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넘어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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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KBS가 방영한 한 TV 드라마는 박정희 때리기가 얼마나 다양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보여줬다. 드라마 속에서 ‘황금시’의 시민들은 물질적으로는 여유가 있지만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에서 전쟁의 공포와 방공 훈련에 주눅들어 살아간다. 취임 20년을 넘긴 ‘시장님’에게 반대 의견을 말하는 사람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다. 이 드라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못 알아들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또한 앞으로 줄을 이을 정부 각 기관의 ‘과거사 진상 규명’ 과정에서 박정희를 때리는 많은 기사들이 언론을 장식할 것이다. 이제 죽은 박정희 전 대통령은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갖지 못한채 무자비한 여론 재판을 받을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런 일들이 일부의 주장처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를 견제하려는 여권의 각본에 따라 치밀하게 이뤄지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의 박정희 때리기와 지우기가 자발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라면, 상황은 오히려 더 심각하다. 박정희에 대한 무조건적인 적대와 증오의 집단 무의식 상태가 우리 사회 일부를 지배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박정희와 관련된 댓글을 읽노라면 거칠고 날 선 감정이 상당수 대중을 사로잡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박정희 시대는 그 역사적 성취가 많았던 만큼 그늘도 짙었다. 특히 유신시대의 질식할듯한 독재와 인권 탄압은 그 시기를 살았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되돌아가고 싶지 않은 암울한 기억이다. 그때 일어났고 덮어졌던 일들을 이제라도 밝히자는데 반대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은 박정희 때리기나 지우기가 아니라 그 시대를 총체적으로 정리하고 극복하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한다. 집권층이 아직도 자신들의 시대적 과제를 ‘민주화’라고 생각한다면 지금의 일방적인 분위기는 어울린다.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새해 들어 ‘선진 한국’의 건설을 국가 목표로 설정하고 나왔다. 선진국 건설은 단절과 파괴가 아니라 계승과 발전의 방식으로 이뤄질 수 밖에 없다. 싫든 좋든 박정희는 현재 한국의 틀을 만든 사람이다. 우리가 서 있는 발 밑을 통째로 허물어 버리기 보다는 거기에 이르는 과정이 주는 긍정·부정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현명하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박정희 전대통령에 대해서 “잘한 점이 더 많다” (81.8%)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반면 박 대통령 시절에 대한 재평가에는 ‘찬성한다’(65.4%)가 ‘반대한다’(28.6%) 보다 훨씬 많았다. 얼핏 모순처럼 느껴지는 이 응답의 의미는 박정희와 그 시대에 대한 올바른 접근법이 ‘때리기·지우기’도, ‘감싸기·살리기’도 아닌 ‘넘어서기’라는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넘어서기’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치적 고려나 감정적 대응에서 벗어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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