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治, 外交

한국의 ‘주인’ 바뀌고 있다?

이강기 2018. 1. 7. 09:23

한국의 ‘주인’ 바뀌고 있다?

'보수우파가 궤멸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우파세력의 입지는 계속 좁아지고 있다. 과연 보수우파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백승구  월간조선 기자                         


입력 : 2018.01.06

                 




붐비는 서울 중구 명동거리. 사진=조선DB
    
정치컨설팅그룹 ‘민’을 운영하는 정치컨설턴트 박성민 대표가 최근 한 일간지에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는 칼럼을 기고했다. 2016년에 출간된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는 책 제목을 차용(借用)했다. 책은 건국 이후 첫 주류세력의 교체와 미국 문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다루고 있는데, 박 대표는 ‘미국’을 ‘한국’으로 바꿔 현(現) 대한민국 정치 지형과 사회변화를 분석했다. 그는 “한국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고 단언했다.
      
“건국 이후든, 해방 이후든 주류 교체는 (정권교체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혁명적 사건이다. ‘이 나라는 내 나라’라는 인식이 강한 보수로서는 상상할 수도, 인정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7개 기반 모두 흔들려...최근에는 ‘능력도 없다’가 추가돼”
       
박성민 대표는 “박근혜가 몰락하자 보수의 아우라도 사라졌다”고 했다.
        
“그런 보수의 나라에서 지금 주류가 바뀌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제국 같았던 보수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 붕괴의 조짐을 눈치 챈 사람들은 있었을 테지만 이렇게 빠른 속도로, 이렇게 무기력하게 몰락할지는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그러나 역사를 보면 빈틈없이 강고해 보였던 지배권력은 대개 그런 식으로 한순간에 와해적 최후를 맞았다. 히말라야가 무너지면 에베레스트의 아우라도 사라진다. 보수의 페르소나 박근혜가 몰락하자 보수의 아우라도 사라졌다.”
   
그는 보수 세력의 큰 버팀목이었던 지식인, 보수 언론, 문화, 재벌, 권력기관, 기독교, 보수 정당의 물적 토대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60년간 보수 우위 시대를 지탱해온 7개의 기반이 모두 흔들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담론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보수 지식을 찾아보기 힘들다”고도 했다.
         
“젊은이들에게 영향력이 있는 문화계 인사들은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광장에서 보수 권력을 조롱한다. 숫자가 너무 많아 (보수 정권은) 리스트를 만들고 관리하기도 버거웠다. 존경받는 (보수) 언론인, 종교인, 기업인도 보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에게 보수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면 “존경할 인물이 없다” “부패했다” “촌스럽다”는 것이었는데 최근에는 “능력도 없다”가 추가됐다.”
       
   
뒤바뀐 여론조사 결과
     
이를 뒷받침하듯 최근 들어 ‘제1 야당 지지율이 바뀐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한국갤럽이 5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할 경우 통합신당의 지지율이 17%로 더불어민주당 44%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은 9%로 3위로 밀려났다. 6%를 차지한 정의당과 별반 차이가 없다. 물론 지지 정당이 없거나 의견을 유보하겠다는 비율이 24%에 달한다. 그러나 한국의 보수정당을 자처하는 자유한국당으로서는 내심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걸까. 박성민 대표는 ‘선거’에서 원인을 찾았다.
       
“보수가 서서히 몰락한 이유는 ‘선거’ 때문이다. 선거는 보수의 가장 약한 고리다. 다른 영역의 수구·보수 카르텔이 강고했던 것에 비하면 비교적 평평했던 선거는 치를 때마다 보수의 성을 조금씩 무너뜨려왔다. 오는 6·13 지방선거에서는 아마도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 즉 ‘북한에는 강경하고 시장에는 관대한’ 전통적 보수 세력의 몰락을 볼 수도 있다.”
        
          
“세 번째 30% 그룹의 숨은 분노”
    
박 대표는 한국의 유권자 지형을 ‘30% : 20% : 30% : 20%’로 분류했다. 그는 맨 앞의 30%를 “2007년 정동영과 권영길의 지지율 합”으로 봤다. 첫 번째 30%와 두 번째 20%를 이른바 ‘진보좌파성향’ 세력으로 볼 수 있다. 마지막 20%는 ‘태극기세력’ 즉 강성(强性) 보수우파세력이다.
      
눈여겨봐야 할 세력은 바로 세 번째 ‘30%’ 그룹. 박성민 대표는 세 번째 30%가 대한민국의 지형을 바꾸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 대표는 “이들을 중도 보수, 합리적 보수, 중도 우파, 자유주의 우파 등 뭐라 부르든 현재 한국 정치 지형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집단”이라며 “적어도 다음 대선(大選)까지는 이들의 선택이 정치 지형을 좌우할 것”이라 내다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구속을 지지하는 비율이 80%로 나오는 것은, 앞의 세 세력(30%+20%+30%)이 손을 잡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이 여전히 70%라는 현실에는 ‘홧김에 서방질’하는 중도 보수의 풀리지 않은 분노가 숨어 있다”고 해석했다. 
    

“변화 읽지 못하고 혁신하지 않아”
       
그렇다면 보수의 시대는 과연 오지 않는 걸까. 박성민 대표는 “쉽지 않을 것”이라 했다. 한때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지배했던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스마트폰 시대의 새로운 강자인 애플과 삼성으로부터 패권의 지위를 다시 찾아올 가능성과 비슷하다고 했다. 노키아와 모토로라가 시대의 변화를 읽지 못하고 혁신하지 않아 한순간에 몰락한 사례를 보수 세력의 현재와 미래에 대입(代入)했다.
         
“자유주의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자유헌정론2>의 후기인 ‘나는 왜 보수주의자가 아닌가’에서 ‘보수주의적 태도의 근본적인 특징들 중 하나는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다…보수주의는 다른 방향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에…결국 속도에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비판했는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중략) 보수 세력이 분열하기 전에도 선거 지형은 점점 악화되고 있었다. 2010년 이후 모든 선거에서 20~40대 유권자층에서 보수는 한 번도 이겨 본 적이 없다. 2017년 대선 때는 50대마저 잃었다.”
        
박 대표는 “보수가 정치적 상수에서 변수로 전락했다”는 점에도 주목했다. 지난 30년간 유지돼온 민자당 對 반민자당, 한나라당 對 반한나라당, 새누리당 對 반새누리당으로 대변된 ‘보수 우위 시대’가 막을 내리고 민주당 對 반민주당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의 주류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 증거라고 박 대표는 평가했다.
       
            
‘보수우파 궤멸시대’...해법은?
    
그렇다면 보수는 이대로 주저앉아야만 하는 걸까. 박 대표는 “정치는 합리적인 사람보다는 합목적적인 사람이 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정치적 반대자들과 싸우는 건 작은 용기만 있어도 되지만 지지자들에게 욕먹는 결단은 큰 용기가 없으면 할 수 없다. 정치가 어려운 이유다. 우디 앨런이 영화 <지골로 인 뉴욕>에서 장사가 안 되는 중고서점을 폐업하면서 ‘요즘은 이런 귀한 책 찾는 놈들이 더 귀해’라고 한탄했지만 요즘은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준비가 되어 있는 정치가를 볼 수 없다. 옛날에는 위대하면 유명해졌지만 지금은 유명하면 위대해진다고 믿는 시대다. 예능의 시대, 가벼움의 시대다. 지도자도 없고, 위대함도 없다. 정치는 단순하다. 지지기반을 넓히면 살고 좁히면 죽는다. 지난 30년간 연합을 한 정치세력은 승리했고 분열한 세력은 패배했다.”
      
정치공학적 표 계산만을 염두에 둘 때, 보수 세력이 권력을 다시 잡기 위해서는 보수우파를 아우르고 정치적 이념이 다른 세력과도 ‘연합’ 또는 ‘연대’해야만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박 대표의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할 수는 없지만, 현재의 정치지형과 대한민국 사회의 흐름을 정치컨설턴트 관점에서 비교적 선명하게 그려냈다. ‘보수우파가 궤멸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현재 우파세력의 입지는 계속 좁아지고 있다. 과연 보수우파는 무엇부터 해야 할까.
        
글=백승구 월간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