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문정현, 함세웅 신부 등 주로 정의구현 사제단 소속의 신부 20여명이 모여 4대강에 대한 주교회의의 뜻을 왜곡하였다 하여 정진석 추기경의 용퇴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 상 처음 있는 항명사태라고 신문은 대서특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12월 10일
정의구현사제단이
정추기경님의 4대강
발언이
주교회의의
결정을
함부로
왜곡했다
는
내용의
성명서를
낸
데
대한
지지차원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태는
추기경님이12월
8일
기자간담회에서 “천주교
주교단에서 4대
강
사업을
반대한다고
얘기한
것은
아니다”고
말한
데
대해
정의구현
사제단이
반발하면서
일어난
것입니다. 이들은
적반하장격으로
추기경님께서
‘4대강
사업에
대한
주교단의
결론에
위배되는
해석을
함으로써
사회적
혼란과
교회의
분열을
일으켰다’ 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추기경님의
용퇴를
촉구하는
패륜적인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은
추기경님이
북한에
종교의
자유가
없다고
말씀하셨다고
해서
추기경님에
대하여
골수반공주의자의
언행을
보였다고
비난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신부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들의 조국은 대한민국인가? 아니면 북조선인가?” 하고 말입니다.
드 메스트로(De Maistro) 라는 신학자는 “진리는 오류와 싸울 때 결코 화를 내지 않는다. 오류는 진리와 싸울 때 절대로 조용한 법이 없다.” 라고 말했습니다. 저희 500만 천주교 신자 중에서 과연 몇 퍼센트가 지금 시끄러운 정의구현사제단의 목소리가 천주교의 진리를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할까요?
북한의 천인공노할 인권침해와 도발에 대하여는 철저히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어찌하여 50 %가 넘는 국민이 지지하는 4대강 공사에 대하여는 이토록 집요하게 반대하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뜻깊은 사람들은 이 나라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근심과 우려로 친북좌익들의 난동에 가까운 행동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얼마 전 11월 23일 북한은 연평도에 포격을 가하여 무고한 민간인과 우리 군인들을 살상하였습니다. 현재 저희 한국이 처한 상황은 패망 당시의 월남과 너무나 비슷하다고 합니다. 천안함 사건도 국민의 30%가 아직 북한의 소행이 아니라고 믿는다고 했고 야당 지도자들은 한번도 공식적으로 천암함 폭침이 북측의 소행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월남 패망시 월맹군에게 붙잡혀 월남에서 5년간 억류생활을 하다가 귀국하였던 전 주월 공사 이대용씨의 월남 공산화와 우리나라의 현 상황이 너무나 비슷하다고 하였습니다.
한국과 월남은 오랜 기간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고 식민지를 거쳤으며 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하엿으나 남북간에 다른 두 체제가들어서서 분단국이 되었다는 것 여러가지가 너무나 흡사하여 한국과 월남은 일란성 쌍생아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월남이 패망하던 무렵 월남의 상황을 이대용 씨는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월남이 패망하던 무렵 반공(反共)을 외치고, 나라를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우익 인사들은 암살당하던지 하여 반공을 주장하는 언론인, 지식인과 중산층, 언론은 침묵하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언론과 지식인들이 국가 안보와 반공, 국가 정통성 수호를 외치면, 말과 글과 구호로 무장한 좌파 인사들이 무차별 공세를 펼침으로써 「말없는 다수」들이 침묵하는 상황도 25년 전 월남과 다름이 없습니다.
천주교의 짠후탄 신부는「구국평화 회복 및 반부패 운동 세력」이라는 단체를 결성하여 반정부운동에 앞장 섰고 이 단체는 공산프락치의 주된 활동무대가 되었습니다.
1975년 3월 10일 새벽 2시, 월맹 공산군이 중부월남에서 오래 전부터 침투해 있던 프락치들을 이용, 주민들을 선동하며 총공세를 감행하였고 월맹군에게 허를 찔린 티우 대통령은「즉각 정쟁을 중지하고 일치단결 하여 침략군을 무찌르고 자유월남을 지키자」고 호소했습니다. 티우 대통령의 간곡한 대국민 호소가 발표되자 「구국평화 회복 및 반부패 운동세력」의 지도자인 짠후탄 신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중부월남 고원지대에서 반민주, 부정부패를 일삼는 티우 독재정권에 항거하는 민중봉기가 일어났다. 그곳에 월맹군은 없다. 티우는 책임지고 사퇴하라」짠후탄 신부는 오히려 그들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월맹을 이용한다며 정부를 격렬히 비난했습니다.
1975년4월 30일
정오, 월맹
공산군
제2군단은
사이공
시내로
진격하여
탱크부대가
월남
대통령
집무실과
관저가
위치한
독립궁을
점령했습니다. 이로써
군사력과
경제력에서
월맹을
압도한다고
자랑하던
월남은
월맹군에
의해
너무도
허무하게
지도상에서
사라졌습니다.
월남이 공산화된 후 공산 학정을 피하기 위하여 200만 여명이 보트 피플로 망망대해를 떠돌았습니다. 이중 몇 십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해적에게 재산과 생명을 빼았기고 겁탈당하거나 굶주림으로 인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당시 한 보트 피플은 일가족이 바다위를 떠돌다가 망망대해에서 모두 목숨을 잃고 본인은 1978년 2월 무인도에 표류하여 마지막으로 자신의 처지를 피로써 기록하였습니다. 이 유서는 이른바 “남해혈서”라는 이름으로 대만의 반공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다고 합니다.
남해혈서의 전문을 참고로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지쳤다.
죽음은
두렵지
않다.
그러나
원통하다.
바다, 하늘뿐.
나는
누구에게
이
혈서를
띄울
것인가?
나의
가족은
모두
공산군의
학정에
쓰러졌다.
혈육은
외아들뿐,
13명의
월남
동포와
목선에
몸을
실었다.
나의
외아들은
무인도에
도착 13일째
되는
날
고통
속에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내
아들의
시체를
뜯어
먹으며
목숨을
이어온
동료도
모두
죽었다.
호랑이가
무섭다고
하지만,
호랑이굴에
우리를
떠밀어
넣은
사람이
더
가증스럽다.
우방, 애국지사, 독립운동가, 지도자
모두.
그들의
말에
속아온
우리의
동포가
불쌍하다.
그들에게
속은
우리는
성장하지
못한 13살의
철부지였나
보다.
황량한
바다.
이제
두렵지
않은
죽음이
다가온다.
그러나
아! 하느님!
마지막
내
살점을
파내는
피의
절규를
들어주소서.
하늘
아래
이렇게
죽어
갈
수
있는지…
하느님! 말하여
주소서!
그런데 이 월남의 패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신부님과 스님들 당시 존경받든 종교지도자였습니다. 물론 당시 월남정부의 부정부패가 그러한 민간인들, 종교단체, 시민단체 에게 저항의 근거를 주었던 것은 사실이나 월맹군이 수도까지 진격하는 상황에서도 이들은 반국가적인 행태를 지속하였습니다.
저는 우리 천주교회 내에서도 정부에 대하여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시는 사제들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이 때까지 보아왔던 신부님들은 한결같이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이셨습니다. 물론 그러하니 당연히 성직자의 길을 걸으셨겠죠.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하면 너무나 순수하기 때문에 또 남의 그럴사한 말에 쉽게 넘어가고 또 정치인들에게 이용당할 수도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최근 논란이 되는 4대강 사업에도 가톨릭의 가장 높은 의사기관인 주교회의에서 왜 이를 반대한다고 일방적으로 발표하시는지 알 수 없습니다. 주교회의가 저희 500만 신자들의 의사를 대변하는 기관입니까? 하느님이 기도 중에 4대강은 생명을 죽이는 사업이니 반대하라고 계시하셨습니까?
그리고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의 과격하고 절제되지 않은 언어와 행동을 보면 저는 이 분들이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옹호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의심들 때가 있습니다. 참여정부 때 어떤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은 KAL기 폭파 사건이 당시 안기부의 조작이라면서 기자회견까지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신자 들뿐이 아니라 일반인 들까지 존경하고 사랑했던 추기경님이 돌아가겼을 때 성남의 한 본당의 주임신부님은 강론 중에 “이 분, 이제 갔습니다.”라고 모욕적인 언사로 추기경님의 귀천을 폄하하였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쳐야 할 사제의 입에서 나온 소리입니까? 사랑과 관용, 용서를 가르치고 전해야 할 사제가 강론 중에 거의 육두문자를 써가면서 주한미군을 욕하고 이 때문에 미사에 참여했던 신자들이 차마 신부님과 싸울 수 없고 해서 그다음부터 아예 성당에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꽃동네의
오웅진
신부님은
힘없고
갈데
없는
이들을
거두어
서로
돌보며
사는
마을
「꽃동네」를
이뤄낸
분입니다. 이
성직자가
얼마
전에
모진
모함과
시련을
당하여
말할
수
없는
곤욕을
치렀습니다. 그것을
몇
년이
걸려
법정
투쟁을
벌이고
탄원서가
산더미처럼
쌓이는
숱한
사람들의
노력이
기울어져서야
모든
혐의를
벗었습니다. 그러노라고
몇
해를
허비하며
세월과
힘을
소모했습니다.
이
성직자를
이렇게
되도록
적극적으로
모함하고
『어떻게
하든
죄를
얽어
혐의를
유지하게
하라』고
배후에서
검찰에
압력을
가한
세력의
하나가
같은
사제의
옷을
입은
이른바
「정의구현
사제단」의
신부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예를 들자면 한이 없습니다마는 제가 신부님에게 몇가지 말씀드리면 신부님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성직자이시고 이세상의 구원이 아니라 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평신도들을 사목해야하는 직책에 계신 분들입니다. 그런 사제가 어떻게 일반 평신도들이 듣기에 거북한 말을 그렇게 꺼리낌없이 내 뱉을 수 있습니까?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하느님의 가치를 실현하고 하느님의 복음을 이웃에 전할 사명이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 이웃, 비교도들이 이러한 신부님의 말과 행동을 보고서 나의 영혼의 구원을 위한 안식처로서 성당에 나와야겠다는 마음이 들까요?
지금은 말의 성찬이 풍성한 세대이고 많은 진보적인사들이 민주, 참여, 평등, 이라는 단어를 즐겨 쓰고 마치 그들만이 이러한 가치의 구현자인양 행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말과 그에 따른 결과를 잘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말이 풍성한 것은 그 내실이 없음이요, 말이 아름다운 것은 실제 결과가 없음을 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에 자주 나오는 무화과라는 나무는 문자그대로 꽇이 없이 열매를 맺는다는 나무입니다. 물론 생물학적으로 따지면 꽃이 숨어있다고 합니다만 여기에서 우리는 복음이 전하는 가르침을 알 수 있습니다. 꽃이라 함은 외관이 화려하다는 뜻이지만 실은 꽃이 우리에게 주는것은 시각적인 즐거움외에는 없습니다. 즉 우리는 꽃이라는 허망한 존재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참다운 삶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정의구현사제단의 신부님들은 이 나라가 북한 공산집단에게 넘어갔을 때 어떠한 상황이 벌어질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당시 월남이 패망하였을 때 월남의 경제력은 국방력이 세계 4위의 군사대국이었고 정규군 58만, 그리고 월남 전국의 90%를 사이공 정부가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 그러나 내부분열로 월남은 북의 공산정부에게 넘어갔습니다. 이러한 월남의 패망에는 종교지도자가 가장 큰 몫을 하였습니다.
지금 북한에는 대략 20만명 이상이 수용소에 갇혀 인간 이하의 생을 영위하고 있고 이 중 4분의 1이 그리스도교 신자라고 합니다. 탈북자의 증언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예화가 수도 없이 많습니다.
-1996년 당시 예술단에 있는 20대 후반 여성의 아코디언 연주가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성가를 가르쳐 주었는데 그 여성을 비롯해서 그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른 어린아이들도 모두 정치범 수용소로 갔어요.
- 1996년 10월 29일에 보위부에서 40대 후반의 여자가 중국에 탈북하여 기독교를 믿고 성경책을 가지고 다녔다는 죄로 붙잡혀 정치범수용소로 가는 것을 봤습니다.
북한은 김정일 유일신이 지배하는 일신교사회입니다. 그리고 김정일의 초상화의 청소상태를 당 간부들이 1년에 서너차례를 검열하고 먼지가 끼었거나 습기가 차면 처벌받게 됩니다. 심할 경우 수용소로 가게되거나 지방으로 추방된다고 합니다.
신부님, 예수님은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그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에게로 돌리라고 하셨습니다. 만약 신부님께서 이 사회가 하느님의 정의를 실현하시기에 만족하지 않다고 생각되고 진정 이 사회의 변혁을 원하신다면 사제복을 벗고 나서십시오. 그리고 이 사회가 그나마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많은 발전을 이루어내었고 살만한 사회라는 인식을 가진 분들을 선동, 회유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자기편으로 끌어드리도록 힘써 보십시오. 아니면 진정한 사제의 길을 걷기 위하여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도록 하십시오.
그러지 않으시면 신부님은 용서와 화해, 하느님의 나라를 맞기 위해 회개를 말씀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정치적으로 이용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당시 유대교 지도자의 길을 걷고 계신 것입니다. 사제복을 입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2000년 전 유대 지도자의 길을 갈 것인지, 아니면 진정 주님의 말씀을 따르는 어린 양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이끄는 사목자가 될 것인지, 아니면 사제복을 벗고 사회변혁을 꿈꾸는 혁명가의 길을 걸을 것인지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께서는 결단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