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제임스 조이스의 1914년

이강기 2015. 10. 2. 11:06

제임스 조이스의 1914년


 

배문성 시인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주간조선 [2304호] 2014.04.28

 

▲ 작가박물관에 있는 제임스 조이스 초상화.
지금부터 100년 전인 1914년은 유럽에선 대전환이 일어난 해다. 19세기식 자유주의 부르주아 자본주의가 1914년에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빅뱅적 파국을 맞고 20세기를 향해 꺾어지기 시작했다. 20세기를 향한 변화의 물결이 1914년에 이르러서야 변곡점을 넘어선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은 ‘long 19th century’란 개념으로 1914년을 19세기의 종점으로 파악한다. 1900년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부르주아 자본주의의 ‘황금시대’는 지속되고 있었고, 급팽창을 시작한 제국주의는 군국주의로 치달았으며, 민족주의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다. ‘팍스 브리태니카’로 대표되는 이 시기는 일견 풍족하고 평화로웠으나, 다양한 갈등이 폭발 직전에 이른 시기이기도 했다. 그 꼭짓점이 1914년이다.
   
   아일랜드의 대표적인 작가 제임스 조이스(1882~1941)에게도 1914년은 문학이 정점을 이룬 시기다.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은 이른바 ‘더블린 삼부작’이라고 불리는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로 대표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삼부작이 공히 1914년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점이다. 1914년은 제임스 조이스의 첫 소설집 ‘더블린 사람들’이 출간된 해였으며, ‘젊은 예술가의 초상’ 연재를 시작한 해이며, ‘율리시스’ 집필을 시작한 해다. 1914년에 ‘더블린 삼부작’은 어떤 식으로든 모두 결정되기 시작한 것이다.
   
   1906년에 이미 완성했던 문제소설 ‘더블린 사람들’은 논란 끝에 1914년에 이르러서야 출간할 수 있었다. 1914년 ‘에고이스트’지에 연재되기 시작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1916년 출간됐다. 또 1914년부터 집필을 시작한 ‘율리시스’는 음란하다는 이유 등으로 연재 중단 등의 시련을 겪다 1921년 완성됐다. ‘율리시스’는 조이스에게 유독 관대했던 프랑스에서 소설이 완성된 이듬해인 1922년 출간됐지만, 정작 그의 사용언어인 영어권에서는 여전히 출간되지 못했다. ‘율리시스’가 영국에서 출간된 것은 소설이 완성된 지 15년이 흐른 뒤인 1936년이었으며 미국에서는 음란 출판물 판정 등의 소송을 겪은 뒤 1934년에야 책으로 나왔다.
   
   이 와중에 조이스와 조국과의 불화는 극점에 이르렀다. 계속되는 항의와 무시, 소송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문학을 알아주지 않는다는 불만 때문에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을 출간한 이듬해인 1915년 아일랜드를 떠나 스위스 취리히로 옮겼고 다시는 아일랜드로 돌아오지 않았다. 왜 조이스는 문학의 텃밭이며 조국인 아일랜드와 불화를 겪었을까. 그리고 그 불화의 정점은 하필 ‘더블린 삼부작’이 모두 간여됐던, 그가 가장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펼치기 시작한 1914년이었을까?
   
   첫 번째는 ‘더블린 사람들’ ‘젊은 예술가의 초상’ ‘율리시스’가 공히 아일랜드 더블린 사람들의 실제 삶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아가 실제 삶뿐 아니라 그들의 내면을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15편을 모은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은 더블린에 사는 중산층(아일랜드 독립운동에 관심을 가지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자기 실속을 차리는 이기적인 시민계급)의 삶을 기록하면서, 왜곡되고 비뚤어진 더블린 사람들의 내면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내면세계는 드러나는 순간 곧바로 감추고 싶은 치부가 된다. 내면은 결코 아름다운 것이 아니며 감춰야 할 숨겨야 할 어두운 곳이란 점에서 조이스의 기술 방식은 더블린 사람들로서는 ‘고통스러운 일기’이기도 했다. 노골적인 기술 덕분에 당시 조이스의 주변 인물들은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누군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기술방식은 ‘더블린 사람들’이 씌어지는 내내 집필중단 협박 등의 스캔들을 일으켰다.
   
   자전적인 소설로 읽히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율리시스’ 또한 당시 더블린 사람들의 감추고 싶은 추악한 내면을, 특히 성적 판타지를 드러내고 있다. 1903년부터 쓰기 시작했던 자전소설 ‘스티븐 히어로’를 토대로 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스티븐 디덜러스라는 더블린 중산층 청년의 내면을 다룬 소설이다.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아버지, 엄숙한 종교적 사회 분위기, 파산지경에 이른 가정의 혼란과 불확실성, 신앙심에 가득 찬 어머니의 모습을 통해 어른으로 성장해가는 한 청년의 삶을 다루고 있지만, 소설은 더블린 사람들의 왜곡되고 비뚤어진 내면도 함께 드러낸다. ‘율리시스’는 1904년 6월 16일 아침 8시부터 다음날 오전 2시까지 더블린을 방랑하는 스티븐 디덜러스와 레오폴드 블룸의 이야기다. 이들의 눈에 비친 더블린 사람들의 내면은, 감추어진 내면이기 때문에 더 추악하고 왜곡돼 드러난다.
   
   두 번째는 조이스의 소설이 일종의 식민지 문학적 상황과 대치해야 했다는 점이다. 조이스가 영국 출신이었다면 스캔들은 일어나지 않았거나 강도가 훨씬 약했을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다. 찰스 디킨스가 런던의 치부를 드러냈지만 런던과 심각한 불화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피식민지인의 모순은 항상 이중으로 다가온다. 디킨스가 런던 뒷골목 하층계급의 삶을 그리는 것은 영국 사회의 불평등을 고발하는 정직한 구조로 다가온다. 그러나 조이스가 더블린 시민의 치부를 그리는 것은 피식민지인의 삶이란 모순과 겹친다. 그들은 성적·사회적 치부를 가지고 있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피식민지인이란 억압도 가지고 있으며 피식민 상태를 벗어나고자 한다는 정당성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이중 억압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조이스의 소설은 도리어 자국민들로부터 핍박을 받았다.
   
   더블린이 조이스 문학 전체를 지배하는 터전임과 동시에 끊임없는 비난과 위협의 진원지이기도 했다는 사실은, 조이스 삶의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피식민지 문학인의 운명이기도 했을 것이다. 경우는 많이 다르지만 어떤 식으로든 피식민지 문학인의 이중 억압을 삶으로 문학으로 드러냈던 한국의 이광수나 최남선의 경우와도 비교할 수 있다. 조국에서의 외면과 영어권 사용국가 전체의 매도와는 대조적으로 조이스 문학이 비영어권인 유럽 대륙에서 먼저 인정받고 공인되기 시작했다는 사실 또한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 식민지 문학인의 삶과 관련해서 흥미를 자아내는 부분이다.
   
   세 번째는 조이스 문학에 이르러 전통적인 로망의 시대가 끝나고 이른바 ‘내면의 기술’이라는 자기고백적 문학이 시작됐다는 점이다. 이 자기고백적 내면기술은 피식민지인의 모순되고 왜곡된, 어떤 점에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추악한 내면을 폭로하고 있다는 점에서 발화강도가 높다. 실제로 ‘더블린 사람들’에 등장하는 인물은 실제 인물이었으며 그들의 내면이 백일하에 드러났다는 점 때문에 더블린 사람들은 괴로워했고 연재중단을 요구했다.
   
   네 번째는 당시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팍스 브리태니카’의 가장 그늘진 곳은 브리태니카와 등을 마주 대고 있는 아일랜드였다. 1914년은 아일랜드 독립운동이 본격 등장하던 시기였으며, 아일랜드 정부법(Government of Ireland Act·1914)을 영국 의회가 승인한 해다. 이해 영국 의회는 세 번 만에 아일랜드 자치법을 통과시켰으나 이 또한 그해 일어난 제1차 세계대전으로 효력이 중지됐다. 아일랜드는 1937년이 돼서야 신헌법을 제정하고 ‘에이레’란 이름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아일랜드 독립의 지난한 과정 속에서 더블린 시민들의 자기환원적 갈등과 내부분열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됐을 것이란 것은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그 갈등의 한가운데에 1914년이 있고, 조이스는 거기서 자신의 이웃인 더블린 사람들의 내면을 기술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