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念.思想.思潮

자유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

이강기 2015. 9. 18. 09:18

[특집] 자유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
- 민주화 이후의 전개를 중심으로 -



[김용직 | 성신여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시대정신 2012년 가을호

 

Ⅰ. 서: 포스트 민주이행기의 한국정당과 민주주의

민주화 이후 한국 사회의 정치 엘리트들은 역동적인 변화와 개혁의 시대를 살면서 정치적 혼란과 사상적 혼돈을 경험하고 있다. 한국사회는 1987년에 민주적 전환의 대격변기로 들어섰다. 이후 10년 만에 동아시아 금융위기의 파고는 한국 경제체제를 강타하였고 기존의 개발국가형 경제경영은 종식을 고하고 신자유주의적 체제개편을 해야 하였다. 10년간의 좌파정부 집권기 동안에도 한국은 세계경제에 적응하기 위해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채택해야 했고 좌파정부의 실정에 실망한 민심은 보수정부의 출현을 선택하였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통치도 벽두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에 나선 군중의 대규모 시위 사태에 이어 미국발 세계경제불황을 맞아 어렵게 시작하였고 집권후반기에는 북한의 천안함 폭침사태 및 연평포격사태 등의 안보위기사태에 직면하여 어려움을 겪었다.

2011년 20년 만의 총선과 대선이 겹치는 선거의 해를 일 년 앞두고 여당과 야당은 불안한 심정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있었다. 건국세력, 산업화세력, 민주회복세력 등 보수진영을 구성하는 정치세력은 현 정치체제가 자유민주주의, 대의민주제임을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물론, 이들도 대의제의 위기를 외치는 비판자들의 구호를 의식하여 대중적 지지와 정통성을 강화하기 위한 나름대로 여러 가지 노력을 다하려 한다.

한편, 2012년 4․11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이하 민주당)은 민중운동 진영- 학생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을 적극적으로 포용하였고 진보정당인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과 국민참여당 등과 선거연합을 구가하여 여당에 큰 압박을 가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물론 현 정부를 비판하는 야당은 여러 세력과 단체로 나뉘어 있는데 이들은 금년을 정권교체의 호기로 본다. 이들 중의 큰 흐름은 최근에 총선에서 선거연합을 구성하여 수십 석의 의석을 여당으로부터 탈취하였고 거여(巨與) 위력을 현저히 약화시켰고 거의 그것을 무력화할 뻔하였다.

그러나 제1야당 민주당이 급진세력인 통진당과 선거연합을 추진하면서 눈에 띠게 좌경화하는 양상이 나타났고 한미동맹 반대, 한미 FTA반대, 제주해군기지건설 반대 등의 강경정책들이 잇달아 발표되어 국민들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만일 선거 때의 민주당 지도부의 정책선언대로 당의 노선이 변화하고 선거가 치러진다면 거대야당이 통째로 진보적 정당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과연 어떠한 민주주의체제를 선호하는지는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지 않고 그 내부에는 여러 가지 노선과 입장이 통일되지 않은 채 난립하고 있다는 지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민주당은 앞으로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총선에서 시도한 진보세력과의 선거연합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다시 독자적 노선을 추구할 것인지 고민 중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과연 전통보수야당의 이미지를 유지해 갈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선택을 통하여 진보정당으로 변신할 것인지 갈림길에 놓여 있다. 필자는 한국의 정치체제가 국내적으로 여러 당파적 집장에 따라 논쟁점이 있어 왔지만 대외적으로는 그것의 근본성격이 자유민주주의체제라는 점에 있어서 국제사회에서는 큰 인식의 합의가 이미 이루어졌다고 본다. 그런데 문제는 국내의 좌파들의 담론에서는 여전히 한국정치체제에 대해 상당한 오해가 있다는 것이다.

이 글은 체계론적 관점에서 한국정치체제를 공화주의적 복합체계(complex system)로 인식하고 그것이 매우 적응력이 높은 체제이지만 통치운용의 방식에 따라서 상당히 자율성이 나타나는 체제라는 점을 중시한다. 특히 민주공화제의 고유한 특성인 혼합정체(mixed system)적 성격에 의해서 정치체제가 행정부, 의회(입법부), 그리고 공중(公衆)의 3중 구조를 가지기 때문에 보는 관점에 따라서 민주주의의 현상들에는 여러 가지 착시 현상들이 나타나고 체제의 작동에 대한 다양한 평가와 해석이 나올 수 있다. 또한 정치체계는 그 3중 구조에 입각한 복잡한 과정적 전개에 따라서 체계의 주요 이념들이 상호조화를 이룰 수도 있지만 이들이 서로 경합하고 갈등하는 양상을 보일 수 있다.

이 글은 민주화 이후 한국정치체제에 대한 논쟁을 중심으로 2012년 한국 정당의 정치체제와 민주주의에 관한 인식과 대응의 문제점을 검토하여 보고자 한다. 2005년 이래 한국 사회체제에 관한 학문적 논쟁과 담론들에서 한국의 정치체제에 대한 인식을 정리하여 보고 결국 자유민주주의와 민중민주주의라는 두 가지의 큰 패러다임 사이에서 나타나는 혼란양상을 검토하여 볼 것이다. 야당의 선거연합의 행보가 충분한 사전적 논의나 검토 없이 색채와 정체성이 다른 정당들이 당선이라는 전략적 고려와 정치적 목표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자칫하면 기존 정당으로서의 정체성까지 모호해지거나 크게 흔들리는 것이라는 우려가 과연 근거가 있는 것인지 검토할 것이다.

 

Ⅱ. 한국의 민주적 이행과 헌정적 정치체제의 복귀

 

1987년 대한민국의 헌정체제의 변화는 70년대 유신 정권기부터 자유주의에서 이탈한 한국정치의 권위주의체제를 헌법 개정을 통하여 다시 유신 이전의 자유민주주의체제로 복귀시킨 것이다. 이로 인해 이후 민주적 공고화 1기(88~92)에는 자유화, 이행, 권위주의 퇴출이 이루어졌고, 민주적 공고화 2기(93~97)에도 지속적으로 권위주의는 한국정치에서 퇴출되었다. 1993년 김영삼 정부의 집권과 98년 김대중 정부의 집권은 민주화 이후 노태우 정부에 이어서 연속해서 두 세 번의 성공적인 민주적 정부의 등장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로 인하여 세계적으로 한국은 정치체제의 불안정성이 사라지고 민주적 공고화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그럼 이 시기에 한국의 정치체제는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살펴보자.

 

1. 노태우 정부시기 정치체제의 전개

 

민주적 이행기에 대의민주제는 선거결과 지역주의로 변형되는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즉, 민정당, 민주당, 평민당, 공화당이라는 주요 4당이 각각 대구-경북, 경남, 전라, 충청 지역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였다. 민주화 이후 지역주의적 균열구도가 정당정치의 파벌적 정치구조의 지배적 원리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다당제 구도는 선거후 1여 3야라는 여소야대의 정국을 귀결케 하였으며 여당은 국회의석에서 과반수에 크게 모자라는 125석의 득표를 했을 뿐이다. 결국 노태우 정부는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국회의 의석수 부족에 따른 불리함을 극복하기 위하여 보수3당간의 3당 합당을 단행하였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김대중의 평민당만을 배제하였고 거대여당은 승자연합을 구축하여 김영삼 후보의 당선을 이끌어 냈다.

노태우 정부의 정치과정의 특징은 두 가지 청문회-5공 청문회와 광주사태 청문회-를 중심으로 한 민주화과정의 계속이라는 특징으로 파악될 수 있다. 노정부의 정치과정의 특징을 결정하게 된 두 청문회는 87년 민주화의 여파로 입지가 강화된 야당과 민주화세력의 주도적 영향력을 보여준다. 이것은 의회의 행정부에 대한 강화된 권한이 행사되는 것으로 민주적 이행의 중요한 계기이자 국민들에게 의회 내 야당의 위력을 확인케 해주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었다. 특히 야당은 청문회를 통하여 자신들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는 계기를 포착할 수 있었다.

2. 김영삼 정부시기

 

1993년 전통적인 야당의 지도자 김영삼이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그의 당선으로 1961년 이래 야당과 여당의 수평적 권력교체가 32년 만에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초기부터 금융실명제와 정치개혁법을 앞세워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가동하였고 군과 정보기관 등의 권위주의적 국가권력기구들의 개혁을 추진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 후에 기존 관료제에 대한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청와대비서관을 이른바 386세대로 불리는 젊은 운동권출신들 인사들로 충원하였다. 김 대통령은 이전 정부와의 차별화를 중시하였고 공식적 관료조직에 대한 불신을 드러내면서 포퓰리즘적 통치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의회 내 야당의 정상적인 의정활동 조차도 비민주적인 것으로 치부하며 대통령의 개혁의지를 직접 대중에게 호소하는 위임 민주주의적 통치 스타일을 보였다. 그는 대의 민주제의 중추적 기관인 의회의 반대 권리를 충분히 인정하지 않았다. 그 결과 한국정치는 민주적 대통령이 의회의 지위를 국정의 동반자적 위치에 있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는 기이한 형국으로 전개되었다. 민주적 대통령의 리더십이 위임통치적 문제를 보였고 특히 정권말기에 한보사태로 불거진 경제위기는 외환위기 사태로 치달았다.

97년 대통령선거는 김대중 후보가 보수당인 자유민주연합(자민련)과 연합하는 선거연합전략이 성공하여 또 한 번의 성공적인 평화적 정권교체로 귀결되었다. 특히 김대중 후보는 특유의 쐐기전략을 구사하여 여당의 보수당 후보분열-이회창과 이인제의 분열-을 유도하여 큰 성공을 거두는 노련함을 보여 주었다. 87년에 도입된 직선제개헌에 의한 헌정적 정치체제는 잇달아 어떤 장외의 세력이 개입함이 없이 선거정치 그 자체의 동력만을 통하여 차기정부의 선택이 결정되며 민주적 정치체제로서의 손색없는 기능적 역할을 다할 수 있다는 점을 국민들에게 확인시켜 주었다.

이와 같이 볼 때에 선거정치라는 자유주의적 정치과정의 메커니즘보다 더 큰 역할을 수행하는 요인들은 ‘87년 체제’에서 찾아볼 수 없다. ‘87년 체제’를 자유민주주의체제로 부르는 것에 어떠한 유보적 제한을 둔다는 것은 적어도 그 선거에 참여하여 정당한 표를 행사한 유권자나 그들을 통해서 당선된 집권세력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특히 다소 진보적인 색채를 띠었던 후보인 김대중과 이후 그를 이어서 집권하는 노무현 후보의 경우에 이들이 당선되는 정상적인 정치체제의 작동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작동이외에 다른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보이지 않는다. 이와 같이 볼 때에 민주화 이후 한국의 정치체제는 대의제 민주주의체제가 원활하게 작동하는 정상적인 자유민주주의적 정치체제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Ⅲ. 신자유주의기 한국정치체제의 헌정정치

 

1. 김대중 정부의 정치과정: 경제위기와 신자유주의적 전환기(1998~2002)

 

1997년 이후 한국사회는 IMF구제금융이라는 미증유의 경제위기를 맞게 되었다. 탈냉전이후에 가속화된 국제금융체제적 압박을 이기지 못한 한국은 천문학적인 외환 유동성 결핍의 위기를 맞아 국제적 명성을 가지고 있던 대우그룹을 위시하여 국내 30대 재벌의 상당수의 잇단 도산사태를 경험하게 되었다. 민주적 이행이 성공적으로 종료되고 구조적 안정화도 이루어진 그 시점에 한국 정치체제는 글로벌 신자유주의적 경제위기를 맞았다. IMF 금융위기를 맞은 김대중 정부는 좌파신자유주의정책을 전개하면서 정치적으로는 보수당인 김종필의 자민련과 공동정권을 구성하였다. 보수당과 공동정권을 구성한 김대중 대통령은 연립정권을 구축하고도 국회 의석수 과반에 못 미치는 세력의 한계를 보이고 ‘여소야대의 정국’을 맞아야만 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민주적 공고화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단계에서 공동정부로 출범하여 자유민주주의적 틀인 선거정국의 전개에 있어서는 잘 적응하였고 금융위기극복을 위해서 국제금융기구 IMF의 자유화조치 요구를 수용하였다. 그 결과, 대의제와 자유민주주의체제는 이전 행정부와 동일하게 작동하였다. 집권 후 김 대통령은 검찰과 국가기관의 사정정국 주도를 통하여 의회정치에 강한 압력을 행사하여 자신의 권력의 강화를 꾀하였다. 그러나 의회의 거대 보수야당은 대통령의 대북정책이 탈법적으로 무리한 방식으로 진행되었음을 밝혀내는 등 강력한 견제를 하였다.

경제정책면에 있어서 김대중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추진하였고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제사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제반조치를 취하여야 하는 불가피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는 보수적 정책으로 회귀하였다. 어쨌든 김대중 정부는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고 또한 그 과정에서 한국사회의 개발독재시기 정경유착관행에 종지부를 찍는 등 관치경제의 체질개선에 크게 기여하였다.

 

2. 노무현 정부기 대통령 탄핵사태(2004)와 헌정정치

 

노무현 정부는 참여정부라는 수식어에 나타나듯이 참여민주주의를 국정의 중요한 수단으로 인식하여 시민단체들의 국정운영에의 개입을 종용 내지는 허용하였다. 그 과정에서 노 대통령은 선거의 공정성에 대한 책무를 방기하고 선거법을 위반한다는 의회의 반발을 사게 되었고 대한민국 헌정사상 초유의 국회에 의한 대통령 탄핵사태를 유발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2004년 3월 총선을 앞두고 선거법을 위반하였다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경고를 받았다. 노 대통령은 선거법 위반의 재발방지와 사과를 요구하는 야당인 한나라당과 여당인 민주당의 요구를 거부하였다. 그 결과, 두 야당이 주도하는 대통령탄핵안은 정족수를 10여 표 초과하여 국회에서 가결되어 대통령의 집무정지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하였다.

대통령의 선거중립 의무 경시에 입법부가 탄핵을 실시하였고 최종판결권은 헌법재판소에게 주어졌지만 헌재는 심리를 2개월간 지체하고 국회의원 총선 결과를 통하여 민의를 확인하기 전까지 최종판결을 내리지 않았다. 결국 5월에 헌재는 대통령의 위법사실은 인정되지만 탄핵사유가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판결을 통해 의회의 탄핵안을 기각하였다. 이 사건은 형식적으로는 헌법재판소가 입법부와 행정부 두 국가기관 간의 갈등과 대립의 국면에서 최종 결정권을 행사한 것이다. 그러나 내용적으로는 총선에 반영된 민의를 사법부가 사후적으로 추수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유권자들의 표심에 영합하는 모습을 보여 사법부가 스스로 자기 권한을 낮추는 행동을 취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사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라도 법규를 위반하는 경우에는 헌법의 절차에 따라서 입법부와 사법부에 의하여 그 권한에 심각한 견제조치가 부가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로서 헌정적으로 공화주의적인 메커니즘으로 사전에 그 해결절차가 헌법적으로 규정된 것이다. 그렇기에 그것은 정치체제의 자기준거적인 자동적 절차에 따라서 진행될 사안이었으며 하등의 의외적인 과정에 의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유권자들은 민감하게 이런 대통령 탄핵에 반발하여 직후의 총선에서 거대여당인 열린우리당을 탄생하게 해주는 압도적인 대통령지지 민심 동향을 보여주었다.

헌재의 탄핵정국에 대한 판결에 대하여 선출된 권력에 대한 임명권력의 쿠데타적 권한행사라는 일부 좌파 학자들의 주장은 공화주의적 원리에 대한 심각한 몰이해를 드러낸다. 그러나 진보진영 내에서 온건파적 입장을 가진 한 학자는 결국 대의민주주의제 틀 안에서 정당 민주주의만이 한국의 민주주의를 공고화시키는 해결책이라는 의견을 공포하였다. 이것은 결국 자유주의 정치체계 구조에서 의회 정당정치 영역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체계가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당의 리더십이 동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복합적 작동구조라는 점을 이해한 데에서 비롯된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즉, 공화주의적 혼합정체적 정치과정이 본격적으로 전개되는 것의 중요성을 이해한 지적이다.

 

 

Ⅳ. 보수정부 재집권과 한국 정치체제 성격논쟁

 

1. ‘1997년 체제론’의 등장

 

개혁적 성향의 진보주의자로 분류되는 손호철과 김호기 등은 신자유주의체제의 전환과 함께 1997년 한국의 사회체제의 근본적 유형의 변화가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민주주의체제가 경제체제적 환경에 있어서 신자유주의라는 구조적 상황 아래에 놓이게 되었지만 새로운 체제의 등장이 아니라 같은 정치체제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이들은 정치체제는 이전과 동일하게 1987년 도입된 정치체제를 유지하지만 경제정책면에서 신자유주의적 글로벌리즘이라는 환경적 요인이 구조적으로 작용하여 경제체제가 신자유주의체제로 전환하였다는 점을 중시한다. 이들은 민주화시대가 지나가고 세계화 시대가 도래하였다고 지적한다.

즉, 이들 1997년 체제론자들은 본격적인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복합적체제로 정립되는 단계가 시작되었다는 추정을 제기한다. 즉, 이들은 정치적 민주주의와 경제적 신자유주의가 결합한 정치경제적 체제가 등장하였고 이것은 87년 체제보다 더 큰 역사적 분수령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간주한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체제가 정치적 자유민주주의체제와 경제적 시장경제체제라는 복합적 체계로 구성되는 단계로 진입하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것이 개별 정부의 정책에 따른 우연적 결과인지 아니면 비가역적 단계인 체제적 단계로 접어들은 것인지는 아직 판단하기 시기상조로 보인다. 본격적인 한국정치체제의 복합체제단계로의 진입은 정치체계와 경제체계가 상호영향을 매우 많이 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지 반드시 특정체제간의 필연적 동반관계의 설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는 한국사회체계의 하위체계라는 상호 관련성을 가지지만 이에 못지않게 양자 사이에는 상호 긴장과 갈등도 근본적으로 존재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이명박 정부의 대의적 정치과정의 위기: 광우병 촛불시위(2008)

 

신자유주의 전환이후 제3기 정부라고 할 수 있는 이명박 정부의 출범은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 것이라고 보인다. 노무현 정부기의 두 번의 총선에서 시민단체들은 참여민주주의의 명분을 가지고 선거에 개입하였고 총선연대를 결성하여 실정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일부 국회위원들의 낙천운동을 대대적으로 주도하였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정치인들에 대한 실망과 불신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선거과정을 공정하게 관리해야 하는 공권력이 이것을 방치하는 것은 심각한 비민주적 비공화적 사태임에 다름 아니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은 직전 두 좌파적 정부에 대한 민심의 이반을 의미하는 것으로 참여민주주의를 주장하였던 노무현 정부의 실정에 대한 유권자들의 심판을 의미한다. 정권출범 직후에 치러진 총선에서도 다시 민심은 정부를 강력하게 지지한다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그런데 불과 수십일 후에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바로 이명박 정부의 성급한 한미 FTA 추진정책과 쇠고기 수입조치에 항의하는 촛불집회가 수도 서울의 한복판 광화문과 시청 앞 광장에서 대규모 군중을 동원하고 과격한 시위를 이어가는 돌발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천 여 개의 전국적인 좌파 시민단체가 연합한 광우병반대 국민운동본부가 결성되어 정권반대운동을 조직적으로 기획하여 대중을 동원한 것이다.

당시에 가장 심각한 대의제 민주주의의 문제점은 바로 입법부의 구성원인 야당 국회의원들이 국회의 등원을 거부하고 거리의 시위대 사이에 끼어 앉아서 반정부 시위대를 지지하는 집단행동에 가담한 것이다. 이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당사자이자 국가기관이 스스로의 권한과 책무를 포기하고 군중들의 과격여론에 동조하고 이를 부추기는 행위이다. 의회주의의 전통이 역사적으로 강하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탓이기도 하겠지만 야당 국회의원들의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정치과정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의 수준이 매우 낮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거의 공권력의 마비 직전까지 진행된 수개월 동안의 반정부 민중의 직접행동의 위력은 실로 막강하였다. 출범 초기 중도실용을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그야말로 혼비백산하여 넋이 나간 듯이 보였고 유화적 대응이나 통상적 진압을 시도하였으나 매번 실패하였다. 시위대는 초저녁에는 낭만적인 분위기에서 대중을 모으는 가벼운 분위기를 조성하였다. 그러나 밤이 깊어갈수록 촛불집회는 과격한 모임으로 변질되었고 폭력행사나 공격적 행동을 보이는 것도 다반사였다.

촛불집회는 결코 구체적 정부정책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을 의도하지 않았다. 촛불시위 집행부는 결국 반정부 여론의 과격화를 통하여 정권전복 가능성까지 모색한다는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이르렀다. 과격시위 이후에 이들은 바로 다음날 더 많은 군중들을 모아서 더 크게, 더 과격하게 반정부시위를 주도하였다. 그 과정에서 합리적 이성보다는 확인되지 않은 루머가 유포되고 대중의 감성을 자극하는 전문적인 선동정치가들의 폭력적 선동술이 기승을 부렸다. 결국 3개월이 경과하면서 언론사를 공격하는 등 과격화된 시위에 대하여 시민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공권력의 진압이 성공하기 시작하였고 대중들의 참여는 급격히 감소하게 되었다.

2008년 하절기에 한국사회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수도서울은 대규모 반정부 촛불시위로 저녁마다 교통마비가 이어졌고 거의 혁명 전야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급진주의자들은 급진민주주의를 한국정치체제의 대안적 체제로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전통적으로 민중민주주의 운동권의 주장을 반영하는 이러한 주장을 펴는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를 형식민주주의라고 폄하하며 실질민주주의의 구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데 이들이 제기하는 실질민주주의란 매우 사회주의적 색채를 강하게 띠는 내용을 가진 것이다.

급진민주주의 운동에는 물론 사회민주주의 노선도 포함되는 것으로 보이는데 사실 사회민주주의자들은 굳이 급진민주주의가 아니라도 자유민주주의체제 안에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추구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에 자유민주주의체제 내에서 온건좌파 정부가 집권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사례이다. 따라서 사회민주주의노선은 자유민주주의체제를 인정할 수 있는 것이며 그 틀 안에서 온건한 합리적 방식으로 의회 내의 다수를 점하여 점진적 복지국가정책을 추진할 수 있다. 반면에 사회주의노선은 반헌정주의적 관점이나 주장을 자주 보이며 급진민주주의의 통제에 대하여 폭력적 대항을 불사한다는 과격성을 포기하지 않는 성격을 가진다고 보인다.

 

3. 2012년 선거정국과 체제논쟁

 

최근 ‘2013년 체제론’을 주장하며 정권교체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진보진영의 일부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분단체제론이라는 관점을 제기하는 대표적 좌파 지식인의 수장격인 백 교수는 매우 추상적인 수준에서 남북한이 하나의 체제와 유사한 관계 하에 놓인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남한정부와 북한정부가 현실적으로 전혀 상호 협력이나 연계가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상호간의 관계가 매우 적대적인 상태라는 점에서 볼 때에 전혀 유기적인 하나의 체제를 구성하지 못하는 비현실적 주장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런 관점은 남북한의 정치, 경제적 발전 단계의 상이성과 체제성격의 상이성을 무시하고 또 남한과 북한 정부의 적대적 관계를 협력적인 것으로 오해하거나 두 체제를 비슷한 수준의 같은 유형의 것으로 단순화, 왜곡할 위험이 있는 주장을 내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백 교수의 2013년 체제론은 현 상태의 분단체제가 말기적 현상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북한의 강성대국론이나 이명박 정부의 보수적 대북정책이 전형적인 “적대적 상호의존관계”를 보이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으로 포용정책을 재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를 위해 그는 김대중 정부 때 남북 지도자들이 합의한 6․15선언을 재가동화하고 한미동맹을 해체하며 남북 간에 국가연합체제를 건설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는 친북적인 정치관과 그것에 기초한 일련의 통일구상을 나열한다.

백낙청의 2013년 체제론은 정확한 사회과학적 개념도 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매우 과격하고 위험하며 비합리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전 정부의 정책의 결과들에서 비롯된 문제들을 다 새로 들어선 보수정부의 탓으로 돌리고 자의적으로 선거 이후 연도에다 체제를 갖다 붙이는 식의 조어법은 체제개념의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 정치체제란 안정적인 질서체제의 수립과 장기적으로 유지되는 특정한 질서구조를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평화적이며 민주적인 헌법 정치체제를 부인하는 목적에서 이런 용어를 남발하거나 이것을 민중의 권력으로 바꾸자는 민중혁명적 주장에 대하여 이를 의미있는 학문적 개념이라고 간주할 수 없다.

이들은 신자유주의적 정책에 대한 반감에서 사회경제적 민주주의의 퇴보를 우려하면서 이러한 주장을 내어 놓는 듯하다. 또 다른 이들은 민주주의 좌파를 자임하면서 좌파․진보진영의 대통합을 통하여 급진적인 민주주의체제, 그리고 반자본주의 연대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제시한다. 이들 역시 과거 1980년대 말 급진적 학생운동권의 협소한 도그마(dogma)적 인식체계에 갇혀서 한국의 정치체계가 자유민주주의로 진화한 역사적 현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아집과 편견을 보인다고 하겠다.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의 역할을 극대화하여 민중의 직접행동을 총동원하려 하는 이러한 급진주의자들의 관점은 매우 무모하다고 할 수 있으며 이들의 집권 시에는 포퓰리즘적 위임통치의 정치적 혼란이 예상되는 것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의 집권의 성격은 대의제 민주주의, 즉 ‘1987년 체제’로 불리는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지극히 정상적인 작동에 의한 것이기에 선거를 통하여 민의가 스스로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일 뿐 다른 특별한 체제결정 요인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급진민주주의론을 사칭하여 변혁을 주장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원리인 선거정치에 대한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며 결코 올바른 이해라고 볼 수 없다. 백낙청과 그를 추종하는 일련의 학자들은 2013년 체제론은 1987년 체제를 ‘동요상태에 들어간 체제’로 간주하려 하며,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적대적 상호의존 구조’를 무너뜨릴 수 있는 기회라고 간주한다. 이들은 민주화 이행기에 운동권의 역할을 민주화 이후에도 재현해 보려한다. 그러한 입장은 자유민주주의 정치체계를 근본적으로 뒤 흔들어 놓으려는 것이므로 사실상 민중민주주의 또는 인민민주주의를 전제로 한 정치적 주장이라고 보인다.

민주화 이후의 시점에서 한국의 정치체제의 변화를 주장하려면 헌법 개정이라는 적법한 절차와 민주적 과정을 통하여 그것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개선에 대한 방안을 공개적으로 추구하여야 할 것이다. 민주화 이후의 한국정치체제의 변화를 선거 이외의 방법을 동원하여 바꾸려는 어떠한 주장이나 시도도 자유민주주의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것이다. 또 선거정국의 변화가 근접한 시점에 한국정치체제의 변혁을 위해 필요하다는 주장도 지극히 비상식적이며 과격하며 위험한 주장이다. 민주화이후 한국의 정치체계(political system)는 행정부에서는 대통령제적 지배원리가 우세한 것이고, 의회에서는 민중적 다수결주의가 우월한 양상을 보이는 것이고, 공공 대중들의 언론과 여론정치에는 시민적 자유주의가 우세한 공화주의적 혼합지배체제라는 원리가 복합체제적으로 작동하는 특성에 대하여 이들은 체계적 이해를 결여하고 있다고 보인다.

이러한 진보진영 내의 급진노선의 무책임한 주장들에 반대하며 일상적인 정당민주주의라는 방식으로 정치체제의 문제들에 대하여 대응하여야 한다는 온건좌파의 주장을 대변하는 최장집 교수의 입장은 가장 현실적이며 합리적인 좌파의 미래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그는 체제의 전환이나 변혁을 주장하는 과격한 이들에 반대하면서 제도의 변화는 “제도를 작동시키는 관습화된 양식”이 필요한 것으로 현 한국사회의 문제는 반드시 보수정권의 문제로만 볼 수 없으며 정책이나 제도보다 정치적 리더십이 더 큰 문제라고 주장하였다. 민주화 이후의 정치현상에서 정부의 교체와는 무관하게 정책적 연속성이 나타남을 주목하면서 그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표라도 민주주의 체제를 자의적으로 운용하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음을 지적한다.

 

 

Ⅴ. 결

좌파는 자신들은 보편적 이익을 대변하는 것이고 보수파는 기득권세력을 대변하는 것이라는 마르크스주의적 신조를 주장으로 내놓는데 이것은 그들에게는 경제결정론적으로, 선험적으로 규정된 것이다. 특히 급진좌파는 탈권위주의가 진행된 현 한국의 대의민주적 정치체제의 작동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아직도 혁명이 바람직하거나 가능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들만이 역사의 유일한 보편세력(universal class)라는 과격 마르크스주의 계급사관에 입각한 극단적 주관주의에 빠져 있다. 이러한 극좌파는 80년대 운동권의 핵심세력으로 등장하였고 지금은 이미 기득권화된 세력으로 여전히 종북주의에 빠져있다는 사실이 최근 통진당 선거부정을 둘러싼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분쟁사태를 통해 밝혀지면서 국민들은 큰 충격을 받고 있다. 2004년 민주노동당이라는 진보정당의 체제 내 진입으로 인해 사회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이들을 포함한 본격적 진보좌파 노선의 정치인들이 국회에 진입하였다. 이들의 구체적 정치적 노선이 자유민주주의인지 아니면 인민민주주의인지가 불확실하다는 것은 진보신당이 분당하여 나오면서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종북주의라는 실체를 가지고 있는 이들이 또한 통진당의 당권을 장악한 이들이며 이들이 바로 제1야당과 선거연합을 통해 제휴한 세력들이라는 것도 2012년 4․11총선 이후부터 밝혀지기 시작하였다. 이런 사태의 변화는 일반 국민들에게는 대단한 충격을 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자유민주주의를 비판하는 이들 중에 사회민주주의자나 민주사회주의자들의 정치적 입지도 선진국에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러한 인식이 부족한 것 같다. 구 보수세력이나 급진좌파세력이 공히 중도적 온건좌파들의 활동에 대하여 적대적이거나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기 때문에 한국의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아직 정당정치체계에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현 한국의 헌법에서 규정한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의 입장에서는 마르크스 계급사관을 신봉하는 인민민주주의자들이나 종북좌파들이 허용해서 안 되는 세력이지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아니다. 이들이야말로 시대착오적 구시대의 과격변혁모델에서 진화하여 평화적인 의회민주주의의 틀 안에서 대중의 지지를 획득하여 복지와 노동 부문 등에서 평등을 추구하는 온건한 정치세력이기 때문이다.

보수정부가 등장하면서 급진민주주의세력들이 정치체제의 통상적 정치과정을 거부하고 장외정치로 나서서 민중의 사회권력의 위력을 과시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2008년 여름에 수도 서울의 한복판에 등장한 대규모 촛불시위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보수정부의 등장에 대하여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하였다고 반발하면서 독재타도를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권위주의나 독재와는 거리가 먼 것이고 오히려 대통령의 우유부단한 리더십이 과격한 시위를 방치하는 사태를 초래하였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의 변화는 이전 정부에서 한 방향으로 과도하게 전환된 부분에 대한 정상으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으로 민주주의라는 정치체계의 자기유지 능력이 발휘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집권중반기에 제기된 공정사회론은 진보진영에서 환영해야 할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이런 정책을 일제히 비판한 것은 정치적 이슈를 선점 당한 것에 대한 반발에 다름이 아니다. 상당한 타격을 주는 보수진영의 선제적 정책으로 평가되며 복지론을 둘러싼 우파의 향후 대응에도 중도화로의 영향을 주는 요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온건한 진보세력을 개량주의라고 비난하는 좌파 급진주의자들은 항상 극단적 혁명적 대안만을 선호하는 편견에 빠져 점진개혁의 장점을 인정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은 심지어 대한민국 헌법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반복되는 선거정치정국에서 점차 이들도 자신들의 과격노선이 대중의 지지를 받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현실을 깨달을 날이 올 것이다. 현세에서 무계급 이상사회를 건설하겠다는 공산주의자들이 자신들이 절대 무오류라고 신봉하던 마르크스주의적 예언이 완전히 실현될 수 없는 환상이라는 점이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 소련 동구권으로 확산되어 전세계적 사회주의권의 붕괴로 귀결된 대역사적 사실에 의하여 명백히 밝혀졌다. 현재는 북한이라는 세력의 존재 때문에 남한 내의 좌파들내에서 극좌파가 영향력과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인데 북한의 내부정세가 급변하며 불안정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이러한 양상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보이지는 않는다. 민주화 이후의 한국사회에서 결국 좌파 내부에서는 온건좌파 세력들이 더 강해지는 것이 시대적인 추세가 될 것이라고 전망할 수 있다.

최근 제1야당 민주통합당이 자신들의 정강에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것이 자유민주주의를 부인하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당의 공식적인 입장을 나타내지 않는 상태이지 그것을 적극적으로 보인한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현 보수정부가 이끄는 정치체제 운용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며 진보정당과의 연대를 의식하여 강령의 표현을 애매한 상태로 방치하는 것이라고 보인다. 물론 이것이 결코 바람직하거나 용인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지만 아직 제1야당이 급진민주주의 관념이나 민중민주주의 관념에 대한 지나친 동경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감을 지울 수 없다.

민주화된 한국사회의 정치체제는 분명히 자유민주주의체제의 원리 하에 작동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당 및 정치세력들은 정파적 이해의 입장에서 현상에 대한 객관적 진술을 제기하기 보다는 자파의 평가적 언술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정치체제의 특성에 대하여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기 보다는 자파의 관점에서 필요로 하는 것만 나열하는 식의 임시적인 강령을 선언해 둔 상태가 최근 민주통합당의 공식 홈페이지에 나타난다고 보인다. 이러한 어설픈 상황은 신속히 종결되어야 정치권에 국민적 불신이 줄어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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