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정치평론가들이 전성시대를 맞고
있다. 정치평론가가 새로운 직업군으로 등장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치평론가의 원조는 고성국·유창선·김종배씨 등이다. 고성국씨는 1986년 노동운동 조직 ‘보임·다산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하다 88년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 때 사면된 뒤 평론가로 나섰다. 유창선씨는 연세대 학보사 기자를 거쳐 92년 민주당 이부영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98년 우연히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눈에 띈 게 계기가 됐다. 김종배씨는 기자협회보·미디어오늘 등의 기자로 일하다가 MBC 라디오에서 뉴스브리핑 코너를 맡으며 전업 평론가로 나섰다.
2011년 말 종합편성채널 개국 후 정치평론가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렸다. 총선·대선을 앞두고 ‘정치 평론’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다. 요즘 종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황태순 위즈덤센터 연구원,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박상병 평론가, 민영삼 포커스컴퍼니 전략연구원장, 최창렬 용인대 교수 등이 뉴 페이스로 등장했다. 이들은 대부분 정치권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인사들이다.
황태순 연구원은 박철언 전 의원의 보좌관과 공보특보를 지냈고,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도 가깝다. 야당 쪽 인맥도 두터운데 새천년민주당 김중권 대표의 비서실 부실장과 17대 대선에 출마했던 정동영 후보의 언론특보로 일한 경력이 있다. 이철희 소장은 원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최형우 전 의원의 참모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민주당 김명규 의원실을 거쳐 김대중 정부 때 행정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당시 정책기획수석이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였다. 그는 이 인연으로 김 대표가 국회의원이 됐을 때 보좌관이 됐다. 30대 초반부터 정치권에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실물 정치에 해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저서인 『디브리핑』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 교육용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민영삼 포커스컴퍼니 전략연구원장은 민주당 부대변인 출신이다. 2004년 총선에선 경기 안산단원갑에 공천을 받아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의 전문위원을 거쳐 신한국당 시절엔 대표실 보좌관을 지냈다.
정치평론가들이 급증하면서 방송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술자리에서나 어울릴 법한 험담·막말이 여과 없이 TV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종편 4사는 올해 들어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 출연자의 언행을 이유로 총 44건의 방심위 제재를 받았다. TV조선이 28건으로 가장 많았고 채널A 9건, MBN 4건, JTBC 3건이다. 출연자 중에선 진성호 전 새누리당 의원과 신혜식씨가 12건으로 가장 많았다. 진 전 의원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며, 신혜식씨는 보수 성향의 인터넷언론인 ‘독립신문’의 대표다. 독설로 유명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올해 초 “민주당이 호남을 노예로 잡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가 채널A에서 하차 당했다.
한 종편사의 방송작가인 김모씨는 “출연자가 사회적 물의를 빚더라도 이슈가 되면 오히려 인센티브 등 칭찬을 듣는 구조”라고 전했다. 방심위의 최다 제재 건수를 기록한 TV조선의 ‘돌아온 저격수다’는 지난해 12월 수도권 시청률이 4%를 돌파하자 패널들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김씨는 “경쟁사에서 특정인이 출연해 시청률이 잘 나오면 섭외 1순위가 된다”며 “외부에서 패널을 데려올 경우 기존 방송보다 더 자극적으로 해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또 “북한에 대한 발언은 확인이 안 되기 때문에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검증되지 않은 탈북자들을 섭외한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다른 방송작가인 유모씨는 “검증되지 않은 논객의 상당수는 ‘윗선’의 지시에 의해 투입된다”고 털어놨다. 종편에서 얼굴이 알려진 게 정계 입문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윤창중·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이나, 최근 총리실 공보실장으로 발탁된 이석우 전 평화방송 보도국장이 그런 경우다.
방송사들은 ‘막말 방송’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편성권의 자유를 내세워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서울대 이준웅(언론정보) 교수는 “영국의 BBC는 정치색이 있는 외부 인사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출연할 경우 사전에 고지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며 “뉴스와 정치색이 있는 토론·대담 프로그램을 명확히 구분하고 해당 프로그램엔 ‘특정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 나온다’고 고지하거나 아예 ‘정치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S BOX] 월 1000만원 넘게 벌기도
정치평론가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소문난 고소득자는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이다. 그는 JTBC ‘썰전’과 교통방송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 하니TV ‘시사게이트’,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쑤시개’ 등에 고정 출연한다. ‘썰전’의 출연료는 회당 150만~200만원가량으로 알려졌다. 두 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도 업계 평균 회당 30만~50만원 수준이다. 이런저런 수입을 합산하면 월소득은 1000만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능인으로 거듭났다고 평가받는 강용석 전 의원은 이 소장보다 출연료가 더 비싸다고 한다. 그는 JTBC ‘썰전’과 ‘유자식상팔자’, TV조선의 ‘강적들’과 ‘황금펀치’, tvN의 ‘강용석의 고소한 19’ 등에 출연하고 있다. 본업인 변호사 수입보다 방송 수입이 많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정치평론가의 원조는 고성국·유창선·김종배씨 등이다. 고성국씨는 1986년 노동운동 조직 ‘보임·다산 사건’에 연루돼 옥살이를 하다 88년 노태우 대통령의 취임 때 사면된 뒤 평론가로 나섰다. 유창선씨는 연세대 학보사 기자를 거쳐 92년 민주당 이부영 의원의 보좌관으로 활동했다. 98년 우연히 출연했던 방송 프로그램에서 눈에 띈 게 계기가 됐다. 김종배씨는 기자협회보·미디어오늘 등의 기자로 일하다가 MBC 라디오에서 뉴스브리핑 코너를 맡으며 전업 평론가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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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말 종합편성채널 개국 후 정치평론가의 ‘춘추전국 시대’가 열렸다. 총선·대선을 앞두고 ‘정치 평론’에 대한 수요가 폭증하면서다. 요즘 종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황태순 위즈덤센터 연구원,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장, 박상병 평론가, 민영삼 포커스컴퍼니 전략연구원장, 최창렬 용인대 교수 등이 뉴 페이스로 등장했다. 이들은 대부분 정치권과 직·간접적으로 인연을 맺고 있는 인사들이다.
황태순 연구원은 박철언 전 의원의 보좌관과 공보특보를 지냈고,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와도 가깝다. 야당 쪽 인맥도 두터운데 새천년민주당 김중권 대표의 비서실 부실장과 17대 대선에 출마했던 정동영 후보의 언론특보로 일한 경력이 있다. 이철희 소장은 원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오른팔이었던 최형우 전 의원의 참모로 정계에 입문했다. 이후 민주당 김명규 의원실을 거쳐 김대중 정부 때 행정관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당시 정책기획수석이 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였다. 그는 이 인연으로 김 대표가 국회의원이 됐을 때 보좌관이 됐다. 30대 초반부터 정치권에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실물 정치에 해박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저서인 『디브리핑』은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행정관 교육용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민영삼 포커스컴퍼니 전략연구원장은 민주당 부대변인 출신이다. 2004년 총선에선 경기 안산단원갑에 공천을 받아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시간강사로 일하다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이끌던 통일민주당의 전문위원을 거쳐 신한국당 시절엔 대표실 보좌관을 지냈다.
정치평론가들이 급증하면서 방송의 질적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술자리에서나 어울릴 법한 험담·막말이 여과 없이 TV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종편 4사는 올해 들어 뉴스나 토론 프로그램 출연자의 언행을 이유로 총 44건의 방심위 제재를 받았다. TV조선이 28건으로 가장 많았고 채널A 9건, MBN 4건, JTBC 3건이다. 출연자 중에선 진성호 전 새누리당 의원과 신혜식씨가 12건으로 가장 많았다. 진 전 의원은 조선일보 기자 출신이며, 신혜식씨는 보수 성향의 인터넷언론인 ‘독립신문’의 대표다. 독설로 유명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올해 초 “민주당이 호남을 노예로 잡고 있다”는 발언을 했다가 채널A에서 하차 당했다.
한 종편사의 방송작가인 김모씨는 “출연자가 사회적 물의를 빚더라도 이슈가 되면 오히려 인센티브 등 칭찬을 듣는 구조”라고 전했다. 방심위의 최다 제재 건수를 기록한 TV조선의 ‘돌아온 저격수다’는 지난해 12월 수도권 시청률이 4%를 돌파하자 패널들에게 특별상을 수여했다. 김씨는 “경쟁사에서 특정인이 출연해 시청률이 잘 나오면 섭외 1순위가 된다”며 “외부에서 패널을 데려올 경우 기존 방송보다 더 자극적으로 해달라고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또 “북한에 대한 발언은 확인이 안 되기 때문에 거짓말인 줄 알면서도 검증되지 않은 탈북자들을 섭외한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다른 방송작가인 유모씨는 “검증되지 않은 논객의 상당수는 ‘윗선’의 지시에 의해 투입된다”고 털어놨다. 종편에서 얼굴이 알려진 게 정계 입문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윤창중·김행 전 청와대 대변인이나, 최근 총리실 공보실장으로 발탁된 이석우 전 평화방송 보도국장이 그런 경우다.
방송사들은 ‘막말 방송’에 대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편성권의 자유를 내세워 규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서울대 이준웅(언론정보) 교수는 “영국의 BBC는 정치색이 있는 외부 인사가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출연할 경우 사전에 고지하는 제도를 두고 있다”며 “뉴스와 정치색이 있는 토론·대담 프로그램을 명확히 구분하고 해당 프로그램엔 ‘특정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이 나온다’고 고지하거나 아예 ‘정치를 소재로 한 예능 프로그램’이라고 밝힐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S BOX] 월 1000만원 넘게 벌기도
정치평론가들은 돈을 얼마나 벌까?
소문난 고소득자는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이다. 그는 JTBC ‘썰전’과 교통방송 ‘생방송 퇴근길 이철희입니다’, 하니TV ‘시사게이트’, 프레시안 팟캐스트 ‘이쑤시개’ 등에 고정 출연한다. ‘썰전’의 출연료는 회당 150만~200만원가량으로 알려졌다. 두 시간짜리 라디오 프로그램도 업계 평균 회당 30만~50만원 수준이다. 이런저런 수입을 합산하면 월소득은 1000만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예능인으로 거듭났다고 평가받는 강용석 전 의원은 이 소장보다 출연료가 더 비싸다고 한다. 그는 JTBC ‘썰전’과 ‘유자식상팔자’, TV조선의 ‘강적들’과 ‘황금펀치’, tvN의 ‘강용석의 고소한 19’ 등에 출연하고 있다. 본업인 변호사 수입보다 방송 수입이 많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방송사마다 차이가 있지만 뉴스나 대담 프로그램에 단발로 출연하는
정치평론가는 10만원 안팎을 받는다. 시청률이 오르고 대중의 지명도가 높아지면 출연료도 상승한다. 고정 패널이 되면 수십만~수백만원대에 이른다.
강태화·이윤석 기자
강태화·이윤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