理念.思想.思潮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이강기 2015. 9. 18. 09:13
자유주의란 무엇인가
The Economist, 1997.1.28
영국 《이코노미스트》誌의 이 글은 자유주의의 여러 갈래를 비교, 설명한다.
'제3의 길' 에 대한 이해는 이로부터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Liberalism’이라는 단어는 부적절한 경우에까지 흔히 쓰이다 보니 이제는 거의 의미가 없는 단어로 전락해 버린 듯하다. 불행하고, 또 위험한 일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요즘 미국의 정치인들은 자유주의자liberal1)라고 불리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지난번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로 나섰던 Bob Dole이 상대측 후보 Bill Clinton을 자유주의자라고 몰아세우자 Clinton은 아예 그 말 자체가 아무 의미도 없는 상투적 욕지거리에 불과하다고 일축하기도 했다.

 

 

Contents
자유와 그 한계
자유주의의 확산
반자유주의의 허구

지금 미국에서 자유주의자란 말은 통상 보수주의자conservative의 상대어로 쓰인다. 유럽에서 지칭하던 사회주의자socialist 또는 민주사회주의자social democrat와 거의 동일한 의미다. 거대한 정부, 稅收세수 및 공공지출의 대규모 확대에 찬성하는 사람들, 공공복지를 위해 경제적 자유를 제한할 수도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말로 쓰이고 있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liberal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많이 쓰이지는 않지만, 이 말이 쓰일 때는 사회주의자의 유사어라기보다 오히려 그 반대의미로 쓰인다. 유럽에서 자유주의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증명할 수도 없는 사회일반의 복지보다 작은 정부와 개인의 자유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이런 유럽식 해석이 원래의 뜻에 가깝다고 한다. 그런데 오늘날 유럽에서는 이런 입장을 취하는 사람들을 자유주의자라고 부르기보다는 보수주의자라고 부르는 일이 잦다. 미국에서는 자유주의가 원래 뜻에서 벗어나 정반대의 의미로 쓰이고 있고, 유럽에선 정치용어의 대열에서 사라져 가는 형편이다. 남용과 오용, 그리고 퇴출…. 한 단어의 슬픈 운명을 보는 듯하다.

이러한 혼란은 일상적 표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정치철학에서도 자유주의란 용어가 너무 넓은 의미로 쓰이다 보니까 결국엔 의미하는 것이 없는 경우가 많다. 철학자 Robert Nozick은 Locke적 전통에 따른 자유주의자이다. Nozick은 자신의 저서 《무정부, 국가 그리고 유토피아Anarchy, State and Utopia》에서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 정부는 기본적이고 최소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그쳐야 하며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정부의 역할이 시민들 사이의 소득분배를 결정하는 데까지 확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정의론A Theory of Justice》의 저자 John Rawls도 Bentham과 Mill적 관점에서 보면 엄연히 자유주의자이다.

편을 가르자면 Nozick은 영국과 미국의 어떤 주류 보수주의자보다 더 우익에 속하는 자유주의자이고, Rawls는─자신의 글이 함축하고 있는 의미를 인정한다면─어느 사회민주주의자보다도 더 좌익인 자유주의자이다. 자유주의자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렇게 불분명하여 그 단어를 엄밀하게 사용해야 하는 전문가들마저 헷갈리고 있다면 일상적 표현에서 빚어지는 혼란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므로 용어의 모호성에 휘말리지 말고 내용의 본질을 살피며 생각해야 한다.

더 이상 자유주의자라는 개념에 대해 미국식 해석이 옳으냐 유럽식이 옳으냐를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유럽식 해석이 原義원의에 더 가깝긴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Locke, Bentham, Mill은 물론 Bill Clinton, Bob Dole, John Major, Tony Blair, Robert Nozick, John Rawls는 하나같이 자유주의자라는 용어의 표면적 뜻에 완전히 부합하는 자유주의자들이다. 둘째, 이 단어의 의미가 모호하고 광범위해서 이들 외의 더 잡다한 부류까지 같은 이름으로 지칭할 수 있을지라도 ‘자유주의자’라는 단어는 여전히 중요한 무엇인가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이렇게 자유주의자란 개념은 그 뜻이 불분명할 뿐만 아니라, 그렇게 지칭하는 데 필요한 자격요건 또한 지나치게 광범위한데도 불구하고 특별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유주의에 대한 定義정의, 그리고 자유주의를 수호해야 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그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유와 그 한계

지난 300여 년 동안 여러 성향의 자유주의자들이 많은 논쟁을 벌여 왔지만 초기 주창자들이 명시한 핵심적 사상은 변함이 없었다. 그것은, 개인과 그보다 강력한 사회적 집단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되면 우선적으로 개인의 이해를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다. 초기 자유주의자들이 목표한 것은 종교의 자유, 발표의 자유,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불법적인 관권 또는 비합법적인 정부로부터의 자유, 노동력을 포함하여 물건을 사고 팔 수 있는 자유 등등이었다.

자유주의자들도 개인의 자유가 어느 정도는 제한되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해 왔지만 자유의 제한을 설정하는 기준을 개인의 입장에서 찾으려는 경향은 줄곧 지켜 왔다. 자유주의파가 제시해 온 자유의 한계는 Mill이 공식화한 ‘危害원칙harm principle’으로 정리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문명사회에서 당사자의 의지에 반하여 권력이 행사될 수 있는 것은 타인에게 미칠 위해를 방지할 때뿐이다.

문명사회에서 당사자의 의지에 반하여 권력이 행사될 때 그 정당성이 인정될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다른 사람들에게 미칠 위해를 방지하기 위한 경우에 한한다. 자신의 육체적·정신적 이익만을 전적으로 정당화할 수는 없다.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개인의 자유가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경우, 그 자유는 제한될 수 있다고 양보했다.

자신의 이익을 자신이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것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권리를 해치지만 않는다면 그 판단은 자신에게 맡겨야 한다. 여기서 하나의 결정적인 含意함의가 생겨난다. 자유를 제한할 때는 제한하는 당사자가 그 제한의 정당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점이다. 개인은 자신의 행동이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할 의무가 없다. 만약 국가가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그 제한대상이 되는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 유해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는 책임은 국가에게 있다.

어떤 식으로 위해원칙을 정립하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 해석에 따라 각기 성격이 다른 자유주의가 성립한다. 그런데 ‘타인에게 유해하다’는 말의 뜻은 도대체 무엇인가? 한 사람의 사치스런 소비생활이 남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그 사람이 Rodeo 거리에서 쇼핑하는 자유를 제한해야 하는가? 음란소설은 독자의 정서를 해칠 수 있다는 이유로 판매금지되어야 하는가?

개인간의 모든 경제적 거래는 제3자에게 유형무형의 영향을 끼친다. 대기오염과 같은 외부경제externality의 경우에는 이를 규제하는 데 별다른 이의가 제기되지 않는다. 대기를 오염시킬 자유는 제한되어야 마땅하다. 반면에 한 사람이 상품을 구매하면 수요 증가로 인하여 다른 사람이 그것을 살 때 비록 소액이라도 가격이 올라가 있을 수도 있다. 이런 것은 금전적 외부경제pecuniary externality라고 불리거니와 이런 금전적인 외부영향은 일상 경제활동으로 아무 제한 없이 허용되고 있다. 만약 후자를 ‘타인에게 유해한 것’으로 보고 규제하려 든다면 이는 바로 모든 유파의 자유주의자들이 금과옥조로 여기는 시장경제 자체를 부정하는 결과가 된다.

또한 Mill이 규정한 ‘문명사회’란 무엇인가? 위해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회라고 해서 모두 비문명사회라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사려깊고 교육받은 문명인들만이 자유를 현명하게 사용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따라서 위해원칙은 아이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아이들의 행동이 제3자에게 해를 끼치느냐 안 끼치느냐에 상관없이, 또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이들에게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정당화되어 있다. 물론 권력행사가 아이들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는 단서가 붙지만, 이 판단 또한 아이들의 몫이 아니고 권력을 행사하는 자의 몫이다.

Mill에 의하면 미개인을 정의하기는 아이의 경우보다 훨씬 어렵지만, 같은 논리가 그들에게도 적용된다고 한다. 다시 말해서 자유의 권리 일체는 인간이라고 해서 다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문명인으로서 자격이 충분한 경우에만 해당된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자유주의자들이 왜 기회균등과 교육을 그렇게 열렬히 옹호하는지를 알 수 있다. 문명사회만이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아직 불분명한 것이 많다. 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타인에게 유해하다.’는 것은 정확하게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유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는 정확한 자격요건은 무엇인가?

이 정도는 시작에 불과하다. 더 큰 문제는 자유의 권리가 서로 상충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한 예로 정부가 시민들에게 억압으로부터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경찰관의 임금을 비롯해 필요한 재원을 시민들에게서 염출해야 한다. Nozick류의 자유사회에서도 정부는 국민으로부터 세금은 거두어들여야 한다. 그러니까 한 가지 자유를 확보하기 위해 다른 자유는 희생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좀더 일반화하면 자유는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불법적인 관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수동적 자유와, 좋은 삶을 누릴 자유와 같은 능동적 자유가 그것이다. 수동적 자유freedom from는 개인을 외부의 간섭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으로 이것은 능동적 자유freedom to를 실현하기 위한 필요조건이 될 때가 많다. 夜警국가night-watchman state로 상징되는 수동적 자유를 강조하는 극단적인 자유주의자들도 정부의 역할이 최소한의 능동적 자유를 보장하는 데까지 미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이것이 재산권 보호, 계약집행 등을 위한 정부의 역할을 인정하는 배경이다.

대부분의 고전적 자유주의자들은 여기서 한 걸음은 더 나간다. 정부는 시민이 최저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야 함은 물론 시민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육 등의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야심만만한 사업을 하려면 물론 시민들에게서 재원을 거두어야 한다. 이보다 더 많은 것을 원하는 자유주의자도 있다. 빈곤퇴치뿐만 아니라 부의 공정한 분배를 위해 빈부 간의 소득을 재분배해야 한다는 공정분배론이 그것인데 Rawls의 주장이 그 예다. 현대의 본격적 복지국가론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결국 동일한 목표에 대해서도 학파에 따라 그 합당성을 각기 다르게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불확실하고 복잡하다 보니 제각기 성향이 다른 자유주의자가 생기게 되고, 따라서 자유주의적liberal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광범위해진 것은 하등 놀랄 일이 아니다. 이 용어가 매우 탄력적인 의미를 가지고는 있지만, 중요한 것은 모든 자유주의자들 사이에 공통적인 부분이 불일치하는 부분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이다. 만일 공통하는 부분이 불일치부분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면 자유주의라는 용어는 아무리 경계가 불분명하더라도 어딘가에 쓸모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월간 에머지 1999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