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2009년 3월, 동아일보에서 퍼 온 글임)
“익살-장난기 가득한 김삿갓詩 45년 짝사랑”
- 동아일보
- 2009-03-27 10:12:14
40여 년간 한국 사람과 문학작품을 신앙과 삶의 애송시로 여기며 살아온 케빈 오록 신부. 그는 “2007년 김삿갓 탄생 200주년인데도 그를 재조명하는 작업이 드물어 아쉬웠다”며 “한국인들이 나보다 김삿갓을 더 사랑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원대연 기자 |
《松松柏柏巖巖回(송송백백암암회)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돌아서니
Red pines, white pines; I wind my way between the rocks
水水山山處處奇(수수산산처처기) 물이면 물, 산이면 산, 곳곳마다 기이하도다
the world full of the wonder of mountains and waters.》
방랑시인으로 잘 알려진 김삿갓(본명 김병연·1807∼1863)의 한시 ‘금강산’과 영문 번역이다.
“송송백백…. 나무와 바위 사이를 걷고 있는 김삿갓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까. 찰나에 느낀 세상의 신비가 한눈에 보이는 듯합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국내 최초의 외국인 국문학 박사인 케빈 오록 신부(70·골롬반외방선교회)가 40여 년에 걸친 김삿갓과의 오랜 ‘짝사랑’에 마침표를 찍었다. 최근 김삿갓의 시 80수와 시 세계에 대한 글을 실은 ‘Selected poems of Kimsakkat’(가제)의 번역을 끝내고 출간을 준비하고 있는 것.
○ 1964년 선교사로 입국… ‘광장’등 해외 소개
“1964년부터 연세대에서 한국말과 국문학을 공부하다 김삿갓을 처음 접했으니까 (그를) 안 지는 40년이 넘었죠.(웃음)”
그는 1977년부터 경희대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광장’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 우리 문학작품을 영어로 번역해 소개했다. 시는 신라 향가부터 고려가요, 현대시까지 2000여 수를 번역했다.
그렇다면 김삿갓을 제대로 만나는 데 시간이 너무 흐른 것은 아닐까. 나름대로 ‘내공’이 쌓였다고 생각해 김삿갓에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번역가의 처지에서 김삿갓은 장난기가 가득한 비운의 천재였다. 그는 밥을 얻으러 갔던 김삿갓이 쉬어 빠진 밥을 받은 뒤 읊었다는 ‘스무나무 아래’를 예로 들었다.
“김삿갓의 시는 이중적인 표현이 많습니다. 한자와 우리말(한 국어)로 보면 의미가 달라지곤 해요. 이십수하삼십객(二十樹下三十客) 사십가중오십식(四十家中五十食)∼. 스무(二十) 나무 밑 서른(三十·슬픈) 나그네, 마흔(四十·망할) 놈의 집구석에서 쉰(五十) 밥을 주는구나. 이러니 두 손 들었죠.”
그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은 뜻밖에 고려시대 고승 혜심 스님(1178∼1234)이다. 이미 ‘작은 연못’이라는 선시(禪詩)를 번역했다.
‘바람 없이 물결이 일지 않으면/삼라만상보다 더 많은 것이 비치네/어찌 많은 말이 필요하랴/바라보면 이미 뜻이 통하네(No wind, no swell/a world so various opens before my eyes/No need for a lot of words/to look is to see).’
○ “시는 찰나에 깨닫는 禪의 정신과 같아”
“시의 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선(禪)의 정신, 순간적인 깨달음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억지로 문제 풀 듯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찰나에 그 에센스가 느껴지는 겁니다. 진리는 붙잡자마자 날아가는 겁니다.”
소명(召命)을 받은 가톨릭 사제의 말로 어울리는 것일까. 그는 불교를 체계적으로 공부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선불교의 예를 들어 설명했다.
“하느님의 신비함은 말로 표현하기도 전달하기도 어렵죠. (사람들이)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는것은 달을 지적하는 손가락과 같습니다. 그 손가락만 보면 달을 놓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간의 한계 속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하느님은 매일 다르기도 하고, 새롭게 발견될 수 있습니다.”
인터뷰 중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전 얘기를 꺼내며 “우리나라가 이기고 있나” 하고 묻는 오록 신부. 1963년 사제가 된 그는 이듬해 한국으로 건너와 45년을 지냈다. 초창기 다른 신부들이 선교 위주로 활동하고 있어 한 명쯤은 문화의 소통자가 되고 싶었다. 아일랜드 청년이 그의 평생을 바쳐 노래해야 할 새로운 시는 한국과 한국인이 쓴 문학 작품이었다.
그가 김삿갓과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우선 막걸리를 시키고. 목을 축인 뒤 선생님께 시 한 수 읊어달라고 부탁해야죠.”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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