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 語學

'현대문학' 600호

이강기 2015. 10. 30. 08:26

만물상] '현대문학' 600호

 

김태익· 논설위원 · tikim@chosun.com

조선일보

입력 : 2004.12.01 18:19 13'


“건방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모사(模寫)꾼이 되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합니다.”(56년 8월 박경리) “대문 박차고 눈 부릅뜨고 나선 이상 사나운 거리를 미친 듯이 방황할 결심이다.”(69년 2월 최인호) 지금은 원로·중진이 된 문인들의 청년 시절 문학에 대한 열정과 각오가 귓전에 들리는 듯하다. 월간 ‘현대문학’에 실렸던 신인 추천 소감의 구절들이다.

▶6·25 전쟁으로 모든 것이 무너져내린 시절이었다. 작가 박완서씨가 신혼살림을 시작한 곳은 좁고 꼬불꼬불한 골목에 조선 기와집들이 처마를 맞댄 오래된 동네였다. 어느날 그 골목길 낡은 기와집에 ‘現代文學社’란 간판이 나붙었다. 동네 구멍가게와 다름없는 집에 간판이 붙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 집뿐 아니라 골목 전체가 갑자기 환해진 것이었다. “그 남루하고 척박한 시대에도 문학이 있다는 게 그렇게 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박씨는 최근 소설 ‘그 남자네 집’을 현대문학사에서 출간했다. 문학이 삶의 누추함을 뛰어넘는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해준 그 시절 ‘현대문학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다.

▶1955년 1월, 모윤숙이 발행하던 ‘문예’가 문을 닫는 바람에 문인들의 발표 마당이 전무해졌다. 조연현이 주간, 오영수가 편집장, 박재삼이 직원이 돼 문단의 새로운 구심점이 될 문예지를 만들기로 했다. 대한교과서주식회사 사장 김기오가 돈을 댔다. 새 잡지가 나올 때가 되면 문인들은 명동 ‘갈채다방’에 모여 박재삼이 ‘현대문학’을 한 아름 안고 달려오기를 목 빼고 기다렸다.

▶그로부터 50년, 단 한번의 결호(缺號)도 없이 매달 꼬박꼬박 발행돼 온 ‘현대문학’이 이번 12월호로 지령(誌齡) 600호를 맞았다. 그동안 실린 작품은 총 3만4000여편(6650명). 327명의 시인과 133명의 소설가를 배출했다. ‘현대문학’은 문인들을 위한 전문지만도 아니었다. “그것은 감회깊고 추억 어린 정신의 고향이다.”(이문열) 어린 시절 형들 책꽂이에서 ‘현대문학’을 훔쳐보며 문학에의 연모(戀慕)를 키우던 기억이 아스라하다.

▶신문학사 초창기에 ‘3호문학’(三號文學)이란 말이 유행했었다. ‘창조’니 ‘폐허’ ‘백조’ 등 문예지들이 모두 3호를 넘기지 못하고 폐간된 것을 풍자한 말이었다. ‘백조’의 동인이었던 소설가 박종화는 1963년 ‘현대문학’이 100호를 기록했을 때 이미 “천문학적 숫자”라며 찬탄을 금치 못했다. 그가 살아서 600호 기념호를 보았다면 뭐라고 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