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찾은 네덜란드 인사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 있다. ‘남도답사 1번지’로 불리는 전남 강진군이다.
‘하멜표류기’ 하멜이 연결고리 13년 억류돼 지내며 책에 기록한 담장·은행나무 등 흔적 남아있어
기념관 일대 ‘하멜촌’ 2020년 완공 네덜란드 맥주 생산 협력 계획도
이곳에는 2012년 5월 네덜란드 출신이자 ‘대한민국 축구 영웅’인 거스 히딩크 감독도 찾아왔다. 지난해 11월에는 강진군이 주최한 외국 대사관 대상 팸투어에 로디 엠브레흐츠 주한 네덜란드 대사가 참석했다. 강진군은 올해도 지역에서 열리는 각종 축제 기간에 맞춰 네덜란드에서 손님들이 올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남 강진군 하멜기념관 앞에는 네덜란드 호르큼시(市)에 있는 것과 같은 모양의 하멜 동상이 세워져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강진과 네덜란드를 잇는 연결고리는 『하멜표류기』의 저자인 헨드릭 하멜(1630~92)이다. 동인도회사의 선원이던 하멜은 1653년 7월 일행과 함께 상선을 타고 대만에서 일본으로 가던 중 태풍을 만나 그해 8월 제주도에 표착했다. 하멜은 35명의 일행과 함께 조선에서 13년여간 억류됐다가 본국으로 돌아간 뒤 조선의 존재를 서방에 알린 『하멜표류기』를 썼다. 360여 년 전 인연의 끈을 다시 잇자고 손을 내민 것은 네덜란드였다.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 측은 1996년 1월 강진군에 하멜의 고향 호르큼시(市)와의 교류를 제안했다. 두 지역은 98년 10월 정식으로 자매결연을 한 뒤 21년째 돈독한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
강진군이 하멜촌으로 조성하고 있는 하멜기념관 주변 전경. [프리랜서 장정필]
강진은 하멜이 7년간 머물렀던 곳이다. 하멜이 1656년부터 63년까지 지냈던 강진에는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강진 병영마을의 ‘한 골목’에 있는 옛 담장(등록문화재 제64호)이 대표적이다. 돌을 비스듬히 세워서 쌓은 뒤 그 위에 다시 반대 방향으로 돌을 세워 쌓는 빗살무늬 형태의 돌담이다. 전통 네덜란드식인 이 담장은 하멜 일행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담장 인근에는 『하멜표류기』에도 등장하는 은행나무(수령 800년 이상 추정)도 있다. 하멜 일행은 이 나무 아래에서 쉬며 고국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하멜은 강진의 중요한 관광 자원 중 하나다. 현재 하멜기념관에는 하멜과 관련된 여러 볼거리가 전시돼 있다. 기념관 입구에는 그의 고향인 호르큼시가 기증한 하멜 동상이 탐방객을 맞는다. 호르큼시 하벤데이크 거리에 세워진 유사한 형태의 동상을 150㎝로 축소해 놓았다. 기념관 내부에는 수저와 접시 등 하멜이 썼던 생활용품과 네덜란드의 전통 나막신 등 20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원본을 복제한 『하멜표류기』도 볼 수 있다.
하멜기념관에는 동인도회사의 선원이던 하멜 일행이 실제 썼던 물품들이 고향 호르큼시의 기증으로 전시돼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강진군은 병영면 일대에 ‘하멜길’도 조성했다. 하멜의 흔적이 있는 장소를 둘러보는 한 골목길(총 길이 2.4㎞)과 하멜 일행이 각종 노역을 했던 조선시대 육군 총 지휘부 병영성을 걷는 병영성길(1.2㎞) 등 2가지 코스다. 길 곳곳에는 과거 하멜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는 캐릭터가 세워져 있다. 네덜란드식 풍차가 세워진 하멜기념관 일대는 하멜촌이 조성되고 있다. 2013년부터 시작된 공사는 오는 2020년에 마무리될 예정이다. 총 150억원이 투입되는 사업으로 4만4064㎡ 부지에 하멜마을과 숙박시설, 공원 등을 조성하는 게 골자다. 네덜란드 수제 맥주 원료와 기술을 바탕으로 생산한 맥주를 하멜촌에서 판매하는 방안도 강진군과 호르큼시가 논의하고 있다. 강진원 강진군수는 “하멜이라는 공통분모를 매개로 강진과 호르큼시가 원예·관광 등 분야에서 협력 및 교류를 하고 있다”며 “하멜촌이 완성되면 강진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관광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