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환(曺成煥) | 경기대 교수·정치학]
1. ‘진보’는 언제나 진보의 편인가?
대한민국은 소모적 思想戰사상전에 빠져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進步진보-保守보수 논쟁은 민주사회의 多元的다원적 의사 경쟁의 수준을 벗어난 소모적인 싸움으로 轉落전락했다. 이 과정에서 나라는 민주적 방식으로 국력이 결집되기는커녕 罵倒매도와 獨善독선, 排除배제와 制壓제압의 분열상이 심화되고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脫탈냉전’, ‘민주화’, ‘정보화’, ‘세계화’라는 안팎의 문명전환적 도전에 창조적으로 應戰응전하기보다는 保·革보혁대결의 정치 및 이데올로기적 과잉으로 內紛내분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 위기의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진보-보수의 이데올로기적 소모전의 심화가 큰 요인이기도 하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함께 대한민국의 ‘진보세력’은 더 이상 在野재야가 아니다. 권력이 진보의 이름으로 대북포용정책을 실시하면서 진보는 권력과 밀월하면서 보수를 反共반공·反반통일·反반민족의 냉전수구로 몰아붙이기 시작했고,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는 ‘진보정치’가 권력과 이데올로기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되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권력과 ‘진보연합’이 보수를 제압하는 상황에 있다. 그 제압은 ‘진보성(progressiveness)’을 보여 준다기보다 진보세력이 스스로 맹신하는 ‘진보’의 도덕성을 우리 사회에 강요하는 도그마로 기능하고 있다.
탄핵정국에서 가까스로 살아남은 2004년 5월, 노무현 대통령은 연세대 리더십 특강에서 “보수는 힘센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것이고 진보는 더불어 살자는 것이다. 합리적 보수, 따뜻한 보수, 별놈의 보수를 다 갖다놔도 보수는 바꾸지 말자는 것이고 진보는 고쳐가며 살자는 것이다”라고 說破설파하여 세간에 파문을 일으켰다. 이 연설은 노 대통령의 탄핵을 결정한 정치세력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섞여 있을 뿐만 아니라 ‘진보’의 원초적, 규범적 우위를 강조하면서 대통령 스스로가 그 편에 서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는 한국사회에서 진보를 자처하는 사람들이 빠져있는 도덕적 오만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진보’라는 단어가 통속적 의미로 사용될 때 나타내는 형식논리상의 우월성을 이용해보자는 데서 연유한다. 진보의 반대가 ‘퇴보’나 ‘역행’을 의미한다면, 진보를 주장하는 각종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흐름에 반대하는 경우, 보수는 언어의 싸움에서 守勢수세에 처하기 때문이다.*(주1) 진보-보수의 통념적 형식논리상의 비대칭성은 규범과 價値가치의 비대칭성으로 연결되기 쉽다. 즉 진보는 보수에 비해 원초적으로 우월하며, 따라서 진보는 善선이고 언제나 ‘진보’(변화)를 창출한다고 하는 單線的단선적 믿음에 이르기 쉽다. 이로써 진보를 자처하는 것이 善을 추구하는 것이며, 동시에 모든 변화는 그 내용과 과정, 결과를 따질 필요가 없이 진보의 입장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는 착각을 유도할 수 있다. 결국, 진보는 그 語義어의에서 覺醒각성의 기준보다는 자기최면의 도구로, 성찰의 계기보다는 이데올로기적 선동의 수단으로 포장되기 쉽다. 그러므로 진보의 사상은 종종 진보로 위장된 속류 정치인의 선동과 구호로 동원되기 십상이다. 이는 역사상 수많은 진보 프로그램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하여 진보를 發揚발양하기보다는 파괴와 억압으로 전락한 例예를 발견할 수 있는 이유이다.
진보는 원초적으로 善의 편이며, 언제나 진보의 상태를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진보와 보수는 근대정치의 전개를 매개한 이념적, 정치적 입장이다. 진보와 보수를 사회변화에 대한 세계관과 정치적 입장, 즉 혁명의 수단까지 포함한 근본적 변화의 추구(진보)와, 기존 질서의 점진적 개선까지만 인정(보수)하는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구분법에 근거해 보더라도 보수, 진보 간에는 그 자체에 규범적 優劣우열관계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는 세계관과 정치적 입장에 대한 선택의 문제인 것이다. 다만, 이 선택은 진보를 推動추동시키는 진보성, 보수를 지탱하는 보수성의 내용이 무엇인가에 따라, 그리고 그것의 정치적, 역사적 작용의 결과에 따라 잘된 선택과 잘못된 선택, 좋은 결과와 나쁜 결과로 평가될 수는 있다.
근대 이후 보수와 진보, 그 자체의 성격과 구분기준, 그리고 이들 간의 상호관계는 정체·고정이 아니라 可變가변·進化진화의 과정을 겪어 왔다. 시대와 지역, 그리고 국가에 따라 진보와 보수는 變異변이를 나타내었다. 時代史的시대사적으로 보아 영국과 프랑스의 (부르주아) 자유주의는 19세기 초까지는 만민평등과 天賦人權천부인권을 각성시킨 當代당대의 진보였으나, 19세기 후반 사회주의의 출현으로 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변호하는 보수로, 사회주의는 진보의 입장에서 해방과 혁명을 추동시켰다. 볼세비키 혁명 이후의 공산주의가 레닌주의적 一黨일당독재, 스탈린의 一國일국사회주의로부터 브레즈네프 독트린까지 해방의 기관차가 아닌 전체주의적 지배와 제국주의적 팽창을 지휘하는 반동적 괴물로 전락해버린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20세기 말 이후 脫탈사회주의 체제이행의 국가들에게는 자유주의와 시장철학은 보수가 아닌 개혁과 진보의 선택으로 각광받고 있다. 한편, ‘괴델의 시대’*(주2) 로 일컬어지는 脫근대적, 다원주의적 시대 흐름 속에서는 “어느 입장이 보수이고 어느 주장이 진보인지”, 그리고 “어느 입장이 현 시점에서 옳은 것인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이념적 상대주의가 나타나기도 한다.
결국, ‘진보를 주장하는 것’과 ‘세계의 진보를 결과’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진보의 ‘진보성’은 초역사적인 규범이나 가치, 이상주의적 방향성이라는 의도의 수준과 함께 ‘시대와의 관련성’, 진보적 변화의 성취 가능성, 그리고 그 과정과 결과의 진보성이라는 현실과 결과의 문제까지가 포함되어 판단되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진보의 ‘진보성’ 與否여부나 수준에 대한 논의는 건전한 진보-보수 논쟁의 필수 항목이 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진보-보수의 논쟁과 경쟁은 현실의 변화 요구에 대한 진보적 代案대안이 먼저 제기되고 이에 대한 보수의 대응이 이루어지게 된다. 즉, 진보를 실천적으로 선도하게 되는 진보-보수의 경쟁은 이 과정에서 진보의 ‘진보성’이 없거나 왜곡되어 있을 경우, 혹은 보수의 변화에 대한 저항이 완고할 경우 건전한 정치적 경쟁이 아닌 극단적인 이데올로기적 투쟁 상태에 돌입하게 된다. 건전하고 발전적인 경쟁은 진보의 관념이 현실에 맞추어 脫극단화(deradicalization)되고 보수는 기득권을 양보하거나 스스로를 補修보수하게 되는 패턴이다. 이와는 달리 진보와 보수가 急進급진과 守舊수구의 일대 격돌에 돌입하게 되면 이 경쟁은 혁명과 반동의 파괴적 경쟁에 이르게 되는 것은 自明자명한 일이다.
진보의 ‘진보성’에 대한 성찰적 논의와 함께, 민주적 公論場공론장을 통한 의사의 소통이 진보-보수의 건전한 경쟁에 필수적 요소가 됨을 주목해야 한다. 진보와 보수를 논할 때 그 주의주장의 내용에 대한 평가도 중요하지만 兩者양자의 정치적 담론화의 수준과 과정의 패턴도 주목해야 한다. 국민주권과 (대의)민주주의가 성립되지 않고 다원주의가 구조화되지 않은 상태의 진보-보수 경쟁에 있어서 혁명과 반동의 극단적 과정이 일상적이었다는 점은 이를 증명한다. 프랑스 혁명기 공화파와 왕당파의 피의 투쟁, 러시아의 폭력 혁명과 전체주의 국가의 성립은 ‘혁명의 離反이반’을 설명할 뿐만 아니라 진보-보수의 극단적 경쟁의 역사적 範例범례일 수 있다. 이에 비해 영국의 점진적인 근대 이행의 패턴은 진보-보수의 소통적, 수렴적 경쟁의 典전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신생국들의 진보-보수 경쟁은 민주주의적 제도화의 취약성과 함께 많은 경우 극단화의 경로에 빠져들곤 한다. 한국의 현대 정치사는 건국 시기의 극단적인 좌-우 대립, 냉전적 발전 등의 제약요인으로 인한 진보성과 보수성 자체의 기형성, 권위주의적 발전으로 인한 민주적 공론장의 왜곡 등으로 진보-보수 경쟁의 건전성이 담보되지 않았다. 즉, 독재와 저항의 구도 속에서 기형적으로 전개된 것이다.
그러면 민주화 이후 한국의 진보-보수 경쟁이 건전해지고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은 유보적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진보-보수 논쟁과 경쟁은 소통적·수렴적이기보다는 교조적·근본적 대립이 격화되고 있다. 이는 진보-보수 논쟁을 선도하는 ‘진보성’의 쟁점의 轉移전이, 즉 ‘민주론’에서 ‘통일론’으로의 전이에 의해,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진보 이데올로기의 공세에 의해, 이 경쟁은 공론적 토론에 의한 소통이 아닌 맹목적 주장들이 상호 대치하는 형국이다. 1998년 이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에 의해 야기된 ‘남남갈등’, 노무현 정부의 독선과 蒙昧몽매의 자주 ·진보 이데올로기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진보-보수 경쟁을 馴化순화가 아닌 激化격화로 유도하고 있다. 오도된 ‘진보성’과 집권 진보의 도덕적 오만, 제압의 정치가 이 격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진보-보수 경쟁의 기형성은 보수의 저항이 아니라 ‘자칭 진보’가 더 큰 책임을 지고 있으며, 이 기형성은 진보가 희망이 아니라 진보세력 자신과 공동체 전체에게 큰 부담을 주는 ‘역사의 덫’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2. ‘통일론’, ‘자주론’과 ‘진보’ 헤게모니
1) ‘통일론’과 ‘진보’ 헤게모니
해방과 건국, 산업화를 거치는 동안 한국 정치는 냉전 ·반공주의가 견고한 지배 이데올로기로 구조화되었다. 이 과정에서의 진보-보수는 기껏해야 민주-독재라는 차원에서 그 구도가 제한되었고, 체제유지형 반공주의는 자유주의적 저항권마저 제약하는 기형성을 露呈노정하였다. 유신정권까지는 냉전 ·반공주의에 도전하는 모든 이념적 도전은 反체제의 차원에서 탄압을 받았다. 따라서 혁신정당의 시도, 사회주의적 이념의 추구는 물론이거니와 憲政헌정에 명시된 자유민주주의의 요구와 독재에 대한 정당한 비판, 그리고 최소한의 저항권마저도 허용되기 힘들었다. 그러나 유신정권의 종말과 신군부의 등장 과정에서 일어난 ‘광주 민주화’운동은 한국 진보운동에 새로운 씨앗을 뿌리게 된다.
1980년 봄 광주 민주화운동은 정치적 차원뿐 아니라 학문과 지식, 이념의 차원에서 역사적 분수령이었다. 최정운이 명명했듯, ‘오월의 사회과학’은 우리 사회의 지배체제와 맞물려 있는 사회과학계의 지배적인 시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진보적 학문’의 태동이었다.*(주3) 오월의 사회과학은 단순한 민주화운동을 넘어 기존 권력과 기성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진보’와 ‘해방’의 패러다임을 窮究궁구했고, 이를 위한 이론적 논거와 실천적 준거는 마르크스주의와 민중 ·민족주의에서 구해졌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의 진보 지식인은 사회구성체 논쟁, ‘내재적 접근법’의 수용 및 해방과 한국전쟁 시기의 현대사에 대한 수정주의적 열풍을 주도했다. 이 과정에서 그 동안 금기시되었던 마르크스주의, 레닌-모택동주의가 읽히는가 하면, 주체사상과 수정주의 역사서가 한국현대사의 ‘냉전성역(cold-war sanctuary)’에 도전하는 새로운 무기가 되었다. 물론 이러한 시도는 지하운동의 차원이나 이론 차원에서 우회적으로 전개되었다. 이는 신군부에 대한 反독재-민주화 투쟁이라는 정치적 흐름에 편입되어 한국 진보운동의 새로운 터전을 만들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386이라는 변혁적이고 투쟁적인 정치세대가 胚胎배태되었다.
1987년 6·10 항쟁과 함께 한국은 민주화로 이행하게 된다. 1987년 민주화 체제의 성립은 ‘오월의 사회과학’과 함께 태동한 한국의 진보에게 즉각적으로 이념적 헤게모니를 부여해 주지는 않았다. 민주화 이행 초기 진보세력은 ‘보수적 민주화’(노태우 정부의 성립, 3당 합당)의 흐름, 그리고 구소련 ·동구 국가들에서의 사회주의 종말 등으로 일시적인 위축을 경험한다. 그러나 1998년 김대중 정부가 ‘햇볕정책’이라는 대북포용의 화해 ·협력정책을 추진하면서 한국의 진보세력은 ‘통일론’을 중심으로 새로이 도약하게 된다. 이로부터 한국의 진보는 권력과의 밀월관계를 시작한다. 진보는 햇볕정책과 더불어 1980년대 이후 꾸준히 진행시켜온 진보적 문화투쟁과 陣地戰진지전의 성과를 바탕으로 진보-통일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의 민주화, 진보세력의 주류는 1998년 건국 50주년을 ‘분단국가 50주년’으로 파악하고 “분단체제는 민족사에 대한 배반”이고 “지도력을 발휘할 주도적 주체는 남한의 통일운동세력일 수밖에 없다”*(주4) 라고 선언했다. 이 선언은 탈냉전시대 한국 진보세력의 정체성, 즉 민주세력으로서 통일세력의 주축이 된다는 선언이었다. 민주는 독재를 추방한 진보이고 민주화이후 진보의 과제는 통일이라는 민주=진보=통일의 등식화 테제를 의미한다. 이는 분단모순을 주요 모순으로 인식하는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의 주장에서 큰 영향을 받은 테제이다.*(주5) 진보=통일의 등식화는 ‘先통일 ·後민주변혁론’(민족해방론, NL파)과 ‘先민주변혁 ·後통일론’(민중민주주의론, PD파)으로 分派분파된 진보진영을 민족통일론으로 통합하는 동시에 통일문제에 있어 진보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게 했다.
민주화, 탈냉전 시대의 진보 지식인들은 분단을 가져온 주요 모순, 즉 민족모순에 대한 정치적인 인식에 눈을 돌려 한반도에서의 미국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접근과 동시에 ‘내재적 접근법’의 시각으로 북한문제의 ‘민족주의적 패러다임’을 개발하게 된다. 아울러 한 ·미관계의 본질을 군사적 종속관계로 파악하고, 한반도 질서는 미국과 북한의 주도권 장악 과정에서 전개되고, 남한의 위상은 종속적이라는 결론에 이른다.*(주6) 더 나아가 민족학문, 민중학문, 비판학문의 입장에서 ‘冷戰聖域냉전성역’, 즉 한국전쟁, 주한미군, 미국의 對한반도 정책, 정통성, 연방제통일방안, 평화협정, 주체사상 등등에 관한 논의의 터부를 허물고 ‘민족의 생명권’에 입각하여 ‘통일 집짓기’를 주장한다.*(주7) 이들의 민족인식은 한반도 민족주의의 내부적 성격, 즉 남한과 북한의 체제적 문제보다는 한반도에서의 미국의 존재라는 외연적 성격에 대한 비판적, 나아가 해방적 인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결국 민주=진보의 등식으로부터 진보=통일, 그리고 통일=민족의 등식이 연쇄되는 것이다.
1998년 이후 한국의 진보-보수 경쟁은 기왕의 민주=반민주(독재)의 구도에서 통일(민족)-反통일(反민족)의 문제로 置換치환되었다.*(주8)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이 구도의 전환에 결정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통일=민족’을 주장하는 진보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확실히 구축하게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햇볕정책은 정책 쟁점과 절차의 欠缺흠결 여부에 대한 찬반을 넘어선 진보-보수 간의 이데올로기적 투쟁의 방식으로 국내정치화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2000년 남북공동선언 2항은 남북정상회담의 성격을 ‘평화회담’을 넘는 ‘통일회담’으로 규정짓게 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와 “한반도에서 전쟁은 없다”라고 발언했으며, 정부는 북측이 기왕의 연방제를 포기하고 남측의 국가연합방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自評자평하기도 했다. 이로써 남북관계는 남북 간의 긴장완화와 평화정착이라는 전통적인 관심사를 넘어서 통일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한껏 부풀리게 되었다.
정부의 대북포용정책, 진보진영의 민족우선의 통일론*(주9)은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강화되어 나갔고, 국내적 脫냉전화, 북한과의 先화해 ·협력, 민족성과 자주원칙이 일방적으로 강조되어 나갔다. 김대중 정부와 진보의 ‘통일공세’에 대한 야당과 보수로부터의 반발도 본격화되었다. 야당은 햇볕정책을 ‘일방적 퍼주기’로 규정했고, 보수 일각에서는 공동선언 2항은 대한민국의 ‘國家性국가성’을 파괴시킬 수도 있는 위험한 조항으로 치부하였다. 햇볕정책은 북한의 변화유도, 한반도 평화의 진전을 위한 정책목표에도 불구하고 우리 내부의 이데올로기적 갈등을 증폭시키게 되었다. 햇볕정책에 대한 반대가 反통일 ·反민족 ·수구냉전으로 치부되고, 진보는 親北친북 ·親친김정일 ·주사파로 매도되는 ‘남남갈등’이 심화되어 나갔다.*(주10)
햇볕정책에 의한 통일지향 ·민족우선의 진보 헤게모니 구축과 이에 따른 진보-보수 간의 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새로운 패턴의 진보연합을 창출시켰다. 김대중 정부 말기에 대북지원의 정책적 흠결이 노출되고, 9·11 테러 이후 부시 정부의 대북 강경정책과 북한 핵문제의 재발과 더불어 한국의 통일·진보세력은 ‘민족공조’와 ‘반미자주’라는 전술적이고 실천적인 차원의 쟁점을 부각시킨다. 이 쟁점 전환은 진보성향의 지식인 그룹, 전교조, 한총련, 민주노총 등의 사회단체, 그리고 각종 진보적 시민단체를 망라하는 ‘진보연합’으로 이어졌다. 이 연합은 대선 前夜전야에 돌출한 미선·효순이 사건을 계기로 ‘反美반미연합’으로 결집되고, 노무현 후보를 지원하여 당선시키는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2) 노무현식 자주 이데올로기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 즉 위로부터의 지원, 그리고 ‘反美自主반미자주’의 연합체를 구성한 진보연합이라는 아래로부터의 지지로 탄생하였다. 노무현 당선의 중요한 기여 세력인 진보연합이 2004년 탄핵정국의 벼랑에서 대규모 ‘촛불집회’의 示威力시위력으로 노무현을 다시 구해낸 점을 감안하면, 참여정부는 그 자체로서 ‘진보블록정치’라 할 만하다. 이러한 구도에서 노무현의 집권은 ‘햇볕정책’의 승계는 말할 것도 없으려니와 진보정치의 실험을 예정한 것이었다. 그러나 집권 초기 제2차 북한 핵 위기에 대한 대응, 김대중 정부의 대북 불법송금의 노출 등으로 노무현 정부는 김대중 정부 말기에 퍼주기식이라고 비판받은 무조건적 대북지원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대통령 선거운동 과정에서 제기된 ‘민족공조’ 및 ‘반미자주’의 문제와 관련하여 노무현 정부는 ‘自主論자주론’이라는 보다 일반론적 이념체계를 개발해낸다.
노무현식 자주론은 단순한 구호나 修辭수사가 아니다. 우리의 근·현대사에서의 자주의 재활성화라는 차원에서 이해되는 ‘과거사 청산’의 推動力추동력이자 미국, 일본 등 외세에 대한 자주적 정책의 모색이라는 차원이 포괄된 하나의 이데올로기적 체계이자 현실정책의 판단근거에 해당한다. 즉, 노무현식 자주론은 단순한 정책의 선택, 당위론적 수사가 아닌 근·현대사라는 시간, 對外대외라는 공간의 차원이 연쇄된 포괄적이고 체계적인 이데올로기 체계인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진보’의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먼저, 노무현 정부와 진보연합의 안으로부터의 자주를 위한 ‘과거사 청산론’을 주목해 보자.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대통령 후보 이전부터 “남·북한은 공히 분열세력이었다”라고 판단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에 대한 유보적인 가치판단을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이러한 시각은 단순히 건국의 시대사적 한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넘어 건국에서 산업화로 이어진 현대사의 주류세력의 역사성을 비판하는 정치적인 인식이다. 이러한 시각은 진보를 자처한 민중·민족주의와 수정주의의 역사인식을 맹신한 결과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분열세력의 집권으로 대한민국은 일제가 청산되지 않은 채 附逆者부역자와 그 후손, 그리고 反민중·反민족세력에 의해 주도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대한민국의 건국과 산업화는 시대사적 제약을 극복해나간 발전적 경로가 아니라 기회주의적 야심가들의 독재의 과정으로 貶毁폄훼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한민국은 기회주의자가 득세한 나라”라는 발언을 해왔다. 이는 匹夫필부의 냉소어린 체념과 自虐자학의 시정철학이 아닌 대통령으로서 대한민국의 역사와 헌법질서를 책임지는 자의 계산된 발언이었다. 이 발언은 ‘과거사 청산’이라는 명분하에 일제와 독재 시기의 주요 문제와 사건을 재평가하는 각종 조사·규명·청산위원회가 설치되면서 이들의 구체적인 정책행위와 법률행위의 시행을 지휘한 것이다. 노무현 정부는 자주의 이름으로 ‘역사의 判官판관’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이로써 우리 사회는 노무현 정부와 진보연합의 역사의식이 국가적인가, 아니면 정파적인가? 라는 문제와 함께 한시적 권력이 과연 역사를 판결할 수 있는 것인가? 라는 근본적 물음이 제기될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서 노무현식 ‘과거사 청산’의 진보정치를 둘러싸고 역사의 斷絶論단절론과 繼承論계승론 간의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는 것이다.
다음으로 노무현 정부의 대외인식과 외교정책에서의 자주론은 보다 복잡한 양태를 띠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의 미선·효순이 사건에 대한 진보세력의 촛불시위는 한국사회에서 반미운동의 정치적 전환점이었다. 1980년 광주 민주화운동 이후 간헐적으로 제기된 한국의 반미는 기왕의 일부 지식인과 운동권 인사의 지식운동의 차원을 넘어 전면적이고 대중적인 차원의 반미운동으로 확산되었다. 이로써 반미운동은 참여정부 그 자체에 내재되어 버렸다. 이라크戰전에 대한 反戰반전·平和평화운동, APEC 정상회담을 전후한 反세계화 운동, 맥아더 장군 동상 철거시도 사건, 평택 미군기지 반대운동, 작금의 한·미 FTA 반대운동 등 진보연합의 전면적이고 대중적인 반미운동의 전개는 이를 傍證방증한다.
한국사회의 전면적이고 대중적인 반미운동 기류와 관련하여 참여정부는 딜레마적 상황에 빠져 있다. 즉, 통치의 책임을 진 참여정부로서는 진보 운동권의 전면적이고 급진적인 반미운동을 방치할 수도, 그렇다고 봉쇄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정의 책임자로서 미국과의 동맹관리와 정치적 지지기반인 진보연합의 맹목적인 반미기류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이다. 9·11 사태 이후 反테러전과 대량살상무기에 대한 反확산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부시 행정부와 민족과 평화의 이름으로 전개되고 있는 극단적 반미기류 사이에서 참여정부는 ‘자주론’으로 대응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의 자주론은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주권국가의 외교원칙의 차원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이는 종속으로부터의 자주, 동맹에 대한 민족(북한)의 중시라는 전략적인 계산과 진보 사회세력의 노골적인 반미에 대한 전술적인 관리의 필요가 전제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노무현 정부의 대미정책은 ‘협력적 자주국방’ 등 자주의 관점보다 종속을 극복하는 데 더 치중됨으로써 정책적 긴장이 내재되고, 북한에 대한 우선적인 고려(배려) 때문에 정치적인 마찰이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내재적인 딜레마는 노무현 대통령의 非체계적이고 非논리적, 외교적 언사를 남발시키는 한편 한·미 간의 외교적 마찰을 야기시키기도 한다. 아울러 이는 일본에 대한 명분위주의 외교마찰,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인 親中친중 분위기를 고조하기도 한다.
결국 참여정부의 자주론은 대외정책의 전략적, 실용적 기조로 작용할 가능성보다는 햇볕정책 이후의 민족우선주의, 진보세력의 정치적 반미, 대중들의 자주·자존의 情念정념을 부추기는 이데올로기적 雨傘우산으로 작용하고 있다. 자주 이데올로기에 경도된 노무현 정부의 대외정책은 대한민국의 전략적 외교자산, 즉, 한·미동맹, 대일협력의 구도를 ‘북한 감싸기’의 환상으로 침식시키는 결과를 자초하고 있다. 이는 대내적으로 민족지상주의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전개되는 진보를 빙자한 친북연합세력의 반미 근본주의를 완화시키기는커녕 더욱더 촉발시키는 작용을 한다. 대다수의 국민은 자주에 도취된 대통령과 진보세력의 모험주의에 불안감만 더해갈 뿐이다.
3. 진보의 덫
1) 한국의 진보 : 희망인가, 덫인가?
한국의 진보는 1987년 이후의 보수적 민주화 흐름을 김대중 정부의 대북 화해·포용의 햇볕정책에 편승하여 진보=통일=민족이라는 통일담론의 공세를 통하여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진보는 노무현 정부의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권력에 유착하여 진보적 민주화, 혹은 진보정치를 추동시키고 있다. 현재, 한국의 진보-보수의 力學역학은 ‘진보’ 우위의 비대칭 구도가 구조화되어 있다. 노무현 정부와 함께 한국 정치는 단순한 절차적 민주주의를 넘어 정의와 평등의 이름으로 민중주의적 민주주의를 확대시키기 위한 진보적 개혁정치의 소용돌이에 빠져있다.
한국의 진보·개혁정치는 통일과 자주, 정의와 평등의 요란한 나팔소리에도 불구하고 성공한 것 같지는 않다. 햇볕정책에서 평화·번영정책으로 이어진 대북포용 및 통일지향정책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고 남북관계의 평화적 제도화를 이끌어내기보다는 통일-反통일, 민족-反민족의 근본주의적 분열을 심화시켰다. ‘자주’의 팡파르는 안으로 권력에 의한 역사의 덧칠과 정체성의 자기분열증을 노정시켰고, 밖으로 모험주의적 허세와 외교적 고립을 초래했다. 정의와 평등을 향한 개혁은 ‘기득권 해체’라는 구호정치의 푸닥거리로 전락하여, 그러한 단어들이 가진 엄중하고 신성한 의미마저 훼손시키려 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개혁정치는 미래를 여는 성찰과 희망이 아니라 오로지 냉전적, 보수적 과거에 대한 전면적이고 무조건적인 청산, 역사에 대한 복수, 혹은 과거와의 전쟁에 다름 아니다. 이 전쟁에서 건국-산업화-민주화의 땀과 보람은, 자유민주주의의 헌정 질서, 글로벌 시대의 도전과 국제협력 기회로 귀결되기보다 강단 사회주의자들의 궤변, 진보를 빙자한 건달정치가의 독설, 좌파 상업주의에 중독된 급조된 시민운동가들의 맹목적 정념에 의해 깡그리 매도당하고 있다. 이들은 식민지 경험, 건국독재, 개발독재, 그리고 냉전의 시대사라는 과거를 정복하기에 여념이 없다. 민주화 이후 민족담론을 선점하고 통일-反통일의 전선을 구축한 우리 시대의 진보는 21세기적 희망이 아니다. 그동안 진보가 내세운 자주 ·통일의 아름다운 빛깔, 그리고 정의와 평등의 향기의 유혹은 진보 스스로와 공동체 전체를 독선과 反지성, 분열과 파괴로 몰아가는 ‘역사의 덫’이 되어 버린 점을 유념해야 한다. 진보라는 우상으로부터의 각성과 이성의 회복이 요구된다.
2) 진보의 덫 : 독선과 反지성
이념과 정책의 경쟁에 있어서 말과 언어, 그리고 개념은 사상과 현실을 담는 그릇인 동시에 그 자체를 새로이 만들어가는 형성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말’과 ‘사실’은 연쇄와 상호작용의 긴장이 내재하고 있다. 문제는 ‘말’이 ‘사실’을 왜곡하게 될 때 우리는 이데올로기의 세계에 빠진다는 점이다. 햇볕정책 이후 한국의 진보는 ‘말’이 가지는 형식논리상의 優劣우열을 수단으로 가치와 사실의 우열을 결정하려는 오류에 빠졌다. 한국의 민주화 세력은 민주화 이후 ‘역사적 진보’로서 자처하고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1987년 이후 한국의 진보가 보수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주장한 것은 큰 무리가 아니다. 이는 민주화라는 한국 현대사의 발전적 변화를 주도한 민주화 세력에 대한 국민의 광범위한 지지, 그리고 산업화 세력의 민주화 세력에 대한 부채의식이 작용한 것이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한국의 진보가 절차적 민주주의의 복원을 주장한 흐름보다는 정부의 대북 햇볕정책에 편승하여 1980년대 민중민주주의 변혁론의 계보를 잇는 통일지향·민족우선의 흐름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진보는 唯名論유명론(nominalism)의 오류에 봉착한다. 민주화와 함께 역사적 기여와 도덕적 우위를 자신한 한국의 진보가 설정한 통일-反통일의 구도는 민주화 이후 한국의 역사적 진보를 위한 至高지고·至善지선의 과제이며, 이는 민족성의 원칙에 따라 진보의 주도로 전개되어야 한다는 명제를 절대화시킨다. 이로써 통일은 역사적 善의 편인 진보가 독점하고 주도하여야 할 ‘신성한 책무’로 규정된다. 여기에서 보수는 통일을 논할 자격이 박탈되며 정책에 참여할 권리도 배제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일개 정권적 차원의 단순한 대북정책이 아니라 통일정책의 진보적 선택이며, 민족우선주의의 정당한 확인으로 도덕화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햇볕정책에 반대하면 反통일이요, 나아가 反민족으로 낙인찍히게 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와 진보블록은 ‘자주’라는 純血主義순혈주의의 이름으로 역사의 판관을 자임하며 反외세로 포장된 반미를 일반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 속에서 ‘과거사 청산’에 대한 절차적 문제제기는 식민지배, 건국독재, 개발독재에 대한 찬성으로, 그리고 국가이익과 국제협력의 기준에서 미국과 일본과의 협력을 주장하면 외세의존 事大主義사대주의로 매도되기 십상이다. 진보정치의 개혁 드라이브는 이에 정당한 문제제기조차도 기득권자의 자기방어로 치부해버린다. 진보정치는 민주화 이후의 한국정치를 헌정 및 법치주의, 그리고 代議制대의제에 의한 타협과 통합의 민주주의적 정치과정을 위축시키고 독선에 의한 제압과 배제의 도덕정치를 일상화시켰다. 진보는 현재 도덕정치의 발효제이며 한국사회에 독선의 덫을 드리우고 있다.
진보에 의한 도덕정치의 일상화에는 정치지도자들의 빗나간 리더십과 더불어 한국의 진보 지식인그룹의 反지성적 전투주의와 권력에의 중독과 무관하지 않다. 1980년 ‘광주의 봄’을 계기로 한국의 진보 지식인은 ‘진보’와 ‘해방’의 패러다임을 구조화시켰다. 이들은 민족·민중지향적 학문의 전망을 세우려는 노력에서 사회구성체이론과 변혁이론을, 분단극복과 통일에 있어서의 진보성을 담보하기 위하여 북한의 내적 작동 원리의 기준에서 북한을 바라보려는 ‘내재적 접근법’과 함께, 남북을 통일적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체사상’을 한국사회에 직접 적용하려는 시도까지 나타나게 되었다.*주11) 북한에 대한 관심은 수정주의, 즉 커밍스 신드롬을 거치게 했고, 이로써 반미주의는 지식인 사회에서 하나의 시대정신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주12) 자주·반미의 지향은 19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 역사학계를 ‘민족지상주의’로 변질시켜 학문 연구사를 또 다른 의미에서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타락할 위험성을 내포시켰다.
한국의 진보 지식은, ‘광주의 봄’을 계기로 소수가 응집되고 민주화와 더불어 문화적 진지를 구축했으며, 햇볕정책과 함께 권력과 밀월하며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를 장악한 후, 노무현 정부에 들어서는 ‘자주’의 이름으로 권력과 유착하여 진보정치의 주도자가 되었다. 이들은 노무현 정부의 각종 위원회를 장악했고 시민단체의 외양만 유지한 채 정치게임에 빠진 수많은 진보조직을 지휘하고 있다. 한국의 진보 지식인들은 전상인의 지적대로 지식에서보다 정치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여전히 마르크스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재래식 무기’에 의존하고, 학문의 보편성을 훼손하는 민족지상주의라는 화석화된 이데올로기를 붙들고 지성을 투쟁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주13) 이들은 ‘자주’와 ‘주체’의 야합을 민족의 이름으로 용인하고, 수령독재에 의한 동포의 인권유린보다는 네오콘의 대북압박을 고발하는 데 열중하며, 김정일 정권의 보호가 분단 고착화가 아니라 통일의 첩경이라고 强辯강변하고 있다. 이쯤 되면 識字憂患식자우환이요, 자기기만이다. 진보를 자처하며 지식인이 蒙昧몽매한 궤변으로 반지성의 덫을 놓고 있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이성의 계몽이 아닌 우상 만들기에 탐닉한 자칭 진보 지식인들의 공세로 지성의 몰락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4. 진보-보수의 거듭남을 기대하며
도덕정치의 권력편의주의와 민족 패러다임의 우상에 탐닉한 진보지식의 유착은 민주화 이후의 대한민국을 통합과 발전으로 유도하기는커녕 분열과 내분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는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쟁점 구조를 통일-反통일의 구도로 전이시킨 ‘진보의 기획’, 그 자체에 내포된 것인지도 모른다. 분단이라는 현대사의 원죄, 냉전적 조건하에서의 압축발전에 내재된 구조적 모순에 대한 진보적 문제의식은 全전 지구적 차원의 탈냉전 흐름에 편승하기 위한 국내적 탈냉전화와 통일에의 지향으로 이어질 법한 것이었다.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은 노태우, 김영삼 정부의 보수적 민주화, 현존 사회주의의 붕괴에 직면하여 일시적으로 위축되었던 진보적 기획의 재활성화 계기를 제공했고, 노무현을 집권시켜 한국에서 진보정치를 실험케 했다. 그러나 이 실험은 진보의 非성찰적, 反지성적 오만, 권력에의 편승과 더불어 우리 사회를 실질적으로 진보시키기보다 혼란과 분열을 가중시키고 있다.
‘통일’의 쟁점 先占선점으로 지식과 권력의 헤게모니를 장악한 한국의 진보에게 한국의 보수와 많은 국민은 진보가 희망이었는가, 아니면 시대의 쟁점을 오도하고 공동체의 발전을 방해한 역사의 덫이었는가를 물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진보적 기획으로서의 통일지향, 민족우선주의는 햇볕정책이라는 寓話論的우화론적 낙관주의에 편승하여 시대착오적인 북한 정권의 수명연장에 後見役후견역을 자처하고, 그리하여 통일을 주장하며 수령독재에 의한 분단고착을 변호하는 자가당착에 빠지지 않았나를 자문해야 한다. 햇볕정책 이후 진보의 ‘통일·민족·자주’의 이데올로기는 보수와의 정치적 싸움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도덕적 오만의 분출, 이에 따른 이분법적 배제와 友우·敵적 구분의 제압의 정치에 탐닉하여 진보 자체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자기파괴를 재촉한지도 모른다.
노무현 정부가 시도한 한국의 진보정치는 終幕종막을 향해 치닫고 있다. 진보가 스스로 통일·민족·자주·진보의 실패를 자인하며 거듭남의 계기로 삼을지는 의문이다. 한국의 보수 야당은 失權실권의 궁지에서도 집권 진보의 정책실패와 국민적 신뢰 추락의 반사이익을 챙기며 배부른 돼지마냥 진보의 광란을 방조하고 있다. 두 번의 집권실패가 자신들의 불임성이 아니라 사악한 자들의 공작에 의한 것으로 치부하며, 작은 승리에 도취하여 지역주의와 유사 매카시즘의 묵은 때를 벗겨내지 못하고 있다. 보수가 혁신되지 않으면 진보의 선동은 계속될 것이고 대한민국은 분열과 자기 파멸의 악순환에서 헤어나기 힘들 것이다.
한국은 통일-反통일의 오도된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 다툼으로 건국-산업화-민주화로 이어지는 한국 현대사의 창조적 계승과 국가 선진화라는 미래를 향한 선택을 주저하고 있다. 민주화 이후 한국사회는 민주적 국력결집의 방식으로 ‘선진화’라는 한국형 제3의 압축혁명을 준비했어야 했다. 통일은 선진화의 道程도정에 있는 것이지 묻지마式식 통일이 선진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진보는 남쪽 ‘자주’와 북쪽 ‘주체’의 수렴을 통일로 착각하는 愚우를 범했다. 보수는 산업화의 연장선에서 선진화가 달성될 것이라는 신기루에 취해 있었다. 兩者양자는 이미 낡았다.
2007년 대선은 반공주의와 국가주의적 과거를 자산으로 삼는 낡은 보수, 통일·민족·자주의 이데올로기적 헤게모니에 갇혀 과거와의 전쟁에 재미를 본 낡은 진보의 싸움을 반복해서는 곤란하다. 1998년 이후 한국에서의 진보정치 경험과 그 시행착오는 진보-보수의 거듭남과 국가 선진화에의 정책과 전략이 경쟁하는 ‘전진을 위한 축제’가 되어야 한다. 이 축제를 위해 진보와 보수는 산업화-민주화의 달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취약한 한국사회에 자유주의를 정착시키고, 배제와 제압의 정치문화에 가위눌린 민주적 공론장을 형성시키며, 근본주의적 사상투쟁이 아닌 실용주의적 정책경쟁이라는 게임의 룰을 만드는 데 공동의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진보와 보수는 19세기, 혹은 20세기적 기준이 아니라 21세기적 현실을 염두에 두고 각자의 ‘진보성’과 ‘보수성’을 啓發계발하고 국민의 공정한 심판에 임해야 할 것이다. 자유주의와 실용주의는 진보, 보수의 거듭남을 위한 공통의 話頭화두이다. <시대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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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1) 홍윤기, “민주적 공론장에서의 담론적 실천으로서 ‘진보-보수-관계’의 작동과 그 한국적 상황”, 『진보와 보수』 (서울: 이학사, 2002), p. 21.
2) “괴델은 모든 명제를 참과 거짓으로 확연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믿은 모더니티의 꿈이 하나의 허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최종욱, “괴델의 시대-과연 한국에 보수주의가 있는가?”, 『보수주의자들』 (서울: 삼인, 1997), p. 42.
3) 최정운, 『오월의 사회과학』 (서울: 풀빛, 1999).
4) 윤건차 지음, 장화경 옮김,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 (서울: 당대, 2001), p. 255.
5) 백낙청, 『흔들리는 분단체제』 (서울: 창작과 비평사, 1998).
6) 이삼성, 『미래의 역사에서 미국은 희망인가』 (서울: 당대, 1995).
7) 강정구, 『민족의 생명권과 통일』 (서울: 당대, 2002).
8) 박호성, “보수와 진보, 그리고 한국적 보수주의”, 『언론과 비평』, 1989년 7월호, p. 31.
9) 조성환, “통일론의 비판적 지식사회론: 민족 패러다임의 비판적 인식”, 『동양정치사상사』, 제3권 1호, 2004, pp. 247-67.
10) 남궁영, “대북정책의 국내정치적 갈등”, 『국가전략』, 제7권 4호.
11) 김창호, “1980년대 이후 진보적 철학연구사”, 한국산업사회연구회 편, 『현대한국인문사회과학연구사』 (서울: 한울, 1994), p. 146.
12) 전상인, 『고개 숙인 수정주의』 (서울: 전통과 현대, 2001).
13) 전상인, 『우리 시대의 지식인을 말한다』(서울: 에코리브르, 2006), p. 108.
(시대정신, 2006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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