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노벨상 기대하려면 한평생 한 우물 파야
지난해 우리나라 R&D 투자비 규모는 19조1000억원으로 세계 6위, 국내총생산(GDP)에서 R&D 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4.23%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지난 10여 년간 국가 R&D 투자 규모가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국가 R&D 경쟁력 순위가 2009년 11위를 기록한 뒤 2015년 19위로 하락한 것은 매우 안타깝다.
우리나라가 본격적인 과학진흥정책을 추진해온 지난 50여 년 동안 국가 R&D는 추격형 응용연구를 통해 놀라운 성과를 만들어 왔고, 그 결과를 전 세계인에게 `한강의 기적`으로 입증한 바 있다. 그러나 10년 후, 더 나아가 20~30년 후의 먹거리를 준비해야 하는 대전환기인 지금, R&D에 요구되는 가치는 퍼스트무버(First-Mover)형 연구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한 원천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국가 R&D 경쟁력 저하 원인 중 하나로 실패를 두려워하는 도전적 연구 부족을 지적하기도 한다.
2001년 이후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일본의 대표적인 기초과학연구소 `리켄(RIKEN·理硏)`은 수십 년에 걸친 장기투자로 탄탄한 기초과학 연구 기반을 구축한 것으로 유명하다. 리켄에서는 연구의 결과물이 약 30년이 지난 뒤에야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면서 진행하는 연구가 적지 않다고 알려져 있다. 어떤 방식으로 연구자를 지원하느냐는 질문에 "연구자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하도록 한다"는 마쓰모토 히로시 이사장의 답변은 지속적인 투자와 함께 연구자가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연구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우리나라도 기초 연구 분야 투자와 지원은 지속적으로 증가해 올해 정부 R&D 예산 가운데 기초 연구 관련 분야 연구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40.2%로 크게 확대되었다. 기초 연구 분야 투자가 줄면 산업과 고용을 창출해 온 핵심동력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미래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원천기술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초 연구에서 그 어느 분야보다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지원이 중요하다.
연구자가 개인의 학문적 호기심에 기반해 창의성 있는 연구주제를 선정하고 나아가 장기적이고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연구와 공부가 `즐거운` 도전적 연구문화가 정착된다면 세계를 선도할 연구 성과는 저절로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연구자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연구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연구계획서를 간소화하여 50쪽 넘게 써내야 했던 연구계획서 분량을 5쪽 이내로 확 줄였다. 또한 젊은 과학자들이 안정적으로 연구에 매진할 수 있도록 `생애 첫 연구비` 제도를 올해부터 시작했다. 상반기에 응모한 과학자의 평균 81.1%가 선정되었다. 모두 연구자 스스로 하고 싶은 자유공모형 과제에 지원된다.
R&D 분야에서 훌륭한 연구자를 키우고 뛰어난 연구 성과를 만들어내는 가장 간단하지만 어려운 비법은 바로 `인내심`이다. 또 이러한 인내심은 과학이 우리 일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일구는 기반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과학에 늘 관심을 가지는 환경에서 비롯된다. 연구자가 실패의 경험에서 배우고 한 발 더 발전해가는 계기로 삼아 `한 우물 파기` 연구가 가능하도록 우리 정부와 사회에 모두 `기다릴 줄 아는` 풍토, 그리고 과학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해본다.
[조무제 한국연구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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