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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이윤택 성추문에 작가회의, 16일만에 징계 시늉, 정의·인권 외치던 이들의 이중성

이강기 2018. 2. 23. 09:36

작가회의, 16일만에 징계 시늉… 일부는 "고은 흠결 작다"

  • 조선일보

입력 : 2018.02.23 03:02

- 고은·이윤택 회원 징계안만 상정
"고은 남자에게도 뽀뽀, 천진한 분… 지금 윤리로 매장시켜선 안돼"
'같은 좌파라 미온 대처' 지적나와

- 두 거장 실체 까발려진 연극계
어디에 줄 설지 우왕좌왕하는 중

고은(85) 시인과 이윤택(66) 연극연출가 두 원로 문인의 성추문에 대한 한국작가회의 측의 미온적 대처가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작가회의가 진보 성향 단체이고, 두 사람 역시 같은 계열로 분류되는 만큼 강경한 대처를 주저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작가회의는 1974년 반독재·민주화를 표방한 자유실천문인협의회로 출발해 1987년 민족문학작가회의로 개편됐다가 2007년 지금 명칭으로 바뀌었다. 고은은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창립 멤버이자 상임고문이고, 이윤택은 희곡 분야 회원이다.

최영미 시인의 폭로 시(詩) '괴물'을 통해 고은의 성추문이 공론화된 지 2주 넘게 지난 22일, 작가회의는 보도 자료를 내 "고은과 이윤택의 징계안을 상정 및 처리한다"고 밝혔다. 이경자 이사장과 분과장을 포함한 작가회의 집행부 16명은 21일 오후 4시부터 4시간 정도 비상대책회의를 열어 이같이 결정하고, 일탈 행위에 대한 징계 권한을 부여한 '윤리위원회'와 '성폭력피해자보호대책팀' 설치를 이사회에 제안키로 했다.

성추문에 휘말린 이윤택 연극연출가의 부산 초량동 기념 동판이 지난 19일 철거되고 있다(사진 위). 서울도서관에 자리한 고은 시인 기념관 ‘만인의 방’도 조만간 철거될 전망이다. 두 사람이 소속된 한국작가회의는 22일 “‘미투 운동’ 속에서 실명 거론된 고은과 이윤택 회원의 징계안을 상정 및 처리한다”고 밝혔지만 두 사람이 탈퇴할 경우 제재는 불가능하다.
성추문에 휘말린 이윤택 연극연출가의 부산 초량동 기념 동판이 지난 19일 철거되고 있다(사진 위). 서울도서관에 자리한 고은 시인 기념관 ‘만인의 방’도 조만간 철거될 전망이다. 두 사람이 소속된 한국작가회의는 22일 “‘미투 운동’ 속에서 실명 거론된 고은과 이윤택 회원의 징계안을 상정 및 처리한다”고 밝혔지만 두 사람이 탈퇴할 경우 제재는 불가능하다. /연합뉴스·뉴시스
다만 이번 사태를 "반(反)민주주의 구조악(惡)이자 행태악"이라 규정하면서도 즉각적 제재를 가하지는 않아 실효성 논란이 제기된다. 징계안이 3월 10일 이사회를 통과해야 회원 제명 및 자격 정지 처분을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회원이 탈퇴할 경우 징계는 불가능하다. 지난 10일 정기총회에서도 이 지적이 나왔으나 "친목 단체인 작가회의는 다른 강제력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고명철 대변인은 "향후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내릴 수 있는 징계 수위 중 가장 강한 것"이라고 했다. 고은은 이날 오후 고은재단을 통해 "작가회의 상임고문 및 모든 직함을 내려놓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작가회의 소속 한 문인은 "고은은 회사로 치면 창업주이기에 선명하게 처리하지 못한 것 같다"며 "즉각 제재를 하지 않고 말미를 줌으로써 고은에게 선택권을 넘긴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여전히 회원 간 이견도 분분하다. 작가회의 소속 한 여성 시인은 "고은 시인은 남자한테도 뽀뽀하는 천진한 분이고, 옛날 윤리와 지금의 윤리는 다른데 작은 흠으로 거장을 매장시키면 안 된다"며 작가회의 결정에 반발했다.

한편 고은은 지난 15일 단국대 석좌교수직에 이어 21일 겨레말큰사전남북공동편찬사업회 이사장직 사의를 표명한 것으로 확인됐다. 관계자는 "사업회에 누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구두 의사를 전해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논란에 대한 직접적인 입장 표명은 없는 상태다.

오태석·이윤택 성추문을 동시에 맞닥뜨린 연극계도 우왕좌왕하고 있다. 거장이라 불리던 이들의 실체가 까발려지면서 그들을 떠받들어 온 자신들의 존립 자체가 흔들린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일 이윤택을 제명한 한국연극협회가 향후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지 않는 등 소극 대응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 연극인은 "연극계가 '블랙리스트' 타도에 앞장섰지만 블랙리스트 1호 대상자라는 이윤택과 함께 블랙리스트에 같이 올라 있는 게 부끄러워진다"고 말했다.

비난 여론이 일자 '문화연예계 블랙리스트 타파와 공공성 확립을 위한 연극인회의'(블랙타파)는 21일 ' 성폭력 반대 연극인 행동'을 결성했다. 30대 여성 연극인을 주축으로 집행부를 꾸린 이들은 22일 페이스북을 통해 "그동안 연극 현장에서 다양한 층위의 폭력이 있었고, 위계적 구조에 의해 더욱 강화됐다"면서 "연극 현장의 위계와 권력은 학교의 권위와 밀착돼 연극을 시작하는 학생들에게도 그 폭력이 연결되고 있다"고 밝히며 피해 상담 창구를 마련하겠다고 했다.



정의·인권 외치던 그들의 이중성

  • 조선일보

입력 : 2018.02.23 03:02 | 수정 : 2018.02.23 03:32

["홍준표 발정제 발언땐 벌떼같더니… 여성단체냐 이념단체냐"]

한국작가회의·여성단체연합·민변 등 좌파 성향 단체들
고은·이윤택·조민기 성추문 앞엔 진영논리로 소극 대응

"그의 온갖 비도덕적 스캔들을 다 감싸 안으며 우리나라 문학의 대표로, 한국 문학의 상징으로 옹립하고 우상화한 사람들은 지금 무얼 하고 있나.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도 모른 척한 이들은 다 공범이고 주범이다."

한국 문단의 '거인'을 거침없이 질타한 젊은 시인은 옳았다. 그 무서운 '침묵의 카르텔'은 문화예술계뿐 아니라 민주와 정의, 인권을 부르짖는 시민단체들에도 두루 걸쳐 있었다. 똑같은 성범죄에도 그들은 좌우(左右) 진영 논리를 철저히 적용했다. 고은, 이윤택, 조민기에 이어 문화예술계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 Too)'가 들불처럼 번지는데도 하염없이 침묵을 지키거나, 마지못해 면피성 입장을 발표했다. 고은 시인은 좌파 성향 문학단체인 한국작가회의 상임고문이고, 이윤택은 이른바 '블랙리스트 1호'로 보수 정권에서 탄압을 받았다고 알려진 대표적 예술가다. 조민기는 '촛불 참여 연예인'명단에 이름을 올려 촛불 지지자들의 환호를 받았던 배우다.

한국작가회의는 고은 성추문 논란이 발생한 지 2주일 넘게 지난 22일에야 "3월 10일 징계위원회를 열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말은 징계이나 당사자가 작가회의를 탈퇴하면 그만인 유명무실한 대책이다. 작가회의는 비난 여론에도 고은 시인을 보호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문인들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고은 시인의 성추문을 시로 고발한 최영미 시인을 인신공격하며 '역풍'을 만들려는 움직임도 보였다. 그러나 "고은 시인이 직접 사과하라"는 여론이 거세지자 고육지책을 내놓은 셈이다. 고은 시인과 동년배인 한 원로 남성 문인은 "만약 우파 쪽 문인이 성추행을 했다면 진즉에 살아남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쓴소리를 던졌다.

우파 인사들의 성추문이 터지면 곧바로 규탄 성명을 발표하던 좌파 여성단체들도 도마에 올랐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21일 밤에야 연극연출가 이윤택의 성폭력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지난달 29일 서지현 검사의 폭로로 검찰 내부 성추행 문제가 드러났을 때 하루 만인 30일 성명을 발표한 것과 대조된다. 고은과 오태석, 조민기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여연의 이 같은 행보에 "여성 단체는 여성을 위한 단체냐, 이념을 위한 단체냐" "홍준표 대표 막말이나 돼지발정제 사건이 터졌을 땐 즉각 사퇴하라고 벌떼같이 몰려들더니 고은과 이윤택에겐 왜 침묵하나"라는 댓글들이 이어지고 있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한 여성학자는 "한국 여성운동의 고질병은 여성 당파성보다 이념 당파성이 더 강한 것"이라며 "자신들이 지지하는 현 정권이 '미투'로 위협받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성폭력 고발에 대한 이중적 태도는 법조·교육 시민단체도 다르지 않다.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서지현 검사의 폭로를 적극 지지했지만 내부 문제에 대해선 입을 닫았다.

민변 소속 여성 변호사가 과거 성희롱당했을 때 선배였던 이재정 민주당 의원이 "현명한 선택을 하라고 종용했다"고 폭로했지만 민변은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고 있다. 서울예대, 청주대 교수로 재직한 오태석, 조민기의 성추문이 불거졌지만 민주화를위한전국교수협의회 측도 "입장 발표를 할지 결정하지 못했다"고 했다. 민교협은 지난 12일 강명운 청암대 전 총장의 여교수 성추행 사건에선 피해 교수들을 복직하고 공정한 수사를 하라는 촉구 집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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