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治, 外交

“정치 안해본 안철수가 대통령? 큰일날 소리…” - 남재희 前 노동부 장관 인터뷰기

이강기 2015. 11. 1. 22:07

정치 안해본 안철수가 대통령? 큰일날 소리

남재희 노동부 장관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이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 테라스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 의해 정치권에 입문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김동훈기자 dhk@munhwa.com

 

[인터뷰=박민 전국부장]

 

의식은 야()에 있으나 현실은 여()에 있다.’

 

한 시인이 여당 국회의원이던 남재희(78) 전 노동부 장관을 표현한 말이다. 그런 그가 정계를 은퇴하고 대학 객원교수까지 마친 지도 이미 11.

 

그러나 그의 말과 글은 여전히 현직에 있고 희수를 넘긴 나이가 무색하게 생각과 의식은 진보에 열려있다. 그는 과거 역사의 현장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었고 현재의 정치적 흐름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으며 미래의 정치에 대해 다양한 논거를 바탕으로 수긍할 만한 전망을 내놓았다. 동시에 그는 과거의 정치인이든 현재의 정계 보스든 미래의 대권 후보든 평가에 있어 주저함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기자였고 보수와 진보를 넘나들던 정치인이었고 영원한 지식인이었다. 지난 26일 인터뷰를 위해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 사옥에서 만난 그에게선 어쩔 수 없이 세월의 무게가 느껴졌다. 십수년 전 정치부 기자로서 만났던 그때와 비교하면 조금 느려졌고 부드러워져 있었다. 그러나 근황을 들으면서 여전히 치열한 그의 삶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뒤늦게 책에 푹 빠졌습니다(그는 원래 수만권의 책을 보유한 장서가이자 다독가로 알려져 있다). 옛날에는 사실 책을 많이 사긴 했는데 국회의원 하느라 바빠서 보진 못했고 이제 보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아까울 정도입니다. 인터넷도 배웠지만 서핑을 하고 있으면 시시한 소리, 잡설만 나오고. 그래서 더욱 책에 빠지게 되고 그러다 보니 전보다 더 고립돼 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꼭 읽고 싶은 책이 하도 많아서 바빠요 바빠.”

 

1994년 노동부 장관을 끝으로 정계에서 은퇴하셨는데 좀 빠른 것 아니었습니까.

 

글쎄 말입니다. 그런데 정치에도 사이클이 있습니다. 세력의 흐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흐름에서 벗어나면 국회의원 한 번 더했다는 정도지 정치하는 거라고 할 수 없습니다. 제가 노동부 장관 하고 난 뒤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됐으니까.”

 

장관님은 이념적으로 유연해서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에도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사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김원기 국회의장이 만나자고 해 갔더니 자기 후임으로 노사정위원장을 맡으라고 하더군요. 장관급인데다 김대중 대통령이 신경을 쓰던 자리였습니다. 그런데 사양했습니다. 친구들이 정권 때마다 한 자리 한다고 할까 봐서요. 노무현 전 대통령은 초선 때 국회 노동위원회에서 알고 지냈는데 내가 나이도 있고 하니까 대통령의 통일고문회의 고문 자리 한번 시켜주더구먼요. 명예직이죠.” 이후 호남대에서 객원교수로 5년 정도 재직하던 그는 최근에는 인터넷 매체에 정치 관련 칼럼을 2주에 한번 정도 쓰고 있다.

 

연대를 이룬 야권이 MB정권 심판론을 제기한 건 이명박 정부에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닙니까.

 

정주영 명예회장은 창업자입니다. 기업가 정신도 있고 창의력도 있고 모험도 했습니다. 자동차 회사, 조선 회사를 창업하고 소 1001마리를 북쪽으로 몰고 가는 그런 도전적이고 기발한 발상을 할 수 있는 기업가였습니다. 그런데 MB는 기업가가 아니라 월급쟁이였습니다. 정 명예회장의 지시사항을 이행했을 뿐 기업가적인 창의성이 없었습니다. 엉겁결에 대통령이 됐는데 서민들을 위해서는 거의 해준 게 없습니다. 부자들을 도와주면 경제성장도 되고 고용도 창출될 줄 알았는데 그런 파급효과는 거의 없고 부자들에게 돈만 쌓여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됐습니다. 그러니까 불만이 쌓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남북관계는 완전히 막아버렸습니다. 이제 임기 1년 남았는데 남북관계와 관련해서 아무것도 안 하고 넘어가면 그건 문제가 있는 겁니다. 결국 대북관계에서도 창의성을 발휘 못한 겁니다. 정 명예회장이 대통령이 됐으면 아마 뭐 근사한 거 하나 했을 겁니다.”

 

새누리당의 변화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본질은 비슷한데 화장을 한 거죠. 김종인씨가 가서 복지문제도 강조하고 경제민주화도 주장했는데 막상 공천하는 거 보니까 거꾸로 가버렸습니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김종인씨가 추천한 사람은 안 되고 오히려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사람들만 되니까 결국 그만뒀지 않았습니까. 더욱 걱정스러운 것은 지금 새누리당이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위원장 1인 체제란 겁니다. 전직 대표를 포함한 거물들을 숙청해 버리잖아요. 나름 거물들인데 다들 벌벌 떨고 있습니다. 그건 민주정당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체제로 그냥 가서 박 위원장이 대통령까지 된다면 상황이 더 심화될 것 아닙니까.”

 

국민의 정치권 물갈이 요구가 있어 가능한 게 아닐까요.

 

물론 물갈이 해야죠. 그래도 민주정당에서는 한계가 있는 겁니다. 미국에서도 프라이머리로 후보를 정하는데 현역이 바뀌는 것은 극히 일부입니다. 일본도 공인제도가 있는데 안 바뀌죠.”

 

김종인 박사는 비대위에서 물러나면서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최선도, 차선도 아니고 삼선쯤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박 위원장의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종필씨가 한번은 박근혜 위원장에게는 박정희 대통령의 DNA가 있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김종인씨는 새누리당에서 겨눌 만한 사람이 없다는 대안부재론을 제기했고요. 이번 공천에서 잘린 전여옥 의원은 박 위원장에 대해 유사종교 교주 같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평가들이 있는데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현재의 박 위원장 행태나 새누리당 구조는 굉장히 위험하다는 겁니다.”

 

김종인 박사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대권에 올인하지 않고 있어 후보가 안 될 것이라고 전망하셨는데.

 

저는 안 원장을 잘 모르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이번 대선에서 역할을 한다면 박원순 시장 때 하듯 응원단장입니다. 물론 안 원장이 누구의 응원단장을 하는지는 정말 중요합니다. 안 원장처럼 정치를 전혀 안 해 본 사람이 5000만 인구의 국가를 어떻게 운영합니까. 안 됩니다. 그건 큰일날 소리입니다. 정치권에 들어와서 경험을 쌓으면 다음 대선에선 또 모르죠.”

 

누구의 응원단장이 될 것 같습니까.

 

우선 유시민씨는 통합민주당이 아니니깐 어렵다고 봅니다. 정동영씨는 대선에 한번 출마했고 큰 표차로 떨어졌으니까 이번엔 어렵습니다. 손학규씨는 한나라당에서 왔다는 것이 결정타입니다. 경력도 좋고 다 갖췄는데 태생적 한계가 있습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김두관 경남도지사는 천양지차인데 경력은 김 지사가 훨씬 낫죠. 김 지사는 이장, 군수, 장관, 무소속 지사까지 했지만 문 이사장은 청와대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이 전부죠. 더구나 문 이사장이 나오면 박근혜 위원장이 노무현 정권을 비판하는 것을 온전히 다 받아야 한다는 겁니다. 반면 김 지사는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1년도 채 못했으니까 노무현 정권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스럽습니다. 더 큰 문제는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한 것과 관련, 문 이사장의 책임문제가 거론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한 문 이사장의 주요 업무 중 하나가 대통령 친인척 관리인데 그게 제대로 안 돼 결국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한 것 아닙니까.”

 

격동의 현대사에서 언론인, 국회의원, 장관을 지내셨으니 비사도 많이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공화당 창당에 진보세력이 대거 참여했다고 하는데 사실입니까.

 

“5·16 직후 당시 진보세력들 중 5·16 세력에 대해 기대를 가진 사람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사실 언론인 리영희씨도 공화당 사전조직 멤버였습니다. 나와 사돈관계로 진보청년이었던 예춘호씨도 마찬가지고요. 당시 언론계 인사 중 상당수가 공화당 창당 밀봉교육을 받았는데 강사가 황성모 교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한승헌 변호사에게 했더니 그래서 북한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나보라고 차관급인 황태성 내려보냈구나라고 하더군요. 북한에서도 혁신계가 쿠데타를 했으니 기대를 건 거죠. 그런데 황태성이 붙잡혔습니다. 황태성은 대구에서 좌파운동하던 박 대통령 형님의 친구였는데 미국에서 체포된 사실을 먼저 알아 야당에 정보를 줬고 처벌을 촉구해서 결국 사형을 당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시고도 소신발언을 많이 하셨지 않습니까.

 

당에서는 못 참았죠. 전두환 대통령 때 학원안정법을 나 혼자 반대했습니다. 지나고 보니까 반대했다는 사람 많더라고요. 나 혼자 반대하고 혼자 싸웠는데, 그때가 3선 때였습니다.”

 

그러면 다음 공천에서 탈락하지 않습니까.

 

근데 안 날아갔습니다. 1986년 박희도 육군참모총장 등 하나회 핵심들과 여야 국회의원 10여명이 모인 회식자리에서 군 장성과 의원들 간에 폭력사건이 벌어졌습니다(남 장관은 당시 의원들에게 도발적인 행동을 보인 하나회 장성들을 향해 유리잔을 던졌다). 그 사건 이후에도 공천을 받았고, 제 첫째딸에 이어 둘째딸까지 운동을 하다 구속됐는데 공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 전 대통령을 인간적으로는 공평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박 전 대통령은 메이저 쿠데타를 한 사람이고 전 전 대통령은 미니 쿠데타를 한 사람입니다. 전 전 대통령은 광화문에 굴러다니는 정권을 그냥 주은 셈입니다. 한번은 전 전 대통령이 청와대 상춘제에서 민정당 당직자 몇명과 술을 마시다 취해서 그때 김종필씨의 공화당과 유정회가 최규하씨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 밀었더라면 과연 누가 딴 생각을 할 수 있었겠는가라고 하더라고요. 전 전 대통령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각하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이 그래 뭐냐고 하기에 시인 김지하씨 석방 좀 해주십시오. 김지하 시인이 소설가 박경리의 무남독녀의 남편인데 형무소에 있어 박경리씨가 최근 쓴 글에서 비감한 얘기를 했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이 박경리가 누구야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토지를 지은 사람입니다고 답하자 전 전 대통령이 , 토지! 우리집 애들이 열심히 읽던데라고 말한 뒤 부하들에게 석방해라고 명령했습니다. 결국 김지하씨가 한 반년 정도 일찍 석방됐는데 몇년 후 박경리 여사가 파티에서 만나 진작 인사를 못해 대단히 미안하다고 말했습니다. 전 전 대통령은 광주민주화운동 말고는 통이 컸습니다.”

 

minp@munhwa.com, 문화일보, 2012. 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