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아빠같은 남자, 오빠같은 남자(수필)

이강기 2015. 11. 7. 10:31
아빠같은 남자, 오빠같은 남자
지경화  
 


지경화, 재미 조선족, 미국 뉴욕




어렸을 때는 아빠가 나의 우상이었다.

얼마나 착한 우리 아빠인지, 한평생 법이 없이도 살 사람이라고, 동네방네에 소문이 자자했다. 한번도 우리한테 큰 소리로 야단쳐본 적이 없었다. 다른 집에 아이들은 아빠한테 야단 맞을 때에, 항상 엄마가 역성을 들어주군 하였다.

그래서 나의 친구들가운데는 엄마만 좋아하고 아빠는 죽어라고 미워하는 애들이 아주 많았는데, 우리 집에서는 나와 오빠가 모두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하였다. 항상 학교에 나가 말썽만 일으키고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는 오빠가 집에 돌아와 엄마한테 야단 맞을 때면, 언제나 아빠가 우리의 역성을 들어주군 하였다.

너무 화가 난 우리 엄마가 오빠를 때렸는데, 오빠는 아빠의 등 뒤로 몸을 피했다.

“여보, 그만하오.”
하고 아빠가 말렸으나 엄마는 펄펄 뛰였다.
“당신 비켜요.”
“그냥 나를 한 대 치구려.”
하고 아빠는 오빠와 나 대신 엄마한테 자기 등을 들이대군 하였다.

그런 아빠였다. 세상에서 착하디 착한 우리 아빠, 그런데 이렇게 좋은 아빠를 죽어라고 미워하는 사람이 이모였다. 울 엄마의 여동생인 이모는, 언니가 아빠같은 남자한테 시집 가서 고생한다고 항상 푸념이었다.

그래서 내가 소학교 다닐 때 한번은 이런 말을 하였다.

“넌 이담에 크면 절대 너의 아빠같은 남자한테 시집가면 안된다.”
“아빠가 왜서요?”
“글세, 안된다면 안되다는줄 알아라.”

“난 아빠가 좋기만 한데.”
이것이 나와 울 오빠의 한결같은 대답이었다.
“너네 엄마가 얼마나 고생하는지가 안 보이니?”
아빠를 미워하는 이모한테 엄마는 아무 말도 없으셨다.
“언니, 차라리 이혼하구 마오.”
한번은 이모가 이렇게 말하는 소리도 들었다.

그날 저녁에는 아빠와 엄마가 처음 언성까지 높여가면서 몹시 다투었는데, 엄마가 이모와 함께 한국에 일 하러 간다고 하는 바람에 아빠가 화를 냈던 것이었다. 거기다 이모까지 끼어들어 이혼하라고 부채질 하는 바람에 아빠는 앞에 있던 물그릇을 들어 뿌리려고 하였다.

“아.”

나와 오빠는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아빠는 정작 물그릇을 뿌리지 못하고 힘없이 내려놓고 말았다. 그것을 보던 엄마가 더 화가 나서 그 물그릇을 훌찍 집어들더니 땅에 메치면서 소리쳤다.
“차라리 이렇게 깨라도 버리세요. 남자가 왜 그래요.”
아빠는 머리를 푹 떨구고 한숨만 풀풀 내쉬었다.
결국 엄마는 역빨른 이모를 따라 한국으로 일하러 가고말았다.

몇 년 뒤, 엄마가 돈을 벌어가지고 와서, 우리 집은 시내 아파트로 이사하게 되었다. 엄마가 약속한대로 3년만에 어김없이 돌아오자 아빠는 눈물까지 다 글썽해졌다. 이때 나는 초중 1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아빤 참 너무 남자답지 않아.”
나는 처음으로 아빠가 남자 답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춘기를 겪으면서 내가 아무리 아빠한테 대들고, 가출하고, 애먹이고 해도 아빠는 한번도 화를 안 내셨다. 그냥 내가 뭐라고 하면 ‘오’ 하거나 아니면 ‘어’하고 응대했고, 내가 좀 더 재잘거리면 그냥 ‘그래, 알았다.’고 머리를 끄떡여버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내가 초중 2학년 때는 학교의 날라리 패들과 머리 끄댕이 잡아당기면서 쌈박질 한 적도 아주 많았는데 어떤 때는 내가 얻어맞고 눈등이 시퍼렇게되어가지고 집으로 돌아올 때도 있었다. 아빠는 멀거니 나를 바라보더니 고작 한다는 소리가,

“돌쌈아, 네 동생 좀 봐라, 얼굴이 참대곰이 댔구나.”

돌쌈이란 오빠 어릴 때 별명이다. 쌈 할 때면 두 손에 돌맹이를 들고 싸우기 때문에 생긴 별명인데, 동네에서 울 오빠를 무서워하지 않는 애들이 없었다. 내가 초중 다닐 때도 고중학생이었던 오빠는 전 교에서도 으뜸가는 쌈 대장이었다.

공부하기 싫어하고 쌈질하기 좋아하였던 여자 애들은 모두 나를 부러워하였다.
“너네 오빠 진짜 멋져.” 이렇게 칭찬하는 애들도 무척 많았다.

그러나 오빠는 문제가 많았다. 무척 나를 아끼는 오빠는 나의 일이라면 백사불구하고 달려오지만, 정작 오빠가 연애할 나이가 되어 여자친구와 사귀게 될 때에는, 그 나쁜 성깔머리 때문에 여자애들이 한참 사귀다가는 나중에 모두 달아나버렸다. 그 가운데는 나의 딱 친구도 하나 들어있었다.

“너네 오빠 말이다. 좋을 때는 무척 잘해주는데...”
그 딱친구는 뒷말을 흐렸다.

잘해줄 때는 하늘의 별이고 달이고 다 따다줄 것 처럼 잘해주다가도 성깔을 부리고 화를 낼 때면, 손찌검까지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어떤 여자애들도 오래 붙어있지 못하였다.그런데도 오빠는 어디 가서 여자 친구는 참 잘 사귀였다. 여자애들이 한번 오빠와 만나면 모두 반하고 말았다. 물론 오래가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이렇게 되자 이모의 첫 번째 경계 대상은 아빠같은 남자에서 이제는 오빠같은 남자로 바뀌고 말았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오빠의 남자다운 씨원씨원한 성격이 좋았다.

“성격만 좋으면 뭐하냐? 눈알 뒤집힐 때는 정신병자 같은데.”
하고 이모는 인정사정없이 욕을 퍼붓군했다.

결국 이모가 오빠같은 남자도 딱 질색하는 원인은, 훗날 오빠가 결혼하고나서도 끝내 형님이 아이까지 팽개쳐버리고 가출하는 바람에 증명되고말았다.

“남자가 저렇게 광기를 부리면 어떤 여자들도 다 달아나.”

이때쯤되자 아빠에 대한 이모의 인상이 조금씩 돌아서기 시작했다.
이모가 오빠를 나무랄 때면,

“그냥 아빠 절반만큼만 착해두 얼마나 좋겠니.”
“울 아부지가 바보라메?”
“바보는 무슨, 너무 착해빠져서 그랬지.”
하고 이모도 결국 자기의 형부에 대한 인상이 다 바뀌고 말았다.

이렇게 남자다운 오빠의 곁에 여자가 붙어있지 못하고 다 달아나버린데 반해, 남자답지 못한 아빠의 곁에는 어제도 오늘도 엄마가 계속 같이 동무하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나도 마음을 굳혀가고 있는 중이다. 나의 어렸을 적의 첫 번째 우상이었던, 우리 아빠같은 남자에게 시집가고 싶다. 그러나 만약 절반만 아빠같은 남자이고, 나머지 절반은 오빠같은 남자였으면, 정말 더욱 좋을 것 같다.

어디에 그런 남자는 없을가?

(해외조선족문단, 2012/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