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治, 外交

서울시립미술관 기획전에 걸린 ‘리퍼트 美대사 테러’ 옹호 그림

이강기 2015. 10. 22. 21:41

[단독] 서울시립미술관 기획전에 걸린 ‘리퍼트 美대사 테러’ 옹호 그림

 

손택균기자

 

입력 2015-09-08 03:00:00 수정 2015-09-08 21:45:16

 

동아일보

 

 

남서울관 아트페어 전시 파문

홍성담 작가의 아크릴화 ‘김기종의 칼질’.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미국에 전시작전권을 바치고 서울 한복판에 외국 군대의 병영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일제강점기 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그(김기종)는 칼질로써 자신의 절망감을 표현했다.” 

시민 세금으로 운영하는 서울시립미술관이 3월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를 흉기로 공격했던 김기종 씨를 옹호하는 투의 글과 함께 당시 상황을 묘사한 그림을 전시작품으로 걸었다. 

서울 관악구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관 1층 전시실에 걸린 아크릴화 ‘김기종의 칼질’. 조찬행사에서 칼을 들고 달려든 김 씨와 넥타이를 붙들린 채 넘어진 리퍼트 대사의 모습을 그렸다. 작가 홍성담 씨(60)는 지난해 광주비엔날레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붉은 닭으로 묘사한 그림 ‘세월 오월’로 논란을 일으켜 대표이사 사임 등 파장을 불렀던 인물이다.

캔버스 중앙의 테이블 위에는 이 사건에 대한 홍 씨의 생각을 빽빽하게 글로 썼다. “리퍼트는 붉은 피를 질질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 가고 김기종은 ‘한미연합 전쟁훈련을 중단하라’고 외치며 경찰서로 끌려갔다”고 시작한 글은 “우리 민족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 상황의 본질적 원인은 태평양전쟁 승자인 미국이 일본의 전쟁범죄를 대강 덮어 놓은 것”이라며 “이 절망감에 대해 나는 입을 다물었고 김기종은 칼로써 표현했다”고 이어진다. 

김 씨의 행동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빗댄 듯한 문장도 있다. “…조선 침략 괴수인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인 안중근 의사는 우리 민족에 대한 절망감을 표현했다”며 “당시 우리 민족 대부분은 (안중근을) 형님 나라인 일본의 훌륭한 정치인을 죽인 깡패 도적쯤으로 폄하했을 것”이라고 썼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창고 깊숙이 숨겨 놓은 여러 종류의 칼 여덟 자루를 꺼내 날을 쓸어보고, 매그넘357 모의권총을 찾아 누군가를 가늠쇠 위에 올려본다. 이걸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을까? 내가 겁쟁이라서 그렇지 않을까?”라고 맺었다. 

 
이에 대해 “예술과 표현의 자유를 특권으로 착각한 작가의 무책임함이 안타깝다”는 비판이 나왔다. 미술평론가 정준모 씨는 “예술작품을 정치발언 도구로 삼는 건 동료 예술가의 표현 자유까지 위태롭게 만드는 행위”라고 했다. 

‘김기종의 칼질’은 서울시립미술관이 ‘공허한 제국’이라는 주제로 13일까지 여는 예술가길드 아트페어 참가작이다. 김홍희 관장은 “이번 아트페어는 예술가 지원 방안을 모색하라는 박원순 시장의 지시에 따라 도전적 창작 활동, 작가들의 직거래 판로 개척을 돕고자 마련한 행사다. 홍 씨 그림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홍경한 전시감독의 작가 선정 권한을 침해할 수 없어 냉가슴만 앓았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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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홍성담 ‘김기종의 칼질’ 그림속 내용

동아일보

입력 2015-09-08 17:46:00 수정 2015-09-08 21:54:11

우리마당 대표 김기종이는 2015년 3월 모일 모시에 민화협 주최 조찬강연회에서 주한미국대사 리퍼트에게 칼질을 했다. 얼굴과 팔에 칼질을 당한 리퍼트는 붉은 피를 질질 흘리며 병원으로 실려가고 김기종은 <한미연합 전쟁훈련을 중단하라>고 고래고래 외치면서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는 일년 전에도 주일대사에게 시멘트조각 두 개를 던졌다. 그가 던졌던 시멘트 쪼가리 두 개는 독도를 의미한다고 했다. 독도문제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일종의 퍼포먼스인 셈이다. 

독도문제든, 위안부문제든, 남북문제든……요것들의 문제를 한 발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우리민족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적인 상황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문제의 본질 속에는 태평양전쟁 종전의 결과가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들에 있다. 당시 전쟁의 승자인 미국이 자신들의 동아시아 군사적 전략을 위해서 일본의 전쟁범죄를 대강 덮어놓은 것에서 모든 문제가 발생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의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는 친일파의 문제도 결국 미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그 맥을 같이 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나는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서 이미 절망한지 오래되었다. 그러나 이 절망감에 대해서 나는 입을 다물었고 김기종은 비록 과도이긴 하지만 칼로써 표현한 것이다.

김기종은 지금 종북으로 몰리는 대신에, 리퍼트가 입원중인 세브란스 병원 앞에서는 한국국민들에 의해서 그의 만수무강을 비는 제단이 만들어 졌고 발레와 노래와 부채춤으로 그가 쾌유하기를 기원하는 향연이 벌어졌다. 또한 리퍼트 대사의 건강회복을 위한 큰절하기 이벤트가 줄을 이었다. 누군가는 So Sorry를 외치며 무기한 석고대죄를 하고 있다. 어떤 시민은 그의 빠른 회복을 위해서 미역국과 개고기를 선물로 바쳤다. 조선침략의 괴수인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인 안중근 의사도 역시 우리민족에 대한 절망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토는 저격범 안중근에 관한 부하의 보고를 받고 숨을 거두기 직전 이렇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고 한다. “철없는 놈!” 당시에 안중근을 독립투사로 불렀던 사람이 우리 민족 중에서 몇이나 되었을까. 대부분 사람들은 조선에게 형님의 나라인 일본의 훌륭한 정치인을 죽인 깡패도적쯤으로 폄하했을 것이다. 또 어떤 이들은 안중근의 저격사건이 조선을 더욱 고립시키고 일본제국주의의 침탈을 가속화 시켰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천황 히로히토, 쇼와 부자를 폭탄으로 저격하려고 했으나 실패한 이봉창의사도 대부분의 한민족들에게 욕을 얻어먹었을 것이다. 당시 한민족 대부분은 이봉창의 공격에도 불구하고 무사한 천황 히로히토를 위해서 광화문에 모여 땅바닥에 엎드려 덴노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며 천황의 만수무강을 비는 행사를 수일간 열었다고 했다. 상하이 홍구 공원에서 도시락 폭탄을 던져 일본군 장교들을 폭사시켰던 윤봉길의사도 당시 한민족 대부분은 그를 불령선인으로 몰아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해댔을 것이다. 가령 이런 욕을 했을 것이다. “저런 놈들 때문에 조선인이 엽전이라고 욕 얻어먹는다. 우리 조선을 위해 머나먼 이국땅에서 싸우고 있는 일본장교들을 죽이다니… 철딱서니 없는 나쁜 새끼!” 독립투사 수원거부 이회영은 모든 재산을 팔아 독립운동에 사용했다. 1931년에 흑색공포단을 조직하여 일본과 일본관련 시설의 파괴, 암살을 지휘하였으나 1932년 11월 상하이항구에서 한인교포들의 밀고로 체포되어 옥사하였다. 당대의 대부분 사람들은 그를 바보라고 흉을 보았을 것이다. 이런저런 맥락을 살펴보면 당시 한민족 대부분은 일제 식민지 36년 동안 자기네들 나라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인식을 하지 못했던 것 같다. 일본천황을 위해서 전쟁터에 나가라며 이 땅의 젊은이들을 독려했던 이광수, 황국신민으로써 천황의 은혜를 갚기 위해 정신대 모집을 강요했던 모윤숙 등등의 목소리는 당시에 많은 한민족에게 박수갈채를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1945년 8월 15일 일본천황 히로히토의 항복 선언 직후에 많은 한민족들이 조선총독부 앞에 몰려가서 머리를 풀고 땅에 엎드려서 일본의 패전에 대해서 서럽게 울었던 반면에 일본의 패전과 한반도의 해방을 기뻐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눈에 띠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당일 오후에 겨우 한 무리의 사람들이 광화문에 모여서 어찌할 줄 모르고 서로 눈치를 보고 있을 때 일본순사와 한국순사들이 와서 해산을 명령하자 단 한마디의 군소리도 없이 뿔뿔이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미국에게 전시작전권을 바치고 서울 한복판에 외국군대의 병영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일제강점기 때나 지금이지 달라진 것이 별로 없어 보인다. 일제강점기 당시, 한민족 대다수에겐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가 아니었듯이 지금 우리는 미국의 식민지가 결단코 아니다. 절대 아니다. 암튼, 김기종이가 간질을 앓았던, 수전증이 있던, 과대망상증이던… 나이 56세에 병 없는 사람이 있을까만… 그는 칼질로써 자신의 절망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나는 그를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민족주의자’라고 넌지시 욕을 했다. 그리고 어두컴컴한 창고 깊숙이 숨겨놓은 여러 종류의 칼 여덟 자루를 꺼내고, 실물을 꼭 닮은 MAGNUM357 모의권총도 찾았다. 칼날 위를 엄지손가락으로 쓸어보니 여전히 날카롭게 빛난다. 제법 묵직한 매그넘 모의권총을 손에 쥐고 길게 뻗어 어딘가를 겨누었다. 그리고 무엇인가를, 누군가를 매그넘의 가늠쇠 위에 올려본다. 나는 이것들을 다시 꼭꼭 싸서 더 안전하고 깊숙한 곳에 숨겨놓고 나서 혼잣말을 했다. 

“이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어!” 

 
정말 이것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을까?

내가 겁쟁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김기종이가 리퍼트 대사에게 칼질하다

2015. 3. 성담

서울시립미술관, 홍성담 ‘김기종의 칼질’ 그림 결국 내렸다

손택균기자

입력 2015-09-08 21:40:00 수정 2015-09-08 21:45:50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테러를 옹호하는 투의 글을 담은 홍성담 작가의 아크릴화 ‘김기종의 칼질’을 전시해 논란을 빚은 서울시립미술관이 결국 이 그림을 철수하기로 했다. 전시를 비판한 동아일보 기사(8일자 A8면)가 보도된 지 반나절 만이다.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은 8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그림을 둘러싼 논란으로 인해 행사 전체의 취지가 훼손되고 다른 참여 작가들에게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해 해당 그림을 전시실에서 치우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미술관 측은 이날 오후 보도자료를 내고 “당초 기획의도와 다르게 논란이 일어 즉시 철수시켰다. 향후 전시출품작을 보다 면밀히 검토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겠다”고 밝혔다. 

‘김기종의 칼질’은 4~13일 서울 관악구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관에서 열리는 ‘예술가 길드 아트페어: 공허한 제국’ 참가작이다. 가로 1.3m 세로 1.6m 크기 캔버스에 조찬행사에서 칼을 들고 달려든 김 씨와 넥타이를 붙들려 넘어진 리퍼트 대사의 모습을 그렸다. 복판 테이블에는 “미국에 전시작전권을 바친 걸 보면 일제강점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다. 김기종은 칼질로 자신의 절망감을 표현했다.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쏴 죽인 안중근 의사도 우리 민족에 대한 절망감을 표현했다”는 글을 적었다.

외교사절에게 칼을 휘둘러 수감 중인 인물을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에 빗댄 홍 씨의 글이 동아일보에 보도되자 미술관에는 아침부터 시민들의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본보 기사 웹페이지에도 “시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미술관에 이런 그림이 버젓이 걸리다니 충격이다” “테러와 독립운동도 구분 못하나” 등의 독자 댓글이 올라왔다.

 
김 관장은 “전시총감독 권한을 침해할 우려가 있어 행사 취지에 대한 이해가 형성되길 바랐지만 큰 그림에서의 예술가 지원책을 언급했던 박원순 시장에게까지 비판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어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전시를 총괄한 홍경한 총감독은 “작품 한 점이 전시의 본질과 다르게 정치적 이슈가 되고 전시가 추구한 시대정신 고찰 문제가 이데올로기화하는 것에 불편함을 느껴 서둘러 차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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