社會

이런 글들을 보니 아직도 희망은 있는 것 같다

이강기 2016. 12. 9. 08:47

[독자의 글] 증오에 빠지지 말고 '박근혜 이후' 고민할 때

    조선일보, 입력 : 2016.12.09 03:06

    국정농단 & 탄핵정국

    우리 사회를 깊은 좌절과 혼돈에 빠뜨린 국정 농단 및 탄핵 정국과 관련해 수많은 독자가 분노와 우려의 글을 보내오고 있습니다. 초기에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참담한 실망의 표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근래에는 이런 상황에서도 제 잇속만 챙기려는 정치권에 대한 개탄, 그리고 국민의 과도한 분노가 자칫 우리의 내일까지 어둡게 만드는 것 아니냐는 걱정의 글이 늘고 있습니다. ㅡ편집자 주


    ■우리는 법치주의 정신을 잃어버렸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의 하나인 법치주의 정신이 타오르는 분노와 격정 속으로 함몰돼 버렸다. 탄핵의 소용돌이 속에 인격을 말살하는 비윤리적 언행들이 묵과되는 패륜적 혁명기를 맞고 있다. 산 자를 죽은 아비 옆에 생매장하자는 발언에도 누구 하나 이의를 달지 않는 이상한 관용까지 자리 잡는 서글픈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더욱 불안한 것은 이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불확실성 때문이다.

    서슬 퍼런 군사정권이나 포스트모던 정권 때도 저항의 열풍은 있었지만 지금처럼 대동적으로 패륜이 용인되진 않았다. 사이버 세계에서 후안무치 표현을 일삼던 집단의 일부가 모습을 드러내 그들의 부도덕을 현실의 부조리와 융해시키는 것 아닌가 걱정스럽다.

    이제 일탈한 지도층에 밀려 숨죽여 온 진정한 지도층 세력이 부상해야 한다. 건전한 지도 세력이 돌아와 '정의의 귀환'을 선포할 시점이다. 보수 지성들이 다시 나와 시대를 이끌어 달라. 그들이 이성(理性)의 시대를 열어야 한다. 이 간절함은 현재의 부조리를 징검다리 삼아 또 다른 부조리가 기지개를 켜며 나라를 위해(危害)하는 악순환이 이어지지 않길 바라는 위기의식 때문이다.

    충신이 하나둘 사라진 자리를 간신들이 채운 사이에 나라는 피폐하게 변하고, 소박한 민주주의의 함성에 편승해 새로 왕 노릇 하려는 자들이 일군 혼돈의 회오리가 역겹다. 이제 탄핵이라는 국민적 분노가 지나고 난 자리를 건전한 이성이 감싸지 않는다면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참어른들이 일어나주기 바란다. ㅡ전종택 미국 버지니아주

    ■대통령의 통치권 위기가 보수의 책임으로 덧칠되고 있다. '보수 위기' '보수 몰락' '가짜 보수'라며 책임을 전가한다. 그러나 현 사태는 국정 운영의 문제이며, 보수 이념과는 무관하다. 보수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견강부회이다.

    역사적으로 보수 정치 이념은 안정 속 개혁, 도덕적 엄격성 등을 말한다. 현대적 개념은 정부 통제의 최소화, 개인주의 극대화, 자유기업 경쟁 강조, 선성장 후배분, 적대국에 대한 강경론 등이다. 이에 반해 진보 이념은 정부 통제를 통한 빈부 불평등 해소, 사회복지 강화, 적대국에 대한 유화론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므로 촛불 시위와 탄핵 함성은 보수 이념과 상관없다. 요사스러운 최순실의 국정 농단과 그에 넘어간 대통령에 대한 분노의 폭발인 것이다. 시위 현장에서 한 50대 남성은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화가 나서 나왔다"며 "이 사건에는 진보·보수가 없다"고 말했다. 20대 청년은 "이 기회에 사회주의 혁명 같은 황당한 주장을 펼치려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러 나온 게 아니다"라고 항의했다. 6차례 시위 모두 보수 거부와는 상관없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보아도 보수 가치의 시대이다. 남유럽·프랑스·미국·남미 국가들에서도 확인됐다. 우리도 어느 때보다 보수가 요구된다. 지난 대선 때의 무상복지 포퓰리즘은 기만임이 입증됐다. 선성장 후배분의 보수 이념이 타당함을 뜻한다.

    대북 관계에서도 6·25 이후 최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보수적 경계와 강경 대응이 절실하다. 대통령의 실정은 단죄돼 마땅하나, 보수의 가치가 한층 소중한 시기임을 잊어선 안 된다. ㅡ정용석 단국대 정외과 명예교수

    ■우리는 혼란의 시기에 있다. 일상이 무너졌다. 학생은 펜을 놓았고, 직장인은 휴일을 반납한 채 거리로 나왔다. 분노한 이유는 한 가지이다. '도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자신과 주변의 잇속 챙기기에 바빴다. 많은 예산이 문화융성이라는 포장을 두르고 누군가의 뱃속을 채웠다. 우리 손으로 뽑은 나라의 대표와 정부에 대한 믿음은 산산이 깨졌다. 지금은 '정치'를 논할 시기가 아니다. 우리가 찾아야 할 것은 도리이다. 마땅히 해야 할 바른길 말이다.

    책상에 머리를 박은 채 삶의 반을 보냈다. 꿈에 그리던 대학생이 되었고 설렘을 가지고 세상을 보았다. 세상은 책에서 배우던 것과 달랐다. 국민이 주권을 갖지 못한 채 농락당하고 있었다. 정치는 이권 다툼으로 변질돼 있었다. 놀라고 화도 났지만 먼저 의문이 들었다. 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가.

    이제 국민에게 일상을 되찾아주어야 한다. 촛불 대신 풍선을, 팻말 대신 차 한잔의 여유를 주어야 한다. 오늘(9일) 국회에서 탄핵 표결이 이뤄진다. 국민의 뜻은 명확하다. 죄를 지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 그 대상이 대통령이어도 마찬가지이다. ㅡ임경 중앙대 간호학과

    ■'촛불'의 위력 앞에 박근혜 대통령은 끝났다. 대한민국의 모든 정당도 끝났다. 수권 능력이 없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고, 수권 능력이 없는 정당이 여당 노릇을 했으니 당연한 결과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야당은 어떤가. 촛불에만 기세등등하게 올라탔을 뿐 역시 수권 능력이 없음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나라가 아니고, 여당이나 야당의 나라도 아니다.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5000만 국민의 나라다. 촛불을 든 사람들만의 나라인 것도 아니다. 촛불만 가지고는 경제가 회복되지 않고, 국가 안보를 책임져주지도 못한다. 오히려 지나치면 그 반대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이제 우리는 '박근혜, 그 후'를 생각해야 한다. 구체적 결과야 어찌 되든 상관없이 박근혜 시대는 끝났다. 따라서 그 후를 어떻게 할 것이냐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선동적이고 과격한 구호로 민심에 가볍게 올라타려는 사람들에게 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를 맡길 수 있는가. 정파를 초월한 지혜로운 원로들이 중심을 잡아주든지,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충심으로 나라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나타나 무언가 새로운 희망의 싹을 보여 달라. ㅡ정선 저술가

    ■추악한 배신과 증오의 정치에 충격을 느낀다. 측근들은 평소 녹음한 자료 등을 근거로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깜냥도 안 되는 인물들을 곁에 둔 대통령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이정현 여당 대표가 오히려 책무를 다하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될 정도이다. 자신의 영욕만을 위해 수시로 당적을 바꾸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이들보다야 낫지 않은가.

    대권 주자들의 행태는 살벌한 군중 재판을 이끄는 것 같다. "여러분 손으로 (대통령) 무덤을 파자" "탄핵안이 부결되면 국회와 청와대가 횃불에 탈 것" "대권을 포기하고 탄핵에만 전념할 것"이라는 '투쟁 언어'들은 듣기 섬뜩하다. 야당의 두 주자가 각자 대통령 적임자라 자처하며 벌이는 설전도 볼썽사납다.

    천박한 '증오 상업주의'가 횡행하는 형국이다. 청소년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걱정이다. 정치인들은 지금의 국민 함성이 정치권 전체를 향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국민이 자신들 편이라는 생각은 착각이다. 미국 대선에서 보듯 우리도 속내를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나라에 대한 관심은 깊고 판단은 현명하다.

    우리 헌법은 무죄추정 원칙을 명시하고 있다. 하물며 대상이 대통령이다. 특검 수사와 청문회를 차분히 지켜보면 안 되는가. 많은 사람이 극심한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 증오와 분노를 가라앉히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자. ㅡ이세정 수원중앙교회 전도사

    ■오늘(9일)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 표결을 한다. 그 결과 못잖게 중요한 것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반복되지 않게 제도를 정비하는 것이라고 본다. 개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먼저 국민소환제의 도입이다. 국민소환제는 부적격자를 유권자가 임기 이전에 해임하는 것이다. 현재는 시장·군수 등에 한해 주민소환제가 실시되고 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 등 주요 선출직 모두로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투표를 통해 시행했으면 한다. '여소야대' 혹은 '야소여대' 정국에 따라 국민 다수의 뜻과 무관한 탄핵 소추가 이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대통령 5년 단임제의 개헌이다. 단임제는 독재 방지에 효과적이라고 한다. 하지만 근래의 역사가 증명하듯 문제점들을 더는 용납할 수 없는 지경에 왔다. 정책 일관성 부족, 조기 레임덕, 무책임한 정치가 대표적 폐해이다. 그 대안이 4년 중임제, 의원내각제, 그리고 이를 혼합한 분권형 대통령제 등이다. 정략적 개헌이 아닌, 국가와 민족을 위한 개헌이 필요한 시점이다. ㅡ박수진 제주대 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