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會

가상현실 시대의 개막과 미래 전망

이강기 2016. 9. 2. 22:40

[미래의 창] 가상현실 시대의 개막과 미래 전망


[류한석 | 류한석 기술문화연구소 소장 ]


시대정신 2016, 5-6월호

대중화를 시작한 가상현실과 선두주자 오큘러스VR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은 최근 크게 주목 받고 있는 차세대 IT 비즈니스다. 기존의 PC, 스마트폰이 단지 2D 스크린을 통해 디지털 세계를 이용하는 수준이었다면, 가상현실은 VR헤드셋을 통해 구현한 입체적인 가상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사용자의 시각을 완전히 장악하고 청각, 촉각 등 오감과의 상호작용 및 음성인식, 동작인식 등을 통해 가상공간을 마치 현실처럼 느끼게 해 준다. 가상현실의 구현은 1960년대부터 다양한 연구를 통해 지속적으로 시도되어 왔지만, 기술의 한계 및 높은 비용으로 인해 지금까지 제대로 대중화되지 못했었다. 하지만 근래 들어 관련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달하고 하드웨어 비용이 크게 하락함에 따라, 드디어 일반 사용자들이 소비 욕구를 느낄만한 수준의 ‘몰입감’과 ‘상호작용’을 제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TrendForce)는 가상현실 시장 규모가 2020년이 되면 700억 달러(약 8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가상현실 시장의 선두주자는 오큘러스VR(Oculus VR)이다. 2014년 3월 페이스북의 CEO 마크 저커버그가 오큘러스VR을 인수한다고 발표했을 때, 업계는 엄청난 인수금액과 더불어 인수 주체가 페이스북이라는 사실에 경악했다. 오큘러스VR의 관계자가 밝힌 바에 따르면, 저커버그는 인수 얘기를 꺼낸 지 불과 열흘도 안 돼 협상을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도대체 페이스북은 무엇 때문에 아직 제품 상용화도 하지 않은 2년차 신생기업을 무려 23억 달러에 인수한 것일까?


오큘러스VR의 인수에 앞서 페이스북은 국내에서도 사용자가 크게 늘어난 인스타그램(Instagram)을 10억 달러에, 카카오톡과 라인의 원조 서비스이자 글로벌 경쟁자인 왓츠앱(WhatsApp)을 190억 달러에 인수한 바 있다. 페이스북은 세계 1위의 SNS로서 시장을 장악하고 있으며 단순한 서비스가 아니라 플랫폼의 역할을 하고 있다. 플랫폼은 수많은 사용자들을 확보하고 사용자들에게 광고, 커머스, 게임,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페이스북이 인스타그램과 왓츠앱을 인수한 이유는 모바일 시장에서도 이러한 막강한 플랫폼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바로 이와 동일한 이유에서 페이스북은 오큘러스VR를 인수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오큘러스VR은 2012년 8월 VR헤드셋인 리프트(Rift)를 처음으로 선보였으며, 유명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킥스타터(Kickstarter)를 통해 한달 만에 목표치의 10배인 240만 달러를 모아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오큘러스VR은 현재까지 킥스타터가 배출한 최고의 슈퍼스타로 꼽히고 있다. 리프트는 소개 직후부터 게임업계의 여러 유명 인사들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개발자 키트 버전1(DK1)의 경우 1년 만에 6만 대가 판매되기도 했다. 개발자 버전 두 개를 거쳐 지난 3월 드디어 정식 소비자 버전으로 출시된 리프트는 2160x1200@90Hz로 구동되는 OLED 패널, 내장 헤드폰을 통한 오디오 기능, 개선된 동작 트래킹을 제공한다. 새로운 기술을 통해 멀미 문제를 개선했으며, 헤드 트래킹과 모션 캡처 시스템으로 머리의 상하좌우 및 사용자 동작까지 인식해 더욱 뛰어난 몰입감을 제공한다.


가상현실 시장은 이제 막 개화를 하려는 수준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오큘러스VR은 가상현실 시장에서 가장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업체로 평가 받고 있다. 오큘러스VR은 개발자 및 사용자들로부터 강한 지지를 얻으면서 성공적으로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오큘러스VR은 쉐어(Share)라는 명칭으로 콘텐츠 공유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약 1000여 개가 넘는 콘텐츠가 개발된 상태이고 그 숫자는 계속 증가하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오큘러스VR이 전 세계에서 한국에 가장 먼저 지사를 설립했다는 점이다.


이는 IT 소비 강국이자 게임 강국으로서 한국이 가진 독특한 위상이 반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국내에서는 네이버 카페(http://cafe.naver.com/oculusvr)를 통해 커뮤니티 활동이 이뤄지고 있으며, 네오위즈게임즈의 자회사 네오위즈CRS가 개발한 온라인 액션 RPG 애스커(ASKER)가 국내 온라인 게임 최초로 리프트를 지원한다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리프트 정식 버전의 1차 출시국에서 한국은 제외됐다. 오큘러스VR의 창업자 팔머 럭키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한국이 1차 출시국에서 제외된 이유가 정부 규제 때문이라고 밝혔다.


리프트가 다른 경쟁 제품에 앞서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중요한 근거는 소비자 인지도, 개발자 커뮤니티에서의 호응 및 생태계 구축에 가장 앞서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EEDAR가 2016년 1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소비자들에게 가장 인지도가 높은 VR헤드셋으로 리프트가 83%를 차지해 1위로 선정됐다.2 오큘러스VR이 가상현실 시장의 선두주자로 앞서감에 따라 오큘러스VR과 제휴를 맺는 기업도 늘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경쟁자에 비해 비교적 빠른 2014년 6월 미국 특허청에 기어VR 상표를 등록하고, 2014년 12월 갤럭시 노트4와 연동해 사용할 수 있는 기어VR를 199.99달러에 선보였다.


기어VR은 오큘러스VR과의 제휴를 통해 만들어졌으며 오큘러스VR의 모바일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기반으로 구동된다. 오큘러스VR은 안정적인 하드웨어를 공급받기 위해 삼성전자가 필요하고, 삼성전자는 오큘러스VR의 소프트웨어 플랫폼이 필요하기 때문에 상호 협력을 하게 된 것이다. 삼성전자는 2015년 9월 무게가 22% 가벼워진 신버전 기어VR을 99달러에 선보였다.  기어VR은 PC가 필요 없이 스마트폰만 있으면 가상현실을 경험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삼성전자의 프리미엄 스마트폰에서만 작동된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또한 신버전에서 가격을 많이 낮추었음에도 비슷한 기능을 제공하는 스마트폰 기반의 다른 VR헤드셋들에 비해 여전히 가격이 비싸다는 것도 단점이다.


가상현실 시장의 도전자들: 소니, HTC, 구글


소니는 자사의 게임기 플레이스테이션(PS)4에서 사용 가능한 VR헤드셋 PSVR을 선보였다.PSVR은 1920x1080의 해상도를 제공해 리프트보다는 해상도 품질이 떨어지지만 주사율(refresh rate)은 120Hz로 리프트보다 뛰어나다. 주사율이란 초당 재생 회수를 의미하는데, 예를 들어 120Hz는 초당 120장의 화면이 재생된다는 뜻이다. 업계에서는 주사율이 144Hz는 되어야 사람이 실제로 보는 것과 같은 경험을 할 수 있다고 보는데, 주사율이 높을수록 고성능의 비싼 장비가 요구되기 때문에 당분간은 적절한 타협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PSVR은 무엇보다 PS4라는 콘솔 게임기에 최적화된 높은 완성도의 가상현실 게임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게이머들에게 상당한 어필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지만 PS4에 최적화됐다는 건 장점이면서 한편으로는 한계이기 때문에, PSVR이 게임기를 넘어선 범용 플랫폼으로자리 잡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볼 수 있다. 리프트의 경쟁 제품 중 하나인 바이브(Vive)는 스마트폰 제조사로 잘 알려진 HTC가 게임 배포 서비스로 유명한 스팀(Steam)의 운영사 밸브(Valve Corporation)와 제휴해 선보인 기기다. 바이브 패키지는 2160x1200@90Hz 해상도의 VR헤드셋, 전용 콘트롤러, 동작 트래킹 센서로 구성되어 있다.


바이브의 헤드셋 전면에는 카메라가 달려 있어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현실세계에 가상정보를 합성해 보여 주는 것)도 사용 가능하다. 또한 게이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팀의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 커다란 경쟁력이며, 이미 스팀에는 80여 개 이상의 바이브 게임이 등록된 상태다. HTC는 오큘러스VR보다 먼저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2015년 10월 월드투어를 했다. 리프트와는 불과 일주일 간격으로 시장에 출시를 하게 됨에 따라, 앞으로 시장 선점을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사전 주문 국가에 미국을 포함해 일본, 중국이 포함됐지만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


구글은 2014년 6월 구글 I/O에서 일명 ‘골판지 VR헤드셋’ 카드보드(Cardboard)를 선보이면서 앱과 개발도구도 함께 공개했다. 2015년 5월 구글 I/O에서는 iOS도 지원하는 새로운 카드보드와 함께, 액션캠 시장의 유명 브랜드 고프로(GoPro)의 카메라로 360도 촬영한 영상을 VR콘텐츠로 바꿔주는 점프(Jump) 프로젝트도 공개했다. 오픈소스 기반의 개방형 VR헤드셋도 등장한 상태다. OSVR(Open Source Virtual Reality)은 게임용 주변기기 제조사로 잘 알려진 레이저(Razer)와 VR기기 제조사 센식스(Sensics)에 의해 시작됐으며 유비소프트(Ubisoft), 뷰직스(Vuzix), 립(LEAP), 인텔 등이 참여하고 있다.


가상현실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짐에 따라 스타트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아비간트(Avegant)는 글리프(Glyph)라는 VR헤드셋을 선보였는데, 이는 사용자의 망막에 바로 영상을 투사하는 가상 망막 디스플레이(Virtual Retinal Display)라는 기술을 사용하며 오디오 감상용 헤드폰으로도 이용 가능하도록 만들어진 제품이다. 글리프는 2016년 CES에서 최고 제품상(Best of CES)을 수상하기도 했다.특이한 사항은 국내 기업인 NHN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 NHN인베스트먼트가 인텔캐피털 등과 함께 2015년 8월 아비간트에 2,400만 달러를 투자했다는 점이다. NHN인베스트먼트는 지난 11월에도 미국의 안구추적(eye tracking) 전문기업 아이플루언스(Eyefluence)에 다른 투자자들과 함께 1,4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안구추적 기술은 눈동자의 움직임을 감지해 이를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기술인데, 앞으로 VR헤드셋에서 사용될 중요한 기술 중 하나로 평가 받고 있다.


사용자의 시각을 장악해 가상공간을 보여주는 VR헤드셋뿐만 아니라, 사용자의 동작을 감지해 이를 가상공간에서의 행동에 반영하는 동작인식 기반의 주변기기도 시장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버추익스(Virtuix)의 옴니(Omni)와 사이버리스(Cyberith)의 버추얼라이저(Virtualizer)다. 이들 제품은 러닝머신과 흡사하게 생긴 기기인데, 걷거나 뛰는 등 각종 동작을 인식함으로써 사용자와의 탁월한 상호작용을 제공하고 몰입감을 증대시킨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보다 생생한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가상현실 시장의 전망과 이슈


비즈니스 관점에서 볼 때 가상현실은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다. 단지 VR헤드셋이나 관련 주변기기의 매출보다는 가상공간에서 사용자들이 소비하는 시간과 비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존 오프라인 및 온라인의 비즈니스 모델과 수익 모델 대부분을 가상현실에서 구현할 수 있다. 특히 명백한 킬러앱인 게임, 성인물 등을 미끼로 사람들이 가상현실을 경험하면서 빠져들게 될 것이고, 이를 기반으로 다양한 비즈니스가 확장되는 형태로 시장이 커져나갈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가상현실 플랫폼(VR헤드셋+개발도구+마켓플레이스)을 중심으로 이뤄지게 된다.


가상현실은 차세대 비즈니스이자 컴퓨팅 플랫폼으로서 거대한 애플리케이션 및 콘텐츠 생태계를 창출할 전망이다. 소프트웨어 업체와 콘텐츠 업체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시장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하드웨어 업체에게도 가상현실 시장은 몹시 중요하다. 현실 환경과 흡사한 가상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UHD(4K) 이상의 고해상도 디스플레이와 실시간으로 3D 오브젝트를 처리할 수 있는 강력한 컴퓨팅 파워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인 플랫폼은 반드시 생태계를 만들어 낸다. 바꾸어 말하면, 아무리 많은 기능을 제공하고 기술적으로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선순환이 되는 생태계를 구축하지 못한 플랫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반면에 가상현실 플랫폼을 장악한 기업은 시장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높은 수익을 창출하는 ‘승자독식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다. 가상현실 시장에 장밋빛 전망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가상현실 시장이 활성화됨에 따라 적지 않은 사회적 부작용도 발생할 것이다. 왜냐하면 가상현실은 사용자에 강한 말초적 자극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에 빠져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는 등의 중독 현상이 사회적 문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시점에서 가상현실 시장의 확대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높은 구매비용이다. 2016년 3월 글로벌 게임 미디어 게이머네트워크(Gamer Network)가 여러 게이머 웹사이트의 사용자 1만4,000여명을 대상으로 VR헤드셋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단지 15%의 사용자만이 VR헤드셋을 구매할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 다.3 OSVR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VR헤드셋을 구매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60%의 응답자들이 가격을 꼽았다. 22%의 응답자들이 사용 가능한 게임의 수를 꼽았으며, 하드웨어 스펙을 꼽은 응답자는 18% 정도였다.


리프트의 정식 출시 가격은 예상과는 달리 599달러라는 높은 가격으로 결정됐다. 바이브는 리프트보다도 비싼 799달러로 정식 출시 가격이 정해졌다. 더군다나 리프트나 바이브는 고성능의 그래픽 카드와 CPU를 탑재한 PC를 필요로 한다. 리프트 인증을 받은 PC의 최저가는 949달러다. 여기에 VR헤드셋 구매 비용을 더할 경우 가정에서 가상현실을 즐기기 위해서는 최소 1,500달러가 필요한 상황이다. VR헤드셋의 보급을 위해서는 구매비용이 대폭 내려가야 할 것이다.


정리하면, ‘플랫폼’은 가상현실 시장에서 어떤 기업이 승자가 될 것인가를 판단하는 가늠자이고 ‘구매비용’은 가상현실의 대중화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자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볼 수 있다. 앞으로 기업들은 플랫폼의 승자가 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될 것이고, 그러한 경쟁을 통해 구매비용도 점차 내려가게 될 것이다. 2016년은 가상현실 대중화의 기준점이다. 지금까지 등장한 그 어떤 기술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강렬한 자극을 제공하는 가상현실 시대의 서막이 지금 막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