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자
- 김성탁 기자
“미군은 러시아 용병을 공격하고, 이란과 이스라엘은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으며 터키군은 크루드인을 살해하고 있다. 시리아는 '모두의 모두에 대한 전쟁'이 돼가고 있다.”
노아 펠드먼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2월 시리아 사태를 블룸버그 칼럼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시리아 내전이 국제전쟁으로 비화하면서 해법을 찾기가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아랍의 봄' 시위 아스드 정부 유혈 진압하자 내전 발발
알라위파 집권세력에 대한 다수 수니파 불만도 배경
이란 아사드 지원하자 사우디 등 미 동맹은 반군 지원
러시아 참전에 美 IS 격퇴전 나서며 '모두의 전쟁' 돼
미국과 영국, 프랑스가 연합해 시리아에 공습을 가하기까지 이른 시리아 내전은 당초 소수 민족을 대표하는 정권과 그 정권에 반대하는 대다수 사이의 갈등으로 촉발됐다.
2011년 튀니지와 이집트 등에서 대통령을 무너뜨린 ‘아랍의 봄’ 시위가 발생하자 시리아의 반정부 인사들은 희망을 품었다. 같은 해 3월 아랍의 봄을 지지하는 내용을 소년 15명이 그라피티 형태로 그리자,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은 이들을 억류했다. 소년 중 한 명인 13살 아이가 고문당한 후 살해되자 대중의 분노가 표출되기 시작했다.
아사드 대통령은 시위자 수백명을 사살하는 등 무력 대응했다. 같은 해 7월 군 출신 인사들이 정부 타도를 목표로 반군 단체를 설립하면서 시리아는 내전에 휩싸였다.
대부분의 시리아인은 수니파 무슬림이지만 아사드를 포함해 군과 정보부 요직을 차지한 이들은 알라위파다. 과거 알라위파는 수니파 세력에게 박해를 받았지만 아사드 대통령의 아버지가 1970년 쿠데타로 정권을 차지하면서 상황이 역전됐다. 알라위파의 지배를 받게 된 수니파의 불만이라는 종파적 갈등이 당초 내전의 원인이었다.
하지만 시리아에서 일어난 전쟁은 외부 세력에게 개입 명분을 제공했다.
먼저 1980년부터 동맹 관계를 맺은 시아파 맹주 이란은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가자지구의 하마스 등 무장단체에 무기와 물품을 전달하는 통로로 시리아를 이용했다. 이 대가로 아사드 정권은 이란으로부터 군사적, 정치적 지원을 받아왔다.
이란 지도자들은 아사드에 대한 반란이 그들에게도 위협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2012년 이란은 헤즈볼라를 파견해 아사드를 도와 반군과 싸우도록 했다.
이란이 시리아에 적극 개입하자 미국과 가까운 중동의 동맹국들에 아사드 정권은 공적으로 떠올랐다. 이란과 주도권 경쟁을 벌여온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수니파 국가들은 시리아 반군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2013년 아랍연맹 회원국들은 시리아 반군을 돕기로 결정했고, 그해 사우디는 대전차 미사일 400개를 반군에 제공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이 무렵부터 시리아 분쟁은 이미 내전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 이란과 미국의 걸프만 동맹국 간 대결로 번진 것이다.
국제전 구도로 확대된 시리아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 간 대결 구도로 이어졌다. 시리아와 러시아는 냉전 시대 이전부터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옛소련은 1960년대 시리아군을 창설하는데 기여했다.
이 무렵부터 시리아 분쟁은 이미 내전 이상의 의미를 지니게 됐다. 이란과 미국의 걸프만 동맹국 간 대결로 번진 것이다.
국제전 구도로 확대된 시리아 전쟁은 미국과 러시아 간 대결 구도로 이어졌다. 시리아와 러시아는 냉전 시대 이전부터 끈끈한 관계를 맺었다. 옛소련은 1960년대 시리아군을 창설하는데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