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術, 敎育

한국건축의 완성과 표상에 부쳐

이강기 2015. 10. 13. 23:03

[문화평론] [건축] 한국건축의 완성과 표상에 부쳐

時代精神, 2010년 겨울호


[조인숙 | 다리건축 대표 ]

건축이란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결정체다.건축을 짓는 기법과 재료를 활용하여 그것을 다루는 기술자, 기능자들의 솜씨와 안목으로 만들어져서 고유의 역사문화 환경 속에서 오랫동안 인류의 유산으로 남은 것이 문화로서의 건축이다.
한국에서 우리가 보편적으로 전통이라고 이해하는 것들이 한국 고유의 건축문화의 흔적인지는 어느 누구도 확신하기 어렵다. 급속한 정보화 흐름으로 세계가 하나가 되어 국가별 지역 개성이란 이미 상당부분이 상실되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진정성의 여부를 차치하고라도 어느만큼은 한국 고유의 특성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이에 우리문화에 대한 정체성과 진정성에 대한 논의가 심각하게 요구되는 지금이 바로 현대 한국건축의 현상과 표상을 함께 다룰 시점이다.
문학에서는 선현들의 좋은 문장을 갈고 닦아서 뼈대를 바꾸고 새로운 모습으로 더 좋은 문장이 하나 탄생하는 것을 환골탈태(換骨奪胎)라 한다. 건축에서도 선조들이 이 땅에 만들어 놓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좋은 건축을 열심히 연구한 후 그것을 바탕으로 하여 오늘에 맞는 더 좋은 건축이 지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남의 역사가 아니라 내 역사 속 내 언어로 나의 건축을 새롭게 만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에 첫째, 우리가 이해하는 한국건축의 전통이 과연 우리의 뿌리인가. 아니면 그것조차도 모방과 적용의 잔재인가. 둘째, 역사보존에 바탕을 두고 증축이나 개축이 요구될 때 어떻게 보존과 개발을 병행하며 새로운 것을 넣음으로써 한국건축이 완성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살펴보자.


Ⅰ. 창조한다는 것 - 우리 건축의 뿌리란 무엇인가?


우선, 건축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언젠가 이미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의 단순 모방과 적용이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자라온 땅의 성질이나 주위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나무에 열린 탐스런 열매만을 따온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건축에 외래의 것을 그냥 차용하기도 하고 한국전통에 대해‘이것이 내 것’이라고 자의적 해석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또 하나의 현상은 역사와 장소를 치환하여 모방과 적용을 하는 것이다.

1. 외래문화의 모방과 적용

자연 및 문화역사 환경에 대한 배려 없이 서양의 동시대를 베껴서 한국에 구현한 모방과 적용의 역사는 어언 반세기가 지났다. 한국 현대건축의 역사는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 초 정치와 함께 한 건축가들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다. 당시는 일본이나 프랑스의 기법의 모방과 적용을 새롭고 선진화된 건축으로 받아들였다. 지금 무분별하게 외국건축이나 외국건축가를 숭상하는 것이나 별 다름이 없다. 한국건축 자체를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한국건축의 공간구성에 대한 상식도 없었고 구조 자체를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무조건 남의 것이 건축다운 건축이라 생각했었다. 또한 한국의 전통을 선(線)의 논리에만 의존해 구현하였다. 미학자의 눈으로 본 한국건축은 고려청자나 한복의 저고리에 착안한 날아갈 듯이 아름다운 선이었고, 건축가들은 스스로가 건축구조를 분석하지 않고 무조건 그들의 미사여구에 따라 외형에 치우친 전통의 논리를 펼쳤다.
그 흔적으로 1960년 이전 서양 및 일본에 풍미했던 노출콘크리트 건물 작가인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 1887-1965)나 당케 겐조(丹下健三, 1913-2005) 작품의 아류가 서울에 세워진 것을 들 수 있다. 이렇게 우리의 현대건축은 시작되었고 지금까지도 외제를 명품건축이라고 숭상하는 것이다. 시작부터 자국의 역사나 문화는 중요하지 않았고 오로지 정치라는 우산 아래 건축가의 허명(虛名)만이 존재했다.
독일 코트부스의 IKMZ (헤르초크와 드 뮈롱 작)
한편 한국은 산이 70%이상 차지하기 때문에 따로 인공적으로 공원을 만들 필요가 없어서 공원이라는 개념이 전래하지 않았다. 메이지유신 (明治維新)이후 일본이 유럽에서 가져온 개념을 일제 강점기에 한국에 구현했던 공원(公園, Public Park)이라는 단어를 100년이 지난 오늘날 서울에 “역사문화……”까지 넣어서 외국건축가 작품에 붙이는 서울시는 도대체 뭣 하는 것이며 이를 두고 보기만 하는 문화재청은 우리 문화의 근간을 알기나 하는지 의심스럽다.
부지런한 작가들이 외국에 시공된 건물을 다른 사람들이 미처 방문하기 전에 그대로 한국에 재현하는 사례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게다가 건축평론가라는 젊은이들은 이들을 가슴이 뜨거워지는 건축이라고 극찬을 하고 건축주들은 감동으로 답한다. 시사성이 있는 프랭크오 게리(Frank O, Gehry 1929-)나 피터 춤토어(Peter Zumthor 1943-) 또는 헤르초크와 드 뮈롱
(Herzog & de Mueron 1950-)들의 이름을 들먹이면서“한국에서 그들의 작품 못지않은 건축을 가질 수 있어서……”라고 한다.
진품이 아닌 프라다를 들고 서울 거리를 활보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2. 한국전통의 모방과 적용

한국전통의 모방의 예로 그 나라의 자연 및 문화역사 환경에 대한 배려 없이 외국에 짓는 한국 공관이나 한국정원들이 있다. 최근에 한 대학 교수가 연구년차 체류하는 도시의 한국 총영사관 건물이 한국전통을 보여주는 것이 없다고 총영사에게 우정 어린 편지를 보내자“준공당시 언론보도에 한국의 전통을 잘 구현한 건물이라 해서 그런 줄만 알았고 전문가 눈에 그렇게 비쳤다면 죄송하나 부임 전의 일이고 여건상 고칠 수는 없다”고 답이 왔다.
전 세계에 널려있는 무국적 공관들은 그 나라의 환경에 맞는 것도 아니고 한국을 표현하는 것도 아니니‘재외공관 건축’이란 말만 들어도 열이 난다. 세계건축사연맹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주최국 소재 각국 대사관의 행사에 가 보면 그 관저가 그 나라를 표현하는 축소된 국가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대사관저는 적어도 공간구성이나 모습으로는 어느 하나 한국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 겨우 건축이 아닌 장식만으로 한국이라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 정책 결정자만이 아니라 건축가조차 맥락과 무관하게 기와나 세살창호, 홍살문 등 사소한 요소들을 조금이라도 붙이면 한국적이라 이해하기 때문이다.
재외공관이란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 방문한다면 조선시대 일종의 행궁(行宮, 임금이 거동할 때 머무는 별궁 또는 이궁)의 개념이 된다.
또는 조선시대 읍치(邑治)의 동헌(東軒) 및 내아(內衙)의 개념이 되는 건축물 군으로 볼 수도 있다. 즉 글로벌 시대의 대사관이나 관저는 일종의 축소판 한국이어야 하지 않을까!
독락당 계정
반대로 한국정원을 짓는다고 자연환경은 제쳐놓고 한국의 건물만을 복사하는 경우를 보자. 근래 각종 수교 기념으로 지구촌 곳곳에 한국정원을 짓고 있다. 프랑크푸르트의 <풀 이슬 루(草露樓)>는 자세히 설명하지는 않겠지만, 한국건축을 이론으로만 접근하느라 한국건축 공간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좋은 예라 본다 . 베를린 동쪽 마르잔(Marzahn)지역에 조성한 서울정원 안의 <베를린 계정(溪亭)>은 경주시 안강읍 옥산리 소재의 독락당 (獨樂堂, 보물제413호)의 계정을 그대로 본따서 지었다. 자연환경도 비슷하게 하느라 야트막한 시냇물도 만들었다. 독락당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지은 집의 사랑채로 훗날 그를 배향한 옥산서원과도 공유하는 아주 시원한 계곡에 면해 지은 집이다.
한국의 정자건축은 서양의 정원이나 일본∙중국의 정원의 정자와 달리 자연에 건축을 하는 개념을 추구했다. 조선시대 한국에서는 궁궐의 원유공간을 제외하고는 인공 자연을 만들기보다는 수려한 자연을 찾아서 조그만 건물을 짓고 그 건물을 통해서 자연과 교감을 했다. 한국정원의 진수는 바로 그 개념이다. 목조건축을 베껴서 지어놓는 것이 한국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베를린의‘계정’이 회재 선생과 무슨 연관성이 있는지? 수많은 정자 중에 아름답다는 이유만으로 16세기에지은 독락당 계정을 21세기 베를린에 지었는지? 자연을 그대로 모방할 수 없을 때는 다른 해법으로 접근했어야 한다고 본다.

3. 한옥은 한옥이다

한국전통의 모방과 적용에서 한옥이 본래의 개념과 달리 이해된 예도 있다. 지난 7월 한 유명 젊은 건축가가 설계하여 한옥 뼈대 및 서까래 위에 유리를 덮어서 아주 인기를 끈 골프장 게스트하우스 건물이 언론에 보도되었다. 극찬을 했던 기자의 보도는 다음과 같았다.

“기와 대신 유리 지붕(…) 하늘과 통(通)하다. 길이 27m 회랑 위에 유리판 얹어 / 빛과 소통하는 열린 공간으로 /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파격 / 한옥의 가능성은 무한합니다.”

새로운 시도임에는 틀림없으나 무거운 기와지붕의 하중을 받을 것이 아니면 비싼 목재의 서까래를 얹을 필요는 없다. 게다가 햇빛 때문에 얼마 못 가서 목재가 뒤틀리면 서까래 보수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재료와 구조와 개념이 일체가 되어야 건강한 건물이다. 유리를 덮을 것이면 거기 어울리는 가벼운 재료를 택하고 그 재료에 맞는 다른 디자인을 했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설계야 건축가의 몫이고 그것이 그 건축가의 개념이라면 어쩔 수는 없는 것이다. 한옥을 구성하는 구조부재(構造部材)가 장식요소로 이해된 하나의 좋은 예다.
2007년 개관한 최초의 한옥호텔 경주 신라밀레니엄 파크의‘라궁(羅宮)’은 시의적절(時宜適切)한 시도에는 찬사를 보내나 어쩐지 한옥을 조금 왜곡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일본의‘화풍(和風)건축’에 온돌방 거실 등 한국식을 조금 끼워 넣은 듯하다.‘라궁’이라는 이름을 붙여서 경주에 호텔로 지으면서 굳이 서울 북촌에 남아있는 20세기 한옥을 구사했다는 점은 뭔가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 그냥 예산이 적어서 저렴한 한옥을 짓다 보니 그랬다면 오히려 이해가 된다. 예산이 넉넉했으면 제대로 된 한옥의 구성을 하려는 시도를 했을 것이라 믿는다.
방(房)—청(廳)—루(樓)를 갖추고 앞뒤 마당으로 건물을 에워싸고 그 건물을 담장으로 다시 에워싸는 한국주택의 기본 문법을 제대로 구사했으면 이용객들에게 교육효과도 컸을 것이다. 더운 여름 뒷마당의 찬공기와 앞마당의 뜨거운 공기의 순환으로 대청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추운 겨울 온돌방의 따뜻한 아랫목과 윗목의 서늘한 공기가 대류한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객실을 계획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 예로 이오 밍 페이(I. M. Pei, 1917-) 설계로 1982년 완공하여 미국 건축가협회상(AIA Award 1984)을 받은 적이 있는 베이징 근교의 샹산호텔(香山飯店, Fragrant Hill Hotel 연면적 30,000m², 325객실)은 틀림없는 현대건축인데 전체 느낌이 그냥 중국이다. 모든 실이 외부정원에 면해 있고 각 실에서 창틀을 통해 조망할 수 있도록 되어 있으며 4자(字)로 된 각 외부정원의 명칭은 시구(詩句)에서 차용하였고 전통 중국정원을 구사했다. 외부공간들과 담 등 그리고 전체 배치에 적용된 기본 중국건축 외에는 현대적 재료에 현대건물이다. 그러나 한 눈에 보아도 중국이 연상된다.
필자는 몇 년째“한옥은 개량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변화의 수용이 필요한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新)한옥예찬론자들이 신봉하는 한옥의 현대화∙한옥의 개량∙한옥의 진화에 대응하는 것이다. 한옥은 한옥이다. 19세기 말 이래, 아니 어쩌면 훨씬 전부터 지금까지 문화라면 늘 먼데 것만을 기웃거리는 것은 치유불능의 불치병이다. 2008년 말 토지주택공사가 시도했었던 <신한옥 디자인 공모전> 요강에“전통문화 의 창 조 적 계승∙발전을 통한 도시의 정체성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신한옥 마을’을 주제로 새로운 건축 및 도시주거의 방향을 모색 (…) 한국적 주거문화를 새롭게 해석하여 현대화하는 시범적인 한옥마을 조성에 ……”등이 나와 있다.
대표적인 한옥 건축물인 연경당(延慶堂)의 안채 및 사랑채
이 프로젝트는 당선작을 내고도 실현되지 못했다. 전주시는 최근 한국적인 명품 한옥도시 조성사업에 나서 최근 <신한옥 플랜 워크숍>을 열고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한옥의 보존과 한옥건축 활성화를 위한 추진 방향과 세부 사업계획을 마련했다. 구체적인 내용 중‘명품 한 옥도시’와‘한옥형 건축물’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 여겨진다. 물론 취지는 이해한다. 그러나 언제까지 명품을 들먹이고 모조 한옥을 들먹일 것인가! 한옥의 진정성을 부르짖고 제대로 된 진품 한옥의 도시를 만들겠다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Ⅱ. 보존한다는 것 - 우리 건축의 열매란 무엇인가?


다음으로 역사보존을 위한 복구의 수단과 완전성에 대해 생각해보자. 역사적∙이론적 배경 없이 단지 원형유지라는 원칙하에 재료나 기법만으로 기계적으로 접근했던 불국사(6세기 창건, 1970년대 복원)나 봉정사 극락전(13세기 건립 추정, 1970년대 수리)의 수리 및 복원 등에 대해 재평가하고 대안을 찾는 진지한 논의를 해야 할 시점이 왔다고 본다. 물론 국제 규약이나 기준에 충실하되 역사적 가치를 지닌 문화재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우리의 역사문화를 배경으로 현실에 맞는발전적인 보존의 원칙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유산의 종류가 다르고 시간적 배경이 다르기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준비에 있어 무엇보다도 완전성(Integrity)에 대해 상당한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완전성이란 갖추기 위해 재현하여 끼워 넣는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적절한 새로운 설계(good intervention)를 수용하여 지속적으로 완성해 가는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우선, 자칫 오해하기 쉬운 한국에서의 전통건축과 역사건축 및 한국 건축의 차이점에 대해 살펴보자.
전통건축(Traditional Architecture)을 만드는 요소로는 장소(Place)∙자연환경(Natural Environment)∙재료(Possible Material)∙기법(Technique) 등이 있다.‘한국에서’라는 표현은 같은 장소와 같은 자연환경을 말한다. 이곳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고 그동안 전래된 기법으로 건축행위가 지속되어 온 것이 한국의 전통건축이다. 그러는 동안 그것들이 한국의 유산이 된 것이다. 단, 전통건축이 다 건축유산(Heritage Architecture)은 아니다. 지속된 것들 중에서도 인류의 문화유산이 되기 위해서는 탁월한 보편적 가치 및 기타 요건을 갖추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한편 역사건물(Architecture in the History)이란 어떤 시대(Time)와 사건(Historical Event)이 중요한 요소이다. 물론 역사건물이 다 문화유산이 아니라는 것도 자명하다. 역사건물이 훌륭한 전통의 형식을 갖출 수는 있지만 국방이나 정치의 현장으로 지정된 사적(史蹟) 등의 단순 역사건물이 전통 건축유산으로 잘못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전통이라는 것을 머리에 넣고 한국건축(Korean Architecture - Past and Present)을 구현하는 방법으로는 현황조사 및 실측 설계나 보수설계 및 수리공사와 증축 및 신축설계를 들 수 있다. 또는 과거는 까맣게 잊고 지금 이 순간만을 염두에 두고 한국건축을 구현한다면 그것은 이미 한국건축이 아닐 수가 있다. 이는 세계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여기서도 역시 한국건축이 다 한국의 문화유산은 아니라는 것이 이해될 것이다.
건축에서 문화의 전통을 만들어가는 방법들에는 역사건축의 모방과 적용(adopt-adapt-copy), 건축역사의 치환(transpose), 건축전통의 완성(integrate), 건축의 환골탈태(表象, represent)들이 있다.
알려진 예로, 레오 폰 클렌체(Leo von Klenze, 1784-1864)가 설계한 독일 레겐스부르크 발할라(Walhalla)는 모방과 적용의 예다. 파르테논 신전을 도나우 강변에다 그대로 베껴 짓고 게르만-독일어권 유명 인물들의 흉상을 보존∙전시하고 있는 제전 발할라는 그 후 독일 신고전주의의 전통이 되었다.
건축은 아니지만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黑澤明1910-1998) 감독의 영화〈거미집 성(城)>은 11세기 영국과 스코틀랜드를 배경으로 한 셰익스피어의 맥베스를 16세기 일본의 봉건시대로 치환하여 완벽한 일본문화로 거듭 태어나 일본영화의 전통을 만들어나간 예다.
슈투트가르트 교구교회의 개수(Stiftskirche Stuttgart Renovierung,1999-2003)는 현대적 내부를 갖춤으로써, 또한 피터 춤토어 설계의 독일 쾰른의 성(聖) 콜롬바 교구(敎區)박물관(Kolumba Diocesan Museum)은 고딕성당의 폐허라는 역사적 흔적 위의 박물관으로 거듭남으로써 완성된 완전성의 한 예라 본다.
독일 레겐스부르크의 발할라
독일 슈투트가르트 교구교회
경기도 광덕사 설계(다리건축, 2003)는 필자 스스로가 표상을 염두에 두고 작업했던 작품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방이나 치환, 완성 및 표상에서는 남의 문화 또는 과거를 단순 베껴오는 데 머무르지 않고, 그 작업을 통해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 가려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