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출처 : '정치 거인'임을 다시 느끼게 해준 JP의 힘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25/2015022501345.html
입력 : 2015.02.25 10:25 | 수정 : 2015.02.25 13:43
거인(巨人)의 시대는 저물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거인들을 그리워한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부인상을 당해 다시 언론에 오르내리는 동안, 사람들은 잊고 있던 정치계 거물의 힘을 다시 느꼈다. 그의 입을 통해서다.
25일 김 전 총리는 64년 간 자신을 내조해오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 박영옥 여사를 마지막으로 배웅했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발인이 진행되는 동안 박 여사를 떠나 보내며 지난 64년간 고생한 부인을 떠올렸는지, 아무 말 없이 영정만 물끄러미 쳐다봤다. 때로는 백 마디의 말보다 침묵이 더 소중하다는 점을 몸으로 보여줬다.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4일 오후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인 고(故) 박영옥 여사의 빈소를 찾은 조문객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김 전 총리는 지난 21일 박 여사 별세 이후 장례식장에서 숱한 어록을 남겼다. 때로는 감동으로 다가왔고, 때로는 후배 정치인들이 뜨끔해 할 쓴 소리도 했다. 어떤 사람들은 ‘빈소 정치’라고 했고 어떤 사람들은 ‘맞춤형 훈수’라고도 했다. 그리고 중요할 때는 침묵으로 분위기를 더 엄숙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먼저 김 전 총리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는 본인의 지론을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는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지난 22일 “실업(實業)은 열매를 따먹는데 정치는 잘못하면 국민에게 비난 받고 열매를 못 따먹기 때문에 정치인 본인으로서는 허업”이라고 말했다.
올해 우리나이로 90이 된 김 전 총리는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인지, 인생에 대해서도 말했다. 지난 23일 김정례 전 복지부 장관에게는 “천생 소신대로 살고, 자기 기준에서 못했다고 보이는 사람 죽는 거 확인하고, 거기서 또 자기 살 길을 세워서, 그렇게 편안하게 살다 가는 게 (승자)”라고 설명했다.
‘말을 잘 하라’며 충고를 하기도 했다. 김 전 총리는 이명박 전 대통령과 대화하던 도중 이완구 총리를 언급하면서 “이 총리가 가끔 대통령에게 직언하겠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 소리를 일체 입에 담지 말라고 했다”며 “할 말이 있으면 조용히 건의 드리지 대통령한테 이런 얘길 했다고 자랑하지 말라 했다”고 말했다. 이 총리는 인준 과정에서도 설화(舌禍)로 곤욕을 치렀는데, 말을 조심하라는 조언이다.
원로 정치인으로서 요즘의 정치를 아쉬워하기도 했다. 24일 문희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을 만나서는 “여야라는 게 (안에서는) 싸우지만 밖에 나와서는 술 먹고, 경사가 있으면 같이 기쁘게 놀고 그렇게 가야 하는데 그래도 조금 계책이 있지만, 근래는 여야간에 저녁 먹는 경우도 없는 거 같다”고 지적했다.
김 전 총리는 한국 현대 정치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하지만 아직 회고록을 내지 않았고 앞으로도 낼 계획이 없다. ‘말의 힘’을 충분히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24일 조문 온 김황식 전 총리가 회고록에 대해 묻자 김종필 전 총리는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다음에 회고록을 많이 썼는데, 거의 읽어봤다. 제일 잘 쓴 것은 윈스턴 처칠인데 잘 써서 재미있다. 그 다음은 샤를 드골인데, 문장이 좀 까다롭지만 아주 정직하고 정확한 게, 생전에 보여준 성격 그대로다”라며 “나머지는 자화자찬만 잔뜩이고 별로 감명을 받지 못했다”고 대답했다. 요즘 나오는 흔한 회고록은 ‘말의 수준’이 낮아, 그런 것을 만드느니 차라리 쓰지 않는 것이 낫다고 풀이되는 대목이다.
김 전 총리는 오래 전부터 말을 잘하기로 유명했다. 1963년 공화당 창당 과정에서 반강제로 외유를 떠나며 ‘자의 반 타의 반’이라는 말을 해 유행시켰다.
상대를 공격할 때도 정감이 있었다. 민자당 시절 김영삼 당시 대표와 노태우 대통령이 갈등하자 김영삼 전 대통령을 향해 “틀물레질이나 하고 있다”고 했고, 1998년에는 당시 내각제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자 청와대를 향해 “하다가 안될 때는 몽니를 부리는 것”이라고 했다. 익숙하지 않은 순우리말인데, 김 전 총리는 “정당한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때 부리는 것이 몽니”라며 “무턱대고 떼를 쓰는 ‘틀물레질’과 몽니는 다르다”고 친절하게 설명하기도 했다.
김 전 총리 부인의 빈소에는 여야를 막론하고 많은 정치인들이 찾아 왔다. 근래에 보기 힘든 일이었다. 김 전 총리가 이런 거인 정치인이 되는 데는 그의 ‘말’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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