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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적은 월급에 내일을 보장받을 수 없기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정말 만들고 싶은 책이 있어도 현재의 조건에서는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일반 직장인들이 퇴직하고 제일 많이 뛰어드는 분야가 음식업계라서 한국의 닭튀김집이 전 세계의 맥도날드 매장보다 많다는 우습지 않은 통계도 있지만, 출판편집자와 영업자들은 그나마 배운 ‘도둑질(?)’이라고 1인 출판의 길로 나서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이라는 출판계 불황이 어느덧 30여 년째인데도 1인 출판사 창업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이처럼 출판계의 고질적인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대다수 중견 출판사가 그때 그 시절 탄생한 배경
한국 출판의 역사를 살피다 보면 해방 이후 창업해 현재에 이르는, 역사가 오래된 출판사도 있지만, 오늘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다수 중견 출판사가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에 생겨났다는 걸 알 수 있다. 해방 이후 한국전쟁을 전후한 1950년대 출판의 중심은 누가 뭐래도 ‘교과서’였다. 종이도, 인쇄기도 부족한 상황에서 출판계는 전쟁 중 부산에서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52년 11월 한국검인정도서공급주식회사를 창립했다. 이후 교과서 출판이 출판사를 기업화하는 견인차 구실을 하면서 교과서 출판업자들이 승승장구하게 되었다. 이들 1세대 출판사가 교과서를 펴내며 축적한 자본을 바탕으로 1960년대에서 1970년대 중반까지 전집 붐을 일으킬 수 있었다.
ⓒ연합뉴스 1977년 3월 ‘교과서 파동’으로 구속돼 재판을
받고 있는 출판인들. |
그러나 1972년 10월 유신 이후 계속되는 집회와 대학생들의 시위로 골머리를 앓던 박정희 대통령은 1977년 3월 이른바 ‘교과서 파동’이라는 사건을 일으켰다. 교과서 출판업자들이 세금을 탈루했다는 것인데, 대통령의 관심이 쏠린 사건이었던 만큼 국세청이 매우 강도 높게 세무조사를 진행했고, 특수수사대가 구성되어 1개월 동안 37명 이상의 출판인을 구금해 조사했다. 구금된 상태에서 강박으로 작성한 자인서를 근거로 세금을 추징했는데, 그 액수가 127억원에 이르렀다. 이 사건과 관련된 117개 출판사 가운데 96개가 교과서 업계를 떠났고, 출판업 자체를 접었다. 오늘날 사조참치로 유명한 ‘사조산업’도 그렇게 출판업을 접고 업종을 전환한 업체 중 하나다. 이들은 사건 발생 12년 만인 1989년 5월, 대법원 판결로 일부나마 명예가 회복되고, 당시 추징당했던 세금도 환불받았다
유신정권이 검인정교과서를 국정교과서로 바꾸기 위해 벌였던 검인정교과서 파동으로 공동화(空洞化)된 출판계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언론 자유를 주장하다 해직된 언론인과 강제 해직된 교수, 민주화를 외치다 제적당한 청년 지식인이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 취업도 할 수 없었던 이들을 먹여 살린 것이 출판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사상 통제를 위해 추진한 일련의 정치 탄압으로 인해 오히려 의도하지 않은 새로운 출판 주류가 탄생하고, 그 속에서 저항담론이 창출된 것이다. 이처럼 출판계의 변동과 지식 생산 과정은 서로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오늘날 1인 출판사들이 이처럼 많아진 까닭은 일차적으로 출판계의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큰 원인이겠지만, 더 이상 대학과 사회가 수용할 수 없는 저자이자 독자로서의 청년 지식인, 다른 말로 청년 백수들을 양산하는 시대상과 결코 무관하다 할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