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한용운과 유치환의 친일시비에 대해 - 문덕수

이강기 2015. 10. 27. 21:48
 

                [경남시론] 한용운과 유치환

              2004년 10월 경남일보에서 퍼 옴
 
문덕수(시인·객원논설위원)
 친일문학의 불을 붙인 첫 화약은 임종국씨의 저서 〈친일문학론〉
(1966)이다. 이 책 속의 `자화상`에서, 저자는 독자들이 궁금하게 생각
할 것은 이 책을 쓴 “임종국이는 친일을 안했을까?”라고 전제해 놓고서
도, 정작 자기의 친일 관련 언급은 없이 일인 소녀에의 연정, 근로동
원, 총검술 등 당시의 어둔 상황만 약술하고 있다. 
 해방될 때 17세라면 식민지 때 교육을 받았고, 그때 교육을 받았다면 창
씨개명은 물론이요, 학교 안의 신사(神社) 참배, 일장기에의 경례, `
황국신민의 서사` 복창, 일본국가 제창 등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친일
문학론〉의 저자는 자신이 겪은 것으로 보이는 이러한 친일관련 사항은 왜 
언급하지 않았을까.
 임씨의 〈친일문학론〉에는 김동인, 이광수, 최남선 등 소위 친일작가 
48명이 거명되어 있다. 그 뒤, 서정주가 생존시에 혐의를 받은 것은, `마
쓰이 오장송가`(松井伍長頌歌)를 비롯한 11편의 제목이 이 책의 부록으
로 열거된 것이 그 계기이고, 청마가 논란이 된 시초도 `수`, `전야`, `
북두성` 등 3편의 부록 기록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한용
운, 김정한, 백석, 정지용 등에게서도 친일혐의를 받을 만한 자취가 발
견되어 주목을 받고 있다.
 “은인자중의 극(極)은 철저 응징의 국(局)을 젓게 하여 남북전지
(南北全支)에 뻗쳐 장병의 출정을 보게 되어 소기의 전과를 얻고 있는 것
은 국민과 함께 감사하는 바로, 정도(征途)의 장려와 전지의 혹열 아래
서의 장병의 심신견고를 소원하는 동시에 후고(後顧)의 우려를 없이하는 
것은 총후국민(銃後國民)의 의무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한용운, `지
나사변과 불교`, 〈한용운전집〉 2, p.362)
  이 글은 한용운(韓龍雲)이 중일전쟁(1937. 7. 7) 직후에 발표한 `지
나사변과 불교`(〈불교〉 1937. 10)라는 논설의 일부다. 일제의 중국침략
의 정당성에 입각하여 중국대륙의 남북을 유린한 일제의 전쟁을 지지하면
서 총후(銃後) 국민의 의무를 강조한 것인데, 설마 이런 친일적 논설을 
한용운이 썼을까 하고 의심할 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지난 8월 백담사에
서 개최된 만해축전에서 발표한 논문에 `지나사변과 불교`라는 만해의 이 
논문을 인용한 모 교수도 “이 논설이 만해의 것이라고 믿기엔 너무도 충격
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면서 한용운의 친일 자취를 소개하고 있다.
  요즘 한창 뜨고 있는 백석(白石)은 어떤가. 1940년 4월 5일, 〈만선
일보〉에서 `만일문화협화와 만주문화`라는 제목의 좌담회를 개최했는데, 
여기에 조선측 참가자로 박팔양, 이갑기 등과 더불어 백석이 참석했다. 그
는 놀랍게도 `만주국 국무원 경제부` 공무원으로 소개되어 있다. 백석을 친
일시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가. 정지용은 일어로 20여편의 작품을 썼
고, 이상 역시 마찬가지다. 임씨의 〈친일문학론〉에는 한용운, 백석의 
이런 사실은 누락되어 있다.
  청마의 작품 `수`, `북두성`, `전야`는 직접적으로나 구체적으로 일본
군이나 일본제국주의에 관련된 작품이 아니다. `수`에 등장하는 비적(匪
賊)은 일본의 괴뢰정부인 만주국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니 항일 독립군으
로 볼 수 없으며, `북두성`에 나오는 “두병”(斗柄)이나 `동방의 새
벽`은 청마 개인의 의지적 표상이며, `전야`는 구체적으로 학병출정을 장
려한 대목을 발견할 수 없다. 이러한 작품을 일제 군국주의라는 당시의 각
박한 상황 속에 넣고 무리하게 틀에 맞추는 식의 이른바 `맞춤풀이`로 `친
일 운운`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청마든 누구든 많은 작품에 비해 구우일모(九牛一毛)인 작품 한두 편
을 가지고 그 사람 전체에 `친일` 딱지를 함부로 붙이는 것은 마녀사냥이
나 다름없다. 일종의 매카시즘적 수법이다. 청마의 경우처럼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무시하고 친일 일방주의로 몰고가는 전제주의적 해석은 다원주
의 시대에 용납될 수 없다. `협화회(協和會) 근무`라는 김소운의 약력 소
개는 논리가 빈약한, 한 마디로 넌센스다. 청마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언
론을 끌어들여 난도질하고, 시국에 편승하여 `청마문학관`이 어떠니, `청
마우체국`으로의 개명이 부당하니 하면서 목소리를 높이고 데모하는 짓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리고 친일문제는 법에서 결론이 내릴 때까지 자중하여 
기다리는 것이 양식에 걸맞은 행위임을 강조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