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治, 外交

盧와 文

이강기 2017. 5. 24. 08:01

[손현덕 칼럼] 盧와 文

  • 손현덕
  • 입력 : 2017.05.23 17:18:11   수정 :2017.05.23 19:02:16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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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처음으로 법정에 모습을 드러낸 23일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가 되는 날이었습니다. 봉하마을에서 대대적인 추도식이 열렸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직접 행사에 참석해 인사말씀을 하셨더군요. 감회가 남다르셨을 걸로 압니다.

때마침 내일이면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됩니다. 제목은 `노무현입니다`. 운이 좋게도 저는 열흘 전쯤 이 영화를 미리 관람했습니다. 시사회에 초청을 받아 갔는데 영화 관람 전에 티슈를 나눠주더군요. 제작진이 "아마도 이게 필요할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영화를 보고 있자면 코끝이 찡해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제 옆자리에 앉아있던 어느 젊은 여성분은 영화 상영 내내 훌쩍거리면서 정말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개인적인 인연을 먼저 밝히자면 전 노 전 대통령 집권 초에 청와대를 출입했습니다.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있었고 생각이 다른 부분도 많았지만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을 취재하면서 그분의 삶과 인생철학, 통치 스타일을 이해하고 공감한 적도 많았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저만이 간직한 당시의 기억들이 되살아났습니다. 지금 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생각하면서 문재인 대통령을 봅니다. 매일매일 대통령이 하시는 말씀이나 행동을 보고 있자면 14년 전 기억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제 마음속의 노 전 대통령은 낭만주의자입니다. 순수한 생각으로 세상을 바꿔보려고 했지요. 역대 어느 대통령, 어느 정치인에게도 없던 열정이요, 미학입니다. 그런 생각이 현실의 벽에 부닥친 거지요. 정작 하고 싶은 건 뭐 하나 제대로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속에선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많았지요. 그때마다 특유의 독설이 나왔습니다. 특히 본인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릴라치면 거의 반사적으로 과격한 언어가 튀어나왔습니다. "대통령 안 될 사람이 대통령 됐다. 그래 한번 흔들어보자는 거지"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런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참여정부 때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낸 유시민 씨가 위로의 말을 건넵니다. "대통령님 콤플렉스 있으시죠? 그런데 그게 뭔 상관입니까. 대통령께서는 사람 끌어당기는 힘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영화에 이 대목이 나옵니다.

지금 대통령께서는 말에 독기가 없고 반대 세력과도 불필요한 마찰을 피하고 있습니다. 화가 나면 혼자 생각에 잠기고, 스트레스 받으면 산책이나 노동으로 그걸 달래시지요. 그래서인지 보다 여유 있고, 세련되고 업그레이드된 것 같습니다. 어쩌면 노 전 대통령이 반면교사가 됐지 않았겠는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노 전 대통령은 신념이 강하고 타협을 싫어했던 분입니다. 바보 노무현이라고 했지요. 본인의 어젠더를 끝까지 밀어붙이려고 했습니다. 참모들이 설득이 안 되면 관저로 불러 차트까지 그려 가면서 몇 시간이고 설명을 했던 적도 있습니다. 반면에 대통령께서는 오히려 주변 사람의 말을 잘 듣습니다. 말이 쉬워 경청이지 그건 훈련이고 습관입니다. 대통령은 그런 장점을 지니셨습니다.

제가 노 전 대통령을 가장 높게 평가한 부분은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면 본인의 지지층을 배신하면서까지 밀어붙이는 용기였습니다. 재임 중 법인세를 인하했습니다. 공약을 뒤집는다느니, 무책임하다느니 하면서 반대가 심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기업이 세계와 경쟁하기 위해선 불가피하다며 강행했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선 얼마나 반대했습니까? 참모진도 안 된다고 했지요. 그래도 하셨습니다. 저는 대통령에게 묻고 싶습니다. "만약 국가를 위해 필요하다면 본인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배신할 수 있겠는가"라고. "국민 여론이 아니라고 하는데도 국가의 미래를 위해 필요하다면 강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마음에 걸리는 대목이 하나 있습니다. 당선 직후 연설 때 "국민이 이기는 나라 만들겠다"고 하신 부분입니다. 저는 대통령직을 수행하다 보면 어떨 땐 국민을 이겨야 할 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막스 베버가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말한 `책임윤리` 아니겠습니까?

마지막으로 한 가지 더. 노 전 대통령은 이미지 정치를 싫어했습니다. 재래시장 방문 같은 행사는 `쇼`라고 했습니다. 그럴 시간 있으면 서민을 위한 정책 개발에 더 시간을 쏟는 게 낫다고 했습니다.

저는 100% 찬성입니다. 시장 가서 떡볶이 먹는다고 서민의 삶이 개선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통령께서도 이 점만은 본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바쁜 일정에 부디 건강 잘 챙기시기 바랍니다.

[손현덕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