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國, 韓美關係

미국의 선택, 보수주의

이강기 2015. 10. 2. 11:56

[미국의 선택, 보수주의]

 

 

 

-동아일보

 

 

 

<1>보수의 원산지 텍사스

 


 


《지난해 11월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승리로 끝난 미국 대선은 미국 사회의 보수화를 확인시켜 주는 계기가 됐다. 미국의 보수주의는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시대를 거쳐 이젠 ‘우파 국가’라는 말이 실감날 정도로 대세를 이뤘다. 부시 정권의 ‘설계사(architect)’로 꼽히는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 차장 겸 정치고문이 “30년 공화당 정권을 만들 수 있다”고 공언하는 배경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국의 보수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다. 1968년 이후 치러진 10차례 대선에서 7차례나 공화당이 승리했다. 그러나 미국인들조차 미국의 보수화에 둔감했다. 아니면 보수화의 실체를 인정하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뉴욕타임스조차 지난해 1월 ‘보수주의 전담기자’를 따로 둘 정도가 됐다.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미국 보수주의의 흐름을 주도하는 텍사스 정치와 복음주의 기독교의 현주소가 어디인지, 미국 보수주의를 떠받치는 정책은 무엇인지를 5회에 걸쳐 소개한다.》

《집권 2기 취임식이 열린 1월 20일 밤 부시 대통령은 ‘검은 나비넥타이와 부츠’라는 이름의 텍사스 전통무도회에 참석했다. 그는 마이크를 잡고 “4년 임기를 마치면 내 고향 텍사스로 돌아가겠다”고 외쳤다. 워싱턴까지 몰려와 행사장을 메운 텍사스 사람들은 대통령의 ‘텍사스 사랑’에 환호했다.

부시 대통령은 영락없는 ‘카우보이’ 대통령이다. 그는 휴가를 ‘서부 백악관’으로 불리는 텍사스 주 크로퍼드 목장에서 주로 보낸다. 목장에서 청바지 차림에 카우보이 모자를 쓴 채 일하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통한다. 텍사스 사람들은 “부시 대통령은 똑똑한 사람이지만 우리들의 말로 생각을 표현한다. 닮고 싶은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텍사스 주의 주도(州都)인 오스틴에서 만난 웨인 슬레이터 댈러스모닝뉴스 정치전문기자의 설명이다.》

▽보수의 원산지 텍사스의 특징=왜 텍사스가 미국 보수주의의 원산지로 통하게 됐을까 하는 의문을 안고 텍사스로 향했다. 오스틴에서 북쪽으로 소도시 웨이코를 거쳐 크로퍼드 목장으로 가는 길은 한적함 그 자체였다. 달리는 차도 거의 없고, 길을 물어볼 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텍사스의 특징은 크로퍼드 기념품점에 진열된 스티커들이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남자답게 살고 싶으면 부시를 찍어라.” “텍사스를 귀찮게 하지 말라.” “조국은 사랑하지만, (워싱턴) 정부는 싫다.”

텍사스 사람들은 동북부 ‘신사’들과 거리를 두고 텍사스를 ‘독립된 나라’로 생각한다. 2년 전부터는 초등학생들에게 텍사스의 주기(州旗)인 론스타(Lone Star)에 대한 맹세를 의무화했다. 국기에 대한 맹세와는 별도로 텍사스의 독립성을 가르치기 위해서다.

텍사스 사람들의 특성에 대해 역사학자 T R 페렌바흐는 “2명의 훌륭한 의사나 유명 음악가 또는 상대성이론을 만든 사람을 배출한 가족보다 10만 에이커의 땅을 가진 가족을 더 존경하고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오스틴 시내 어디서나 바라보이는 주 정부와 의회 공용건물은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을 빼닮았다. 그러나 워싱턴의 ‘원본’보다 6m나 높게 지었다.

주 의회는 텍사스가 소망하는 작은 정부를 구현한 곳이다. 의회는 2년에 140일만 열리고, 주 의회 의원 연봉은 7200달러(약 720만 원)에 불과하다. 주 업무에 대한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뜻이 담겨 있는 듯했다.

석유 개발과 황무지 개간으로 성장한 텍사스에서는 기업의 앞길을 가로막는 일은 정치적 자살행위로 간주된다. 사회보장을 통한 평등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다보니 빈부 격차는 오랜 숙제로 남아 있다.

개인생활에 대한 간섭도 금기사항. 부시 대통령은 주지사 시절 “드러내놓지만 않는다면 누구나 권총을 갖고 다닐 수 있다”며 총기 규제를 완화했다.

합법적 사냥 등 총기문화를 즐기는 텍사스 사람들의 기질은 대학 캠퍼스에서도 발견된다. 텍사스 A&M대는 ‘사관생도 모임’으로 유명하다.

남녀 회원들은 해병대처럼 짧은 머리에 군복 같은 제복을 입는다. 기숙사에서 일석점호를 받고, 방학 중에는 군사훈련도 받는다. 장교 예비과정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그냥 규모가 큰 동아리일 뿐이다.

▽텍사스 정치=텍사스는 부시 행정부 이후 워싱턴을 장악하고 있다. 대통령 말고도 법무, 교육, 상무장관과 백악관 비서실 차장 등 고위 인사가 텍사스 출신이래서만은 아니다.

부시 대통령이 추진하는 작은 정부, 감세정책, 규제 철폐, 사회보장 및 연금 개혁은 주지사 시절에 시작된 정책들이다.

부시 대통령은 “빈자의 구제도 정부가 나서는 것보다 교회가 맡는 것이 효과적”이라거나 “세금을 더 걷어봐야 중앙정부 관료의 힘만 키워준다”는 생각을 현실화하고 있다.

부시 정부가 비난받아 온 ‘일방주의’도 텍사스 기질과 무관치 않다. A&M대 하비 터커(정치학) 교수는 “텍사스에서는 ‘다른 주도 텍사스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말했다.

텍사스 사람들은 동부 대도시와 유럽인의 따가운 눈길을 어떻게 느낄까. 터커 교수는 “유럽과 텍사스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며 “이곳 사람들은 개의치 않는다”고 말했다.

바로 옆집이라도 자동차로 3∼5분은 가야 하는 텍사스에서 외부 침입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총을 소지하겠다는 것과 대도시 사람들이 사고와 범죄 예방 차원에서 총기를 제한하려는 것을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설명이다.

텍사스의 정치적 중요성은 인구 이동에서도 찾을 수 있다. 따뜻한 날씨에 규제가 많지 않아 남부로의 인구 이동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민주당 텃밭을 가리키는 동부 ‘블루스테이트(Blue State)’에서는 25년간이나 하원의원 수가 제자리에 머물렀다. 하원의원 수는 인구비례로 정해진다. 반면 텍사스, 플로리다, 애리조나 등 공화당이 강세인 남부 ‘레드스테이트(Red State)’에서는 20%나 늘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대통령 선거인단의 남부 비중은 계속 높아진다. 결국 텍사스로 대표되는 남부의 벽을 넘지 못하면 집권이 쉽지 않다는 얘기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오스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공화당의 역사=부시家의 역사▼

미국 공화당은 한 세대에 걸쳐 이념은 실용주의적 귀족주의에서 대중주의로, 지역 기반은 동북부에서 남서부로 이동했다.

이는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가문의 변천사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부시 가문은 동북부에서 기업과 금융업으로 부를 축적했다. 상원의원을 지낸 부시 대통령의 할아버지는 귀족풍의 공화당 정치인이었다.

부시 가문과 텍사스의 인연은 동부 명문고와 예일대를 졸업한 아버지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1948년 개발붐이 한창이던 서부 텍사스에서 일자리를 구한 데에서 시작됐다.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은 석유사업으로 돈을 번 뒤 1966년 민주당의 아성이던 텍사스에서 하원의원에 당선돼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아들 부시 대통령은 코네티컷 주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을 텍사스에서 보냈지만 아버지의 모교인 동부 명문고와 예일대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그도 텍사스로 돌아가 석유사업을 했고, 텍사스 프로야구 구단주가 됨으로써 정치적 기반을 마련한다.

텍사스 A&M대에는 1997년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을 기념하는 기념관과 부시 스쿨(행정대학원)이 설립돼 ‘부시주의(Bushism)’ 전파를 선도하고 있다. 부시 스쿨은 7년밖에 안됐지만 급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부시 전 대통령이 수시로 강단에 서고,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장쩌민(江澤民) 전 중국 국가주석, 헬무트 콜 전 독일 총리 등이 줄줄이 이 학교를 찾았다. 딕 체니 부통령을 비롯한 부시 행정부의 전현직 실세들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오스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2>‘강력한 손’ 기독교

 


 


부시 “기독교인으로 거듭났다”
워싱턴의 한 교회에서 예배를 보고 있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부부와 딕 체니 부통령 부부(앞줄 왼쪽부터). 뒷줄에는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과 어머니 바버라 여사가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기독교인으로 거듭났다”고 말하는 복음주의자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2002년 3월 24일 미국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에서 예정에 없던 일요예배가 열렸다. 장로교 목사의 딸인 콘돌리자 라이스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현 국무장관)이 사회를 보고, 별명이 ‘선지자’인 캐런 휴스 대통령공보비서가 성경을 읽었다. 40여 명이 참가한 예배는 찬송가 405장 ‘Amazing Grace’를 합창하는 것으로 끝났다.

기독교 신앙이 미 정치의 심장부인 백악관, 나아가 미 사회 전체에 얼마나 깊게 파고들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복음주의 기독교(evangelicalism)의 정치적 영향력=지난해 대선은 종교가 선거 판도를 가를 만큼 미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확인시켜줬다.

특히 전체 인구의 21∼26%를 차지하는 복음주의 기독교도의 조지 W 부시 대통령 지지는 그의 당선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전체 기독교도 중 부시 대통령을 지지한 사람은 59%로 절반을 조금 넘는 정도였지만, 성서의 무오류를 확신하는 복음주의 기독교도는 무려 78%가 부시 대통령에게 몰표를 던졌다. 지난해 공화당원으로 신규 유권자 등록을 한 400만∼500만 명 가운데 대다수가 복음주의 기독교도라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복음주의 기독교의 정치적 영향력은 일부 지도자들이 기독교 보수주의를 미국의 바람직한 미래로 설정하고, 현실 정치에 깊숙이 접목시킴으로써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정치와 손잡은 교회=뉴욕타임스는 지난해 초 보수적 교회 지도자 14명이 2003년 여름 워싱턴 인근에서 나눈 비공개 대화 내용을 보도했다.

미국가족연합의 창시자인 도널드 윌덤 목사가 주도한 이 모임에서 동성결혼 금지 개헌운동의 다양한 방안이 논의됐다.

때마침 민주당 대통령후보인 존 케리 상원의원의 선거구인 매사추세츠 주 법원이 “동성 커플의 권리제한은 주 헌법에 위배된다”고 판시했고, 케리 후보도 이를 지지했다. 기독교 단체들은 즉각 ‘케리 후보=가족개념 파괴자’라는 논리를 앞세워 범기독교인 결집 운동을 펼쳤다. 이미 계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미국은 수정헌법 2조에서 정치와 교회의 분리를 규정한 나라다. 그러나 정치와 교회의 ‘이종(異種)교배’는 이처럼 소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기독교 보수주의의 역사=미국의 기독교가 늘 보수적 정치색을 띤 것은 아니었다. 1960, 70년대에는 리버럴 기독교가 탄탄한 전국 조직을 바탕으로 선거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

린든 존슨(텍사스), 지미 카터(조지아)와 같은 신앙심 강한 남부 출신 민주당 후보가 대통령이 된 것도 그런 영향력 때문이었다.

프랑스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2004년 저서 ‘미국 문명론(Made in USA)’에서 “그러나 1960년대 자유주의적 히피 문화가 상징하는 규범 없이 살기, 멋대로 옷 입기 풍조가 보수적 기독교인의 결집을 불렀다”고 썼다.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기독교 냄새가 없는 ‘해피 홀리데이’로 연말 인사를 해야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자유주의적 사고의 파급도 보수적 기독교계의 단합을 재촉했다. 1973년 미 연방대법원의 ‘낙태는 합헌’이라는 결정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기독교연합’과 같은 결사체는 이런 흐름을 타고 태어났다. 이 단체는 “가족으로 돌아가자”고 외치고 있다.

리 에드워즈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집집마다 배달되는 기독교 단체의 ‘다이렉트 메일(DM)’은 기독교적 보수이론 전파에 절대적인 기여를 했다”고 말했다.

▽복음주의 기독교의 정치적 자신감=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계기로 기독교적 생활방식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지난해 말에도 ‘메리 크리스마스’를 둘러싼 논쟁이 재연됐다. ‘메리 크리스마스 살리기 위원회’라는 단체는 전국적 체인망을 갖춘 백화점 등을 겨냥해 “실내장식에서 사라진 크리스마스를 되돌려 놓을 것”을 요구했다.

또 공립학교에서 생명의 진화론과 함께 ‘지적 설계론(Intelligent Design)’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적 설계론’은 생명체의 복잡한 진화현상은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설계 없이는 힘들었을 것이라는 이론.

절대로 성경에서 인용하지 않고 순수과학 이론으로 ‘포장’해 자기주장을 내놓고 있긴 하나 복음주의자들의 목표가 무엇인지는 자명하다.

이 같은 복음주의 기독교의 자신감은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다.

뉴저지 주의 일부 교육청이 학교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르지 못하도록 했고, 캔자스 주에서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커뮤니티 트리’로 부르자는 행사가 열렸다.

▽불안한 민주당=민주당은 기독교 보수주의의 확산으로 재집권의 기회가 줄어들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26일 조지아 주 리토니아에서 열린 ‘흑인연합대회’ 참석자들은 “보수 진영은 교묘하게 의제를 설정해 소모적 논쟁을 일으킨 뒤 이를 공화당의 세력 결집에 활용한다”고 비난했다.

제시 잭슨 목사는 “내 이웃에서 찾아볼 수도 없는 동성결혼 문제를 논쟁으로 만드는 세력이 있다”고 목청을 높였지만 점점 보수 기독교 단체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종교 논쟁에 파묻히는 느낌이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기독교인이 볼때 할리우드는 쓰레기”▼

 

 

“프랑스는 1789년 혁명 당시 전제군주 외에 교회의 독재에도 항거한 역사를 갖고 있는 반면 미국은 애당초 종교의 자유를 찾아 나선 사람들이 건국한 나라입니다.”

헤리티지 재단의 종교전문가 조지프 로콘티(사진) 연구원은 기자가 “유럽과 비교할 때 미국이 너무 종교에 집착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이렇게 설명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미국은 세속 국가인가, 기독교 국가인가.

“특정 종교를 돕는 어떤 법률도 만들 수 없도록 돼 있다는 점에서는 세속 정부가 맞다. 그러나 이 정부도 종교적인 국민을 상대해야 한다. 미국이란 사회는 기독교로 기본적인 민주의식을 유지해 가고 있다. 건국의 아버지는 기독교 신앙 없이는 미국을 지탱할 수 없다고 봤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친(親)기독교적 통치행위가 논란의 대상이다. 대법원이 낙태를 합헌으로 판결했는데 대통령이 낙태를 반대하는 시위대에 격려 메시지를 보내는 것은 헌법 준수 의무를 저버린 것 아닌가.

“수정헌법 1조는 동의하지 않는 종교를 듣지 않을 권리를 준 것이 아니라 어느 종교든지 공개적으로 표현할 권리를 보장한 것이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권리를 희생할 이유가 없다.”

―보수적 기독교단체들은 도덕 재무장을 주장한다. 궁극적으로 미국이 ‘하나님의 나라’가 돼야 한다는 뜻인가.

“할리우드를 움직이는 문화엘리트들은 미국의 기본 가치와 동떨어져 있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할리우드를 거대한 쓰레기통으로 본다. 자녀들에게 폭력과 섹스가 넘치는 프로그램을 보여줄 수는 없다. 미국이 이런 문화상품을 수출한다는 점을 우리는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때문에 기독교인이 막을 수는 없다.”

―기독교의 입장에서 중립적인 공교육마저 비판의 대상으로 삼는 일도 있는데….

“‘너무 중립적인’ 공립학교는 더 이상 기독교 신앙이 설 자리가 아니다. 학교 내에서 기도가 금지됐고, 기독교 역사도 가르칠 수 없다. 자녀를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교육하는 중산층 가정이 많이 생겨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3>도마위 오른 진보주의

 


 


지난달 17일 워싱턴의 '보수주의자 정치행동 회의(CPAC)'에서 연설하고 있는 칼 로브 미국 백악관 비서실 차장 겸 대통령 정치고문. 그는 조지 W부시 정권의 '설계자'로 불린다. 워싱턴=로이터 뉴시스

《2008년 미국 민주당의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인기가 요즘 상승세다. 그런데 뉴욕타임스의 분석이 재미있다. 힐러리 의원이 지난해 대선 이후 동성결혼이나 낙태 같은 이슈 대신 신앙에 대한 존경심을 보여주면서 인기가 올라가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공화당 보수파인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세속적 자유주의자’라는 비판을 받아 온 힐러리 의원 사이에 무슨 입장 차이가 있느냐는 주장까지 나온다.

힐러리 의원의 ‘요즘 인기’는 미국 사회의 주류에서 벗어난 리버럴(Liberal)의 처지를 보여준다. 리 에드워즈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미국에서 리버럴은 더 이상 명예로운 단어가 아니다”고 말했다. 한국계로 미 상원 민주당 선거위원회 간사인 줄리 전 씨는 “리버럴이라는 이름의 값을 되찾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리버럴은 사회의 주류에서 동떨어진 것 같은 이미지를 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한동안은 리버럴을 미국 사회의 주류로 되돌려놓기 힘들 것 같다. 최근 보수주의의 정치적 영향력은 수십 년에 걸친 보수주의 지지세력들의 ‘풀뿌리 사회운동’이 이뤄낸 결과이기 때문이다.》

▽풀뿌리 보수주의=지난달 17∼19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32회 ‘보수주의자 정치행동 회의(CPAC)’는 보수주의 운동가들의 최대 잔치이자 연례 재무장 행사.

칼 로브 백악관 비서실 차장 겸 정치고문은 “앞으로 한 세대 동안 미국을 보수주의의 승전지로 만들겠다”고 장담했다. 보수주의 전사(戰士)들에게 던진 진군명령이었다.

민주당의 아성으로 꼽히는 할리우드, 공중파 TV 뉴스, 대학에 대한 비판도 빠지지 않았다.

‘대선 승리의 원인이 된 결혼의 중요성’이란 토론 시간엔 보수주의 운동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포커스 온 더 패밀리(Focus on the Family)’의 활동상이 소개됐다.

콜로라도 주 콜로라도스프링스에 있는 ‘포커스’ 본부에는 1300명이 근무하며, 매달 400만 통의 인쇄물을 가정에 배달한다. 12종의 잡지 230만 부를 발행하고 자체 제작하는 토크쇼 프로그램은 지방 라디오 방송을 통해 750만 명이 청취한다. 전화상담원 150명이 하루에 처리하는 상담만도 1만5000건이나 된다.

도널드 호들 포커스 대표는 “수백만 기독교인의 노력이 없었다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출현도, 공화당의 의회 장악도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조세개혁을 위한 미국인(ATR)’이란 단체는 ‘작은 정부’만이 미국식 개인주의 정신을 극대화한다고 믿는다.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 출신인 설립자 그루버 노키스트 씨는 우선 우체국과 공립학교의 비효율 제거 방안을 끊임없이 전파한다. 또 국내총생산(GDP) 대비 32%인 정부 지출을 10년 후엔 16%로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키스트 씨의 사무실은 부시 행정부 감세정책의 산실로 불릴 정도다.

전체 가구의 3분의 1 이상이 집에 사냥용 또는 호신용 총을 갖고 있는 미국에서 전국총기협회(NRA)의 공화당 지지는 선거 때마다 괴력을 발휘한다.

회원 400만 명의 NRA는 수정헌법 제2조가 허락한 ‘자기 방어를 위한 무기 소지 권리’를 제약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부시 대통령은 총기 제조사에 대해 소송 제한 조치를 취해 선거 때 진 신세를 갚았다.

60만 중소규모 자영업자의 모임, 중서부에 토지를 갖고 있지만 개발제한에 묶인 농민 조직 역시 보수주의 운동의 하부 조직 역할을 해 왔다.

미국은 신이 내린 축복의 땅이란 믿음에서 출발한 애국주의도 보수주의의 한 축을 이룬다. 2003년 초 미국기업연구소(AEI) 행사에서 벌어진 ‘사건’은 이런 기류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존 애슈크로프트 법무장관에게 느닷없이 미국 국가를 부르라고 시켰다. 식순에도 없었고, 법무장관에게 국가를 부르라고 지시하는 일은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었지만 애슈크로프트 장관은 주저 없이 노래를 불렀다. 워싱턴포스트는 당시 “이런 현상은 미국에서만 가능한 일”이라고 썼다.

▽미래를 고민하는 리버럴=2000년에 이어 지난해 대선에서 다시 패배한 민주당의 고민은 한 가지다. 두꺼운 보수의 벽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뚫어야 하느냐는 것이다.

지난달 열린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의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의장 취임행사. 연사로 나선 존 에드워즈 전 민주당 부통령 후보는 “우리는 옳은 주장을 폈다. 공화당은 우리의 정신을 가로채 갔다”며 민주당의 단합을 촉구했다.

민주당은 전통적 지지층인 사회적 약자의 지지를 잃어가고 있다. 지난 대선의 결과도 그랬다. 진보와 보수의 구분은 더 이상 소득 수준이 아니라 유권자가 믿는 가치가 결정한다는 것이 ‘오른쪽으로(To the right)’를 쓴 제롬 힘멜스타인 앰허스트대 교수의 지적이다.

대선 직후 ‘캔자스 주는 무엇이 문제인가’라는 책이 민주당 지지자의 눈길을 끌었다. 민주당 지지자인 저자는 캔자스 주 벽촌에 있는 공장지대 저소득 노동자들이 왜 ‘힘 있고, 부자 편인’ 공화당을 지지했을까 하는 의문을 던졌다.

텍사스주립대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토머스 승 교수는 “미국의 중하층 소득자는 외국과 비교할 때 삶의 질이 그다지 나쁘지 않다”면서 “노력하면 사회의 주류로 올라갈 수 있다는 낙관주의가 저소득층의 공화당 지지를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대선 당시 만난 70대 쿠바계 미국인은 “존 케리 후보를 찍으면 연간 몇 백 달러의 현금이 더 생길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빠듯한 삶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며 “옳다고 믿는 후보를 버릴 순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권순택 특파원 maypole@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신앙없는 학교 못보내” 公교육거부 확산▼

미국 버지니아 주의 소도시 퍼슬빌에 있는 패트릭 헨리 칼리지의 전교생 300명 중 약 90%는 공교육을 거부하고 집에서 공부하는 홈스쿨링(Home Schooling)으로 초중고교 과정을 마쳤다.

2000년 신설된 이 대학은 철저하게 보수주의 기독교 신앙에 바탕을 두면서 복음주의 기독교 지도자 양성을 교육 목표로 하고 있다. 학생들은 대부분 공직에 진출해 기독교적 보수사회를 건설한다는 꿈을 갖고 있다.

텍사스 주 휴스턴 출신인 공공정책학과 3학년 존 모니핸 씨는 부모의 뜻에 따라 초중고 과정을 모두 집에서 마쳤다. 나머지 형제 10명도 마찬가지.

10점을 만점으로 할 때 자신은 8∼9점 정도의 보수주의자라고 말하는 그는 “미국의 도덕성이 바닥에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건국의 아버지들이 나라를 만들 때보다는 나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 홈스쿨링을 하는 학생은 공식 통계로만 75만여 명. 그러나 정부의 역할을 불신하는 학부모들은 정부의 통계조사까지 거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홈스쿨링을 하는 사람은 20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취학 대상자의 4%에 해당한다.

학교는 마약 폭력 섹스에 노출돼 있고, 기도 금지는 물론 반(反)기독교 신앙을 가르치는 곳이라 학교제도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데서 홈스쿨링은 출발했다.

모니핸 씨의 부모도 그랬다. 연말 학부모 모임에 간 모니핸 씨의 어머니는 ‘메리 크리스마스’ 대신 ‘해피 홀리데이’라고 인사를 건네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아 홈스쿨링을 시작했다는 것.

이 대학은 행정부 내 보수그룹과 ‘돈독한 관계’를 맺고 있다. 지난해 백악관 인턴직원 100명 가운데 이 학교 재학생이 7명이나 포함됐다.

지도층의 우호적인 시선도 홈스쿨링의 기세를 높이고 있다. 릭 샌토럼 상원의원(공화·펜실베이니아 주), 메릴린 머스그러브 하원의원(공화·콜로라도 주)도 재택 교육 부모 명단에 올라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2000년 대선 때 “텍사스에서는 재택 교육이 존중받고 보호돼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했을 정도다.

버지니아=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4>보수주의 재생산 구조

 


CNN 설립자인 테드 터너 씨는 1월 2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방송인 행사에서 경쟁사인 폭스뉴스를 겨냥해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나팔수고, 그 인기라는 것도 독일에서 아돌프 히틀러가 누리던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폭스뉴스는 ‘공화당보다 더 보수적’이라는 별명이 붙은 뉴스전문채널. 생긴 지 10년도 안돼 CNN을 제치고 뉴스전문채널 1위 자리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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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회의 보수주의가 확대재생산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은 폭스뉴스나 라디오 정치토크쇼, 그리고 지역방송 같은 보수 매체의 약진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했다. 물론 그뿐만은 아니다.

헤리티지 재단이 펴낸 ‘현대 미국의 보수주의 운동사’는 ‘4P 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보수주의 철학(philosophy)의 정립, 철학의 대중화(popularize), 철학의 정치화(politicize), 재정 지원(자선·philanthropy)을 통해 보수주의가 전성기에 올랐다는 설명이다.

클릭하면 큰 이미지를 볼 수 있습니다.

▽웃어넘긴 철학이 정책이 됐다=1945년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국가 개입의 폐해를 지적한 ‘노예사회로 가는 길(Road to Serfdom)’이란 소책자를 펴냈다. 구소련의 성장, 중국 공산당의 부상, 미국 뉴딜 정책의 성공으로 온 세상이 ‘좌향좌’로 치닫던 시대에 기업중심주의, 개인의 자유, 중앙권력의 축소를 외친 것이다.

미국 출판업계의 리더인 하퍼와 맥밀란이 “독자를 어리둥절하게 할 책”이라며 출판을 거절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훗날 노벨 경제학상을 탄 밀턴 프리드먼이 1960, 70년대에 “케인스 부류의 정부 재정개입 정책은 장기적인 효과가 없다”는 주장을 폈을 때도 미국 주류사회의 반응은 비슷했다.

하이에크의 철학이 미국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놀랍게도 대중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를 통해서였다.

난해한 철학서를 대중의 눈높이에 맞춘 것이다. ‘4P 이론’으로 얘기하면 철학의 대중화가 이뤄진 셈이다.

▽싱크탱크, 철학의 정책화=보수주의 철학을 정책으로 발전시킨 최대 공로는 1970년대부터 생겨나기 시작한 보수주의 싱크탱크들이다. 그중에서도 미국기업연구소(AEI)와 헤리티지 재단은 현대 미국 보수주의 정책의 제조창 역할을 해 왔다.

부시 대통령의 감세정책, 작은정부론, 교육개혁, 미사일방어(MD), 온정적 보수주의는 대부분 이들 싱크탱크에서 만들어졌다.

부시 행정부에 20여 명을 진출시킨 AEI는 보수주의의 청사진을 그린다. 헤리티지 재단은 복잡한 현안을 압축한 보고서(메모랜덤·memorandum)로 의회의 두뇌역할을 한다.

‘우파국가(The right nation)’의 저자인 에이드리언 울드리지 기자(이코노미스트)는 “적어도 정책 분야에서는 리버럴리즘의 전성시대가 지나갔다”고 주장했다.

리버럴 언론들이 대학과 전통적 주류 언론을 장악해 진입장벽이 높아지자 보수 지식인들이 싱크탱크에 대거 자리를 잡은 것도 미국 보수주의 성장의 동력이 됐다.

▽보수언론의 영향력=4P의 고리 가운데 최대 전선은 언론에서 형성됐다. 지난 대선에서 뉴욕타임스, CBS뉴스 같은 전통적 주류 언론들은 눈에 띄게 한계를 드러냈다. 거꾸로 폭스뉴스와 라디오 정치 토크쇼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인해 준 선거였다.

폭스뉴스는 2000년 이후 4년 동안 시청률을 8%포인트나 높였으며 특히 공화당원들이 가장 신뢰하는 미디어가 됐다.

폭스뉴스를 통해 부시 대통령의 2기 취임식을 지켜본 시청자는 4년 전보다 30% 늘어난 260만 명이나 됐다. 반면 보수파들이 ‘빨갱이 방송(Communist News Network)’이라고 비아냥대는 CNN은 4년 전보다 63%나 줄어든 77만9000명, MSNBC는 68% 줄어든 43만8000명에 그쳤다.

미국인의 22%가 매일 듣는다는 라디오 정치 토크쇼의 경우 공화당을 지지하는 러시 림보, 숀 해너티 씨 등 7명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의 주간 청취자는 무려 4600만 명이 넘는다.

해너티 씨는 대선 당시 자기 프로그램에 전화를 걸어온 청취자에게 “부시 대통령을 찍겠다고 약속하라”고 설득했을 정도로 노골적인 공화당 편향이다.

물론 언론계 전체를 보면 리버럴 언론이 압도적이다. 지난해 뉴욕타임스 조사에서 언론인들은 100 대 1이 넘는 비율로 부시 대통령보다 존 케리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다. 뉴욕타임스의 고학력 독자는 150만∼200만 명이나 된다. 그래도 선거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보수재단의 재정지원=워싱턴에서는 ‘여론을 장악하려면 싱크탱크에 투자하라’는 말이 정설로 통한다.

대표적인 재단이 펜실베이니아 주 피츠버그에 있는 스케이프 재단. 1999년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이 재단은 1973년 설립 이후 26년 동안 14억 달러(약 1조4000억 원)를 기부했는데 44%인 6억2000만 달러를 보수주의 확산에 썼다. 최대 수혜자가 헤리티지 재단이었다.

헤리티지 재단은 연간 예산 3000만 달러의 절반 이상(58%)을 보수주의 지지자들의 기부금으로 조달하고 있다.

데이비드 브룩이 저서 ‘우익에 눈먼 미국’에서 ‘보수주의를 지원하는 네 자매’로 지목한 스케이프 재단, 존 올린 재단, 브래들리 재단, 스미스 리처드슨 재단은 각종 싱크탱크와 운동단체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 내 보수재단의 자금 배분을 조정하는 역할은 ‘자선 라운드테이블’이란 기관이 맡는다. 그런데 AEI와 네오콘(신보수주의)의 기관지 격인 위클리 스탠더드, 그리고 ‘자선 라운드 테이블’이 워싱턴 시내의 한 건물에 함께 입주해 있다.


 

 

뉴욕=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민주당 때리기’ 일등공신은 러시 림보▼

 

 

“이곳에서는 미국의 우수한 보수주의 인재들이 일한다.”

미국 최대 규모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 홈페이지에는 이런 설명이 붙어 있다.

놀라운 것은 이 헌사(獻辭)를 남긴 사람이 전직 대통령이나 저명한 학자가 아니라 극우보수파 라디오 정치토크쇼 진행자인 러시 림보(사진) 씨라는 점이다.

그러나 전국 660개 지방 라디오 방송을 통해 1450만 명이 최소한 주 1회 이상 그의 ‘보수 논리’를 청취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의문은 풀린다. 그는 보수적 시민 보병(步兵)의 이론 재무장을 주도하는 대표적인 전사의 반열에 올라 있다.

그의 토크쇼는 초대 손님이 없다. 혼자 마이크 앞에서 1인극을 벌이다가 청취자의 전화를 받고 대화를 나누는 식이다.

홍보용 비디오를 보면 그는 작은 스튜디오에서 공간을 향해 삿대질도 하면서 열정적으로 입심을 자랑한다. 그의 방송은 철저하게 민주당 때리기, 조지 W 부시 행정부 거들기로 일관한다.

1월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상원 인준청문회 다음날 림보 씨의 방송은 민주당 여성 상원의원인 바버라 박서 씨에 대한 성토장이었다.

전화를 건 청취자가 “박서 의원의 질문 자세가 무례했다”고 말을 꺼내자 림보 씨는 “그런 식의 태도로 라이스 씨의 인격을 모독한 것은 몰상식한 일이지만 라이스 씨의 침착한 답변 태도는 지도자답게 돋보였다”고 한술 더 떴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자유의 확산’ 구상이나 국기에 대한 맹세는 애국심 고취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처럼 이념적 대립 요소가 있는 이슈는 뭐든지 도마에 올리고 공화당 편을 든다.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은 백악관에 있을 때 “림보 씨를 잠재울 리버럴 방송인의 출현을 기대한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보수가 절대적으로 우세한 라디오 토크쇼 시장의 실지 회복에 나섰지만 사정이 간단치 않다.

민주당의 게리 하트 전 상원의원은 “진보주의자나 자유주의자는 흑백논리로 사안을 재단하지 못한다”면서 “단순 명쾌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논리를 전파하는 일은 그만큼 어려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5·끝>정부는 작게-기업은 크게

 


 


목청높인 부시
4일 미국 인디애나 주 사우스벤드의 노트르담대에서 열린 타운홀 미팅. 조지 W 부시 대통령(가운데)이 사회보장제도를 개혁해 ‘소유주 사회’를 건설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미국인 A 씨=35세. 1년 소득 5만 달러(약 5000만 원), 연간 사회보장세금(한국의 국민연금에 해당) 지불액 310만 원(평균세율 12.4%의 절반). 그러나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현실화하면 210만 원(8.4%의 절반)은 계속 세금으로 내지만 자기 돈 100만 원과 정부 지원금 100만 원을 합쳐 200만 원(4%)은 그의 통장에 입금돼 주식 채권 부동산에 투자된다. 단 은퇴할 때(현 65세)까지는 손 댈 수 없다.》

A 씨의 지지 정당은 알 길이 없다. 다만 그가 만 65세가 될 때까지 자신이 ‘소액주주’로 있는 상장 기업의 심리적 후원자가 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그가 기업중심주의를 강조하는 공화당과 개발 제한 및 분배 중시 정책을 펴는 민주당 가운데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민주당이 “공화당의 30년 정권 장악 음모”라며 사회보장제도 개혁(부분적 민영화)에 반대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부시 대통령이 집권 2기 취임사에서 선언한 ‘소유주 사회(Ownership Society)’ 추진 논란도 같은 맥락이다.

▽태풍의 눈 ‘소유주 사회’=미국 정치권은 지금 ‘소유주 사회’를 놓고 소리 없는 전쟁을 치르고 있다.

소유주 사회란 ‘주택 주식 정부채권 등 자산을 소유한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책임감 있게 설계한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미국인을 자산 소유자로 만들어 놓겠다는 구상. 현재 미국 가구의 68%가 자기 집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인의 60% 이상이 주식 보유자다.

 

 

핵심 정책은 A 씨의 사례처럼 사회보장 세금의 일부를 ‘개인 돈’으로 바꿔줌으로써 미래의 재정 파탄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주겠다는 것이다. 지금대로라면 2018년 이후엔 수입보다 지출이 많아진다.

부시 대통령은 틈만 나면 전국을 돌며 “지금 손 안 대면 큰일”이라고 개혁을 호소하고 있다. 워싱턴 카토(CATO)연구소는 “세를 사는 사람과 집주인 가운데 누가 집을 깨끗하게 관리하겠느냐”며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러나 여론은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 조그비 인터내셔널의 2002년 여론조사에서 유권자 68%가 민영화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최근 AP통신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55%가 반대했다.

2000년 민주당 부통령 후보였던 조지프 리버먼 상원의원은 지난주 ‘지지 선언’을 했고, 공화당 일부 의원은 반대하는 등 정당별 지지 구도도 뒤죽박죽이다.

정작 보수적인 월스트리트 저널이 제도의 앞날에 우려를 표시했다. 이 신문은 “은퇴 후 소득원이라고는 사회보장 연금뿐인 하위 20% 저소득층에 대해선 투자한 주식이 경기 하락으로 휴지조각이 되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부시 대통령의 구상은 자산가에게 유리한 정책”이라고 썼다.

▽정치적 함의=워싱턴에서는 ‘공화당은 아버지 정당, 민주당은 어머니 정당’이라는 등식이 굳어져 있다. 공화당은 돈을 벌어 오고(기업 중시) 도둑 잡는 일(국방력 강화)에 충실하고, 민주당은 병들고 지친 아이들을 거둬들이는 일(사회보장 및 복지제도)에 주력한다는 점을 빗댄 표현이다.

그러나 공화당의 사회보장개혁이 시작되면 ‘민주당=사회보장제도의 보루’라는 공식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민주당이 가뜩이나 보수화하는 유권자를 상대로 더욱 버거운 득표 전쟁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다.

부시 대통령이 국내 개혁 2차 과제로 꺼내 든 의료소송 남발 방지책에 대해서도 민주당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고 있다. 피해는 환자 가족이 당하고 소송에 휘말린 병원은 엄청난 재정 피해를 보지만 변호사만 실속을 차리는 기형적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것이다.

환영할 만한 개혁이지만 문제는 소송전문 변호사들이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 기반이자 정치헌금 창구라는 점이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싹을 자르려는 노림수라는 비판론이 없지 않다.

▽친기업 정책과 자기모순=부시 대통령이 소유주 사회 건설에 자신감을 보이는 것은 ‘주식회사 미국’을 동경하는 미국인의 독특한 심리와 무관하지 않다.

토머스 프리드먼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미국인은 분명히 예술가나 철학자보다 창업에 성공한 벤처기업인을 더 존경하는 사회”라고 말한다.

부시 대통령의 친기업 정책은 자신의 경험, 보수주의 철학, 정치적 손익계산서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는 경영학석사(MBA) 출신의 첫 대통령인 동시에 석유회사와 프로야구단(텍사스 레인저스) 오너였다. 실제 그는 학력보다 기업경영 경험을 높이 산다. 그가 지명 또는 임명한 부통령 국방장관 대통령비서실장 상무장관 재무장관 등 전현직 고위 인사가 줄줄이 대기업 고위 경영자 출신이란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는 1기 정권 출범 직후 3차례에 걸쳐 대규모 감세정책을 폈고 개발제한 규제를 없앴다. 월스트리트로부터는 “빌 클린턴 정부 하에서 쌓인 닷컴 버블이 터진 후 뒤따를 수도 있었던 경기 후퇴를 감세정책으로 잘 막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자동차기업 GM 간부 출신인 앤드루 카드 백악관비서실장, 에너지산업체 핼리버튼 최고경영자인 딕 체니 부통령의 존재는 ‘지나치게 대기업만 옹호한다’는 인상을 남기고 있다.

자기모순도 많다. 우선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는 부시 행정부가 정부 지출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있다. 물론 이라크전쟁, 테러와의 전쟁을 위해 지출이 불가피한 측면도 있지만 그는 의회가 제시한 정부 지출 증액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거의 없다. 교육투자 사회보장확대 기업보조금 확대 등에서도 큰 정부를 지향하는 모습이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자료조사=김아연 정보검색사

▼“부시 감세정책 경제회복에 도움”▼

 

 

회계 및 컨설팅 법인 딜로이트 투시의 칼 스타이트먼(사진)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동아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월스트리트는 속성상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과 친(親)기업정책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그는 경제 기술 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의 컨설팅과 경제분석을 담당해 왔다.

―부시 행정부의 감세정책이 지나친 재정적자 확대를 불렀다는 비판이 있다.

“2001, 2003년의 대규모 감세 등 3차례 세금 삭감이 경기 부진을 조기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물론 시한부 감세였던 만큼 즉각적인 효과는 크지 않았지만….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감세정책이 필요하다.”

―하지만 빌 클린턴 민주당 행정부 때 제로 상태로 돌아왔던 재정이 지난해 말 사상 최대치인 4125억 달러(약 413조 원)의 적자를 가져왔다.

 

 

“경기후퇴 때는 재정적자가 항상 있었다. 국내총생산(GDP)의 3.6% 규모인 현재 적자 규모는 오히려 1990년대보다 작은 셈이다. 1990년대 클린턴 정부에서는 의회를 공화당이 장악하는 바람에 정부지출 확대 등 정책을 구사하는 데 제한이 많았다. 지금 공화당 정부는 상하원을 모두 장악한 만큼 대책 마련 및 문제 해결이 더 쉬울 수 있다.”

―부시 대통령은 민주당의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소유주 사회’ 추진을 밀어붙이고 있다.

“주식 및 주택 소유를 통해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갖도록 한다는 그 개념은 경제에 긍정적인 만큼 장려해야 한다. 사회보장제의 문제점은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현재 상태로는 안 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회보장 세금의 일부를 개인계좌로 옮겨 운용하는 데에 문제는 없을까.

“제도 개편에선 구체적인 내용이 중요하다. 현재 정부에 맡겨놓던 돈의 3분의 1가량을 개인 계좌로 옮기는 작업에만 2조 달러(약 2000조 원)의 비용이 들 것이란 추산이다. 하지만 제도를 그냥 두면 앞으로 10조 달러의 문제가 생긴다. 더 심각하지 않은가.”

뉴욕=홍권희 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