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 韓.中關係

萬里長城 늘이는 중국의 역사 왜곡

이강기 2015. 10. 18. 08:13

원문출처 : [발언대] 萬里長城 늘이는 중국의 역사 왜곡

원문링크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5/02/09/2015020904247.html

조선일보

입력 : 2015.02.10 03:00   

    

 
	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 사진

황원갑 소설가·역사연구가

 

중국이 끊임없이 만리장성을 늘이며 역사 왜곡을 자행하고 있다. 2009년부터는 만리장성 동단(東端)이 압록강변이란 터무니없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127일 중국 랴오닝(遼寧)성 지역 일간지 화상신보(華商晨報)는 랴오닝성 문물고고연구소가 지난해 벌인 중대 사업으로 압록강 유역 명나라 요새 유적 발굴을 꼽았다. 이 연구소는 지난해 랴오닝성 단둥(丹東)시 러우팡(樓房)진 둥청(東城)촌 동쪽의 압록강 지류 하천변에 있는 요새 유적 18800를 발굴한 뒤 1565년 명나라가 세운 만리장성 동단이라고 주장했다. 그동안 만리장성 동단은 허베이성(河北省) 친황다오시(秦皇島市)의 산해관(山海關), 서단은 간쑤성(甘肅省) 가욕관(嘉峪關)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런 정설을 뒤집고 만리장성 동단이 산해관이 아니라 압록강 하구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중국이 이처럼 만리장성 동쪽 끝을 고무줄 잡아당기듯 늘이는 저의는 중국 영토 만주에 세워졌던 나라는 모두 중국 변방 소수민족의 지방 정권이란 억지 주장을 펴기 위함이다. 중국이 집요하게 황당무계한 역사 왜곡과 날조를 자행하는 근본 원인은 중국사의 뿌리가 한국사보다도 짧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중국사의 시원(始原)은 황하문명설이 주류였다. 그러던 중 1980년대부터 요하·발해만 유역에서 기원전 7000~1500년의 신석기·청동기 유적이 대거 발굴되는 과정에서 빗살무늬토기, 비파형 청동검 등 고조선 문명의 대표적 특징인 유물이 대거 출토되면서 황하문명설이 뿌리째 흔들렸다. 특히 중국 측이 위기를 느낀 것은 기원전 1700~1100년대의 은허(殷墟) 유적보다 훨씬 오래전의 갑골문이 바로 이 지역에서 출토된 사실이다. 이는 고조선의 발해만·요하문명이 중국의 황하문명보다 앞섰다는 움직일 수 없는 방증이다.

 

그런데도 중국은 자기 땅에 있던 나라의 역사가 모두 중국사라고 강변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중국사의 뿌리는 고조선사라고 우리가 당당히 주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고조선의 발해·요하문명이야말로 황하문명보다 천 년이나 앞선 고대 문명이 아닌가. 중국의 역사 왜곡·날조의 밑바닥에는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고, 주변국은 모두 오랑캐라는 중화사상과 역사 패권주의가 도사리고 있다. 이런 중국에 역사 전쟁에서 밀리지 않으려면 이제라도 역사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