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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李箱, 최정희에게 보낸 러브레터 첫 발견

이강기 2015. 10. 15. 21:55

스물다섯 李箱, 최정희에게 보낸 러브레터 첫 발견

 

기사입력 2014-07-23 03:00:00 기사수정 2014-07-23 14:42:43, 동아일보

 

 
 
“볼따구니까지… 진정 네가 좋아 까닭없이 눈물 나려고해 죽을뻔”

     

    이상의 러브레터의 마지막 세 번째 장. 편지 끝 부분에 ‘李箱’(이상)이라는 한자 서명이 보인다.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 제공
    이상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고 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중략) ‘정희’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고 한다.”(이상의 러브레터 중 일부)

    눈을 다시 떴을 때에 거기 ‘정희’는 없다. 물론 여덟시가 지난 뒤였다. 정희는 그리 갔다. 이리하여 나의 종생(終生)은 끝났으되 나의 종생기(終生記)는 끝나지 않는다.(이상의 소설 ‘종생기’)

    1930년대 한국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시인이자 소설가 이상의 러브레터가 처음 발견됐다. 이를 계기로 그의 소설 ‘종생기’에 등장하는 ‘정희’가 연서(戀書)의 주인공인 최정희 작가(1912∼1990)를 모델로 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최정희
    이상의 친필 편지는 동료 작가 김기림과 안회남, 동생들에게 쓴 편지 10편만 알려져 있을 뿐 러브레터가 공개된 건 처음이다. 이상 연구의 권위자로 편지를 직접 분석한 권영민 단국대 석좌교수(문학평론가)는 △편지의 글씨체가 영인문학관에 보관된 이상의 친필 유고와 일치하고 △편지 끝 부분에 ‘李箱(이상)’이라는 한자로 사인이 돼 있는 데다 △최정희가 생전에 “이상에게서 편지를 여러 통 받았지만 모두 찢어버렸다”고 말한 점을 들어 이상의 편지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권 교수는 편지 본문에 시골생활 등이 언급된 걸 감안할 때 이상이 25세이던 1935년 12월에 편지를 쓴 것으로 추정했다. 당시 최정희는 23세의 젊은 이혼녀로 잡지사 삼천리에서 만난 시인 파인(巴人) 김동환(1901∼?)과 사귀고 있었다. 그는 숙명여자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연극무대에 섰고, 이후 귀국해 조선일보와 삼천리 기자로 활동했다. 이미 시인 백석에게도 러브레터를 받는 등 젊은 시절 빼어난 외모와 지성으로 청년 문인들의 가슴을 설레게 했다.

    최정희가 이상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그의 사랑은 비극으로 치달았다. 이상은 이 편지를 쓰고 2년 뒤 스물일곱의 젊은 나이에 일본에서 쓸쓸히 숨을 거둔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러브레터는 열정적이면서도 애잔하다. 최정희가 끝내 자신의 구애를 외면하자 이상은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고까지 합니다”라고 썼다. 이어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하게 있을 줄을 안다”며 “이제 내 마음도 무한히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라고 실연의 아픔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상은 편지에서 최정희에 대한 뜨거운 마음을 끝내 감추지 못했다. 차마 전달하지 못한 이전의 편지글을 소개한다면서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는 솔직한 표현도 서슴지 않았다.

    편지를 건넬 당시 이상은 연작시 ‘오감도’를 발표한 직후로 문단에서 한창 이름을 알릴 때였다. 그러나 직접 운영한 제비다방이 경영난 끝에 문을 닫고, 연인 금홍과도 이별하는 등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다.

    그의 편지에는 오랜 정신적 좌절에서 벗어나 ‘당신(최정희)을 위해’ 다시 글을 쓰겠다는 다짐이 들어 있다. 권 교수는 “이상이 사실상 폐인 생활을 접고 잠시나마 글쓰기에 다시 나설 수 있었던 건 최정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이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권 교수는 이상의 단편소설 ‘종생기’가 최정희를 모티브로 한 작품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소설 속 여주인공인 정희(貞姬)가 최정희와 이름이 같고, 가족을 위해 일하는 직장여성으로 그려졌기 때문이다. 재밌는 건 소설에선 현실과 정반대로 정희가 주인공 ‘이상 선생’을 사랑하고 러브레터를 보낸 것으로 묘사돼 있다는 점이다. 소설 속 정희는 다른 남성과 동시에 사귀는 등 이중적인 인물로 그려졌다.

     
    권 교수는 “이번 연서의 발견으로 ‘종생기’를 새롭게 해석할 수 있게 돼 문학사적으로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권 교수는 24일 이상 관련 문학행사가 열리는 서울 종로구 통인동 ‘이상의 집’에서 ‘오감도 80주년 기념 특별강연’을 갖고 이상의 러브레터를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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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희야, 네 입과 목덜미가…” 李箱의 러브레터 전문

    기사입력 2014-07-23 03:00:00 기사수정 2014-07-23 08:06:09

     
    <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 전문-원문>

    지금 편지를 받엇스나 엇전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안는 것이 슬품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하기 발서 두 번째입니다. 그 한번이 내 시골 잇든 때입니다.

    이른 말 허면 우슬지 모루나 그간 당신은 내게 크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닷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구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엿는지는 모루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머러지고 잇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이 알엇섯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거름이 말할 수 없이 헛전하고 외로¤습니다. 그야말노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거러면서 나는 별 리유도 까닭도 없이 작구 눈물이 쏘다지려구 해서 죽을번 햇습니다..
    집에 오는 길노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 보면 우슬 편지입니다.

    "정히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됫섯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섯다. 내 이제 너와 더불러 즐거¤던 순간을 무듬 속에 가도 니즐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 처름 어리석진 않엇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안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기 거울 갓기를 빌지도 모룬다.
    정히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품을, 너를 니즐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구 한다. 하지만 정히야, 이건 언제라도 조타. 네가 백발일 때도 조코 래일이래도 조타. 만일 네 '마음'이 ¤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찻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듸 내게로 와다고-. 나는 진정 네가 조타. 웬일인지 모루겟다. 네 적은 입이 조코 목들미가 조코 볼다구니도 조타.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히야 너를 위해 네가 닷시 오기 위해 저 夜空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이 사러가련다......."

    하는 어리석은 수작이엿스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엇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잇슬 줄을 알엇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름 약어보려구 햇슬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엇든지 내가 글을 쓰겟다면 무척 좋아하든 당신이- 우리 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름 속삭이든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두록 언잖게 하는 것을 엇지 할 수가 없엇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스면 좋겟다구 해서 쓰기로 헌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맛나고 싶다고 햇스니 맛나드리겟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 허트저 당신 잇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날 오후 다섯시에 ふるさと라는 집에서 맛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李箱
    * ふるさと: 고향(故鄕)이라는 뜻의 일본어. 여기서는 음식점의 옥호(屋號)임

    <이상이 최정희에게 보낸 편지 전문-현대문>

    지금 편지를 받았으나 어쩐지 당신이 내게 준 글이라고는 잘 믿어지지 않는 것이 슬픕니다. 당신이 내게 이러한 것을 경험케 하기 벌써 두 번째입니다. 그 한 번이 내 시골 있던 때입니다.

    이런 말 하면 웃을지 모르나 그간 당신은 내게 커다란 고독과 참을 수 없는 쓸쓸함을 준 사람입니다. 나는 다시금 잘 알 수가 없어지고 이젠 당신이 이상하게 미워지려구까지 합니다.

    혹 나는 당신 앞에 지나친 신경질이었는지는 모르나 아무튼 점점 당신이 멀어지고 있단 것을 어느날 나는 확실히 알았었고..... 그래서 나는 돌아오는 걸음이 말할 수 없이 허전하고 외로웠습니다. 그야말로 모연한 시욋길을 혼자 걸으면서 나는 별 이유도 까닭도 없이 자꾸 눈물이 쏟아지려구 해서 죽을 뻔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로 나는 당신에게 긴 편지를 썼습니다. 물론 어린애 같은, 당신 보면 웃을 편지입니다.

    "정히야, 나는 네 앞에서 결코 현명한 벗은 못됐었다. 그러나 우리는 즐거웠었다. 내 이제 너와 더불러 즐거웠던 순간을 무덤 속에 가도 잊을 순 없다. 하지만 너는 나처럼 어리석진 않았다. 물론 이러한 너를 나는 나무라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제 네가 따르려는 것 앞에서 네가 복되고 밝기 거울 같기를 빌지도 모른다.

    정히야, 나는 이제 너를 떠나는 슬픔을, 너를 잊을 수 없어 얼마든지 참으려구 한다. 하지만 정히야, 이건 언제라도 좋다. 네가 백발일 때도 좋고 내일이래도 좋다. 만일 네 '마음'이¤ 흐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아니라 네 별보다도 더 또렷하고 하늘보다도 더 높은 네 아름다운 마음이 행여 날 찾거든 혹시 그러한 날이 오거든 너는 부디 내게로 와 다고-. 나는 진정 네가 좋다. 웬일인지 모르겠다. 네 작은 입이 좋고 목덜미가 좋고 볼따구니도 좋다. 나는 이후 남은 세월을 정히야 너를 위해 네가 다시 오기 위해 저 夜空의 별을 바라보듯 잠잠히 살아가련다......."

    하는 어리석은 수작이었으나 나는 이것을 당신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당신 앞엔 나보다도 기가 차게 현명한 벗이 허다히 있을 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지 나도 당신처럼 약아보려구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고향은 역시 어리석었던지 내가 글을 쓰겠다면 무척 좋아하던 당신이- 우리 글을 쓰고 서로 즐기고 언제까지나 떠나지 말자고 어린애처럼 속삭이던 기억이 내 마음을 오래도록 언짢게 하는 것을 어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정말 나는 당신을 위해- 아니 당신이 글을 썼으면 좋겠다구 해서 쓰기로 헌 셈이니까요-.

     
    당신이 날 만나고 싶다고 했으니 만나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이제 내 맘도 무한 흩어져 당신 있는 곳엔 잘 가지지가 않습니다.

    금년 마지막 날 오후 다섯 시에 후루사토[故鄕]라는 집에서 맛나기로 합시다.
    회답주시기 바랍니다.

    李箱

    김상운 기자su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