天文學

우주 빈 공간 가득채운 미지의 `암흑물질` 누구냐 넌?

이강기 2017. 4. 8. 10:40

[Science &] 우주 빈 공간 가득채운 미지의 `암흑물질` 누구냐 넌?

  • 원호섭 기자
  • 매일경제
  • 입력 : 2017.04.07 15:40:19   수정 : 2017.04.07 15:44:58

 기사의 0번째 이미지
▶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무게 500g인 커다란 상자와 개당 200g인 사과 5개가 있다. 사과를 상자에 담고 저울에 올려놓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저울의 눈금은 1.5㎏을 가리켜야 한다. 이상하다.
저울이 5㎏을 가리킨다. 상자를 열어봐도 사과 이외엔 없다. 저울은 정상이다. 결론은 하나. 상자와 사과 사이에 존재하는 빈 공간에 무엇인가 존재하는 셈이다. 이런 일이 가능할까. 믿지 못하겠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가 지금 이런 상황이다. 과학자들은 빈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미지의 무언가에 '암흑물질(Dark Matter)'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탐색에 나섰다.

◆ 1930년대 예측한 암흑물질

지난해 크리스마스.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는 분위기에 과학기술계는 한 과학자의 죽음을 애도했다.

암흑물질의 존재를 예측했던 미국 천문학자 베라 쿠퍼 루빈. 그는 1960년대 은하의 회전운동을 연구하면서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은하의 속도가 이론값보다 빠르다는 것을 관측한 것. 태양계는 태양을 중심으로 8개 행성이 공전하고 있다. 태양과 가장 가까운 수성은 태양의 중력을 가장 많이 받는 만큼 빠르게 회전해야만 중력과 평형을 이루며 자기 궤도를 공전한다. 반대로 가장 멀리 있는 해왕성은 태양 중력의 영향을 덜 받기 때문에 천천히 돌아도 된다. 수성의 공전 속도는 초속 48㎞, 해왕성은 초속 5㎞다. 이 같은 평형 운동은 모든 우주에 적용돼야만 한다. 하지만 루빈 박사의 관측에 따르면 회전하는 나선 은하의 경우 중심에서 멀어질수록 속도가 빨라졌다.

1975년 루빈 박사는 미국 천문학회에 참석해 "이 현상은 보이지 않는 암흑물질 때문"이라고 발표했다. 그의 주장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은하의 바깥쪽에는 암흑물질의 분포가 지배적으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이론이 힘을 받고 있다. 사실 암흑물질은 1930년대 프리츠 츠비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 교수가 은하의 질량을 관측하면서 예견했던 물질이었다.

츠비키 교수는 1000개 은하의 움직임이 마치 7000개 은하가 존재하는 것처럼 운동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무엇인가가 우주에 존재한다"고 했다. 학계에선 그의 주장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 암흑물질 없었다면 인류도 없어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인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암흑물질은 존재한다. 137억년 전 '빅뱅'과 함께 우주가 탄생했을 때 우주의 온도는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우주가 점점 팽창하면서 온도는 떨어지기 시작했고 초기 우주의 암흑물질은 극렬하게 상호작용하는 전자, 광자 등 다른 입자들과 분리되며 지금까지 존재해왔다. 이혜성 기초과학연구원(IBS) 순수물리이론연구단 연구위원은 "암흑물질은 실질적으로 오로지 중력을 통해서만 확인된다"며 "그 외의 어떤 물질과 만나도 통과하거나 지나쳐버린다"고 설명했다.

이렇듯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 입자와의 상호작용은 극히 작지만 현재 인류가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암흑물질에서 찾는 과학자가 많다.

빅뱅 이후 생긴 작은 입자들이 우주 공간을 떠돌다가 뭉치면서 최초의 별이 생겨났는데 이를 도운 것이 바로 암흑물질이다. 우주에 분포하던 암흑물질이 보이지 않는 '웅덩이'를 만들었고 여기에 입자들이 모이면서 별이 탄생한 것이다. 이후 수명이 다한 별은 폭발해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졌고 이것이 지구를, 그리고 인류를 탄생하게 한 원인이었다.

지난해 리사 랜들 미국 하버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이색적인 주장을 하기도 했다. 그는 저서 '암흑물질과 공룡'에서 6600만년 전 공룡의 멸종이 암흑물질과 연관이 있다고 주장했다.

랜들 교수는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기자회견을 열고 "은하 내 원반은 이중으로 돼 있는데 이 중 하나가 암흑물질"이라며 "은하계를 공전하는 태양은 이중 원반을 3200만년 주기로 지나는데 이때 암흑물질의 영향을 받아 태양계 끝에 있는 천체는 궤도를 이탈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천체가 궤도를 잃고 지구로 향하면서 공룡이 멸종됐다는 가설이다.

◆ 암흑물질 후보 춘추전국시대

과학자들은 암흑물질 후보로 크게 세 가지 물질을 가정했다. 윔프(WIMP)와 액시온, 비활성 중성미자가 대표적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윔프다. '약하게 상호작용하며 중력을 받고 있는 물질'이라는 뜻의 윔프는 1998년 이탈리아 '다마(DAMA)' 연구진이 찾았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다마 연구진의 실험장비는 지구와 함께 태양을 공전하는데 윔프가 우주 공간에서 일정하게 날아오는 만큼 지구의 위치에 따라 윔프와 만나는 양이 달라진다. 이를 계절 주기로 관측에 성공했다는 것이 다마의 주장이다. 하지만 아직 다른 연구실에서 재현되지 않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IBS 연구진은 지하 700m에 위치한 강원도 양양 양수발전소에 센서를 설치하고 이를 재현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관측에도 불구하고 밝혀지지 않아 일각에서는 "윔프는 힘을 잃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IBS 연구진은 새로운 '포털'을 도입해 액시온 검출에 한발 더 다가섰다. 포털은 암흑물질 입자와 인류가 알고 있는 입자가 약하게나마 상호작용할 수 있는 통로를 말한다. 연구진은 새로운 포털에서 액시온과 또 다른 가상 입자인 '암흑광자'가 연결 가능함을 보였다. 이혜성 연구위원은 "기존에 탐색하는 관측 범위를 늘리거나 기존 실험을 새롭게 해석하는 토대가 마련됐다"며 "현재 새로운 이론을 기반으로 한 실험을 구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암흑물질 후보인 '비활성 중성미자'에 대한 연구도 활발하다.

이재승 IBS 지하실험연구단 연구위원은 영광 한빛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에서 발생하는 중성미자의 진동 현상을 관측해 비활성 중성미자가 존재하지 않는 영역을 밝혀냈다. 비록 비활성 중성미자는 발견하지 못했지만 존재할 수 있는 영역을 제한한 실험 결과는 향후 진행될 실험 설계 시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

이현수 IBS 지하실험연구단 부연구단장은 "암흑물질이 존재한다는 것은 이제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심지어 대량으로 우주에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주의 탄생조차 암흑물질이 없으면 설명할 수 없는 만큼 이를 발견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나갈것"이라고 덧붙였다.

[원호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