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방북 이후 일본인 납치 등 북한의 비인도적 측면이 일본 국내에 집중적으로 부각되고 말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를 솔직하게 인정한 것이 오히려 일본 여론을 극도로 악화시킨 것이다. 이 근저에는 고이즈미 외교노선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결국 고이즈미 정권의 ‘체제 전환’ 시도는 중도에 끝나버렸다. 그를 이은 아베·후쿠다·아소 정권도 별다른 개혁을 하지 못하고 단명했다. 또 한 번의 체제 전환 시도는 2009년 8월 사상 최초의 민주당 정권교체와 함께 찾아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줄곧 집권해온 자민당이 만년 야당 민주당에 정권을 내준 것이다. 당시 민주당이 내건 총선 공약은 상상하지 못할 정도의 ‘혁명적’인 것이었다. 예를 들면 일본의 견인차인 관료의 역할을 대폭 축소시켜 정치인 중심으로 일본을 이끌어나가겠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는 국민이 직접 뽑은 의원이나 의원으로 구성된 내각이 아니라 비선출직인 머리 좋은 관료에 의해 주도되어온 일본 모델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었다. 한 민주당 의원은 필자에게 “운전석에 떡하니 앉아 있던 손님(관료)을 손님자리로 돌려보내고 운전기사(정치인)가 원위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개혁시도도 거의 실패로 끝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준비도 안 된 상태에서 ‘정치 주도’로 나가면서 이에 반발하는 관료사회와 갈등을 빚었다. 그러다 보니 정책의 정교성과 완성도에서 엄청난 문제를 불러일으켰다.
기나긴 표류 민주당은 미국에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일본을 표방했다. 주일미군의 오키나와 후텐마기지 이전 문제로 하토야마 정권은 전후 최악의 미일 갈등도 불사했다. 심지어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주장하면서 듣기에 따라서는 아시아 국가의 반미 결집을 주도하는 듯한 인상도 줬다. 2009년 10월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한 하토야마 총리는 기자회견에서 “지금까지 미국에 너무 의존해왔다. 이제부터 아시아의 일원으로서 아시아를 더 중시하는 정책을 만들어나가겠다”라는 직격 발언을 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갈등이 국제외교 무대에서 일본의 영향력에 큰 타격을 안겼다는 게 외교가의 대체적인 평이다. 일본은 이렇듯 두 번의 ‘체제 전환’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이로 인해 국가목표는 점점 더 불명확해져 갔다. 기나긴 표류에 빠져들게 된 것이다. 일본에서 민간 기업은 관료가 깔아준 효율적인 레일 위를 잘 달리기만 하면 됐다. 기업은 정부의 전폭적 지원 아래 수출주도형 경제를 이끌었다. 그러다보니 관료, 정치인, 기업인이 한 몸을 이루는 지배구조가 만들어졌다. 경제발전이라는 목적이 달성되었음에도 이러한 지배구조는 존속됐다. 필연적으로 유착과 비리와 비효율이 발생했다. 정치인은 국민의 목소리보다는 관료의 목소리를 더 중시했다. 관료는 국민의 복리보다는 기업인의 이익에 더 관심을 가졌다. 기형적 민주주의가 고착화됐다. 국민은 저항할 힘이나 수단을 갖고 있지 못했다. 자연히 정치 무관심으로 흘렀다. 지난해 원전사고 때 도쿄전력은 원자로 가열을 막기 위해 바닷물을 넣어야 한다는 주장을 묵살했다. 경제산업성도 이에 동조했다. 그 결과 파국적 상황이 벌어졌다. 도쿄전력은 원자로에 해수를 넣어 폐로가 되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할 것을 우려했고 경제산업성도 공공의 이익보다 도쿄전력의 이익을 우선 고려해준 것이다. 경제산업성과 도쿄전력 간 끈끈한 유착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특히 도쿄전력이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바다에 버린 행위는 자국민뿐만 아니라 주변국 국민과 세계인을 경악시켰다. 관료조직과 업계의 유착은 대지진이라는 위기상황에 봉착하고서야 실체의 일부가 드러났을 뿐이다. 보이지 않는 수많은 형태의 결탁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이러한 유착은 결국 국익을 해치고 시장을 심각하게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마는 것이다. 일본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민족적 동질성을 강조한다. 자신과 다른 사람이 유입되는 것에 불안해한다. 이러한 성향은 일본 성장의 동력이었다. 총화단결과 같은 덕목이 고도 성장을 가능케 했다. 이러한 강점이 지금은 약점이 되고 있다. 인구가 줄고 있는 일본 사회는 우수한 외국인을 많이 받아들이는 데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나 특유의 배타성은 이민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하고 있다. 인구 감소 대비책도 사실상 없다. 일본의 인구는 2008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2011년 현재 1억2700만 명 정도다. 2040년 1억400만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더 심각한 것은 노령화다. 유엔 인구국은 일본은 2050년까지 1700만 명의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부족한 노동인구를 보충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제조업 마인드’가 이젠 족쇄 일본은 전통적으로 ‘제조업 마인드’를 중시한다. 공장의 자동화 기계처럼 매뉴얼대로 정확하게 수행하는 게 제조업 마인드다. 사실 일본 경제 발전의 최대 공헌자는 제조업이다. 전 세계 어디든 일본제품이 없는 곳이 없었다. ‘품질 하면 일제’라는 명성도 얻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제조업 마인드는 일본병(病)의 한 원인이 되고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창조성과 유연성을 떨어뜨리는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다. 그 결과 ‘매뉴얼 사회’가 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일본 기업은 불량률에 매우 민감하다. 조그마한 실수도 스스로 용납하지 못하는 ‘과(過)품질’ 신드롬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필자가 한 다국적 제조업체에서 근무할 때의 일이다. 이 회사는 미국에 본사를 두면서 세계 각국에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었다. 한국, 일본, 중국에도 공장이 있었다. 그런데 일본 공장은 한국 공장이나 중국 공장과는 차원이 달랐다. 일본 공장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공정을 관리했다. 품질 개선을 위한 연구에 많은 투자를 했다. 하루는 불량이 발생했다며 생산라인을 모두 세우고 모든 인력을 원인규명에 투입시켰다. 그 불량이라는 것이 제품 표피에 육안으로는 도저히 식별되지 않는 조그마한 점이 찍혀 나왔다는 것이었다. 기능에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 공장은 이미 납품한 제품까지 스스로 회수하고 새것으로 대체해주며 부산을 떨었다. 일본인 특유의 ‘장인 정신’을 실감했지만 너무 자존심을 세우는 것 아니냐는 생각도 들었다. ‘제조업 대국’ 일본은 품질을 안정적으로 보장하기 위해 생산 공정을 함부로 변경하지 않는다. 아무리 혁신적인 기술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품질 안정에 대한 보장이 없는 한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급변하는 세계 시장에서 일본기업의 유연성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보인다. 이러한 품질 제일주의는 리스크(risk·위험)를 동반한 ‘혁신’보다는 ‘카이젠(개선)’을 더 중시한다. 일본 공장에선 사방에 ‘카이젠’이라는 표어가 붙어 있는 모습이 쉽게 목격된다. 반면 ‘혁신’이라는 문구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다. 세계는 ‘유목민이 되라’고 말하는 지식기반산업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유목민은 정착과 정확성보다는 이동과 신속성을 특성으로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 기업은 아직 농경사회다. 애플이 ‘아이폰’을 내놓자 삼성전자가 부랴부랴 ‘갤럭시S’를 만들어 맞대응하는 것과 같은 일이 일본에서 나오기 힘든 이유다. 일본이 지금 겪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국제사회에서의 위상이 점점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의제 설정 능력이 떨어지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일본은 전쟁 가해자라는 ‘원죄’로 인해 ‘국가’라는 개념에 대해 모호한 입장을 견지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군대를 유지할 수 없도록 한 미국이 만든 평화헌법을 받아들였다. 국가안보는 미국에 맡기고 경제발전에만 매진하겠다는 국가경영 철학을 내걸었다. 일본은 1991년 걸프전에 130억 달러라는 막대한 지원금을 내며 미국을 도왔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그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미국은 일본에 자위대를 파병해 치안을 맡아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일본이 애매한 태도를 취하자 미국은 “군화로 땅을 밟아야(Boots on the ground)”라고 쓴소리를 했다. 일본은 경제 문제에서도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제대로 내지 못했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때 미야자와 총리는 아시아판 통화기구인 AMF를 설립하자고 제안했다가 미국이 난색을 표하자 바로 접는 모습을 보였다. 국내적으로 원폭 피해를 경험한 국민의 대다수는 군국주의의 부활을 원하지 않는다. 이런 정서가 사회 전반에 퍼져 있다 보니 ‘애국심’이라는 개념을 금기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 이와는 상반되게 일본은 독일만큼 과거사를 깔끔하게 청산하지도 못했다. 이는 일본의 도덕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국가는 국력과 도덕성을 모두 갖춰야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법이다. 이웃나라인 한국과 중국은 여전히 일본의 ‘보통국가화’를 용인하지 않으려 한다. 앞으로도 일본의 국제 리더십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일본이 국방은 미국에 맡기고 경제발전에 매진한 것은 고도성장기엔 매우 유리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선진국이라는 목표를 달성한 후엔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열망 대표적 우익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지난해 3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자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욕심에 얽매여 정치도 포퓰리즘으로 흐르고 있다. 일본인의 마음의 땟물을 한번에 흘려보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파장이 커지자 그는 발언을 취소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같은 발언에도 불구하고 다음 달 도지사선거에서 이시하라는 4선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당선에는 ‘강력한 리더십’에 대한 일본 국민의 열망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선거에선 ‘체제 유신’을 내건 하시모토 도오루 씨가 오사카시장으로 선출됐다. 오사카에서부터 개혁을 일으켜 전국적으로 확산시키자는 호소가 시민들에게 먹혀들어간 것이다. 최근 이시하라 도지사와 하시모토 시장이 연합해 신당을 창당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국민의 변화 욕구에 부응한다는 것이 창당 이유라고 한다. 과연 두 사람이 변혁의 태풍을 몰고 올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무엇을 어떻게 변혁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로드맵도 알려지지 않는다. 다만 ‘이대로는 미래가 없다’는 공감대가 사회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로 보인다. 그러나 강력하고 일방적인 관료 리더십에 대한 대안을 또 다른 강력한 리더십에서 찾는다는 것은 문제일 수도 있다. 즉 일본 국민성에 복종의 DNA가 내재해 있다면 이것이 ‘창의적인 사회’로 나아가는 것을 막는 근원적인 이유일 수 있다. 일본의 침체는 과거의 장점이 약점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관주도형 성장, 정-관-업의 결탁, 제조업 마인드, 배타성, 미국 일변도, 국제무대 저자세는 고도성장기에만 유효했다. 이제는 이러한 것들로부터의 결별을 요구받고 있다.
만약 일본이 과거 메이지 유신 때처럼 이러한 개혁 빗장을 열게 된다면 이로 인한 국내적 혼란이 일어나겠지만 궁극적으로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 모델에 너무 고착돼 있는 경향이다. 스스로 이런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낼지 의문이다. 이와 동시에 ‘체제 전환’은 ‘보통국가화’를 수반하는 사안일 것이다. 이웃나라가 이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튼 일본이 다시 변신을 꾀한다면 이는 ‘체제 전환’과 ‘보통국가화’라는 이중 명제를 동시에 추구하는 양상이 될 것이다.
한류와 전자제품 이후 대비해야 일본의 현재 모습은 우리의 장래 모습이 될 수 있다. 정경유착, 재벌 중심 경제구조, 양극화, 다문화에 대한 배타성이 앞으로 우리의 발목을 잡는 잠재 요인이 될 수 있다. 일본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선제적으로 ‘체제 전환’을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한류의 세계적 열풍과 한국 전자제품의 세계 석권은 사실 일본이 이미 1980년대에 경험한 것과 유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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