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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16년 인연 - 崔秉默 月刊朝鮮 편집장

이강기 2015. 10. 13. 10:38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과의 16년 인연

 

글 : 崔秉默 月刊朝鮮 편집장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월간조선 2015년 5월호

 

 

  《조선일보》 정치부 기자를 하던 1999년쯤이었습니다. 정확히 기억나진 않습니다만, 고향 선배 중 한 분이 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막상 자리를 하고 보니 대아건설 회장이란 분이 동석했더군요. 성완종 전 회장이었습니다. 고향이 충남 서산이라기에 통성명을 하고 그때부터 저는 그를 ‘회장님’이라 불렀습니다. 직함이 회장이라길래 저하고 연배 차이가 아주 많이 나는 줄 알았는데, 7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놀랐습니다.
 
  그러곤 잊고 있었는데, 어느 날 ‘회장님’이 직접 전화를 했더군요. “최 기자님…”으로 시작했습니다. 지난 3월 마지막 통화에서도 호칭이 ‘최 국장님’이었습니다.
 
  언제 점심을 하면 좋겠다길래 약속을 했습니다. 여러 명이 식사하는 줄 알았죠. 그런데 단 둘의 약속이었습니다. 은근히 불안했죠. 정치인을 만나는 건 별 걱정이 없었으나 경제는 제가 아는 분야가 아니어서 그랬습니다.
 
  여하튼 두 번째 만남에서는 주로 정치 얘기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당시 김대중(DJ) 국민회의 총재와 김종필(JP) 자민련 총재간 DJP 공동정부가 삐걱거릴 때라서 각종 정치 현안에 대한 저의 견해를 물었습니다. 경제 얘기가 아니라서 내각제 개헌 가능성, 자민련 내부 움직임 등을 주로 말했습니다. 제 담당은 DJ의 새정치국민회의였지만, 충청도가 고향(천안)이어서 자민련도 잘 알았으니까요. 내각제 개헌이 무산됐을 경우의 정국 등에 대해 말했습니다.
 
  박태준(朴泰俊·TJ) 당시 자민련 총재 얘기가 나오니까 그가 반색을 했습니다. “잘 안다”면서 동생 부르듯 보좌관 이름을 거론하더군요. 나중에 확인해 보니 정말 TJ와 성 전 회장은 상당히 친밀한 관계였습니다. ‘포항제철을 만든 분과 충청도 조그만 건설회사 회장이 어떻게 이렇게 잘 알까’ 하고 궁금증을 가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정치적 중립 표방했던 충청포럼
 
  한동안 연락이 없다가 2000년이 되자 그가 충청포럼이란 걸 만들겠다고 하더군요. 저한테도 본인이 직접 연락을 했습니다. 준비 모임을 한다길래 갔습니다. 거의 모두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중앙 일간지와 통신사의 부장·차장급 정치부 기자가 다수였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어린 기자는 딱 1명이었습니다.
 
  성 전 회장은 “충청도 출신들이 서로 잘 알지도 못한 채 지내서야 되겠느냐. 뉴스 인물들을 초청해 강의도 듣고 우의도 다져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모임의 방향을 토론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언급했지요. “정치부 기자들이 모일 경우 까딱 잘못하면 오해를 받기 십상이니 모임을 철저히 비정치적으로 이끄는 것이 좋겠습니다.”
 
  참석자 상당수도 동의했고, 성 전 회장도 “정치적 편향성을 가지면 곤란하겠지요”라고 했습니다. 그 특유의 음성이 있는데, ‘비정치적’이란 부분에 자신이 있어 보이진 않았습니다.
 
  어찌 됐든 그렇게 해서 충청포럼이 출범했습니다. 굳이 성격 규정을 하자면, 충청도 출신 중 정·관·언론계 인사들의 부정기적 학술 친목 모임인 셈이지요. 초창기 강사로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 반기문 전 외교부장관, 정몽준 전 의원,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있습니다. 특히 황 전 교수가 ‘잘나가던’ 노무현 정부 초기에는 특강 초청뿐 아니라 황 전 교수가 포함된 소모임을 몇 차례 열기도 했습니다. 이 때문에 황 교수의 논문 조작 파동이 있었을 때 충청포럼 멤버 몇 명이 구설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포럼 행사는 발제강의를 듣고 5~6개의 질문을 받는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제가 의아했던 것은 포럼 행사 때의 참석자가 400명 안팎이나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 전 회장과 가까운 인사에게 물었더니 “충청도 일대에서 버스로 동원하는 인원이 꽤 많다”고 귀띔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정치를 하려는구나’라고 직감했습니다. 그즈음 성 전 회장의 성장 과정에 대해 본인의 입을 통해 듣게 되고 나서는 더욱 그런 심증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2003년 초 드디어 성 전 회장은 저에게 정치 얘기를 꺼냈습니다. 당시 한나라당과 자민련 중 어느 곳을 택해 정치를 시작해야 하느냐는 조언 요청이었습니다. 새천년민주당 출신의 노무현(盧武鉉) 대통령 집권기였습니다. 여당 주변에서 신당(新黨) 창당 얘기가 나올 때였죠. “기업인으로서 기업을 보호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한나라당이나 자민련이 아니라 여당으로 가야지요.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다고 하지만, 야당 정치인 하면서 기업하기 어려울 겁니다. 잘 판단해서 하세요.”
 
  이렇게 말하고 2003년 7월 저는 미국으로 연수를 떠났습니다.(최근에 안 이야기인데 그는 이미 2002년 지방선거 때 DJP 진영을 넘나들며 사실상의 정치를 하고 있었더군요.)
 
 
  ‘다윗’ 대아건설이 ‘골리앗’ 경남기업 인수
 
  미국 연수 중 인터넷을 통해 국내 정치뉴스를 찾아보니 그는 결국 자민련을 택했습니다. JP에게 정치헌금을 내고 비례대표 2번을 받았는데, 자민련의 저조한 득표율로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그토록 원했던 정치 입문에 실패했던 것이죠. 그 일로 감옥에도 갔었습니다. 만약 저의 조언대로 여당(열린우리당)을 택했다면 그의 운명은 지금과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대아건설은 노무현 정부 때인 2003년 자기보다 몸집이 훨씬 큰 경남기업을 인수했습니다. 그냥 ‘기업활동에 전념해서 좋은 성과를 거둔 모양’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1년 만에 미국에서 돌아와 보니 성 전 회장은 옥고(獄苦)를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경남기업 오너’란 위상 때문인지 각계 고위직들과의 교류가 더 늘어난 것 같더군요. 충청포럼 전체 모임은 뜸해졌고, 간혹 운영위원 모임이란 걸 했습니다. 말이 운영위원 모임이지 그냥 성 전 회장과 가까운 10~20여 명이 모여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갈 때마다 새로운 인물들이 보였는데, 전경련 간부, 금융계 임원, 전직 검찰 간부, 외교관, 군 출신 등 그야말로 다양했습니다.
 
  현직 성 김 주한 미 대사와의 저녁 자리에도 간 적이 있습니다. 대화 내용은 한미동맹, 북한 핵 등 그야말로 기업인의 민원(民願)이나 관심사항과는 아주 거리가 먼 얘기였습니다. 모임은 막전(幕前)의 장면이었으니 막후(幕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 수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만.
 
 
  ‘끝없는 정치 열망’이 화근은 아니었는지…
 
  이명박 정부 초반 몇 명이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경남기업의 미래를 얘기하면서 왜 자원 발굴을 해야 하는지를 한참 설명하더군요. 건설업은 사실상 끝난 셈이니 회사 직원들을 먹여살리기 위해서는 자원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말이죠. 경남기업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지 않으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정치부 기자들은 사실 이런 얘기에 큰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흘려듣고 말았는데, 최근에 보니 그가 이미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캄차카 유전개발 등에 나서고 있었더군요.
 
  그가 다시 검찰에 출두하게 된 행담도 개발도 경남기업의 새로운 먹거리 창출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그는 행담도 개발 건에 연루돼 또 한번 검찰청과 법원 문을 드나듭니다.
 
  경남기업의 어려운 재정 사정 때문인지 그가 전적으로 ‘후원’하던 충청포럼은 이명박 정부 출범 후 거의 이름뿐인 조직이 되고 맙니다. ‘반짝’ 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당시엔 충남 공주 출신의 정운찬(鄭雲燦) 전 총리가 총리에 취임하기 전후였습니다. 취임 축하 등 2~3차례 운영위원 모임이 있었는데, 성 전 회장이 세종시를 첨단과학 도시로 만들겠다는 이명박 정부 구상에 대한 충청권 여론이 호전되고 있다고 말한 것이 기억납니다.
 
  어쨌든 지금은 고인이 된 성 전 회장. 제가 그에 대해 가졌던 기억들은 그가 끊임없이 정치권 진입을 넘봤다는 사실,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여야에 폭넓고 깊은 인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 본인을 위해서는 아무런 돈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성 전 회장의 이런 면모 이면(裏面), 제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던 곳에 지금 하나씩 밝혀지고 있는 비리가 있었던 셈입니다. 최근 일련의 장면들은 제가 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