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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단 50주년 인터뷰차
원로 비평가 이어령(72.사진) 선생을 만났던 건 한 달쯤 전이었다. 향후 계획을 물었을 때 그는 대뜸 "시를 쓰고 싶다"고 털어놨다. 그때
들었던 비유가 꽤 흥미로웠다.
"사실
난 시를 쓰고 싶었어요. 한데 왜 정말 하고 싶은 건 아까워서 못 하잖아요. 미당 서정주가 '바다 속에서 전복 따파는 제주해녀도/제일 좋은 건
님 오시는 날 따다주려고/물속 바위에 붙은 그대로 남겨둔단다'('시론' 부분)라고 노래했던 것처럼 내게도 시는 미당의 전복 같은
거였어요."
그 전복이 기어이 뭍으로 올라온 것일까. 문단 생활 50년간 단행본 130여 권을 출간한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이
처음으로 시를 발표했다. 최근 발간된 시 전문 계간지 '시인세계' 겨울호에 '도끼 한 자루'와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등 시 두 편을 실은
것이다. 수다한 평론집과 산문집을 펴낸 그는 네 권의 소설과 두 권의 희곡집도 갖고 있다. 그러나 시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학교
1학년 때 학보(서울대학신문)에 시를 발표한 적이 있어요. '구름'인가 하는 제목이었는데 사실 그게 내 문학 생활의 시작이었어요. 그 뒤로 산문
중간에 시처럼 짧은 글을 끼워넣은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시만 오롯이 발표한 건 아니었어요. 등단 50년도 되고 했으니 글쓰기 작업의 한 매듭을
짓고 싶은 생각도 있고 해서 오래전에 써둔 시를 조심스레 내놨습니다."
'도끼 한 자루'는 이 시대의 아버지상을 묻는 작품이다.
한자에서 '도끼 부(斧)'는 '아비 부(父)'에서 파생된 말이라는 데에서 착안했다. "서정시라고 하면 흔히 여성적 정서를 떠올리는데 남성적
서정, 그러니까 도끼로 상징되는 아버지의 서정도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함께 실린 '어느 무신론자의
기도'에는 처음으로 무릎 꿇고 기도를 올리는 한 무신론자의 갸륵한 소망이 나온다. '아름다운 시 한 줄을 쓸 수 있도록/허락해 주시겠습니까'.
평생 시를 소망했다는 얘기냐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해서 당장 시인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답했다.
"이제껏 써놓은 게 서른 편은
족히 넘을 겁니다. 계획대로라면 내년에 시집을 낼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건 내가 내 작품에 만족했을 때의 얘기입니다. 평론가가 쓴 시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거든요."
'시인세계'는 겨울호에서 이어령 선생을 비롯하여 유종호.김화영.방민호.김춘식.김용희 등 평론가들로부터
시를 받고, 이가림.이하석.장석원.변의수.김민정 시인으로부터는 비평을 받아 '비평가의 시, 시인의 비평'이란 특집을 기획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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