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아파트 잔혹사...물·전력난에 겨울엔 냉동고 엘리베이터는 무용지물 변기도 있으나마나
정장열 부장대우
조선일보
입력 : 2014.06.04 09:29 | 수정 : 2014.06.04 09:35
탈북자 김철주(가명)씨는 평양에 살 때 아파트가 밀집한 광복거리를 지나다니기 꺼려했다. 이곳에선 무심코 지나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똥 벼락을 맞을 수 있다. 겉은 번드르르한 광복거리 아파트촌 여기저기 함부로 버려진 똥도 흔히 볼 수 있다. 아침마다 ‘도로보수대원’들이 욕을 퍼부으며 똥을 치우는 장면도 연출된다. 김씨는 “아파트에 물이 부족하다 보니 변기에 물이 많이 필요한 대변은 베란다에서 대충 처리하고 밖에 그냥 버리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광복거리의 아파트촌은 북한이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대응하기 위해 개최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기념해 조성한 거주지역. 1986년부터 2년간 급하게 건설해 사람들을 입주시키느라 물을 퍼올리는 양수장 등의 후생시설이 열악하다. 중앙당 간부는 고사하고 평양시 간부들만 해도 살기를 꺼리는 곳이라고 한다. 김씨는 “광복거리 아파트에는 노동자들이 주로 거주한다”고 했다. 김씨는 북한 중앙 권력기관에서 근무하다 탈북해 2012년 한국에 왔다. 평양에 살 때는 김일성종합대학, 평양외국어대학 등 ‘특급 기관’들이 밀집한 대성구역의 50평(165㎡)대 아파트에서 살았다. 김씨는 요즘 ‘프리미엄 조선’에 ‘얼굴 없는 탈북자 김철주의 北說’이라는 글을 쓰고 있다.
김씨의 말처럼 평양의 아파트는 겉과 속이 다르다. 사진에서만 보는 번듯한 아파트의 이미지는 실제 살아본 사람들의 말을 조금만 들어봐도 무너져내린다. 오히려 아파트이기 때문에 곤욕을 치르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최근 평양 평촌구역에 건설하다 무너진 23층 아파트의 사례는 수십 년간 계속되고 있는 ‘평양 아파트 잔혹사’의 하나일 뿐이라는 게 탈북자들의 말이다.
북한 주민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ㄹ 세 개’(쌀·불·물)라는 말이 나돌지만 평양 아파트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특히 고생하는 것은 물 부족 때문이다. 평양 아파트들은 대부분 제한 급수를 하고 있다. 김철주씨는 “요즘에는 오전 오후 한 시간씩 물을 공급한다”고 말했다. 물론 온수는 없고 찬물만 나온다. 김씨는 “아파트 욕실에 드럼통 등을 갖다놓고 물이 나올 때 받아쓰지만 물이 항상 부족하다”며 “돈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한테 돈을 주고 물을 길어오게 하는데 50리터에 5000원 정도 한다”고 말했다. 고위 간부들은 소방차를 불러 호스를 직접 아파트 안으로 끌어들여 물을 채우기도 한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아파트에 제한 급수를 하는 이유는 전력난 때문이다. 전기가 부족하고 전압이 달리다 보니까 양수기를 돌려서 아파트 옥상의 물탱크 하나 제대로 채우기 힘들다. 아파트 수도관이 낡아 물도 줄줄 샌다. 태국 주재 북한 대사관 무역참사관으로 일하다 2000년 탈북한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전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아파트 아래에서 높은 층까지 한 번에 물을 끌어올리기도 힘들어 아파트 중간에 펌프장을 만들어 쏴준다”며 “이것도 라인마다 시간을 정해서 돌아가며 쏴준다”고 했다.
물이 부족하다 보니 곤욕을 치르는 게 한둘이 아니다. 식수 등 급한 것부터 우선 물을 쓰느라 목욕과 빨래는 뒷전이다. 아파트에 살면서도 대동강가에 나가 빨래하는 경우가 많다. 변기도 무용지물이 돼 버린다. 물을 부어서 쓰는 변기에서 소변은 보지만 물이 많이 필요한 대변은 대충 알아서 처리한다. 홍순경 위원장이 살았던 평양 중구역의 복도식 아파트는 아예 집에 화장실이 없었다고 한다. 아파트 한 층마다 공동화장실과 세면장 두 곳이 있었는데, 겨울만 되면 얼어터지기 때문에 사용 불가능하다. 홍순경 위원장은 “평양에는 아파트 밖에 공중화장실도 거의 없고 겨울이면 아파트 공동화장실도 얼어 물도 나오지 않기 때문에 아파트 뒷골목 으슥한 곳에서 대충 일을 보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김철주씨는 “1970년대 지은 복도식 아파트들 중 평양 중심지인 중구역에 있는 복도식 아파트는 나중에 집을 확장해 개별 화장실을 넣어줬다”고 했다.
물 부족의 원인인 전기 부족으로 인한 고생도 한둘이 아니다. 대부분의 탈북자들이 평양 아파트에서 겪은 고생을 말할 때 빼놓지 않고 거론하는 것이 엘리베이터다. 전력 부족 때문에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 있는 경우가 많아 높은 층까지 걸어올라가는 곤욕을 치러야 한다는 것이다. 김철주씨는 “아파트 높은 층을 매일 걸어서 오르내리는 고통은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며 “평양 아파트 중 엘리베이터가 제대로 작동하는 곳은 창광거리에 있는 중앙당 간부들 아파트 정도일 것”이라고 했다.
엘리베이터가 무용지물이다 보니 고층 아파트는 기피 대상이다. 고위 간부들의 경우 10층 이상은 절대로 살지 않으려고 한다. 과거에는 로열층이 3~5층 정도였는데, 요즘에는 저층 아파트의 경우 도둑들이 기승을 부려 고위 간부들이 선호하는 층이 좀 올라갔다고 한다. 10층 정도는 운동 삼아 걸어다닐 수 있다는 걸 위안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평양 평촌구역에서 발생한 23층 아파트 붕괴 사고와 관련해 북한 간부가 주민과 유가족 등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자 노동신문 4면에 실린 사진이다.
평양 평촌구역에서 발생한 23층 아파트 붕괴 사고와 관련해 북한 간부가 주민과 유가족 등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고 있다. 지난 5월 18일자 노동신문 4면에 실린 사진이다. 평양 아파트의 엘리베이터는 전기가 들어와 작동할 때도 주민들이 직접 조작하는 게 아니다. ‘운전공’만이 조작을 하게 돼 있다. 때문에 저녁 7시 이후 운전공이 퇴근하면 역시 엘리베이터가 무용지물이 된다. 홍순경 위원장은 태국 대사관에 근무하던 1997년, 평양에 잠시 들렀을 때 외교부 의전국장 집으로 부부가 초청을 받은 적이 있다. 저녁을 함께하자고 해서 갔는데 운전공이 퇴근하는 시간이어서 20층 높이의 아파트를 걸어올라가야 할 판이었다. 홍 위원장은 “당시 나를 초대한 의전국장이 운전공한테 귀한 손님이 왔다고 사정해서 올라갈 때는 엘리베이터를 탔지만 저녁을 먹고 갈 때는 걸어서 내려왔다”고 했다.
부족한 전력은 평양 아파트촌을 전기 쟁탈전이 벌어지는 정글같이 만들어버렸다. 김철주씨는 “제대로 전기가 들어와도 전압이 70~80볼트 정도여서 냉장고 돌리면 TV도 볼 수 없을 정도”라며 “때문에 돈 많은 집에서는 개인적으로 변압기를 달아서 전압을 높인다”고 했다. 베트남제, 중국제 변압기의 경우 한 대당 500~600달러로 값이 싸지 않다. 김씨도 대성구역 50평대 아파트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구입한 변압기를 세 대나 설치하고 독일제 세탁기까지 돌렸다고 한다. 김씨는 “동생네에서 주말이면 우리 집에 와서 빨래를 해 건조해 갔다”고 했다. 하지만 김씨처럼 한 집이 전압을 높여 전기를 확 끌어다 쓰면 옆집들은 전압이 뚝 떨어져 전기가 있으나마나한 상태가 된다. 김씨는 “개인적으로 변압기를 설치했는지 검열반이 나오지만 술 한잔 먹여 보내면 된다”고 했다. 김씨는 “집집마다 변압기를 설치해 전기를 끌어다 쓰다 보니 전기가 들어올 때면 아파트에 연결된 전깃줄이 과열돼 마치 네온사인처럼 빨갛게 달아오른다”며 “그러다가 불에 타거나 끊어지는 경우도 잦다”고 했다.
평양 아파트에 사는 일은 기본적으로 추위와의 싸움이라는 게 살아본 사람들의 말이다. 홍순경 위원장은 “북한에는 통유리라는 게 잘 나오지 않기 때문에 평양 아파트 베란다는 그냥 바깥에 노출돼 있어 추위가 그대로 전해진다”고 했다. 특히 새 아파트는 기피 대상이다. 속도전을 내걸고 아파트를 속성으로 짓기 때문에 벽도 겉만 말랐지 속은 축축한 상태다. 공사를 하면서 전기드라이로 바깥 벽만 급하게 말리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런 상태에서 겨울에 한파가 밀어닥치면 습기가 배어나오며 집 내부 벽에 두꺼운 성에가 낀다. 바닥은 또 완전히 냉골이다. 김철주씨는 “겨울에 난방 파이프가 얼어터지지 말라고 물을 순환시키는데 이게 온수가 아니라 냉수”라며 “벽에는 성에가 끼고 바닥은 냉수가 흐르는 집은 그야말로 냉동고”라고 했다. 때문에 겨울이면 심지어 아파트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피난 가는 집들도 있다고 한다. 김철주씨는 “막 시공한 아파트의 첫해 겨울은 죽음”이라며 “2008년 김정일이 북한 피바다극단 배우들에게 아파트를 지어 선사한 일이 있었는데 입주했던 배우들이 너무 추워 첫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다 나온 일도 있었다”고 했다.
홍순경 위원장은 “중앙난방 방식인 평양의 아파트들은 1980년대 중반까지는 기본적인 난방이 됐지만 그 이후는 난방이라는 개념이 사라진 곳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김철주씨도 “평양의 가장 중심지인 중구역과 대성구역 아파트 정도만 난방이 되는데 그것도 북한 사람들 말로 ‘죽은 아이 콧김’ 정도”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 겨울이 되면 아파트 안에서도 두꺼운 옷을 껴입고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난방 수단을 마련해야 한다. 형편이 괜찮으면 개별적으로 보일러를 놓거나 전기장판을 구입하기도 한다. 무연탄을 사다가 흙을 버무려 집에서 구공탄을 찍어 연료로 쓰는 가정도 있다. 때문에 겨울에 유명무실한 중앙난방을 하는 고층 아파트보다 난방 수단을 좀더 자유롭게 바꿀 수 있는 단층주택이 인기라고 한다. 취사도구로도 석유를 배급받아 석유난로를 주로 쓰지만 아파트 부엌에 장작을 때는 화덕을 마련하기도 한다. 홍순경 위원장은 “평양도 겨울에 모란봉 근처 산에 가보면 땔감으로 쓰느라 다 주워가서 삭정이 하나 없다”고 했다.
평양 아파트들은 우리와는 구조도 많이 다르다. 일단 주차장이 없다. 홍순경 위원장은 “자가용을 가진 집이 드물기 때문에 주차장 시설이 지하고 지상이고 없다”며 “만약 통일이 되면 북한의 아파트는 다 허물고 새로 지어야 한다”고 말했다. 내부 구조도 좀 다르다. 일단 북한의 아파트에는 우리의 거실이라고 할 만한 공간이 없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복도만 있고 복도 옆으로 방들이 놓여 있다. 부엌은 우리처럼 거실과 연결돼 있지 않고 문이 따로 달린 별도의 공간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다. 홍순경 위원장은 “우리는 거실과 베란다의 통유리로 밖이 훤하게 보이지만 평양의 아파트들은 거실이나 방에 뙤창 정도만 있어서 어둡다”고 했다.
홍순경 위원장은 평양에 거주할 때 중구역에 있는 방 한 칸짜리 아파트와 서성구역의 두 칸짜리 아파트, 모란봉 구역의 3칸짜리 아파트에서 모두 살아봤다. 방 3칸짜리 아파트라고 해봤자 우리나라 20평대 정도다. 이 정도 크기의 아파트들이 가장 많다는 게 홍 위원장의 말이다.
층수로는 20층 미만의 아파트들이 평양에 가장 많다고 한다. 김철주씨는 “40층 이상 아파트는 얼마 전 중구역 창전거리에 신축한 것이 유일하고 30층대 아파트도 광복거리에 있는 몇 개 동뿐이며 대부분은 20층 이하”라고 말했다. 1960~1970년대 건설한 복도식 아파트들은 10층 미만의 저층도 많다. 요즘 짓는 고층 아파트들은 복도식이 아니라 한 층에 4~5세대가 들어가는 구조로 북한에서는 ‘탑식’ 아파트라고 부른다. 1992년 탈북한 강철환 북한전략센터 대표는 “내가 살던 평양 중구역 아파트는 천장이 높고 벽이 두꺼운 동유럽풍의 저층 아파트였다”며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 지은 이런 아파트들은 오히려 튼튼한 편이었다”고 했다.
평양 아파트들은 같은 평양 시내라고 해도 어느 지역에 있느냐에 따라 사는 사람의 신분이 다르다. 김철주씨는 “서울의 중구나 종로구에 해당하는 중구역과 서울의 강남쯤 되는 대성구역과 보통강구역, 송파구쯤 되는 모란봉구역 정도에 고위 간부들이 사는 아파트들이 몰려 있다”고 했다. 반면 이번에 사고가 난 평촌구역은 전형적인 노동자 동네라고 한다. 김철주씨는 “평촌구역은 평양에서도 대형 공장들이 가장 많이 몰려 있는 곳”이라며 “화력발전소가 있어 창문만 잠시 열어 놓아도 옷이 새까매진다”고 했다. 일부 국내 언론에서 이번 평촌구역 아파트 붕괴 사고를 전하며 고위 간부들이 거주하는 곳이라고 보도했지만 잘못된 내용이라는 게 김씨의 주장이기도 하다. 김씨는 “평촌구역이 노동자 동네일 뿐 아니라 엘리베이터 문제도 있고 해서 23층의 고층 아파트에는 고위 간부들이 살지 않는다”고 했다.
탈북자들은 이번 평촌구역 아파트 붕괴 사고가 예견된 재난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무리하게 앞당긴 공기와 부실한 자재 등이 사고를 불러올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김철주씨는 “콘크리트 양생 기간이 100일은 돼야 하는데 북한에서 아파트를 지을 때는 50일만 양생하고 그냥 올린다”며 “시멘트 강도도 300‘마르까’(북한에서 시멘트 강도를 나타내는 단위)는 돼야 하는데 150마르까짜리 시멘트가 아파트 건설에 쓰인다”고 했다. 그나마 시멘트도 현장에서 팔아먹고 충분히 쓰지 않는다고 한다. 시멘트가 모레·자갈과 같은 비율로 들어가야 하는데 30%만 시멘트로 채우기 일쑤라는 것이다. 철근도 새것은 현장에서 팔아먹고 건물에서 회수한 녹슨 철근들을 쓰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김철주씨에 따르면, 평양 아파트 10만 가구 건설은 2009년 김정일이 평양 시민들에게 약속한 정권 차원의 과업이었다. 김정일은 2009년 아파트 건설이 지지부진하자 당시 김영일 총리를 해임하고 최영림을 새로 총리에 앉혔다. 2010년에는 원래 내각 소속이던 수도건설부를 국방위 직속의 수도건설사령부로 재편해 여기서 아파트 건설을 추진하게 했다. 하지만 김정은은 2011년 김정일이 죽자 수도건설사령부 산하 3개 도로군단 중 2개 군단을 마식령 스키장과 평양시 승마장 건설 사업으로 돌려버렸다. 그러자 당 내부에서도 비판이 제기됐고, 이를 의식한 김정은이 작년 6월부터 다시 평양 아파트 10만 가구 건설을 재개하면서 속도전에 열을 올리다가 이번 참사가 벌어졌다는 게 김철주씨의 설명이다. 홍순경 위원장은 “전문 건설 기업이 아니라 군이 앞장서 아파트를 짓는 북한에서는 1년에 1만가구도 짓기 힘들다”며 “1992년 사회안전부 8총국이 책임지고 통일거리에 아파트를 지을 때도 완공된 아파트가 무너져 몇백 명이 죽었다”고 했다.
평양에서 아파트를 건설하는 주체는 각 국가기관이 되는 경우가 많다. 김철주씨는 2000년대 중반 북한 권력기관에 근무할 때 직접 아파트를 지어본 경험이 있다. 김씨에 따르면 일종의 아파트 건설 허가증에 해당하는 ‘건설 명시’를 얻기까지의 과정은 고역 그 자체였다. “내가 근무하던 부서가 센 곳이었는데 우리 부서장과 합의해 아파트 건설 허가 신청 서류를 작성한 후에는 엄청난 수의 도장을 받아야 했습니다. 우선 아파트가 들어설 평양구역 인민위원회 위원장과 구역 당 책임자의 도장을 받아야 하고 그 후 건설성, 국가계획위원회, 군수동원청, 인민보안부 등 국가기관을 줄줄이 다니면서 도장을 받아야 합니다. 서류가 너덜너덜할 정도가 되는데, 중간에 지쳐서 그만두려고 해도 그동안 도장을 받은 게 아까워 그만두지도 못합니다. 결국 건설감독성의 명시를 받아야 그때서야 아파트를 짓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평양시 좋은 구역에 아파트 건설을 허가하는 건설 명시는 그 자체로 값어치가 대단하다. 김씨는 “명시만 얻어도 그걸 10만달러에 거래할 수 있다”고 했다. 명시를 얻는 과정에서 도장을 찍어준 기관들에는 아파트 몇 채씩을 할애해 줘야 한다. 또 아파트가 들어설 땅에 살고 있던 원주민들에게도 우선 입주권이 주어진다. 김씨는 “아파트 건설을 기획한 우리 부서 부원들에게 우선 아파트를 할당하고 명시를 받는 과정에서 기관마다 아파트를 할애하고 나니까 전체 80가구 중 내 몫은 3채 정도만 남았다”며 “그걸 5만달러 정도에 팔았다”고 했다. 김씨는 “명시를 받는 과정에서 기관들에 뇌물을 주느라 내 돈 1만달러가 들어갔다”며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아파트를 지으면서 고생한 뒤에는 다른 걸로 돈을 벌지 다시는 아파트를 짓지 않겠다고 각오했다”고 말했다. 김씨의 말대로 평양에서도 아파트는 사고 파는 대상이라고 한다. 김씨는 “내가 살던 평양 대성구역의 50평대 아파트는 시가가 1만8000달러였고 그 돈 주고 사겠다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출처] 본 기사는 조선닷컴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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