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일본 대외정책과 군사전략 변화와
한국
시대정신, 2014년 봄호 |
Ⅰ. 문제의 제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일본 외교는 소극적이고 국제 환경에 순응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일본 정부는 국제적으로 민감한 정치․군사 현안에 대한 관여는 최대한 자제하면서 ‘경제외교’에 치중하는 행태를 보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인식을 떨쳐 버리기라도 하려는 듯이, 최근 일본은 헌법이나 미일안보조약과 같이 ‘전후 체제’를 규정하는 기본틀을 벗어나려는 시도를 가속화하고 있고, 정치․안보 분야에서 대외 관여를 확대하고 명확한 자기주장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21세기 들어 일본 정부가 제시한 ‘주장하는 외교’나 ‘가치관 외교’ 혹은 ‘적극적 평화주의’ 등은 종래의 ‘경제외교’와 대조되는 개념이다. 탈냉전 이후 20여 년 동안 일본에서는 자위대의 해외파견 관련 법제화, 방위청의 방위성으로의 승격, 헌법 개정 움직임의 구체화 등과 같은 ‘보통국가(normal state)’ 혹은 ‘정상국가’를 향한 일련의 제도적 정비가 뒤따랐다. 최근에는 중국의 해양진출에 대응하여 미일동맹의 재조정을 통해 일본의 역할을 확대하였고, 호주, 인도 등과의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한편, 집단적 자위권의 확보를 위한 작업을 가속화하고 애국심 교육과 영토 영유권 주장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외교안보정책에 나타난 이와 같은 변화는 보수이념의 제도화와 군사적 의미에서의 보통국가화로 대별할 수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두 차례의 아베 신조(安倍晋三)내각 하에서 이러한 움직임은 가속화하고 있는바, 아베 내각의 정책 방향과 결과는 일본의 국가진로는 물론 동북아 지역질서의 향배를 좌우하는 중요한 변수이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 본고에서는 탈냉전 이후 일본 외교안보정책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아베 정부가 추구하는 보수이념의 제도화 작업과 군사적 보통국가화 및 미일동맹 강화를 살펴보고, 지역 질서에 대한 함의와 우리의 대응방향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Ⅱ. 일본의 보수․우경화
1. 보통국가론의 등장
냉전기 일본 외교안보정책의 근간은 1947년 제정된 평화헌법과 1951년 체결된 미일안보조약이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미국주도의 전후 국제질서에 복귀한 일본이 택한 외교안보노선은 헌법 제9조를 전제로 한 ‘미일안보조약’의 체결이었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로 대표되는 일본의 보수집권세력은 방위비 등의 안전보장 코스트를 최대한 경감함으로써 전쟁으로 피폐한 일본의 부흥과 국제사회로의 복귀를 우선하였다. 이러한 ‘경(軽)무장 경제우선 전략’ 즉 요시다 독트린은 자민당 장기집권과 미소대립의 냉전체제 하에서 일본 대외정책의 기조가 되었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불황의 시작, 정치 불안정, 대규모의 천재지변 및 사건ㆍ사고에 따른 위기의식의 확산, 국제적 냉전체제의 종식과 지역 안보질서의 유동화 등을 배경으로 사회 전반에 걸친 보수화 현상이 나타났다. 일본 정부와 국민은 요시다 독트린을 대신할 새로운 국가전략을 모색하였고,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보통국가’로 대표되는 대대적인 체제전환이 시도되었다. 이들의 주장은 미일동맹의 유지를 전제로 한 일본의 적극적인 국제공헌과 군사력의 보유,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하는 조건으로서의 개헌 요구를 내용으로 한 것으로, 1990년대 중반 이후 일본 내에서 이에 대한 지지가 확산되었다. 2001년에 등장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정권 하에서 보통국가론은 일본의 대외정책 기조로 정착되었고, 이 과정에서 일본 사회에는 퇴행적 역사인식과 상징적 국가체제의 강화, 우익적 담론의 확산 등 보수ㆍ우경화가 두드러졌다. 그리고 이들 주장의 많은 부분이 제도화되었는데, 개헌 논의의 본격화(국회 내의 헌법조사회 설치와 그 최종 보고서의 제출, 자민당의 ‘신헌법 초안’ 발표), 국민통합 장치의 법제화(교육기본법 개정의 움직임, 국기ㆍ국가법, 통신방수법, 주민 기본대장법 제정), 국가위기관리 태세의 강화(유사관련법안 제정, 국민보호에 관한 기본방침의 각의 결정) 및 국제공헌의 강화(특별조치법 제정에 의한 자위대의 해외파견, 유엔 안보리상임위 진출 시도) 등이 그 예이다.
2. 아베 정권의 ‘탈 전후체제’론
2006년에 출범한 제1차 아베 내각은 국민통합을 위해 이념ㆍ사상을 강조하는 ‘정체성의 정치(identity politics)’를 추구하였다는 점에서 일본 정치의 보수화를 대표하고 있다. 당시 아베는 스스로의 정권 창출을 ‘전후체제로부터의 새로운 출범(船出)’이라고 명명하였다. 아베에 따르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국가체제는 연합국의 점령정책에 의해 강요된 것이며, 그 상징적 존재가 바로 ‘평화헌법’이다. 아베 정권의 항해(航海)는 패전의 굴레인 전후체제를 해체하고 그 자리에 일본 국민이 “자신감과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 국가”의 기초를 놓는 작업이다. 이 항해의 해도(海圖)는 일본의 역사, 전통, 문화 등이며, 그 목적지는 천황제를 비롯한 일본 고유한 전통에 기반한 국가이다. 명치 이후부터 패전까지 일본의 국력이 강했던 시기를 동경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베 내각의 이념성향은 미래지향적이라기보다는 복고주의적인 색채가 다분하다. 아베 내각이 추구하는 정책은 대내적으로는 헌법 개정과 애국심 고취를 위한 교육개혁, 자위대의 군대화, 국가위기관리체제의 강화, 대외적으로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확보를 통한 미일동맹의 강화, ‘강한 일본’의 건설을 중장기적으로 추진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이념노선은 2012년 12월에 출범한 제2차 아베 내각에도 계승되고 있다. 최근 일본의 정계는 보수ㆍ우경화가 두드러지고 있다. 2012년의 중의원 선거에 이어 2013년의 참의원 선거에서 보수우익 성향의 자민당과 일본유신회, 모두의당 등 신생 정당이 크게 약진한 반면, 중도보수의 민주당과 생활의당, 진보계열의 사민당과 녹색바람의당 등은 참패하였다. 선거 과정에서 침략의 역사를 미화하고 위안부 문제와 같은 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정치가들의 ‘망언’이 일본 내의 양심세력과 국제사회의 거센 비판을 불러왔지만, 보수ㆍ우익 세력의 약진을 저지하지 못했다. 따라서 최근 두 번의 국정선거는 일본 사회의 총체적 보수화가 투영된 결과로 보아야 하며, 향후 일본 정계에서 보수적이고 민족주의적인 주장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Ⅲ. 일본의 군사적 보통국가화
1. 전수방위원칙의 형해화(形骸化)
탈냉전 이후 일본의 방위안보정책은 독자적인 방위력의 확충과 국제적 안보 역할의 확대, 그리고 미일안보조약의 재정의를 통한 미일동맹의 재편ㆍ강화를 추구해 왔다. 일본 본토의 소극적 방위에 한정했던 1976년의 ‘방위계획대강(防衛計画の大綱)’, 주변지역의 방위로 확장을 시도한 1995년의 대강, 국제안보환경의 개선 등 글로벌 차원의 역할 확대를 추구한 2004년의 대강, 그리고 일본 열도의 남서방면의 방위력 강화를 강조한 2010년의 대강을 거치면서 일본 방위정책의 관심대상이 일본 본토에서 주변지역 그리고 국제무대로 확장되었다. 이 과정에서 전후 일본 방위전략의 근간이었던 ‘전수방위(専守防衛)원칙’이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전수방위란 외부의 공격을 받은 후에 군사력을 행사하며, 그 정도는 자위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도에 그치고, 상대국에 대한 선제공격이나 전략공격을 금지하며, ‘미즈기와(水際)’ 즉, 자국 영토 혹은 주변에서만 작전하며, 상대국의 침공이 있을 때마다 격퇴한다는 것으로 지극히 사후적이고 수동적인 군사전략이다. 따라서 무기체계에 있어서도 ‘기반적(基盤的) 방위력’ 즉, 자위(自衛)에 필요한 최소한의 방위력의 보유에 한정되며, 탄도 미사일, 장거리 전략폭격기, 미사일 탑재 원자력잠수함, 항공모함 등 공격형 무기의 보유는 금지되었다. 전후 일본의 방위전략이 일본 본토의 소극적 방위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평화헌법’이 있다. 연합국의 점령 하에서 제정된 일본 헌법은 ‘전력불보유(戦力不保持)’와 ‘교전권 부인(交戦権否認)’을 명시하고 있는바, 공식적으로 일본은 군대를 보유할 수 없고 국제분쟁의 해결 수단으로서 전쟁을 할 수 없다. 그렇지만 미소냉전 하에서 미일동맹체제에 편입된 일본은 소련으로부터의 침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물리력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평화헌법의 이념과 본토 방위의 필요성이라는 현실 사이의 타협이 바로 전수방위 원칙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탈냉전과 21세기 국제안보환경 변화를 배경으로 일본의 방위계획대강은 방위정책의 기본 목표로서 일본에 대한 위협 방지 외에 국제적 안보환경의 개선을 위한 국제사회 및 동맹국과의 연대행동을 추가함으로써, 자위대의 임무를 일본 방위 및 주변지역 활동을 넘어 국제무대로까지 확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였다. 일본 방위, 재해에 대한 대응, 미군과의 협력, 그리고 국제평화협력활동 등 다양한 요구에 부합하도록 방위력의 탄력적인 운용을 위해 미사일 방어체제(MD) 및 정찰위성의 운용과 정보수집·분석 능력 강화, 공중급유기, 대형 수송함·호위함, 신형 수송기 등의 장거리 투사능력의 확충 등 예방적, 적극적 대응이 가능한 방위력의 확충이 추구되었다. 탈냉전 이후 ‘북한 위협론’과 ‘중국 위협론’은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를 위한 논리적, 실제적 근거를 제공하였다. 1993년 노동 미사일 발사는 일본에서 북한을 실제적 안보위협으로 인식시킨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1998년 8월 대포동 미사일 발사 이후 일본 정부는 당시 반대여론으로 인해 도입이 불투명하던 미사일방어(MD) 시스템 및 4기의 정찰위성 도입을 결정하였고, 5척의 이지스함과 4대의 공중급유기를 실전배치할 수 있었다. 2010년과 2012년에 발생한 댜오위다오(釣魚島)/센카쿠(尖閣) 열도 사건을 계기로 일중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고, 이를 계기로 일본에서 ‘중국 위협론’이 크게 확산되었다. 2010년의 방위대강에서 가장 주목되는 것은, 동중국해 등에서 확대되고 있는 중국의 해양진출에 대응한 남서방면의 방위력 강화였다. 즉, 가고시마(鹿児島)에서 오키나와에 이르는 남서제도(南西諸島)에서의 육상자위대 주둔과 해상ㆍ항공 자위대 수송력 증강 등을 통해 도서 방위에 필요한 ‘동적(動的) 방위력’을 강화하여 해상수송로의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것이었다.
2. 아베 내각의 방위안보정책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 중국·러시아와의 영토분쟁, 중국의 부상 및 일본 근해에서 중국 군사력의 확장 등 동아시아 안보질서의 불안정성이 증가하는 가운데, 아베 내각은 독자적 방위력 증강과 미일동맹 강화를 통해 지역적 안보 역할 확대를 추구해 오고 있다. 아베 내각은 작년 12월에 「국가안전보장전략」(이하 NSS), 새로운 「방위계획대강(防衛計画の大綱)」(이하 신대강) 및「중기방위력정비계획(2014-18년도)」(이하 중기방) 등 일본 외교안보 정책과 관련한 3종의 문서를 채택했다. NSS가 외교와 국방분야의 포괄적 지침을 담은 최상위 문서라면, 신대강과 중기방은 NSS의 지침에 맞추어 방위정책의 기본방침과 방위력의 정비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과 중국의 해양진출을 지역안보의 최대 불안요인으로 규정하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의 독자적 방위력과 미일동맹의 억지력 강화를 제시하고 있다. 육‧해‧공 자위대의 통합운용과 부대의 기동성을 중시한 ‘통합기동방위력’ 개념을 제시하고, 이도탈환 능력의 확충을 위해 육상자위대에 ‘수륙기동단’을 신설하고, 기동전개능력 및 경계‧감시 활동 강화, 이를 위한 무기체계 정비를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방침은 공격능력을 갖지 않고 방어에만 전념하겠다는 종래의 ‘전수방위(専守防衛)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부연하자면, NSS는 일본 외교안보의 기본이념으로 ‘국제협조주의에 입각한 적극적 평화주의’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전후 평화국가로서의 행보를 견지하면서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에 적극 참여하겠다는 발상이다. NSS가 제시하는 대응 방안의 핵심은 일본 스스로의 강인성(强靭性) 제고에 있다. 즉, 종합적인 방위체제의 구축, 영역보전의 강화 및 해양안보의 확보, 사이버 안보, 국제테러대책, 정보기능의 강화, 우주이용 확보 등을 통해 일본의 방위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특정비밀보호법 하에서 정보보호체제를 강화하고, 방위장비와 기술협력을 위해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하는 방향으로 재검토하여 새로운 원칙을 정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일동맹의 강화와 함께 국제사회의 파트너 국가들과의 협력을 강화하고, '법의 지배'를 강화하기 위한 국제규범을 만드는 작업에 적극 참여하고, 유엔 외교를 강화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국내 안보기반의 강화 차원에서 “국가와 향토를 사랑하는 마음” 즉, 애국심 교육을 강조하고 있다. 방위대강은 약 10년을 시야에 넣고 개정하는 것으로 5년을 단위로 하는 중기방의 상위 문서이다. 금번 신대강은 민주당 정권 때인 2010년 개정 이후 3년 만에 개정된 것으로 전후 4번째의 채택이다. 21세기 들어 대강의 개정 간격이 짧아지고 있는 것은 일본 정부가 급변하는 안보환경에 대응할 필요성을 그만큼 강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대강은 이전 대강에 비해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더욱 강하게 의식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센카쿠 열도의 방위․탈환을 염두에 둔 남서지역의 이도(離島) 방위를 중시하고, 이를 위해 육․해․공 자위대의 통합 운용을 한층 강화하고 부대의 신속한 전개와 유연한 운용을 목표로 한다는 방침을 명기했다. 2010년 대강에서 제시되었던 ‘동적 방위력’ 개념을 발전시킨 ‘통합기동방위력’의 구축이 신대강의 기본방침이 되었고, 수륙양용부대의 신설, 항공자위대 나하기지에 비행기 증설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 과거 GDP 1% 이내에서 제자리걸음을 해 오던 일본의 방위비는 아베 정권 들어 증가 추세로 바뀌기 시작했다. 금번 중기방은 2014년도부터 5년간의 소요경비로서 약 24조 6,700억 엔을 설정했는데, 이는 2010년 중기방에 비해 1조 1,800억 엔 증가한 것이다. 과거의 방위대강에 남아 있던 “절도 있는 방위력을 정비한다”라는 표현은 금번 대강에는 "실효성 높은 통합적인 방위력을 효율적으로 정비한다"로 바뀌었다. 신대강은 방위력의 ‘질’과 ‘양’을 충분한 확보를 강조함으로써 방위력 증강이라는 정책적 의지를 선명히 하고 있다. 중기방에 제시된 무기체계에 있어서도 중국 견제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이도방위를 강화하기 위해 미국제 수직 이착륙 수송기 오스프리 17대, 수륙양용차량 52량, 글로벌 호크와 같은 무인정찰기 3기 등을 새롭게 도입하고, 미사일 방어 강화 등을 위해 두 척의 이지스함의 추가 건조를 담고 있다. 병력의 배치 및 운용과 관련해서 신대강과 중기방에서는 냉전 시대에 소련의 상륙 침공에 대응하기 위해 각지에 고정적으로 배치해 온 육상자위대 부대를 대폭 축소하고, 홋카이도와 큐슈 이외의 전차 부대의 폐지를 명기했다. 그렇지만 이도방위․탈환을 위한 수륙기동단의 신설 등을 이유로 육상자위대의 규모는 현재와 같은 15만 9,000 명을 유지하기로 했다. 아베 내각은 이상의 독자적인 방위력 정비와 함께 미일동맹의 강화를 통한 일본의 지역적 안보역할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작년 10월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이른바 2+2)는 미일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의 개정에 합의했는데, 2014년에 중 미·일 간 역할분담의 재조정 및 병력운용의 통합이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은 미·일 간 공동훈련·연습의 확대, 시설의 공동 사용, 정보 공유 및 공동의 정보 수집·정찰 활동의 확대를 추구하고 있다. 아베 내각은 미일동맹의 강화 차원에서 집단적자위권의 행사에 적극적이어서 2014년 중 각의결정을 통한 헌법해석 변경(해석 개헌) 내지는 입법조치를 통해 그 실현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가 지난 9월 UN 총회 연설에서 세계 평화와 안정에 적극적으로 기여한다는 '적극적 평화주의'를 표명한 이래, 일본 정부는 국제사회를 상대로 일본의 집단적자위권 행사에 대한 이해를 구해 왔다. 집단적자위권의 행사를 부인하는 기존의 헌법해석 변경을 위해 내각법제국 장관에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적극적인 인사가 기용되었다. 집단적자위권의 행사 용인은 전후의 일본 방위안보정책의 기본인 ‘전수방위’ 원칙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을 의미한다. 집단적자위권이 용인될 경우에는 이를 반영한 국가안전보장기본법안의 제정, 자위대법, 주변사태법, 평화유지활동(PKO)협력법 등 일련의 방위안보 관련 법안의 개정, 그리고 미일방위협력지침의 개정이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한편 보통국가화를 향한 제도화의 일환으로서 국가위기관리체제의 강화 움직임도 속도를 내고 있다. 제1차 아베 내각 시기에 일본 정부는 총리관저의 사령탑 기능을 강화하여 중대 외교안보 사안에 효율적으로 대처한다는 취지에서 ‘일본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의 설치를 시도하였지만, 실현되지 못했다. 제2차 아베 내각은 이를 계승하여 2013년 11월에 NSC 설치법안을 통과시켰는데, 앞으로 이 회의가 외교안보정책 결정의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작년 12월에는 특정비밀보호법안의 성립으로 동맹국과 기밀정보를 공유하기 위한 제도가 구비되었다. 이와 같은 움직임에는 국가위기관리태세의 강화라는 1차적 목적 외에 외교안보 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 제고를 통해 보통국가화의 실현을 앞당긴다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다.
Ⅳ. 동북아 국제관계에의 함의
1. 역사ㆍ영토 내셔널리즘 격화
일본 사회의 보수ㆍ우경화에 따른 퇴행적 역사인식은 동북아에서 ‘역사ㆍ영토전쟁’를 격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동북아는 국익, 세력균형, 패권 등 현실주의 국제관계관과 근대국가적 가치체계가 우선하는 지역인바, 경제적 상호의존의 심화에도 불구하고 역사ㆍ영토마찰은 심화되어 왔다(Asia paradox). 지난 20년간 중일 간의 무역과 투자, 인적 교류는 급증한 반면, 해양ㆍ영토 문제, 중국의 군사력 증강과 투명성 문제 등과 같이 전략적 경쟁관계에서 기인하는 정치ㆍ안보 갈등이 구조화되었다. 야스쿠니(靖國) 참배, 역사 교과서, 위안부 문제, 해양 영유권 문제 등을 둘러싸고 일본과 주변국 간에 치열한 역사 논쟁이 전개되었다. 일본 정계에서 ‘강한 외교’를 외치는 전후세대 보수 정치가들이 주류로 등장하고 역사 수정주의가 노골화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를 기본으로 하던 일본의 태도가 바뀌었다. 아베 내각과 자민당은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사과를 담은 ‘무라야마(村山) 담화’와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한 ‘고노(河野) 담화’의 수정을 공공연하게 거론하고, 역사교과서 기술에 있어서 주변국에 배려한다는 이른바 ‘근린제국조항’의 삭제를 추진하고 있다. 일본의 총리와 각료를 포함한 정치인들은 A급 전범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였고, 침략의 역사를 부인하는 망언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주변국의 상처를 들쑤셨다. 동북아에서 격화되어 온 역사․영토 분쟁은 지역의 파워 밸런스와 국내 정치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다. 현 자민ㆍ공명 연립정권은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절대다수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바, 아베 정권이 안정된 정권기반을 바탕으로 국수주의 교육, 영토 영유권 주장 및 자위대의 역할 등을 강화하고자 시도하면서 한국, 중국 등 주변국들과의 갈등이 심화되어 왔다. 한ㆍ일 및 중ㆍ일 간에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대한 인식 차이를 둘러싼 공방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한 독도와 센카쿠의 영유권을 둘러싼 갈등도 격화되었다. 특히 영토 문제는 민족주의 정서라는 ‘명분’이 주는 지지율 확보, 국민통합의 수단으로서의 효용과, 자원ㆍ에너지 정책 차원의 경제이익이라는 ‘실리’가 결합되어 있다. 중국, 러시아, 일본 등 역내 주요국의 영토 정책은 공세적 성향이 두드러지고 있는바, 영토 문제에서 타협하면 정권이 유지될 수 없다는 인식 즉, ‘영토문제의 성역화’와 결부된 ‘영토 내셔널리즘’의 발호가 우려된다.
2. 일본의 군사적 보통국가화의 이중성
탈냉전 이후 일본은 전후의 비무장 경제중심의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방위안보정책에서 탈피하여, 한편으로는 미일동맹의 재정의를 통해 미군과 공동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근거를 마련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독자적인 방위력을 확충하고 자위대의 활동 범위를 확대함으로써 동아시아와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군사ㆍ안보 역할 확대를 추구해 왔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군사적 보통국가화’로 정의할 수 있다. 냉전기 일본의 경무장 경제중심주의의 추구는 민주주의의 정착과 함께 경제대국이라는 성과를 안겨 준 반면, 일본 대외정책의 몰(沒)정치화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국가전략에 대한 본격적인 문제제기는 냉전 구조의 해체와 더불어 표면화되었고, 보통국가화를 배경으로 추진된 일본 방위안보정책의 적극화는 정치성의 회복 즉, 냉전기에는 경제이익을 위해 희생되어야만 했던 국가 위신에 대한 관심의 부활을 의미했다. 일본은 이제 전후의 평화헌법체제나 ‘요시다 독트린’과 같은, 국제적인 기준에서 볼 때 비정상적인 정책에서 벗어나 정치ㆍ군사적 의미에서의 정상적인 국가를 지향하고 있다. 일본도 다른 나라들처럼 당당하게 군대를 보유하고, 자국의 방위는 물론 동맹국의 보호를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아베 내각이 채택한 외교안보 관련 상기 3종의 문서는 지난 20년간 일본 국가노선으로 정착되어 온 군사적 의미에서의 보통국가화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따라서 아베 내각이 제시하는 '적극적 평화주의'는 겉으로는 ‘평화주의’라는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그 실체는 평화헌법체제로부터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전후 일본의 외교안보노선을 '소극적‘이라고 배척하고,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는 것은 전후 평화주의의 상징인 헌법9조의 속박을 풀고 일본의 군사적 역할을 확대해 나가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향후 일본의 국가노선으로 가장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는 미일동맹의 유지를 전제로 한 보통국가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군사적 보통국가화는 동북아 안보질서와 관련하여 이중성이 내재되어 있다. 우선, 지역안보에 대한 일본의 건설적 역할 확대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특히 미국의 영향력 감소를 시야에 넣은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일본은 냉전 이후 경제력과 군사력을 비약적으로 증대시키고 있는 중국이 지역질서를 혼란시키지 않고 연착륙할 수 있도록 견제하는 중요한 세력이 될 수 있다. 반면 미․일 안보협력의 강화를 통한 중국 견제의 움직임은 역내 군비경쟁과 패권경쟁을 초래할 수 있다. 또한 일본의 군사적 보통국가화는 한반도와 동북아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 증대로 이어질 수 있다.
3. 중국 견제를 위한 다자연대 구축
아베 내각이 채택한 상기 3종의 외교안보 관련 문서는 앞으로 일본 외교안보정책의 기조가 중국 견제를 핵으로 하는 친미보수로 경사할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아베 내각은 동중국해를 중심으로 증가하고 있는 중국의 군사적 확장에 대응하여 일본은 군사적인 방위력 정비와 외교 면에서의 중국 견제를 위한 국제적인 다자연대를 병행할 것으로 보인다. 2010년과 2012년의 센카쿠 열도 사건을 계기로 일·중 관계는 크게 악화되었고, 2013년 11월에 중국의 방공식별구역(ADIZ) 선언으로 양국 간 갈등은 더욱 격화되었다. 일본은 양국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중국에 대해 조건 없는 대화를 제안하고 있지만, 중국은 센카쿠열도 영유권 분쟁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한 정상회담 등 정부 간 고위대화에 응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해양진출에 대응하기 위한 ‘통합기동방위력’의 확충과 남서방면 방위력 강화, 해병대 기능의 부대 창설, 이도탈환 훈련의 확대 실시 등을 추진하고, 미일동맹 강화와 함께 호주, 인도 등과의 안보협력을 확대해 오고 있다. 2014년에도 이러한 추세는 가속화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미·일 간 가이드라인이 개정될 경우 중국 견제의 성격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내각은 중국의 해양진출 견제 차원에서 동남아 국가에 대한 외교공세를 강화해오고 있는데, 이러한 정책은 향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총리는 지난 1년간 동남아 10개국을 모두 방문하고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정상회의에 참여하여 남중국해와 동중국해에서 해양진출을 가속화하고 있는 중국을 견제했다. ‘법 지배 일반원칙’ 등 공통의 가치에 대한 도전에 대해서 동남아 국가들과 연대를 통해 대응하고, 이를 위해 공적개발원조(ODA), 통화스왑협력 등 경제적 수단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Ⅴ. 우리의 대응방향
이상의 분석과 논의를 통해 한국의 외교안보정책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함의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일본의 보수 우경화에 대해서는 역사인식과 방위안보정책을 구분해서 대응하되, 일본에 대한 관여와 견제를 병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베 내각이 퇴행적 역사인식에 집착하여 과거사 반성을 담은 정부 담화의 변경을 시도한다면 이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함께 적극적으로 견제할 필요가 있다.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이나 경제적 의존관계에 있는 중국의 반발을 부를 수 있는 과도한 우경화에 대해서는 일본 사회 내에도 비판이 있는 바, 급진적인 과거사 미화에 대해서는 국제적인 연대가 효과적일 수 있다. 전술한 대로 향후 일본의 ‘군사적 보통국가화’ 작업이 가속화할 경우, 이는 동아시아 안보질서와 관련하여 이중성이 내재되어 있다. 즉, 동북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일본의 건설적인 지역적 관여가 기대되는 한편, 미일동맹 강화를 통한 일본의 방위력의 정비는 주변국들을 자극하여 역내 군비경쟁을 촉발시킬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의 방위력 정비가 지역질서 안정을 위한 건설적 역할에 충실하도록 관여해 나가야 한다. 둘째, 대중(對中)관계 설정 및 대북정책에 나타난 한‧일의 입장 차이는 양국의 전략적 연대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해 왔던 바, 대중정책과 대북정책 관련 한‧일 간 인식 공유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일본의 방위안보정책은 중국의 군사적 부상을 미국과 연대하여 견제하겠다는 쪽으로 향하고 있는 반면, 한국의 대중정책은 한‧중 경제관계와 북한 문제 해결에 있어 중국과의 협력을 필요로 하는 상황인 바, 중국의 부상과 안보 위협에 대한 인식과 평가를 한‧일 간 소통을 확대해야 한다. 또한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에 대한 한‧일 협의를 확대해야 한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우리의 대북정책은 한․미․중 협력 중심으로 전개되었지만, 향후에는 한․미․일 공조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2012년 한일정보협정(GSOMIA)의 사례에서 보듯이,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반일 감정이 고조되어 있는 상황에서 한‧일 안보협력 문제에 대해서는 신중한 대응이 요구된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일본은 한일안보협력의 확대, 한․미․일 공조의 강화를 요구해 오고 있다. 한국으로서는 당분간 한‧일 간 국방안보 분야의 인적교류‧정보교류의 확대와 함께 해상 재난시의 긴급 구조 협력, 대테러‧해적 행위에 공동 대응, 해양 수송로(SLOC)의 공동 방위, 유엔 평화유지활동(PKO)에서의 협력 등과 같은 비전통적 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다자적‧지역적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한‧미‧일 안보협력 관련, 한반도를 둘러싼 ‘남방 삼각 對 북방 삼각’의 냉전적 대결 구도로의 회귀로 비치지 않도록 신중한 접근이 요구되는 바, 한‧미‧일 협력과 함께 한‧중 안보교류 확대를 통한 상호투명성과 신뢰 제고를 병행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북한 문제 관련 국제 공조는 물론 한반도 통일이라는 장기적 관점에서 한‧중 협력관계가 불가결한 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가 대중 봉쇄망으로 해석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넷째, 일본의 군사적 보통국가화는 북한의 핵 도발, 중국의 군사력 확충, 동아시아 해양‧영토 분쟁 등과 함께 지역질서 유동화의 주요 요인인 바, 한국은 미국을 지역안정 세력으로 확보하면서 장기적으로 일본, 중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미동맹은 북한 및 중국 위협론 등이 초래할 수 있는 지역질서 불안정화에 대비한 완충제로서 기능하며, 나아가 비전통의 지역·글로벌 안보위협에 대한 한국의 기여를 현실화하는 기제가 될 수 있다. 중·일 간의 경쟁과 갈등이 지역 분쟁으로 발전할 경우에 대비해서도 안정화 세력으로서 미국의 역할은 중요하다. 한국이 동북아에서 일·중간의 패권경쟁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도 미국과의 확고한 동맹관계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한미동맹은 일본의 군사대국화에 대한 대응책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일본의 헌법 개정과 집단적 자위권 행사 문제 등은 기본적으로 일본의 주권 사항이며, 현실적으로 이에 대한 한국의 영향력은 제한적이다. 그렇다고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선택한 일본에 대항하여 한국이 중국과의 안보협력을 택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미일안보체제는 일본의 독자적인 군사대국화를 견제하는 기능이 있으므로, 한미동맹의 강화를 통해 미일동맹의 대일 견제적 성격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국은 미일동맹체제 하에서의 일본의 방위력 증강을 원하지만, 일본이 미일동맹의 틀을 넘어 독자적인 군사대국화로 나아가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 즉, 일본의 과도한 군사대국화를 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미 양국의 이해관계는 일치한다. 또한 최근 격화되고 있는 동아시아 역사․영토 논쟁과 관련해서도 한미동맹은 일본의 과도한 우경화를 견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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