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본을 알고 있으면 재미있는 게 패러디, 원본을 알아 줬으면 하는 것이 오마주, 원본을 감추고 싶다면 표절’.
소설가 신경숙(52)씨의 표절 논란이 뜨거운 가운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한 네티즌의 글이 공감을 얻고 있다. 표절 의혹이 일고 있는 신씨의 다른 작품(그래픽 참조)도 인터넷과 SNS를 통해 퍼지면서 표절 논란은 대한민국 문화계를 달구고 있다.
현택수 “책임지는 모습 나와야”
문학작품 표절에 대한 정확한 기준은 없다. 사전적 기준은 인용이나 출처 표시 없이 남의 글을 한 줄 이상, 6개 단어 이상 쓰는 것이다. 신씨를 사기와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한 현택수(57) 한국사회문제연구원장은 “단어가 똑같은 건 반박할 수 없는 물증”이라며 “어떤 작품의 어떤 부분이든 단 한 줄이라도 표절은 표절”이라고 강조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를 지냈고 지난해 『표절은 없다:논문조작 가이드북』을 출간한 현 원장은 “학계나 문단이나 표절하는 관행도, 눈감아 주는 ‘침묵의 카르텔’도 똑같다. 다른 이슈가 생기면 흐지부지 시켜 묻히는 양상도 판박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이번 일이 문단과 학계에서 표절 근절의 계기가 돼야 한다”며 “제대로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응준 “신경숙 비판 글 실을 곳 없다”
신씨의 표절 논란을 제기한 소설가 이응준(45)씨는 전화 인터뷰에 앞서 “개인 신경숙씨에 대해서는 아무 불만도, 관심도 없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16일 글은 ‘고발’이 아닌 ‘기록’이라고 규정했다. 이미 10년 전부터 자신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 역시 알고 있던 내용이라고 했다. 심지어 한 번은 신씨에게 직접 왜 표절을 하느냐고 물어본 적도 있었지만 주위에서 핀잔만 들었다고 고백했다.
그 ‘기록’을 온라인매체에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왜 문예지를 택하지 않았느냐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철딱서니 없는 얘기다. 나도 그런 곳에 하고 싶었다. 문학의 일이니까 문학의 일로 끝내 보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신경숙을 비판하는 글을 실어 줄 문예지는 없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 문학이 점점 더 왜소해지는 상황에서 그냥 이대로 갈 것인가, 이대로가 좋다는 것인가, 변화하길 원하는가, 무엇을 바꿀 것인가에 대해 오래 고민했고 더 늙기 전에 10년 전부터 고민했던 인생의 숙제를 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실을 매체가 없고 지금밖에 할 때가 없었다.”
문인단체는 입장 표명을 자제하거나 옹호하는 태도를 보였다. 한국소설가협회 백시종(71) 이사장은 “자기가 좋아하는 시적 표현이나 감성적 문구를 지문에 넣는 것은 작가들이 할 수 있는 문제”라며 “많으면 1000장이 넘는 소설에서 어느 문구 한 대여섯 줄을 문제 삼는 것은 트집 잡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모처럼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성공할 수 있는 작가인데 사소한 거 가지고 우리끼리 싸우면 오히려 일본 쪽에서 좋아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백시종 “좋아하는 시적 표현은 넣을 수도”
한국문인협회 문효치(72) 이사장도 개인 의견임을 전제로 “언론 보도로 봐서 표절로 몰아가기엔 좀 지나치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쓰는 언어를 한 사람이 독점해서 쓰는 건 아니다. 단편이 원고지 100장 정도인데 문제되는 건 2구절이더라. 이것으로 판단하기엔 모호하다”는 것이다.
한국작가회의 이시영(66) 이사장은 “대답하기 곤란하다”며 즉답을 피했지만 23일 ‘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화권력의 현재’를 주제로 긴급토론회를 마련하고 이에 대한 추가 논의를 펼쳐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한편 이씨는 지난 16일 허핑턴포스트에 신씨의 단편 ‘전설’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70)의 작품 『우국』을 표절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신씨는 17일 출판사 창비에 “읽어 본 적이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은 알지 못한다.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는 e메일을 보냈고 창비도 이날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비난여론이 비등해지자 창비는 18일 “이 사태를 뼈아프게 돌아보면서 표절 문제를 제기한 분들의 충정이 헛되지 않도록, 이 문제에 대한 논의가 자유롭고 생산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토론의 장을 마련하고 언제나 공론에 귀 기울이겠다”고 입장을 바꿨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단독] 신경숙, 소설 제목도 출처 안밝히고 도용 의혹
연합뉴스 기사전송 2015-06-22 05:32 최종수정 2015-06-22 08:40
![]() 나주 출신 시인 윤희상 작품 두 편과 제목 동일 윤희상 "출처 밝히지 않아 생기는 아픔 많아" (서울=연합뉴스) 김중배 고은지 한혜원 기자 = 소설 속 구절들의 표절 논란에 휩싸인 소설가 신경숙의 단편소설 두 편의 제목이 한 시인의 작품 제목과 똑같은 것으로 드러나 이를 둘러싼 표절 의혹이 더 확산될 전망이다. 22일 연합뉴스 취재 결과 신 작가가 지난 1990년 '한국문학' 3-4월 합본호에 발표한 '무거운 새의 발자국'과 1992년 '문예중앙' 가을호에 발표한 단편 '멀리, 끝없는 길 위에'는 전남 나주 출신인 윤희상(54) 시인이 각각 신 작가 발표보다 앞서 발표한 시 제목과 완전히 일치했다. 윤 시인은 1987년 청하가 발행한 무크지 '현실시각 2집'에 '멀리, 끝없는 길 위에' 시를 발표했으며, 1989년 민음사가 발행한 계간지 '세계의문학' 봄호에 '무거운 새의 발자국' 시를 발표했다. 이 시들은 모두 문학동네가 2000년 발행한 윤 시인의 시집 '고인돌과 함께 놀았다'에도 수록됐다. 앞서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이 신 작가의 1996년작 '전설'의 표절 의혹을 제기한 뒤 문학계에서는 신 작가를 둘러싸고 그간 다수의 표절 의혹이 제기돼왔음이 드러나면서 작가의 문학적 독창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문단에선 1989년 '세계의 문학'을 통해 등단한 것으로 인정받고 있는 윤 시인은 2007년 발표한 '소를 웃긴 꽃'이 두산동아의 2013년판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실리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아왔다. 신 작가는 지난 16일 소설가 이응준이 자신의 1996년작 '전설'의 표절 의혹을 공식 제기한 뒤 하루만인 17일 '전설'이 포함된 소설집 출간사인 '창작과 비평'(창비)을 통해 표절 의혹을 공식 부인한 채 "대응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짧은 입장만을 밝혔다. 창비에 따르면 신 작가는 소설 집필을 이유로 서울 자택을 떠나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다. 윤 시인은 연합뉴스의 인터뷰 요청에 응하지 않았으나 이메일 답변을 통해 "작가가 출처를 밝히지 않아 생기는 아픔이 생각보다 많다"며 "앞으로는 문학적 사실이 왜곡되는 일이 없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윤희상 시인의 '멀리, 끝없는 길 위에' 전문이다. ≪멀리, 끝없는 길 위에≫ 멀리, 끝없는 길 위에 발이 잠긴다 이어서 종아리가 잠긴다 연이어 무릎과 허벅지가 잠긴다 새가 울면서부터 여자가 잠긴다 남자가 잠긴다 따라서 허리가 잠긴다 얼마쯤 후에 가슴과 목이 잠긴다 웃다가 웃다가 얼굴이 잠기고 또 얼마쯤 후에 머리가 잠긴다 또다시 얼마쯤 후에 멀리, 끝없는 길 위에 가장 권위적인 모자가 하나 유품인 듯,잠기지 않고 놓여 있다 jbkim@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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