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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부정하는 지식인들의 위선, 상식적 수준 벗어나 - 이인호교수 인터뷰

이강기 2015. 9. 19. 15:06

현실을 부정하는 지식인들의 위선, 상식적 수준 벗어나

 
이인호교수 인터뷰

 

체제영합적인 강정구교수 발언은 위선의 극치

 

[ 편집부 / 2005-10-11 13:09 ]

 

 

"한국 최초의 여성대사로서 핀란드 대사와 러시아 대사를 역임하고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와 명지대 석좌교수로 재직중인 이인호교수를 만나 한국 지성사회의 문제점과 한국 외교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너무나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이었지만 체제영합적인 지식인의 위선적 행태와 잇단 역사왜곡에 대해서는 단호한 어조로 비판을 서슴치 않았습니다. 특히 좌우 이념을 떠나 참된 진리의 길을 걸어야 한다며 지식인의 양식을 촉구하는 모습에서는 대한민국의 장래를 걱정하는 진정한 학자의 풍모를 엿볼 수 있었습니다.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철저한 실리외교를 기본 노선으로 러시아와 보다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하셨습니다.(편집자 주)"


▶ 우리는 종종 지식인의 역할을 이야기합니다. 선생님께서는 한국사회를 ‘지성의 위기’로 진단하셨는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되었다고 보시는지요?

- 저는 우리가 민족의식이라든가, 도덕적인 면에서의 올바름을 지향하는 마음이라든가 하는 것이 다른 사회보다 결여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국가현안이 제대로 풀리지 않는가, 결국 사태를 제대로 파악해서 과거와 미래를 이해할 수 있는 축을 마련하는 일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 또 다른 이유는 우리가 겪었던 지난 100년간의 질곡, 분단 이후의 상황에 있지요. 어떤 사회이든 지적 작업을 꾸준히 하는 계층이 있게 마련이고, 복잡한 사물을 분석하는 능력은 상당기간의 연마를 필요로 하는 것인데 우리가 지식인들, 특히 젊은 대학생층이 정치문제에 간섭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너무 오랫동안 계속되었기 때문에 지적 연마라는게 이뤄질 수 없었어요. 사실보다는 직관, 감각, 염원에 의해 좌우되었고, 공개토론을 통해서 가설을 검증할 여유도 없었지요. 진리로의 진입이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이렇게 몇 십 년을 지냈으니 우리가 지적 위기에 직면한 것도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지요.

- 좁은 전공분야에서의 지식인은 배출되었지만 도덕적 문제 등에 대한 충분한 도덕적 의식을 갖고 의식이 지향하는 바를 지적 토대위에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일은 하지 못했지요. 오히려 도덕적 울분에 사로잡혀서 참된 의미의 진리를 등한시하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현대사 왜곡은 역사학자가 아닌 현실론자들의 개입 때문

▶ 현재 우리 지식사회가 옳고 그름을 떠나 한쪽으로 치우쳐있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친일 청산 문제나 민족사관 같은 경향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까요?

- 어느 면에서는 그렇지요. 지적 자유가 제한된 상황에서 살았으니까요. 일제시대에는 민족의식이라고 하는 면에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었어요. 그러나 독립을 되찾고 자강 노력을 어떻게 하느냐 하는 면에서 대안 제시는 각자 달랐지요. 광복이후에도 이런 성향이 계속되었어야 했는데, 불행히도 우리는 냉전의 희생물이 되고 말았어요. 우리 힘으로 해방되지 못하고 미국과 소련이 개입해서 양대 세력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광복을 맞이했기 때문에 우리 내부의 염원 같은 것은 고려대상이 될 수 없었지요. 우리의 미래에 대한 외적 상황이 규정된 상황에서 사상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남북으로 갈라서게 됐습니다.

- 지식인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부분적 진리를 전체 진리로 착각하는 것인데, 우리의 상황은 전체 진리를 직면하기 어렵게 되어있었어요. 때문에 모두가 한쪽만 보고 속단을 하는 일이 거듭되었고, 서로 암투만 하는 과정에서 건전한 지적풍토가 조성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그런 속에서 역사학계에서는 실증주의 사학이라는 기류가 형성되었습니다. 즉, 편파성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실제 역사적 사건과 역사학자 사이에 거리를 둬야 한다는 것이지요.

- 결국 사료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과거를 재구성할 수 있는, 역사학적 훈련을 제대로 받은 사람들은 현대사를 거의 다루지 않게 되었습니다. 특히 해방 후의 역사는 우리 현실의 한 부분이었으니까요. 이렇게 되니까 거꾸로 지적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 해방이후 분단의 역사를 쉽게 얘기하는 식이 되었던 겁니다. 사실 이런 사람들은 우리의 역사보다는 현실에 관심이 있었다고 볼 수 있죠. 지금의 불행한 상황 역시 이런 문제점에서 비롯된 것이구요.

▶ 강단사학에서 현대사를 외면한 것은 일종의 현실도피 아니었나요? 결과적으로 이것이 현대사에 대한 성급한 개입을 초래했고, 지금의 역사인식 문제도 현대사에 대한 이같은 잘못된 접근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 맞습니다. 학문적으로 책임있는 발언을 하려면 좀 거리를 둬야 해요. 물론 미국의 경우에도 최근의 일을 얘기하기는 하지만 역사학계가 주관하지는 않지요. 특히 우리의 경우에는 반공이라는 당면 현안을 다루는 과정에서 반공교육이 우매하게 이뤄졌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공산주의에 반대했던 것은 단순히 미국 진영에 편입되었기 때문은 아니에요. 스탈린 치하의 공산주의라는 것이 비인간적 체제라는 것을 전문가들은 이미 알고 있었고, 이는 러시아 사람들 스스로 인정하고 폭로한 사실 아닙니까? 때문에 공산주의를 막아낸다는 것은 도덕적 명분이 있는 일이었습니다.

- 다만, 국내의 제한된 시각으로 볼 때는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분단국가의 대통령이 된 사람은 권력을 위해서 민족의 반을 팔아먹었다는 지탄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북한에서는 정치세력의 뿌리도 전혀 없는 김일성이 소련을 등에 업고 공산독재수법으로 체제를 장악했기 때문에 비판적 세력이 전혀 할거할 수 없었지만, 남한은 미 군정때에도 적어도 1년 정도는 공산당이 합법적으로 허용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소련의 지령을 받아 조직적인 정부전복활동도 가능했지요. 남한 정부 입장에서는 이를 막아야 했고, 국민들 입장에서야 그 내용을 속속들이 알 수 없으니까 정부가 탄압만 한다고 인식하게 된 겁니다.

- 문제는 이런 반공정책이 6.25 이후에도 계속되었다는 것이지요. 정부는 공산주의가 나쁘다고만 얘기했을 뿐 왜 나쁘다고는 설명을 안 했어요. 여기에는 공산주의를 직접 체험하고 남한으로 탈출한 사람들이나 전쟁중에 공산주의를 체험한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했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되었지요. 왜 공산주의가 나쁜지 설명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요.

- 하지만 이를 전혀 알지 못하는 전후 세대에까지 이런 식의 반공교육이 이뤄진게 잘못입니다. 공산당은 나쁘니까 관련 서적도 읽으면 안 된다는 식이었잖아요? 제대로 된 교육은 하지 않은 채 군사독재체제에서 무리한 정책을 강행하다 보니 반감이 생기게 된 겁니다. 공산주의 실체는 없는데 독재체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조작된 논리라는 인식이 형성된거죠. 결국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이상이 무엇인가 하는 점은 생각지 않고 현실만 갖고 전체를 비판하거나, 북한의 현실은 도외시한 채 공산주의가 내거는 이상이 마치 전체인 것처럼 평가하는 불행한 상황이 자리 잡게 된 것입니다.

김원웅의원, 단편적 지식으로 역사적 사실을 논하지 말라

▶ 역사인식의 왜곡된 논리가 현실에서 구체화되는 느낌입니다. 최근 열린우리당 김원웅의원은 조선이 국권을 상실한 원인이 일본의 한반도 지배권을 인정한 카쓰라-테프트 조약에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는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 역사 지식이 너무 부족해요. 당시는 영국을 위시한 유럽의 열강들이 중국의 쇠락을 틈타 동아시아에서의 세력을 확장을 위해 서로 다투던 때였습니다. 유럽은 물론 미국이 공동으로 경계한 것은 러시아 세력의 남하였고, 이를 제어할 세력은 이미 상당한 주도권을 잡고 있던 일본이라고 일찍부터 인정했던 것입니다. 일본은 일찍 서구화를 했기 때문에 열강들의 입장에서는 대화가 가능한 대상이었고, 또 가장 근대화된 세력이었으니까 일본에 동북아 질서를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었어요. 단지 미국만의 생각은 아니었습니다.

- 러일 전쟁이 시작되기 전, 그러니까 청일전쟁 이후부터 이미 세력분할의 움직임이 계속 있었어요. 미국은 필리핀에 대한 분명한 의도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과의 구체적인 협상이 있었지만, 영국은 일본이 한반도를 장악한다는 것을 철저히 지지했습니다. 그래야만 러시아가 세력이 뻗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지요. 이런 국제정치적 맥락을 너무 모르고 단편적 지식으로 역사적 사실을 보려고 한데서 빚어진 대표적 오류라 할 수 있어요.

▶ 최근까지 지속되고 있는 강정구 교수 논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너무 개탄스러운 일입니다. 이건 좌우의 문제가 아니에요. 지식인이 갖춰야 할 최소의 상식도 갖추지 않은 것이 문제지요. 국제관계라는 것은 늘 변하기 마련입니다. 어느 나라이든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으로 확대하려 하고 힘이 닿는 한 독자적으로 움직이려고 하지요. 아무리 최강대국 미국이라고 해도 모든 것을 독자적으로 할 수는 없거든요. 그러니까 동맹관계를 통해서 부족한 힘을 보태고 유리한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세계가 움직이는 것이지요. ‘셋이 있을 때 혼자 고립되지 말라’는 것은 국제정치의 초보적 상식이에요. 한미관계에서도 우리가 그만큼 미국에 덜 의존하고도 살 수 있는 힘이 생기니까 관계를 개선해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하지만 아무리 밉고 싫은 이웃이라도 ‘밉다’ ‘나쁘다’며 대놓고 말해서 좋을게 뭐가 있겠습니까? 너무나 유치한 일이지요.

- 미국으로부터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면 일본 만큼 분개할 나라가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일본은 꾸준히 미국과 가까이 지내려고 노력하잖아요. 국익이라는게 과거보다 미래를 위해 무엇이 나은가를 생각하는 것인데, 아무리 중국, 러시아를 생각한다 해도 미국을 소외시킬 이유는 없는 것이지요. 강정구씨처럼 자기가 몸담고 있는 나라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 정면으로 의문을 던지는 것은 위선의 극치입니다.

비상식적인 강정구교수 발언 철저히 무시해야

▶ 최근 경찰청은 강교수에 대한 구속 가능성까지 시사하고 나섰습니다. 일각에서는 강정구교수의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학문적 자유를 부여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는데 이 점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학문적 자유는 인정해줄 수 있지요. 하지만 우리가 지적 수준이 높다면 강교수 같은 사람의 주장은 무시해야 해요. 서울대 민교협에서 강교수를 초청해 세미나를 했다고 하던데 서울대 출신으로서 정말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것도 세미나라고 하느냔 말이지요. 지식인들이 추상론의 함정에 빠지면 큰일입니다. 부분적 진실을 전체의 진실인 것처럼 생각하는게 큰 문제란 말이지요. 미묘한 민족지상주의에 빠져서는...상식있는 인간이라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 강교수는 학자적 소신이라고 웅변하고 있지 않습니까?

- 그건 소신도 아니고 진실도 아닙니다. 소신이라고 해서 모든 것이 다 인정되는건 아니지요. 그렇게 따지면 광인(狂人)이 떠드는 것도 소신이란 말인가요? 객관적인 사실을 담고 있어야죠. 당시 전장에서 목숨을 잃고 부상당한 사람들이 엄연히 살아있는 이 나라에서 그 정체성을 부인하다니요, 국민된 입장에서 민족통일이라는 이름으로 나라가 없어졌어야 했다는 논리는 애국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 무엇보다도 북한이 어떤 체제인가는 전세계가 다 알고 있지 않습니까? 북한처럼 되지 못한 것이 한(恨)이라는 의미잖아요. 북한이 지금의 저 지경에 이른 것이 분단 때문이라고 해도, 우리는 똑같은 상황에서 북한처럼 되지는 않았거든요. 지적으로 말이 안 되는 얘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 강교수의 경우는 정말 체제영합적이죠. 자기 자식들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하던데 얼마나 위선적이에요? 이런 현실은 미국과 가까이 사는 것이 우리 국민에게 그만큼 이익이 된다는 얘기거든요. 이런 현실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무슨 고매한 이론을 펴는 것처럼 하는 지식인들의 위선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이분법적 사고에 따른 현정부 외교정책은 유치한 수준
이인호교수 인터뷰
좌우 이념을 논하기 이전에 현실을 직시해야
[ 편집부 / 2005-10-11 13:09 ]
▶ 북한체제에 대한 충분한 자료가 공개됐음에도 소위 진보학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엊그제 정기국회 국감을 통해서는 남북한 인권탄압의 차이가 공개와 비공개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어느 국가인권위원의 발언이 공개되지 않았습니까?

- 말 같지도 않은 소리죠. 얼마 전 북한에서 탈출한 시인 최진희씨의 이야기를 듣고 저도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그분 말씀은 인권단체 등에서 정치범수용소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북한인권문제 개선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거에요. 북한 일반 주민들의 형편이 정치범수용소보다 낫지 않다는 거죠. 정치범수용소에 있으면 최소한 먹여주기는 하니까 그게 나아보일 정도라는 거죠. 흔히 우리나라에서는 북한 주민들이 기본적으로 대한민국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권리는 모두 누리고 있고, 정치범수용소만 예외적으로 핍박을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상상력의 차이가 너무나 큰 것이죠.

- 북한 인권문제를 논할 때 대한민국도 문제가 많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공부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탈북자들이 쓴 책 한 권만 읽었어도 강정구 같은 사람이 그런 식의 말을 할 수는 없는 거죠. 양심도 양식도 없어요.

문제는 좌우이념이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느냐의 여부

▶ 현실은 현실이고 우리가 지켜야 할 사상과 이념은 별개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 그게 바로 위선이지요. 문제는 좌우의 이념에 있는게 아니라 현실을 얼마나 직시하느냐에 있거든요. 소위 민주화투쟁을 했다는 386세대 중 대다수는 그 의도가 순수하고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를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단지 잘못된 정보로 인해 공산주의체제에 기대를 걸고 환상을 가졌을 뿐이죠. 제대로 된 정보가 주어지질 않았는데 사회주의 사상을 가졌던 사람들만 나무랄 수도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뼈아프지만 인정하는 양심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북한체제의 실상을 알고 나서도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억지로 자신들의 과거를 정당화하려는 태도가 가장 추악한 일이에요.

-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당시 좌파로 분류되었던 사람들이 제기한 문제의 정당성은 인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권력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불이익을 당하면서도 문제제기를 한 그 공로는 인정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문제제기에 따른 처방이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님을 구분해야겠지요.

맥아더 동상 철거로 가장 이득을 보는 사람은 누구인가?

▶ 이같은 감상적 민족주의의 또다른 측면은 곧 반미감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반미감정이 상당히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는 우려가 많습니다. 학생들도 과거 우리나라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기기보다는 미국에 의한 압제의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 그 역시 지식 부족 때문입니다. 얼마 전 맥아더 동상 철거 문제가 대표적이죠.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장군이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를 패망시킨 태평양군의 사령관으로서 일본을 실질적으로 지배한 사람인 동시에 일본의 평화헌법 체제를 정착시키는데 가장 큰 공로를 한 사람이에요. 평화헌법이 없었다면 일본의 군국주의세력은 부활했을테고, 그럼 우리나라는 상당히 곤란해졌을 겁니다. 결국 맥아더는 일본의 압제와 군국주의 부활이라는 망령에서 우리나라를 이중으로 해방시킨 사람인 셈이죠. 광복 60주년이면 이런 실질적 문제부터 지적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맥아더 장군 동상을 철거하자고 주장하는 저의를 생각해야 해요. 그들은 왜 하필 맥아더를 지목했을까요? 상징적으로 한미관계를 이간시키고 세계 앞에 한국을 몹쓸 나라로 전락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기 때문이지요. 사실 인천 시민들은 물론 국민들 대다수는 철거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소수의 좌우 극렬분자들만 부딪치니까 소수집단끼리의 충돌과 같은 착시현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사실은 전국민 의사에 반해서 극소수의 특정 목적을 가진 조직이 작동하는 것이라 할 수 있어요. 중요한 것은 맥아더장군 동상을 철거해서 누가 득을 보느냐 하는 점입니다.

▶ 무엇보다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짊어질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의를 통해 학생들을 많이 접하실 텐데 현장에서 느끼는 학생들은 어떻습니까?

- 학교마다 좀 다르지만 전반적으로 무척 걱정스러운 수준입니다. 얼마 전 한 500여명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특강을 한 적이 있었어요. 대한민국 건국과정과 분단이후 현대사에 대해 1시간 넘게 강연을 하고 나서 질문을 하라고 했더니 아무도 손을 들지 않더군요. 그래서 ‘내 강의가 그렇게 재미없었느냐’고 했더니 그제서야 마지못해 한 학생이 손을 들었는데 그나마도 강의 내용과는 동떨어진 거였죠. 결국 예정된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강의를 마치게 됐는데, 그 날 특강을 주관하신 교수님께서 돌아서는 제게 “오늘 선생님 강의가 학생들에게는 충격이었을 겁니다”라고 하시더군요. 지금까지 학교에서 배우고 알고 있던 지식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에 혼란스러웠을 거라는 얘기였어요.

- 역사교육이 너무 부실합니다. 실제 김일성이 어떤 사람이냐고 물으면, 친일파를 숙청하고 토지개혁을 단행한 사람, 혹은 보천루 전투에서 공을 세운 사람이라고 답하고, 이승만대통령에 대해서는 부정선거를 실시하다 4.19 혁명으로 쫓겨난 사람이라고 답하거든요. 정작 이승만대통령이 독립을 위해 어떻게 싸웠고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는 전혀 알지 못합니다. 한미동맹만 해도 미국이 원하지 않은 것을 우리 필요에 의해 성사시킨 것이잖아요. 조직적인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결국 우매한 반공교육의 역작용이라 할 수 있는데 제가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에요.

▶ 그렇다면 잘못된 반공교육의 결과가 지금 눈앞에 나타나고 있는 현실에서 지식인을 포함한 소위 우파진영은 지금이라도 제대로 교육을 하기 위한 노력을 병행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저들이 잘못된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탓할 수만은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 물론이지요. 우선 용어의 잘못된 사용을 경계할 필요가 있겠네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좌파’ 혹은 ‘우파’라는 말은 후에 역사가들이나 제3자가 비판적으로 꼬리를 붙이는 것이지 자기 스스로 지칭하는게 아닙니다. 지식인이 그저 ‘진실’의 길, 즉 정도를 갈 뿐이지 좌우는 상관없거든요. 바로 이 점에 정치인과 지식인, 혁명가와 반항가의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 지식인은 사물을 넓고 깊게 바라보며 본질을 추구하지만, 정치인들은 현실 권력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보니 단편적 사고를 할 수 밖에 없지요. 따라서 모든 사회는 이 두 가지의 인식 차이를 끊임없이 좁히는 노력을 하게 되고, 민도가 높을수록 정치인들이 보다 본질적 시각을 갖게 되는 법입니다. 우리의 경우는 어중간한 상태라 할 수 있지요. 따라서 지식인들은 끊임없이 체제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특정 정권에 아부한다는 것은 이미 지식인이라 할 수 없어요, 정상배일 뿐이죠.

이분법적 사고에 좌우되는 외교정책, 유치한 수준

▶ 이제 외교문제를 좀 짚어봤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외교정책은 미국과 일본이 중심축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경우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한 후 새로운 외교중심축으로 부상하면서 그 중요성이 커지기도 했지만, 참여정부 출범이후 외교의 중심축 자체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이동한 듯한 느낌인데요. 현재 우리나라의 외교전략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외교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실리외교라고 봅니다. 우리나라는 강대국들이 서로를 견제해서 힘의 균형이 생겨야 자주적으로 운신할 수 있는 폭이 넓어지죠. 굳이 어느 특정국가와 가깝다거나 스스로 중립임을 내세우지 않더라도 주변 강대국들과 적당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수적인 것입니다. 중국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다고 해서 중국쪽에 붙으면 유리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유치한 것 아닌가요?

- 미국에 대해서도 “할 말은 하겠다”고 했지요? 이건 당연한 거에요. 여기에 반대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하지만 이건 북한이나 일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야 하지요. 북한에는 할 말을 하나도 못 하면서, 미국에 대해서만 할 말을 하겠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요. 미국에 대해 할 말은 한다는 것과 맥아더 동상을 끌어내리는 것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지요? 너무나 유치해요.

▶ 흔히들 동북아 4강 외교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만, 상대적으로 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비중이 덜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반도에 있어 러시아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역할은 어떻습니까?

- 맞습니다. 일단 러시아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어요. 세계 초강대국으로서 러시아의 힘에 대해 과장된 이미지를 갖고 있었을 뿐 역사나 정치, 경제 등의 내부 문제는 너무나 몰랐지요. 한-러 수교가 수립된 때는 러시아 경제가 극도로 악화되었을 때였는데, 당시 북방외교를 추진했던 정부 관계자들도 이런 실상을 몰랐었죠. 기대가 상당히 컸기 때문에 실망도 무척 클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후에는 별다른 관심을 갖지 않게 된 것입니다.

- 사실 이윤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인들이야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만 국가관계란 지속적으로, 특히 상대국이 어려울 때일수록 선의를 갖고 대해야 하는 법인데 우리는 그러질 못했어요. 사실 러시아는 굉장한 저력을 가진 나라입니다. 지금은 경제영역 등의 문제로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국제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사실 우리나라와 러시아는 이해가 별로 부딪칠 것이 없기 때문에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필요해요. 그럼에도 외교분야에까지 ‘A와 가까우면 B와 멀어진다’는 이분법적 사고가 팽배해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러시아와의 우호적 관계, 국익에 도움될 것

▶ 최근 국제사회는 ‘블록화’ 되어가는 추세입니다. 미국의 패권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얼마전 중국과 러시아는 합동군사훈련을 했었는데요, 일각에서는 新양극체제가 들어서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일부 제기됩니다. 현실화될 수 있다고 보십니까?

- 러시아는 미국이 한반도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도록 내버려두진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 스스로 뚜렷한 한반도 정책을 갖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워요. 그저 상황에 맞춰 움직일 뿐이지요.

▶ 러시아가 팽창주의에 나설 가능성은 없을까요?

- 러시아 입장에서는 경제가 급선무입니다. 중국이 그래왔던 것처럼 말이지요. 지금 중국은 어떡하든 전쟁은 막아야 한다는 생각에서 미국과 타협하고 북한을 억제하고 있잖아요. 러시아는 중국보다 더 절박한 상황이에요. 또다른 전쟁을 원하지는 않을 겁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나라는 러시아와 가깝게 지내는게 좋아요. 더구나 러시아는 북한의 취약점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북한에 대한 동정심을 갖고 있으니까 우리로서는 유용한 외교창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 선생님을 떠올리면 연상되는 것이 '최초의 여성 대사'라는 닉네임인데요, 여성의 사회진출이 쉽지 않았던 시기에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여성 리더십으로 성장하기까지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 사실 전 그다지 어려운 점이 없었어요. 학창시절에는 남녀공학을 다녔기 때문에 동등한 경쟁체제를 경험할 수 있었고, 미국 유학때는 오히려 여학교였는데 여성들의 힘으로 훌륭하게 학교를 운영해나가는 모습에서 상당히 깊은 인상을 받았었지요.

- 제가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한 것은 신문에 칼럼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 였습니다. 조선일보에 칼럼을 기고했었느데, 당시 주요 언론사의 칼럼을 여성에게 맡긴다는 것은 흔치않은 일이었죠.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많았어요. 칼럼을 기고한 덕분에 제 이름이 많이 알려지긴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를 남자로 알았답니다. 당시만 해도 칼럼에 사진이 실리지 않았을 때였고, 이름도 남자 이름인데다 전공분야도 러시아였으니까 오해의 여지는 충분했겠지요. 만일 제가 여자인걸 알았다면 글을 아예 읽지 않거나 ‘여자로서는 제법이다’라는 평가 정도에 그쳤을 겁니다. 남자로 오해받은 덕에 편견의 벽을 뛰어넘어 글을 통해 객관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었지요.

- 러시아 대사직도 운이 좋았어요. 그 전부터 정부직 제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전 학교에 남아있길 원했어요. 당시는 제가 외부활동을 좀 많이 하던 시기였는데, 때마침 열린 북경여성대회(1985)에서 한국이 여성권력화지수에서 91등이라는 참담한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이 일은 김영삼정부가 여성을 정부 주요 요직에 발탁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러시아대사 제안도 이 때 받았지요. 생각해보면 내가 무슨 일을 하겠다고 나서기보다는 제 분야에서 꾸준히 무언가 하고 있으면 주위에서 인정해주었던 것 같아요.

▶ 장시간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