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입력 : 2015.06.17 00:52
- 팀 알퍼·칼럼니스트
물론 내가 아직 상민이나 천민 조상을 둔 사람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기엔 내가 조상님 신분을 물어본 사람이 너무 많다. 조선시대에 양반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이 중인이나 상민, 천민이었다는 역사가 신화일지도 모른다는 의심마저 든다. 양반은 일종의 귀족이자 노동을 하지 않는 학자 계층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조선시대엔 논과 들에서 곡식이 저절로 자랐던 것일까.
내 조국인 영국에도 이런 '조상님 포장하기'가 있다. 런던의 켄싱턴가든스에 있는 앨버트 기념관에 가면 빅토리아 여왕의 동상 콜렉션이 있다. 빅토리아 여왕이 코끼리나 낙타, 황소, 들소 같은 동물에 올라탄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그는 이런 고귀한 짐승에게 올라타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 아래에는 얼굴을 찌푸린 아프리카인, 아메리카나 유럽인, 그리고 아시아인들이 웅크리고 있다. 영국의 여왕이 아프리카와 아메리카, 유럽과 아시아의 여왕, 즉 세계의 여왕이기도 하단 뜻이다. 물론 그건 사실이 아니다.
한국에선 그저 양반의 후손이라는 데 만족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만난 이 중 몇몇은 자신이 양반 중에서도 명문가 후손이라고
주장했다. 그중 한 명은 붐비는 호프집에서 만난 허름한 작업복을 입은 노인이었다. 그는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자신은 조선 왕(누구인지 말해주진
않았다)의 23세손이라고 말했다. 그의 아내 역시 명의 허준의 후손이라고 했다.
그때 생각했다. 호프집에서 내 맞은편에 앉아 있는
노인이 왕가(王家)의 후예라면, 나도 그에 걸맞은 가문의 후예여야 할 것 같았다. 내 부모님은 유대인인데 양쪽 다 오랫동안 양계 농장을 한
집안이다. 그 역사를 살짝 손보기로 결심했다. 나는 지금 내 조상님 후보로 프로이트와 아인슈타인을 놓고 저울질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