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다 가쓰히로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
(신동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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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특파원들이 본 '과거사 정치'] 옛 독재와 지금 독재, 어느 쪽이 중요한가
한반도의 남북관계를 생각할 때, 지금의 남과 북의 국력 차이는 어디서 나왔을까? 그 답의 기본은 남(南)과 북(北)의 체제 선택의 차이라고 할 수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북한은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선택하고, 한국은 자본주의·자유주의를 선택했다. 20세기 역사는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승리로 끝났는데 한반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동맹관계로 말하면, 미국이나 일본 같은 자유진영을 선택한 한국이, 소련이나 중국 같은 공산권을 동맹관계로 한 북한에 이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남북 사이에 또 하나 중요한 선택의 차이가 있었다. 일본과의 관계다. 한국은 1965년에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하면서 일본과의 교류협력에 의해서 나라를 발전시켰다. 반면 북한은 일본을 외면해오다가 이제 와서 경제재건을 위해서 대일 국교정상화를 시도하고 있다. 일본과의 관계를 재정립했던 한국은 성공하고, 일본을 거부해 온 북한은 실패한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는 그 뿐이 아니었다. 광복 후의 남북한 역사를 볼 때, 북한은 소련 지도하에서 공산화를 진행시키고 친일파(親日派)를 청산했다. 그에 비해서 한국은 친일파를 포함해서 일제시대의 유산(遺産)을 살리고 활용했다. 일제의 유산이란 인재나 제도를 비롯해서 기술, 정보, 지식 등 여러 가지다. 그 결과 일제의 유산을 잘 이용한 한국이 발전하고, 그것을 부정하고 무시한 북한이 낙후한 것이다.
근래 한국에서 시끄럽게 거론되고 있는 친일파 문제를 접하면서, 우선 이와 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1970년대부터 한국에 살고 있는데 그렇게 확신한다.
한국,
일본 이용하면서 나라 발전
한국은 광복 전의 일본과 광복 후의 일본을 다 효과적으로 이용하면서 나라를 발전시켰다. 한국 사람들은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알고 있어도 말하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이 친일파 문제를 돌파하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임을 알아야 한다.
황장엽(黃長燁)씨는 자기가 살았던 북한에 대해서 공산주의가 아니라 봉건주의체제라고 말한다. 권력세습을 비롯해서 과거의 계급적 신분에 따라서 현재의 삶이 결정되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지고 우리는 북한체제를 우습게 여긴다. 그런데 미안한 이야기지만, 한국에서의 친일파 문제를 볼 때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무현 대통령이 광복절 연설의 반을 과거사 문제에 집착했다. 21세기 신세대 대통령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었다. 더욱이 친일파 문제를 거론하면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은 3대가 가난하고, 친일했던 사람은 3대가 떵떵거린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것은 개인보다 가문, 핏줄이 중요하다는 것이 아닌가. 열린우리당의 신기남 의장 문제도 거짓말을 했다는 비난은 있을 수 있지만, 아버지의 과거가 정치생명까지 좌우한다면 그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친일파 문제에 열성적인 사람들은 민주화투사 출신이 많은데, 가문이나 혈통을 따지는 것이 민주주의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과거사 문제를 학자나 연구자가 아니라 정치 차원에서 다룬다는 것은 역사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현대사를 포함해서 역사가 정치적으로 왜곡될 때가 많다. 나는 이 땅에 오래 살면서 많이 목격해왔다. 이제는 올바른 역사를 위해서 역사를 정치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한국 정치는 왜 그렇게 과거에 매달리는 것일까. 왜 과거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건가. 혹시 현재와 미래를 생각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어렵고 불투명한 현재나 미래를 생각하는 것보다 쉽게 따질 수 있는 과거를 즐기고 있는 건 아닌가. 예를 들면 그만큼 군사독재 반대와 민주화를 외쳤던 민주화 세력이 북한의 군사독재나 민주화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는 현대사의 불가사의도 마찬가지다.
한국 정치가 자기 나라의 과거만을 계속 따지는 것은 민족 차원에서 최대 과제인 북한의 현실을 외면하고 싶기 때문이 아닌가. 한국 정치에 있어서 지나간 독재와 현재 진행 중인 독재, 어느 쪽이 중요하다는 것인가. 나를 포함해서 외국 기자들은 정말 답답하다.
“가족 경력과 본인 정치활동은 별개”사사가세 유지 도쿄신문 서울지국 특파원“부친이 일본군의 헌병이었다는 사실보다 부친의 과거에 대해, 본인이 처음부터 국민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라는 점이 중요하다. 만약 처음부터 ‘부친이 이러한 행위를 했다. 자식으로서 유감으로 생각한다’라고 이야기했다면 국민의 판단도 달랐을 것이다.”
신기남(辛基南) 의원이 열린우리당 의장을 사임한 지난 8월 19일, 어느 야당 의원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던 신 의원의 정치적 책임이 큼을 지적하면서, 사임의 타당성을 강조했다. 신 의원은 사임 회견에서 “부친이 한때 일본군에 있었다라는 정도를 알고 있었던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진실’을 알고 있었는데 숨겼었는지, 처음부터 몰랐던 것인지를 단정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이 회견에서 사죄하고 있듯이, 그는 부친의 경력을 전한 일부의 보도를 일단 부정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설명이 말바꾸기식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사실은폐라는 인상이 강해져 비판이 증폭한 것은 틀림없다. ‘정치적 책임’을 추궁하는 주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진실을 말하지 않는 정치가가 비판받는 것은 일본도 같다.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일본 중의원 의원은 지난 5월, 자신의 국민연금 미납 문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내각의 요직인 관방장관을 사임했다. 후쿠다 의원은 미납 사실을 안 후에도, 국회에서 야당으로부터 공격을 받을 것을 고려해 “연금 납부는 개인의 정보이다”라며 공표를 늦추어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책임을 지지 못하고 있다’라는 비판이 집중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 의원의 의장 사임에 위화감을 느끼는 것은, 후쿠다 의원은 본인의 행위가 사임ㆍ사직의 이유였는 데 반해 신 의원은 부친의 경력이 사임으로 연결되었다는 점이다. 만약 신 의원이 의장 취임 전에 부친의 경력을 공개했다면 어땠을까. 신 의원이 사임 회견에서 “친일 청산의 대의를 손상시킬 수 없다”고 강조했듯이, 정부ㆍ여당은 과거사 구명을 ‘대의’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는 ‘정직한 고백’을 했다고 해도 의장 취임을 인정받지 못하지 않았을까. 2002년 대통령 선거 무렵, 당시 노무현 후보의 부인 권양숙 여사와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권 여사는 민주당 경선 때 부친이 좌익 활동가였음이 지적되자, 노 후보가 “그런 이유로 당신에게 (후보 부인으로서의) 자격이 없으면 거기까지이다. (내가 입후보를) 그만두면 된다”라고 격려해 주었다는 아름다운 에피소드를 소개해 주었다. 이 인터뷰 이후 ‘현 정권은 계보와 본인을 구별하는 정권이다’라는 인상을 가졌던 만큼, 가족의 경력이 본인의 정치 활동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최근 한국의 분위기를 유감으로 생각한다.
반일 감정 증폭 여부도 우려돼 하나 더 마음에 걸리는 것은 과거 청산이 반일감정 증폭으로 연결되지는 않을까라는 점이다. 대통령 주변도, 야당 의원들도 ‘과거 청산은 한국민이 이것을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에 관한 국내 문제이다’라며 대일 관계에 악영향은 없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확실히 반민족 행위의 청산 등은 국내 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친일 청산, 과거 구명이 진행되어 나감에 따라 ‘일본과 협력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라는 분위기가 확대되지는 않을까, 일부 시민단체나 네티즌의 사이에 반일 감정이 폭발해 한국민 전체에 이르는 일은 없을까, 걱정이 끊이지 않는다. 다만 이러한 위화감이나 염려를 가지면서도 ‘그러니까 한국은 까다롭다’라며 이해를 포기하거나 일방적으로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자숙하고 있다. “친일 청산을 계기로 일본도 일본나름대로 과거의 역사 문제를 진지하게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지 않은가”라는 일본통인 어느 국회의원의 지적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싶다. 또 한국에서는 역사 문제가 이와 같이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이나, 가족의 경력이 정치 생명을 좌우할지도 모르는 현상을 가능한 한 상세하게 보도하려고 한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전하는 것이 ‘겨울연가’만이 아닌 ‘한국의 실제모습’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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