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記事를 읽는 재미

요즘 쓰이는 이상한 말, 말, 말(言)

이강기 2015. 10. 23. 12:10

요즘 쓰이는 이상한 말, 말, 말(言)

부정확한 어법과 어색한 표현들
노대통령, '진정성' 하소연 말고 '정도'를 걷길

 

이재교 / 2006-05-10 23:50

(깜빡 하고 어디서 퍼 왔는지 출처를 적어 놓지 못했다) 

 

오늘은 좀 부드러운 얘기, 말(言)에 대해서 얘기해보자. 조선의 천재 소리를 듣던 육당(六堂) 최남선이 쓴 기미독립선언문에는 어려운 한자어가 너무 많다는 비판을 받는다. 그런데 29세의 육당이 이 선언문 초안을 들고 당대의 유학자 오세창 선생에게 보였더니, 선생 가로되 “요즘 애들, 한문 몰라서 큰일 났다.”

기성세대가 ‘요즘 애들’을 나무란 역사는 워낙 유구한지라 5,000년 전에 만든 이집트 피라미드에도 “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는 탄식이 있다고 하더라만, ‘요즘 애들’에게 한 마디만 하자


혹시, 안내전화라든가 판촉전화를 걸어온 젊은 여성이 이런 말을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있으신지. “한달 요금이 5만원 정도 나오시고요, 청구서는 사무실로 가실 거고요...” 그런가하면 식당에서는 직원이 흔히 “여기 벨이 있으시니까 필요하시면 누르시고...” 라고 당부한다.

이렇게 아무 데나 「시」자를 붙이는 이상한 경어법은 젊은 여성들이 가장 심한 듯 하다. 요금이 중요하겠다마는 높여드릴 필요까지야 있겠나. “필요하시면 누르시고”는 뒤에만 「시」자를 붙여서 “필요하면 누르시고”로 해야 맞는 어법이라는 점은 너무 어려워서 모른다고 치자. 그렇지만 “벨이 있으시니까”는 도대체 뭔가. “벨이 계시니까”라 하지 않는 걸 다행이라 여겨야 하나.

여성들은 흔히 시댁, 시어머니, 시누이 등등 「시」자 붙은 말을 싫어하고, 그래서 시금치도 안 먹는 여성도 있다던데, 이 「시」자 좋아하는 젊은 여성들이 시집가면 그 이상한 경어를 쓰지 않으려나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젊은 남성들은 「부분」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대졸 이상의 고학력 젊은 남자들이 특히 많이 쓰는 경향이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 부분을 이렇게 하면 저 부분이 그렇게 되는 부분이 있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부분이 있는 부분이라서...”하는 식이다. 거시기는 귀신도 모른다는 속언이 있는데, 요즘의 「부분」이 바로 그 짝이다.

요즘 언론이 즐겨 쓰는 「일부」라는 말도 어색한 경우가 많다. 신문이나 방송을 보면, “일부 주민들이 쓰레기를 내다 버리고, 일부 학생들이 난동을 부리고...” 따위로 ‘일부’라는 말을 애용한다. 정확한 어법일까?

모든 주민이 쓰레기를 버리는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쓰레기를 버리는 주민은 일부일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일부」는 사족이다. 불확정적인 다수인을 가리킬 경우 “모든 주민들”과 같이 전부라고 명시하지 않는 이상, 일부를 뜻하기 때문이다. 그 다수인 중 극소수라는 점을 나타내고 싶으면, “몇몇 주민이...” 하면 되겠다. 당사자의 항의에 대비한 책임회피수단의 성격이 있다는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색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이 점과 관련하여 우리말의 단·복수 표현에서 잘못을 범하는 예를 종종 본다. 세 사람을 영어로 three persons라고 하지만 우리말로는 “세 사람들”이 아니라 “세 사람”이 바른 어법임은 누구나 안다. 그러면 “우리는 자신들이 다니는 회사의 전반적인 봉급수준보다는 동료들의 봉급과 비교된 우리 자신들의 봉급에 마음을 훨씬 쓴다”는 문장은 어떤가. 좀 어색하지 않은가.

이 문장에서 “자신들”을 “자신”으로 “동료들”은 “동료”로 바꾸어 보자. 훨씬 자연스럽다. 이 글의 필자는 자신과 동료가 여러 명이니 자신들, 동료들이라고 썼겠지만, 이는 영어식 표현이지 우리말 어법은 아니다. 우리말에서는 문맥상 둘 이상이라는 사실이 명백할 경우 ‘들’자를 붙이지 않고(예, 세 사람), 불명확할 경우에만 ‘들’자를 붙여서 복수를 표현한다.

잔소리가 길어졌다. 끝으로 요즘 애들은 아니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자주 써서 알려진 말 「진정성」에 대하여 한마디만 하자. 이 말은 국어사전에도 없는 말이라 정확한 뜻은 잘 모르겠지만, 쓰임새로 볼 때 “진지하고 순수한 심정이나 동기를 가지 있는 가지고 있은 상태” 정도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고, 한자로 쓰자면 眞情性 또는 眞正性 이 될 것 같다.

사전에 없는 말을 대통령이 자주 쓰는 일이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심하게 비난할 일도 아니겠다. 그러나 대통령이 그런 말을 자주 써야 하는 상황은 안타깝다. 노대통령은 자신의 정책 등을 설명하면서 본인의 진심은 이러한데 국민이나 언론이 잘 알아주지 않으니 답답하다고 느껴서 진정성이라는 말을 자주 쓰는 듯 하다. 이는 결국 대통령이 국민이나 언론과 이해의 폭이 그만큼 좁고, 서로 거리가 멀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대통령이 일을 하면서 자신의 진심을 믿어 달라고 하소연하는 상황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남을 속이려고 거짓말 하는 사람은 “사실이다”라든가 “내 말을 믿어라”는 말을 자주 쓰는 경향이 있다. 말을 하는 본인이 거짓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이 잘 믿지 않으리라 걱정돼서 믿게 하려고 애쓰다보니 그런 말을 자주 쓰게 되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사전에도 없는 진정성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것도 혹시 같은 이치가 아닐까. 즉, 국민이 대통령의 ‘진정성’을 잘 믿지 않으리라고 대통령 자신이 의구심을 갖고 있는 나머지 자신의 ‘진정성’을 납득시키려고 이 말을 자주 쓰는 것이 아닌가 말이다.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 했다.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면, 즉 정도(正道)라면 떳떳하게 추진하면 될 일이지, ‘진정성’이 있다고 국민들에게 하소연할 필요가 없다. 대통령으로부터 그런 하소연을 듣는 국민은 하소연할 데가 없다는 점을 노대통령은 헤아릴 필요가 있다.

이재교 (변호사, 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