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논문] 한국대통령의 레임덕 현상
분석 [이남영 | 세종대 교수], 시대정신, 2012년 봄호 |
I. 문제의 제기
문민시대이후(김영삼 대통령이후) 한국 대통령들은 임기 초에는 매우 높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 왔으나 임기 중반이후에는 급격한 레임덕 현상의 희생물이 되어 왔다. 왜 이러한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일까? 그 원인에 대한 규명과 그 극복방안 제시가 이 논문의 목적이 된다. 레임덕현상이란 임기 말에 발생하는 대통령 권력의 누수현상을 일컫는 것으로 대통령의 권력행사가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레임덕현상은 있기 마련인데 한국의 경우 그 정도가 더 심하게 나타나고 있다. 한국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의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다른 나라 대통령에 비해 한국 대통령이 경험하는 레임덕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차기 대통령선거에서 현직 대통령이 소속하고 있는 정당이 승리하지 못했을 경우나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한 경우에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개략적으로 약 3개월 동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통상적으로 대통령 임기 1-2년을 앞두고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나라에서 그렇게 장기간 레임덕 현상을 반복적으로 겪고 있음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둘째, 한국 대통령은 집권 초에 엄청나게 높은 국민지지를 받으나, 집권 중반이후에는 그 지지기반이 급격하게 무너진다. 이러한 국민지지의 가변성이 한국정치의 특징이기도 하다.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이념적으로 중도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중도를 표방하는 정당은 없다. 새누리당(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보수를,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등 야당들은 모두 진보를 표방한다. 따라서 선거에서 특정 대통령후보를 지지했던 중도에 있는 많은 유권자들의 심리적 충성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심리적 충성도가 낮은 시민들은 현 대통령의 실정에 대해 비판적이며 결과적으로 언제든지 지지를 쉽게 철회할 수 있다. 국민지지철회는 대통령 레임덕 현상을 심화시키는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동한다. 이와 같이 한국 대통령은 쉽게 레임덕현상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셋째, 한국의 대통령은 특정지역을 정치기반으로 한다.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기반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선거 때마다 예외 없이 나타나는 지역주의 현상은 대통령에게 절반의 승리만을 가져다준다. 지역적 반대세력들은 집권 초 소위 허니문 기간에는 비교적 침잠되어 있으나, 임기 중반이후에는 대통령에게 매우 비판적인 입장에 서게 된다. 특히 대통령 측근비리나 실정에 대해서는 정서적으로 가혹할 정도의 심판을 가하게 된다. 지역주의가 발동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 지역주의는 매우 감정적인 것으로 ‘옳고 그름’의 정치적 문제를 ‘좋고 싫음’의 문제로 치환시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국을 파국으로 몰고 가는 힘이 있다. 타 지역을 정치적 기반으로 하는 대통령에 대해서는 정서적으로 싫어하는 사회심리가 지역적으로 만연되어 있기 때문에 한국 대통령은 임기 중반이후 급격하게 레임덕현상에 빠져버릴 수 있다. 위에서 한국 대통령 레임덕현상의 특징을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레임덕 현상은 짧을수록, 그리고 대통령의 권력누수의 정도는 적을수록 국가는 안정적으로 발전을 도모해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문민시대 각 정권별로 나누어 나타난 레임덕 현상을 살펴보고 그 공통점을 추출하여 레임덕 현상의 약화를 위한 처방을 생각해 보자.
II. 문민시대의 레임덕
1. 김영삼
김영삼 대통령은 출발부터 권력기반이 취약했다. 3당 합당이라는 소위 정치공학을 통해 집권에는 성공했으나 다수의 민정계를 비롯한 구 지배세력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선거과정에서 지역적으로 호남으로부터 배척을 당하였다. 이러한 불리한 상황에서 김영삼 대통령은 여러 가지 개혁을 수행해야만 했다. 예컨대, 하나회해체를 통한 군부독재 가능성제거나 금융실명제, 부동산실명제를 통한 재산형성과정의 투명성 확보 등이었다. 이러한 조치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았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개혁의 방식이 공식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측근에 의해 비밀스럽게 진행되었다는 것이 김영삼 대통령의 문제로 지적된다. 특히 그 과정에서 비선조직을 관리하던 아들 김현철의 정치실세화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결국 임기 말 김현철이 직간접적으로 연루된 한보철강 사태로 김영삼 정권의 도덕적 해이가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자 김영삼 정부는 ‘식물정부’로 전락하고 말았다. 김영삼 대통령 임기 중․후반기에 나타난 레임덕현상은 이념적으로는 중도성향의 다수 국민들, 지역적으로는 호남과 TK지역이, 그리고 연령적으로는 젊은 계층이 대거 비판세력에 가담함으로써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어 갔다. 특히 대통령 임기 중 아들 김현철을 비리혐의로 구속시켜야만 할 정도의 여론의 비판을 받았다. 김영삼 대통령은 레임덕현상을 만회하기 위해 차기 대통령선거에 이회창이라는 카드를 사용하고자 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의 존재가 전혀 선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이회창 캠프는 오히려 대통령의 탈당을 강요했으며 김영삼 대통령은 1997년 11월 자신이 만든 정당으로부터 스스로 탈당해야 하는 비극적인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2. 김대중
김대중 대통령은 김영삼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DJP연대라는 ‘정치공학’을 통해 집권에 성공했다. 집권 초에는 IMF 경제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신자유주의적 경제 프로그램을 적용하여 사회양극화를 심화시켜 갔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한 햇볕정책은 보수 계층으로 부터는 ‘북한 퍼주기’로 폄훼 당하였고, 서민층으로 부터는 ‘북한 주민보다 우리가 더 춥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특히 2000년 초 DJP연대 파기를 기점으로 하여 김대중 대통령은 급속히 레임덕 현상에 빠져버리게 되었다. 역시 이념적으로는 중도성향의 다수 국민들이, 지역적으로는 영남지역과 충청지역이 비판세력에 가담하였다. 마찬가지로 김대중 대통령도 가족비리라는 수치를 당하였다. 두 아들, 김홍걸과 김홍업이 임기 중에 여러 가지 비리로 인해 구속당한 상태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급속히 ‘식물 대통령’화 하였다. 김영삼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만든 민주당을 탈당할 수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차기 대선에서 아무런 역할도 할 수 없었다.
3. 노무현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은 그 정치적 기반이 더욱 취약했다. 지역적으로는 영남출신으로서 영남의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고 오히려 호남의 지지를 획득하였고, 민주화운동과정에서도 김영삼, 김대중과 결별하고 비주류의 길을 걸어 왔기 때문에 소위 정치기득권세력의 안정적 지지도 받고 있지 못했다. 따라서 노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은 다른 대통령들에 비해 일찍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겨우 집권 1년 후인 2004년 3월에 대통령 탄핵안 가결로 대통령직무가 정지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5월 14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소추안이 기각되어 노무현 대통령은 대통령직에 복귀할 수 있었으나 노무현 대통령은 정치적 상흔을 이미 많이 받은 상태였다. 탄핵역풍으로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이 넘는 의석을 차지하였으나 대통령주도하에 개혁다운 개혁을 이뤄내지 못했다. 개혁이라는 말만 무성했고 실천은 미약하여 일반대중은 극도의 ‘개혁 피로증’에 걸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해 갔다. 또한 임기 중에 불거진 여러 가지 비리들과 노건평씨 등이 연루된 가족비리 등은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이미지에 먹칠을 하였고 2006년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를 하게 된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한 민심이반 현상은 가속화되고 결국 노대통령은 2007년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게 된다.
4. 이명박
현 이명박 대통령도 예외는 아니다. 747공약으로 화려하게 경제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초기인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로 시작된 소위 ‘촛불정국’으로 정치적 상처를 받는다. 그리고 집권 내내 따라 다니는 BBK 연루의혹, 대통령 스스로 ‘전과 14범’이라는 사실, ‘고소영’ 내각으로 명명되는 인사 편중성, 용산철거민 사망사건, 그리고 세종시 문제, 4대강 사업의 무리한 추진 등으로 이명박 정권의 대중적 지지는 급속히 하락하여 갔다. 더구나 최근 계속 터지고 있는 대통령 형(이상득 의원)을 비롯한 측근비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레임덕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전국적인 지지율 하락은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율 하락으로 연결되어 한나라당은 유력한 차기대권 주자인 박근혜 의원을 중심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 되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는 소위 이명박 대통령 계보인 친이계 인사들이 현 정치상황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함으로, 올 4월 총선을 위한 공천과정에서 가능한 한 많은 친이계 인사들을 배제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정리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이명박 대통령과 친화력 있는 한나라당이라는 간판을 내리고, 새누리당이라는 새로운 간판을 내 걸었다. 다음 수순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탈당요구일 수 있다고 판단된다. 이와 같이 이명박 대통령도 레임덕 현상을 피해갈 수 없는 정치적 상황에 처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III. 레임덕으로 가는 반복되는 패턴
위에서 문민시대가 배출해 낸 4명의 대통령이 비슷한 경로를 통해 레임덕현상에 빠지는 역사적 사실들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그 경로 상에서 작용하는 변수들을 크게 나누어 보면 세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대통령의 지지기반이 취약하다는 것이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지역주의에 의해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기반을 가질 수 없었으며, 따라서 3당 합당이나 DJP연대와 같은 정치공학에 의존하여 대통령에 당선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치공학적인 협력관계가 임기 중에 파기됨으로써 레임덕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었다. 약한 정치적 기반을 가졌던 노무현 후보의 경우도 정치공학을 시도했다. 정몽준 후보와 후보단일화에 성공하였으나 선거막바지에 협력관계가 단절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한 정치공학은 집권초기부터 유사 레임덕 현상에 시달리게 하는 단초가 되었던 것 같다. “대통령 못 해 먹겠다”라는 말이 본인이 처한 상황을 잘 묘사했다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의 경우는 합당이나 연대와 같은 정치공학에 의한 집권은 아니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국정운영에 있어 영남정권의 한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면서 스스로 지지기반을 축소하는 경향을 보인다. 둘째, 민주적 권위창출의 실패이다. 민주화 투쟁의 본보기인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 군부독재정권을 성공적으로 청산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적 권위를 창출하는데 실패했다. 민주적 권위란 법과 질서가 존중되고, 하의 상달식의 의사결정과정을 구조화하며, 투쟁보다는 협의, 다수결보다는 합의가 존중될 뿐 아니라, 지도자가 솔선해서 높은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를 다하는, 즉 지도자가 투철하게 솔선수범하는 공공정신에서 창출된다. 그러나 두 대통령은 불행하게도 그러한 민주적 권위를 창출하는 데 실패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통령의 권위주의를 해체하는 데는 성공하였으나 민주적 권위를 세우는 데는 실패하였고, 현 이명박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판단된다. 민주적 권위가 없는 대통령은 쉽게 레임덕현상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 아닐까? 셋째, 도덕성의 문제이다. 소위 측근비리나 친인척비리 등 부패의 문제가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국민은 대통령에게 엄청난 권력을 부여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권력을 이용하여 자행되는 측근비리, 가족비리는 국민을 기만하는 것이며, 따라서 국민이 쉽게 용서할 수 없는 치명적인 결함임에 틀림없다. 아무리 능력 있는 지도자라도 부패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면 바로 국민이 등을 돌리는 것이 동서고금의 진리이다. 불행하게도 한국의 대통령들은 이러한 부패의 고리를 깨끗하게 차단시키지 못해 온 것이 사실이다.
IV. 레임덕 어떻게 방지하나?
대통령은 우리나라를 궁극적으로 책임지는 가장 높은 직책이다. 매 5년 마다 우리는 새로운 대통령을 희망찬 미래를 위해 맞이한다. 그런데 그 대통령은 예외 없이 취임 2년 후에는 시름시름 앓고 있는 절름발이 오리처럼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국가적인 손실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통령제 폐지, 내각제도입을 주장하기도 하고, 대통령 4년 중임제, 부통령제 도입 등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대통령 레임덕의 문제는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문화의 문제인 것 같다. 지역이기주의를 불식하고, 민주적 권위를 확립하며, 측근이나 친인척비리를 척결하는 문제로 압축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문화적 요소들은 우리의 생활습관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에 쉽게 고쳐지기 어렵다는 특성이 있다. 지역주의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지역정당이 해체되어야 한다. 즉 지역주의를 부추기며 반호남정서에 기생해온 새누리당, 마찬가지로 반영남정서에 기생하고 있는 민주통합당 등이 국민정당으로 다시 태어나야만 한다. 쉽지 않은 일이다. 새누리당의 중진들이 대거 호남에서 출마하고, 민주통합당 중진들이 대거 영남에서 출마하여 당선자를 내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영남 지역구 중 20-30%의 지역구에서 새누리당은 후보를 내지 않고, 마찬가지로 호남 지역구 중 20-30%의 지역구에서 민주통합당이 후보를 내지 않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시민들 의식구조 속에 깊이 내재되어 있는 지역주의를 차단하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문제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교육, 시민교육, 언론, 종교, 사회단체, 시민운동단체 등이 협력하여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 나가야 할 것이다. 독일에서 패전 후 민주시민교육을 위해 정부, 학교, 시민단체 등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반유태주의가 얼마나 비이성적이며, 나쁜 것인지에 대해 어릴 때부터 교육을 시키고 있고 그 결과 독일은 가장 악랄한 파시스트 국가에서 건강한 민주국가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참고할 만한 일이다. 둘째, 민주적 권위를 창출하는 일이다. 대통령은 자연인만이 아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라는 상징이며 국민의 안위와 행복을 책임지는 법적․제도적 장치이기도 하다. 민주사회에서 대통령은 국민의 지지를 받아 취임하며, 그 대통령은 취임과 동시에 자연인을 넘어 국가상징체이며 또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된다. 이러한 대통령은 민주적 의미에서 권위를 지녀야 한다. 즉 국민이 신뢰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민주적 권위를 창출해야만 한다. 민주적 권위란 우선 대통령 스스로 법과 질서를 존중할 때 발현된다. 대통령과 측근 또는 집권여당이 불법, 탈법에 연루된다면 어느 사람이 대통령을 신뢰하고 존중할 것인가? 또한 대통령이 밀실에서 중요한 결단을 내리고 상의하달 식으로 국정운영을 해나간다면 국민은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얼마나 신뢰할 수 있을까? 마찬가지로 대통령이 국민통합보다는 분열, 화합보다는 투쟁, 합의보다는 표결 중심으로 국정운영을 한다면 국민들은 정치피로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대통령은 국민통합의 상징보다는 오히려 분열의 표상이 되고 만다. 또한 민주적 권위를 창출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은 지도자의 솔선수범의 정신이다. 높은 직책에 맞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젊은 시절엔 군대에 갔어야 하며, 돈을 많이 벌었으면 기부금 등으로 사회기여를 해야 하며, 시간을 아껴 여러 가지 사회봉사를 해야 하고, 전쟁이 나면 자식들을 제일 전방으로 보내 참전시켜야 한다. 우리가 그러한 대통령과 대통령가족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그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셋째, 도덕성확립의 문제이다. 왜 역대 대통령 모두 측근 및 친인척비리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는가? 자연인으로서의 대통령은 약하다. 그러나 대통령은 국가적 상징이며 법이며 제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정치는 상징, 법, 제도보다는 자연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향이 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순간 이미 개인이 아니다. 그러나 한국 대통령의 정치는 법보다도, 제도보다도 개인 중심으로 전개된다. 따라서 대통령 다음의 권력자는 국무총리나 국회의장이 아니라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다. 즉 가족, 친지, 그리고 측근들인 것이다. 일단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이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풍토이기 때문에 그들은 쉽게 비리에 연루되기 쉽다. 따라서 대통령의 도덕성확립을 위해서는 우선 대통령과 그 일가, 친척, 측근 등을 법적으로 관리하는 기구를 두었으면 한다. 대통령과 가족의 재산의 변동을 관리하고, 친인척과 측근들의 사회활동을 모니터하는 기구가 국회산하에 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최소한 한국의 대통령들이 부패문제로 부터는 보호받을 수 있을 것 같다.
V. 성공한 대통령 가능한가?
한국 대통령들의 실패는 과장되고, 업적은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들의 업적 중 일부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김영삼 대통령의 경우 군 출신 전임 대통령들을 구속하고 군대내의 최대 파벌인 하나회를 해체하여 군부독재의 가능성을 차단했고, 금융실명제 실시로 인해 자본주의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등 한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성공적으로 구축했다.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는 신속하고 합리적인 경제조치로 IMF 위기타개에 성공했으며, 남북관계를 대립에서 대화의 국면으로 전환시켰고, IT발전을 위한 각종 하드웨어 설비투자로 한국이 IT강국으로 우뚝 서게 하였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 권위주의를 급속히 해체하고, 기득권세력보다는 서민의 편에서 국가발전을 도모했고, 소위 ‘사회복지’라는 화두를 정치에 성공적으로 접목시켰다. 위와 같이 짧은 기간에 이루어 낸 다양한 업적들은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성공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 대통령들은 실패한 대통령으로만 역사에 기록되는 것 같다. 그것은 임기 중반이후 예외 없이 겪게 되는 심각한 레임덕현상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레임덕을 방지하고 성공한 대통령을 우리도 가질 수 있을까? 대통령은 자연인이 아니라 국가적 상징이고 법이며 제도이기 때문에 성공한 대통령을 가진다는 것은 국격을 높이는 일이기도 하다. 미국에서의 워싱턴, 링컨과 같은 대통령, 영국에서의 처칠수상, 프랑스에서의 드골대통령과 같은 성공한 지도자들은 국민의 자긍심을 높여 주는 역할 뿐 아니라 국제적으로 그 나라의 국격을 높여 주는 역할을 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 국민설득 능력제고
레임덕 현상은 문민시대이후에 급격하게 변화한 정치 환경의 영향이기도 한 것 같다. 문민시대이후 과거 군부독재시절에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로 국민의 정부에 대한 비판, 견제가 얼마든지 가능해 졌다. 특히 주요 일간지의 이념적 스펙트럼도 넓어졌을 뿐 아니라 그 내용도 다양해 졌다. 국민의 알 권리와 더불어 언론의 알릴 권리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환경이 개선되어 갔다. 또한 소위 IT 혁명과 함께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다양한 뉴스들과 그러한 뉴스들이 다양한 IT 매체들을 통해 확산됨에 의해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여과 없이 국민에게 전달되고 있다. 소위 정치적 성역이 사라지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급격한 환경변화는 대통령에게는 불편한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아무리 작은 정책적이나 도덕적인 실수도 바로 전 국민에게 신속하게 전달되기 때문에 시간을 두고 시정할 여유가 없어진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일을 잘 해야만 한다. 그러나 완벽한 대통령은 있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대통령은 국민과의 소통의 방법을 잘 알아야만 한다. 잘 하는 일만 홍보하려 하지 말고 잘 못한 일도 설명해야 한다. 왜 그 일을 잘못할 수밖에 없었는지, 앞으로 어떻게 그 일을 보완․개선해 가야 하는지에 대해 진솔하게 국민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설득의 정치이고 소통의 정치인 것이다. 대통령의 힘은 권력행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에서 나오는 것이다.
2. 권한분산, 책임공유
한국 대통령이 지니고 있는 엄청난 법적․제도적 권한은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용어를 만들어 내었다. 대통령은 국가원수이며, 국군통수권자이며, 국민을 대표하며, 국가위기 시에는 여러 가지 긴급조치를 취할 수 있는 막대한 권력을 소유한다. 그러한 법적․제도적 권한이외에 집권여당을 정치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향력, 당정협의를 통하여 의회를 직간접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힘, 인사권을 통한 사법부에 대한 효과적 통제 및 각종 권력기관에 대한 지휘권 등 대통령의 실질적 권한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이러한 대통령의 권한 및 영향력은 대통령에게는 힘의 원천이 되기도 하지만, 부담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대통령의 권한 및 영향력은 무리 없이 잘 사용될 때는 국민으로부터 권위를 확보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곧 바로 국민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된다. 너무나 많은 권력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책임을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정운영의 실패에 대해 국무총리나 국무위원, 의회나 정당이 책임을 공유할 수 없는 정치시스템이 바로 한국의 대통령제이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왜냐하면 한국 대통령은 거의 모든 부분에 대한 권한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리에게 실질적 권한을 부여하는 책임총리제나 대통령이 의회정치나 정당정치에 개입하지 않는 방법 등을 고려해 볼 만 하다. 책임총리제는 현행헌법상 이미 마련되어 있는 제도인데 대통령이 총리를 임명하기 때문에 실제로 잘 운용되지 않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총리를 국회에서 선출하고 대통령과 총리가 국정을 나누어 담당하는 방법을 고려해 볼 만 하다. 예컨대, 외교와 국방 그리고 경제를 대통령이 교육, 문화, 사회(노동, 여성, 복지) 등은 총리가 담당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이 집권당을 통해 의회를 지배하려하고, 또한 여야 정당정치에 개입하는 한, 정치에 대한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의회를 존중하고 여야정당정치를 존중해야 소위 대통령제가 추구하는 권력분립을 정착할 수 있으며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이 분산되는 효과를 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3. 대통령 통제시스템
그러나 어느 대통령도 완벽할 수 없다. 따라서 대통령의 정책적 실패, 도덕적 타락, 판단의 실수 등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효과적인 장치가 가동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한국의 대통령제는 너무나 제왕적이기 때문에 그러한 장치가 부재한 상태이다. 의회나 사법부도 대통령을 통제하기 어렵고, 청와대 비서실이나 각종 사정기관도 대통령의 수족으로 기능할 뿐이지 대통령의 실패를 방지하기 위한 기능을 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러한 대통령에 대한 통제시스템의 부재현상은 문민시대이후 모든 대통령들이 겪어 온 심각한 레임덕 현상과 상관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대통령의 정책적 판단과 도덕성에 대한 검증시스템이 상시 가동되고 있다면 정책적 실패와 도덕적 타락은 얼마든지 사전에 방지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의회나 사법부의 대통령에 대한 검증시스템이 가혹할 정도로 잘 가동되고 있다. 즉 상대적으로 능력이 부족한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커다란 실패를 경험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미국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한 레임덕현상을 겪는다. 대통령의 정책은 어떻게 검증받을 수 있는가? 역시 국회이다. 국회는 행정부를 감시․감독하는 국정감사기능과 세부 정책을 검토하는 예․결산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명박 정부 3년 동안 여당은 예산안을 모두 날치기 통과시켰다. 대통령이 제시한 행정부 예산안이 심층검토 없이 날치기로 몇 분 내에 처리되었다. 국회의 기능마비이다. 대통령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국회에서 여야 간 충분한 논의가 진행되도록 기다려야만 한다. 대통령이 간접적으로 여당의원들에게 날치기 통과를 권유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다. 국회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쳐 통과된 예산을 집행한다면 검증된 정책이기 때문에 훨씬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국정감사를 통해 지적된 부분들을 잘 시정한다면 대통령의 정책적 실패는 상당한 수준에서 감소시킬 수 있다. 그리고 대통령의 도덕적 타락문제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역시 국회 내에 대통령과 친인척, 측근들의 재산을 등록하여 관리하는 기구를 두는 것을 제안하고 싶다. 물론 법적으로 사생활침해에 해당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제안은 한국 대통령들이 예외 없이 친인척 및 측근 비리문제 때문에 엄청난 고통을 당했음에 미루어 볼 때 충분히 고려해 볼 만 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VI. 결론
문민시대는 언론자유와 더불어 정치적 자유가 엄청나게 확대되어 왔다. 과거 군부독재시절에는 소위 사회주의나 좌파이념을 지향하는 정당은 존립할 수 없었다. 그러나 문민시대이후에는 그들의 정치활동이 합법화 되었을 뿐 아니라, 의회에도 진출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고, 결국 김대중, 노무현 정권으로 표상되는 소위 좌파정권을 경험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국정치는 좌-우를 아우르는 정치적 스펙트럼이 넓은 시스템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문민시대는 국민정치의식을 민주적으로 전환 시켜왔다. 과거 군부독재시절의 한국정치문화는 굴종적 권위주의가 지배하였다면, 문민시대에는 자율적 참여형 문화가 우세해 갔다. 민주적 정통성을 결여한 군부가 시민들에게 복종을 강요하던 시대에는 그러한 억압체계에 순응적인 정치인들만이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 의한 정치는 굴종적 시민문화를 배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민시대는 민주적 정통성이 약한 정치권력에 공식적․비공식적으로 저항해 온 세력들에 의해 열리게 되었고 그 결과 굴종적 시민문화는 저항적 또는 자율적 참여문화로 대치하게 되었다. 자율적 참여문화에서 대통령이 효과적으로 국정운영을 하기 위해서는 시민들로부터 권위를 부여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통령 스스로가 민주적인 방식으로 권위를 창출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 대통령들은 권위창출에 실패해 왔다. 권위창출을 위해서는 법과 질서에 대한 존중, 의사소통체계의 확립, 협의 및 합의의 정치과정확립 및 솔선수범의 공공정신 등이 대통령 스스로에게 필요하다. 대통령의 민주적 권위의 창출은 레임덕 현상의 방지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문민시대에도 고질적인 지역주의가 그대로 유지되어 왔다. 지역주의는 어느 대통령 당선자에게도 절반의 승리라는 정치적 족쇄를 채워주었고, 권력지지기반을 약화시키는 역할을 담당해 왔다. 지역주의 정당체계를 극복하고 시민문화 속에 지역주의를 불식시키기 위한 노력이야말로 대통령레임덕 현상을 약화시키기 위한 장기적인 처방이 될 것이다. 또한 대통령 스스로 국민설득을 위한 능력을 강화해야 할 것이며, 권한분산이나 책임공유를 위한 제도적 개선문제도 고려해 보아야 할 부분이다. 그리고 대통령의 정책실패나 도덕적 타락을 방지하기 위해 의회의 기능을 더욱 강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성공한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진지하게 기울여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더 이상 실패한 대통령을 양산해 내는 현 정치구조를 그대로 유지해서는 아니 된다. 가족이나 측근들이 구속되고 스스로 자살까지 하게 되는 비극적인 대통령이 더 이상 이 나라에서 재생산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글이 성공한 대통령 만들기를 위한 작은 시작이 되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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