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주재 영국 부영사로 일했던 W R 칼스가 조선 여행기를 정리해 낸 책 ‘LIFE IN COREA’에 나오는 삽화. 하인들이 끄는 초헌(왶軒)에 관리가 탄 모습이다. 한승훈 고려대 교수 제공
“조선은 산이 많은 나라입니다. … 지하자원이 많으며 특히 사금이 산재해 있으나 정부는 외국인의 광산 개발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조선인은 신체적으로 일본 사람보다 우월하며, 청나라 사람들보다 열등하지 않습니다. 민족적 기질은 밝고 쾌활하며, 격식을 차리지 않습니다.”
조선 주재 영국 부영사로 일했던 C W 캠벨이 1892년 영국 에든버러에서 열린 영국학술협회에서 조선을 묘사한 대목이다. 한승훈 고려대 BK21플러스한국사학사업단 연구교수는 5일 열린 조선시대사학회 월례발표회에서 “영국 외교관들이 1882∼1894년 조선을 여행하며 느낀 조선인들의 첫인상은 ‘친절함’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영국 외교관의 여행기를 통해 본 조선’이라는 발표문에서 영국외교문서, 의회문서, 왕립지리학회지 등을 분석했다. 그에 따르면 당초 조선의 쇄국정책과 임오군란에 대해 알고 있던 영국 외교관들은 조선인들이 자신들을 부정적으로 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들이 여행하는 중 조선인들은 호기심과 호감이 섞인 가운데 영국인들 주변에 모여들었다.
서해안 탐사를 했던 영국 해군 대위 존 매클레어는 “조선인들은 예의 바르고 정직하며 종종 탐사를 도와줬다”고 적었다. 청나라 사람들 같은 반외세 성향이 조선인들에게는 없다는 기록도 있다. 한 교수는 “청나라는 일찍부터 영국의 정치, 군사적 침략을 받았지만 조선은 그런 경험이 당시까지 적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조선 관리들이 국제 정세에 관한 최신 정보를 알고 있었다는 기록도 나온다. 초대 조선 주재 영국총영사를 지낸 W G 애스턴은 1882년 동래부사 김선근을 만난 뒤 “김 부사는 최근 이집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과 영국에 있어 수에즈 운하의 중요성, 파나마 운하 건설이 제안됐다는 등의 일을 잘 알고 있어 놀랐다”고 기록했다.
한 교수는 “외교관들은 영국 상인들의 무역을 도울 수 있는 정보를 얻기 위해 여행했다”며 “이후 이 여행기는 영국 신문에 보도되고 왕립학회에서도 발표됐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