서 밥을 먹소. 그러니 품삯을 많이 줘서 상놈이 의식주가
풍족해지면 자연히 양반에게 공손치 못하게 될 게 아니겠소. 그래서 그같이 품삯을 작정해 주는 게요."
상것들이 재산을 모으지 못하게
하여 가난에 찌들게 하고, 그 결과 하는 수 없이 양반에게 의지하게 만들며, 아무리 가혹한 린치를 가해도 자신이 무슨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지
어떻게 저항해야 하는지를 생각하지 못하도록 상것들을 무식하게 만드는 것이 조선조 양반들의 통치술이었다. 과연 이런 세상에 살고
싶으신지?
신문과 방송이 표나게 내세우는 민족의 우수한 문화적 자산을 굳이 폄하할 필요는 없겠지만, 오로지 그 우수한 무엇에만
골몰하는 편향된 인식의 폐해는 심각하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사회의 리얼리티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조선시대를 우수한 문화와
전통의 코드로 읽기 전에 먼저 조선사회의 실제 모습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강명관 부산대
교수·한문학
중앙일보 2005.11.08 20:58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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