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장사로 한창 바쁜 오후 7시, 서울 강남에서 식당을 하는 A씨에게 메시지가 들어왔다.
“사장님, 오늘부터 일 못 나가겠어요. 3일 치 알바비(아르바이트비) 9만6000원은 ××은행 ××××-××× 계좌로 보내주세요. 어제 생수통 교체는 업무 외의 일이었으니까 좀 더 계산해서 보내주세요.”
A씨는 한숨부터 나왔다. 아르바이트생이 빠진 자리를 메우느라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문자 메시지에 곧장 답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그 아르바이트생에게서 메시지가 또 왔다.
“알바비 떼먹는 건 아니시죠? 고용노동부에 신고합니다.”
A씨는 괜히 입씨름을 해봐야 내 속만 썩는다는 표정으로 인터넷뱅킹으로 송금을 했다. 다른 식당보다 아르바이트비를 조금 높게 책정해서인지 다행히 금방 일을 하겠다는 직원을 구했다. 새로 오기로 한 직원은 “주말에 부모님께 다녀와야 해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근무 첫날이니 약속된 시각보다 조금 일찍 오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오기로 했던 직원은 그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화도 문자 메시지도 모두 불통, 말 그대로 연락 두절이었다. A씨는 열흘 동안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해 주방과 홀 서빙을 도맡아야 했다.
고용노동부는 피고용인 편
A씨는 “소상공인이 처한 현주소”라고 했다.
“불경기로 장사가 안 되는 것은 둘째치고 직원 때문에 속 썩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작한 지 3일 만에 일을 그만두겠다는 것은 기본이고, 피크타임에 돌연 몸이 힘들다면서 그만둘 테니 아르바이트비를 정산해 달라는 사람, 약속 시각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 등 천차만별입니다. 소상공인들은 호칭만 ‘사장’입니다. 사회적으로 ‘사장’은 돈 많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치부되지만 자영업자에게 붙는 ‘사장’은 그냥 호칭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장’이니까 사회적으로 ‘갑’이라고 하면 됩니까.”
― 이런 일이 현장에서 잦습니까.
“영세한 회사들은 직원을 고용할 처지가 못 되니까 파트타임 직원(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합니다. 업무를 식당 서빙으로 규정했지만 상황에 따라서 무거운 물통을 들 수도 있고 서빙 횟수가 늘 수도 있습니다. 일일이 트집 잡아서 ‘당초 계약 조건과 다르다’면서 추가비용을 요구하면, 그냥 들어주는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 지급해야 할 아르바이트 비용이 크지 않더라도 나중을 생각해 정확히 따져야 하지 않습니까.
“다툼의 소지가 생길 것 같으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한다’고 합니다. 고용노동부에 가는 순간 업주는 무조건 지는 거거든요. 영업시간에 다녀가라, 증빙서류 있느냐는 등 귀찮은 일이 많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업주와 근로자의 다툼을 중재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피고용인 보호 역할을 주로 하기 때문에 업주들이 가기를 꺼려 합니다.”
― 영세 업주를 위한 보호 장치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소상공인들이 넘쳐나는데 그들을 보호하는 곳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영업시간에 고용노동부에 해명하러 3~4번을 가느니 차라리 아르바이트생이 요구하는 대로 70만~8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무사를 쓰면 되지, 왜 그렇게 당하느냐’고 하는 말도 실정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노무사 상담비가 월평균 30만원 정도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소상공인들이 많지 않습니다.”
― 영세업자들은 ‘갑’이 아니네요.
“호칭만 사장입니다. 아는 분이 아르바이트생에게 된통 당했다고 합니다. 평소 불성실했던데다 끝맺음도 좋지 않았나 봐요. ‘밀린 임금을 달라’고 하기에 ‘받아가라’고 하고 10원짜리 동전으로 전부 줬답니다. 오죽했으면 그렇게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었겠습니까? 영세업자들 중에서 사회적으로 호칭한 ‘을’에 한 번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거야말로 ‘을질’ 아닙니까?”
공정위에서 석 달 만에 무혐의 처분받기까지 서류만 15번 제출
커피배달전문점 프랜차이즈 업체인 C사(社)의 김 모 대표는 가맹점주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본사에서 가맹점에 제품 공급을 제때 하지 않는다’며 고발한 탓에 공정위를 몇 번 들락거렸다. 그의 얘기다.
“저희 본사에 원재료를 납품하는 공장에서 상품 공급이 중단됐습니다. 공장에서 본사에 줄 물량이 없으니까, 당연히 본사도 가맹점에 물건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가맹점주에게 ‘공장에서 공급이 중단됐는데 3일 후에 납품받을 수 있다’고 설명을 했는데 바로 공정위에 ‘프랜차이즈 본사의 주문-발주 거절’이라면서 신고를 했습니다. 한 번은 ‘본사가 가맹점을 오픈하면서 인테리어 마진을 지나치게 많이 남긴 것 같다’고 고발했습니다. 본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소명하기 위해서 공정위에 여러 차례 다녀왔습니다.”
― 직접 공정위에 가보니 어떻던가요.
“프랜차이즈 업체는 원가(原價) 공개를 하는 일이 드문데, 저는 너무 억울해서 공정위에 원가도 털어놨습니다. 결국 가맹점에서 제기한 불공정거래 3건에 대해 전부 ‘혐의없음’을 받았습니다. 그 기간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공정위에서 일주일에 5~6번씩 전화를 해서 자료를 요청했고, 저희가 서류만 15번 정도 보냈습니다. 다른 가맹점들도 수두룩하게 있는데 공정위에 제출할 서면 답변을 준비하고 응대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겼습니다.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석 달이 걸렸습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갑질을 한다는데 저는 가맹점들이 오히려 무섭습니다. 본사를 믿어주는 가맹점주들도 있지만, 일부는 ‘하나만 걸려봐라’는 식으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것 같아서요.”
공사 시작해 놓고 추가비 요구하며 올스톱하는 ‘을’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갑’과 ‘을’이라는 호칭은 소장(訴狀)이나 계약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주종(主從) 관계의 뉘앙스가 있기는 했지만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맏딸인 현아씨가 이륙을 준비 중이던 비행기를 회항시키는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등 사회적으로 ‘가진 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일들이 불거지면서 ‘갑질’이라는 단어가 널리 알려졌다. ‘갑질’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말한다. 갑의 무한(無限) 권력을 꼬집어 ‘슈퍼 갑’ ‘울트라 갑’이라고 한다. 갑처럼 군림하려는 사람들은 ‘갑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갑질’은 널리 통용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는데 이에 못지않게 ‘을’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시 종로구의 한 거리를 지날 때마다 B씨의 속은 타들어 간다. 예정대로라면 그는 지금쯤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의 건물주이자 자기 사무실을 가진 사업자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 어설프게 건물의 외형만 서 있는 흉물이 됐다. 빌딩을 짓는 과정에서 시공사와 다툼이 생겨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시공사는 B씨가 대금을 제대로 납입하지 않았다면서 현재 땅(지대)에 대해 가압류를 설정한 상태다.
“지난해 땅을 매입해 건물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2층은 가정집으로 사용하고, 1층은 개인 사무실로 쓸 생각이었습니다. 건물은 처음 올려보는 것이라 몇 군데에서 견적서를 받았습니다. 아는 선배로부터 회사를 소개받았는데 가격이 가장 저렴했습니다(5억4000만원 정도).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사람이니까 계약서에 적시된 것 이외에 자질구레한 일들을 서비스처럼 해주겠다고 하기에 계약을 체결하고, 1억4000만원을 선금으로 입금했습니다. 공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 문제는 언제부터 시작됐습니까.
“며칠 땅을 파다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면서 추가 비용 1억원을 요구했습니다. ‘무슨 소리냐’며 강하게 반발을 했는데 작업 기계 등을 전부 그대로 둔 채 입금될 때까지 이동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알아보니까 간혹 바탕 공사를 할 때 그런 사례가 있다고 하고, 일단 건물을 올린 뒤에는 예상치 못한 특이사항이 잘 없다고 하기에 추가로 비용을 건넸습니다. 당시에는 먼저 건넨 1억4000만원을 날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컸습니다. 공사가 재개됐는데 진행이 계속 더뎠습니다.”
― 계약서를 세세히 작성하지 않았습니까.
“건물 올리는 것이 처음이고 중간에 아는 사람이 있었기에 믿고 사인을 했습니다.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는 다 해줄 것 같던 사람들이 공사가 시작되니까 태도가 바뀌어서 몇 번 얘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급하다고 읍소도 했습니다. 오히려 업자에게 ‘제가 뭐 도울 일이 없느냐’고 묻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돈을 지급하고 건물을 올리는 사람인지, 건물 올리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인지 헛갈릴 정도였습니다. 추가 비용이 계속 들어갔고 공사기간은 늘어났고, 인근 주민들의 민원은 심해졌습니다. 제가 ‘계약해지’를 운운하니까 여태 작업한 것은 다시 고스란히 되돌려 공사 이전 상태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건물을 반쯤 올리다가 다시 부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시공사가 대금 지급 지연을 빌미로 땅에 대해 가압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사기와 ‘을질’이 교묘하게 합쳐진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불성실 근무로 해고했더니 오히려 고용노동부에 신고한 알바생
중소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D씨는 얼마 전 근무태만 등을 이유로 알바직 직원을 해고했다. D씨는 “고용했지만 업무 태도가 너무 불성실했다. 근무시간 내내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고, 출퇴근 시각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의류 디자인 업무를 맡기기 위해 일시적으로 고용한 알바생이었기 때문에 그동안의 약속한 수당을 지급하고 해고를 통보했다”고 말했다. D씨가 알바생을 해고한 지 석 달 정도 지났을 때 알바생의 반격이 시작됐다. 알바생은 “사장님이 원하는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성실하게 근무한 적이 없다. 회사에서 4대 보험조차 들어주지 않았다”고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했다. 소상공인들이 흔히 겪는 ‘을질발(發) 4대 보험’의 문제다. D씨의 얘기다.
“단기 파트타임 직종이라고 하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 고용하면 정규직처럼 4대 보험을 들어야 합니다.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에 가입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단기 직종을 하는 사람들이 이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4대 보험에 들면 좋을 텐데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업주가 보험료의 절반, 직원이 절반의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파트타임 직원이 자신의 신용, 자산 등이 낱낱이 알려지는 것이 싫다면서 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험에 가입하면 납입해야 하는 국민연금도 내기 싫다면서요.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등 재해의 위험이 있는 곳은 4대 보험을 드는 것이 좋지만, 일반 사무직은 상대적으로 재해의 위험이 적기 때문에 서로의 합의하에 보험 가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문제는 직원 측에서 이를 문제 삼을 때 생깁니다.”
―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해고된 직원이 뒤늦게 실업급여를 신청한다고 칩시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본인은 4대 보험 가입을 하고 싶었지만, 비용에 부담을 느낀 사장(고용주)이 보험 가입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신고를 합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서로의 합의하에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주장을 하지만 곧이곧대로 들어주지 않습니다. 고용노동부 측에서 ‘사장이 고용인에게 보험을 들지 않도록 강요했을 것이다’고 판단을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렇게 판단할 경우 고용인에 대한 4대 보험료는 고용자와 고용인이 5대 5로 내는 것이 아니라, 고용자 측에서 100% 부담해야 합니다. 만일 알바생을 1년 동안 고용했다면, 1년에 대한 4대 보험료 전액을 고용주가 뒤늦게 납입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장은 50%만 내면 됐을 보험료를 나중에 100% 내고, 직원은 실업급여를 받는 겁니다. 서로의 합의하에 보험 가입을 하지 않지만,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사업주가 100%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출근 거부 문자 통보, 고용노동부 신고, 가게를 공개적으로 비난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는 ‘알바 추노’라는 단어가 익숙하다. ‘알바 추노’는 ‘아르바이트’와 2010년에 KBS에서 방영된 드라마인 〈추노(推奴)〉의 합성어다. 퓨전사극인 이 드라마는 노비가 주인의 소유로 물건처럼 다뤄지던 조선시대, 병자호란 직후 혼란한 와중 도망친 노비를 잡아 오는 ‘추노’들의 얘기를 다룬 드라마다. ‘추노’는 원래 ‘도망간 종을 찾아오던 일’을 뜻하는 말이었는데 의미가 변형돼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일에 지쳐 아무 말도 없이 연락을 끊거나 도망가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 됐다. ‘알바 추노’는 오늘날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들 사이에서는 흔한 용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알바 추노’를 입력하면 각종 사례가 여과 없이 드러난다. ‘알바 추노를 해도 불이익 받지 않는 법’ ‘나는 알바 추노 이렇게까지 해봤다’ ‘알바 추노 레전드’ ‘사장님 골탕 먹이는 법’ 등 다양한 무용담이 즐비하다. 2017년 ‘알바천국’이 고용주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고용주 10명 중 8명이 알바생에게 사직 통보를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알바 추노들’에게 당한 것이다. ‘알바천국’은 비슷한 시기에 남녀 알바생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다. 전체 응답자의 23%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사전 통보를 하지 않고 갑자기 잠수를 탄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는 ‘생각했던 것보다 일이 너무 힘들어서(45.6%)’였다.
서울시 강남구에서 요식업을 하는 K씨는 저녁 시간에 7~8명의 파트타임직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고 있다.
“일부 아르바이트생 사이에서 ‘알바 추노’는 놀이의 형태로까지 변질되고 있습니다. 서로 얼마나 심하게, 가혹하게 했는지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며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고용주 입장에서 여간 당혹스럽지 않습니다. 며칠 근무를 하고 문자 메시지로 그만둔다고 통보하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나 가게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가게를 욕하는 글을 적기도 합니다.”
― 고용주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기에 그런 억하심정을 품었을까요.
“알 수 없죠. 아르바이트생에게 친절한 고용주도 있고, 까칠한 고용주도 있고 사람 나름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알바생이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삼는 순간 소상공인 고용주는 무조건 ‘을’입니다. 알바생의 인권을 위한 제도와 단체는 많지만, 자영업자의 얘기를 들어주는 곳은 없습니다.”
“여태까지의 거래가 모두 투명했는지 보겠다”는 협박
중소기업 중에서도 곤욕을 치르는 곳이 많다. 얼마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중소기업단체를 만난 자리에서 “‘을’도 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얼핏 들어보면 ‘을’이 ‘갑’에게 ‘을질’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리지만 그것이 아니다. “중소사업자들이 더 작은 영세사업자를 대상으로 불공정 행위를 하면서 정부에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갑을병정 관계에서 중간에 끼인 ‘을’이 ‘병’에게 권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소리다. 일부 ‘을’은 “‘갑질’에 당하고 ‘병’에게도 잘해주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에게 애로사항을 호소하느냐”고 한다. 대기업의 1차 벤더업체 대표가 하루는 대기업을 찾아와 한동안 푸념을 하고 갔다. 그의 사연은 이랬다. 대기업에서 발주하는 물량이 줄어들어 그도 2차 벤더회사에 적게 주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2차 벤더업체 대표에게 양해를 구했더니 “알겠다”고 했다. 납품 계약을 하기 위해 1차 벤더와 2차 벤처회사 대표가 만났다. 정상적이었다면 두 사람의 대화는 “대기업이 잘돼야 우리 형편도 나아질 텐데 큰일이다”로 흘렀을 것이다. 결과는 의외였다.
“얘기를 하는데 ‘그 가격에는 납품을 못 한다’고 하는 겁니다. ‘주문 물량을 줄였으니 그만큼 단가를 올리겠다’는 겁니다. 계약 체결은 통상 양측에서 서류에 사인을 하면 되는데 그 자리에서 가격 조정을 해서 놀랐습니다.”
― 비상식적인 일 아닙니까.
“비상식적이죠. 그동안 1차 업체로서 모든 거래가 공정했는지 한 번 살펴보자고 하더군요. 자신들이 2차 벤더로서 대기업에 직접 검토를 요청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목적으로 1차 벤더, 2차 벤더들에 대한 관리, 감시를 강화하는 편입니다. 제가 무슨 부정행위를 일삼은 것은 아니지만 원칙대로 다 들이대자고 하면 사업하는 사람 중에 안 걸릴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희도 대기업에 목줄을 걸고 있는 협력사이기 때문에 2차 업체들이 1차 업체를 대기업에 고발한다고 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1차 업체 벤더는 2차 업체의 요구대로 물품당 단가를 높여서 발주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 ‘갑’은 ‘을’보다 강자이고, ‘을’은 ‘병’보다 강자이고, ‘병’은 ‘정’보다 강자라는 패러다임 구조에서 ‘약자’는 늘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업체 대표의 항변
커피배달서비스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프랜차이즈사 C사는 본사와 가맹점주들이 소송을 하고 있다. 한때 호형호제를 했던 이들은 법원에서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됐다. 소송을 제기한 가맹점 주인 4명의 소장이다.
〈원고는 피고 김 모씨가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가맹본부와 거래를 해왔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안내도 없이 갑자기 2018년 4월 4일 주식회사 ×××××를 만든 뒤 가맹 계약에 따른 대금 거래를 피고 김씨가 아닌 주식회사 ××××명의의 계좌로 이체하도록 변경을 요구했다. 영업양도(제33조)에 따르면 갑(가맹본부)이 가맹사업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경우, 을은 가맹 계약을 종료하고 계약관계에서 탈퇴할 수 있다. 피고 김씨는 과도한 허위·과장된 정보를 제공했다. 또 가맹본부로서의 의무를 해태(懈怠·행동이 느리고 일하기 싫어하는 태도)했고, 가맹본부로서 불필요한 감시와 통제를 했다.〉
복잡한 소장의 내용을 간단히 풀어보면 “더 이상 가맹점을 하기 싫으니 가맹점 계약을 해지해 달라. 우리가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본사 대표 김씨 때문이다”로 볼 수 있다. 김씨는 “소장을 받고 당황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프랜차이즈를 제 명의의 개인 사업자로 냈습니다. 조금 지나니까 가맹점을 차리겠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사업을 투명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법인을 만들었습니다.”
―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한다는 얘기를 했습니까.
“초창기에 가맹점을 오픈한 사람들은 거의 제 지인이었기에 구두(口頭)로 설명을 했습니다. ‘개인사업자보다는 법인사업자가 훨씬 투명하고 사업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하고 앞으로 부가세(10%)를 꼬박꼬박 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송을 건 이 중 한 명은 ‘본사가 커지면 더 좋은 거죠. 잘됐네요’라고까지 말을 했습니다.”
― 가맹점주들의 소장을 보면 김 대표가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다. 계약 위반이니까 가맹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통보를 했습니다. 저는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있지만 가맹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하는 분들은 창업은 하고 싶은데 장사를 시작하는 법, 장사하는 노하우를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맹점으로 등록해서 장사를 하다 보면 가게 오픈, 장소 노하우도 알게 되고, 본사에서 주는 레시피를 익혀 재료손질, 위생 노하우 등을 터득합니다. 본사에 지급하는 로열티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가맹점이 아니라 개인 카페를 내도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쿠팡’ 같은 온라인 쇼핑몰 업체에서 재료를 납품받으면 더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저희가 거래처에서 최대한 물건을 싸게 받아서 가맹점에 납품하려고 하지만 ‘쿠팡’ 같은 대형 업체보다 싸게 주기는 힘들 거든요. 그렇다 보니 무조건 ‘쿠팡가’랑 비교를 해서 ‘본사가 물건을 비싸게 납품한다’고 사실을 호도합니다. 불만이 시작되면 ‘다른 프랜차이즈는 이거 해주는데 우리는 왜 안 해주나요. 해줘야죠, 본사니까’ 이럽니다. 결국 이런 불만들이 쌓이다 보면 본사에 불만을 갖고, 본사에서 가맹점에 정기 검사를 나가도 ‘지나친 감시다’며 트집을 잡습니다. 누가 옳은 소리를 하고 있는지를 소상히 따져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가맹점주를 약자, 본사를 강자라고 생각해 얘기를 하기도 전부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거든요.”⊙
“사장님, 오늘부터 일 못 나가겠어요. 3일 치 알바비(아르바이트비) 9만6000원은 ××은행 ××××-××× 계좌로 보내주세요. 어제 생수통 교체는 업무 외의 일이었으니까 좀 더 계산해서 보내주세요.”
A씨는 한숨부터 나왔다. 아르바이트생이 빠진 자리를 메우느라 정신없이 일을 하다 보니 문자 메시지에 곧장 답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그 아르바이트생에게서 메시지가 또 왔다.
“알바비 떼먹는 건 아니시죠? 고용노동부에 신고합니다.”
A씨는 괜히 입씨름을 해봐야 내 속만 썩는다는 표정으로 인터넷뱅킹으로 송금을 했다. 다른 식당보다 아르바이트비를 조금 높게 책정해서인지 다행히 금방 일을 하겠다는 직원을 구했다. 새로 오기로 한 직원은 “주말에 부모님께 다녀와야 해서 다음 주 월요일부터 근무를 하겠다”고 했다. 근무 첫날이니 약속된 시각보다 조금 일찍 오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오기로 했던 직원은 그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전화도 문자 메시지도 모두 불통, 말 그대로 연락 두절이었다. A씨는 열흘 동안 아르바이트생을 구하지 못해 주방과 홀 서빙을 도맡아야 했다.
고용노동부는 피고용인 편
아르바이트생 모집 공고. |
“불경기로 장사가 안 되는 것은 둘째치고 직원 때문에 속 썩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시작한 지 3일 만에 일을 그만두겠다는 것은 기본이고, 피크타임에 돌연 몸이 힘들다면서 그만둘 테니 아르바이트비를 정산해 달라는 사람, 약속 시각에 나타나지 않는 사람 등 천차만별입니다. 소상공인들은 호칭만 ‘사장’입니다. 사회적으로 ‘사장’은 돈 많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으로 치부되지만 자영업자에게 붙는 ‘사장’은 그냥 호칭일 뿐입니다. 그런데 ‘사장’이니까 사회적으로 ‘갑’이라고 하면 됩니까.”
― 이런 일이 현장에서 잦습니까.
“영세한 회사들은 직원을 고용할 처지가 못 되니까 파트타임 직원(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합니다. 업무를 식당 서빙으로 규정했지만 상황에 따라서 무거운 물통을 들 수도 있고 서빙 횟수가 늘 수도 있습니다. 일일이 트집 잡아서 ‘당초 계약 조건과 다르다’면서 추가비용을 요구하면, 그냥 들어주는 수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 지급해야 할 아르바이트 비용이 크지 않더라도 나중을 생각해 정확히 따져야 하지 않습니까.
“다툼의 소지가 생길 것 같으면 ‘고용노동부에 신고한다’고 합니다. 고용노동부에 가는 순간 업주는 무조건 지는 거거든요. 영업시간에 다녀가라, 증빙서류 있느냐는 등 귀찮은 일이 많습니다. 고용노동부는 업주와 근로자의 다툼을 중재하는 기관이 아닙니다. 피고용인 보호 역할을 주로 하기 때문에 업주들이 가기를 꺼려 합니다.”
― 영세 업주를 위한 보호 장치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소상공인들이 넘쳐나는데 그들을 보호하는 곳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영업시간에 고용노동부에 해명하러 3~4번을 가느니 차라리 아르바이트생이 요구하는 대로 70만~8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합니다. ‘노무사를 쓰면 되지, 왜 그렇게 당하느냐’고 하는 말도 실정을 모르는 소리입니다. 노무사 상담비가 월평균 30만원 정도입니다. 감당할 수 있는 소상공인들이 많지 않습니다.”
― 영세업자들은 ‘갑’이 아니네요.
“호칭만 사장입니다. 아는 분이 아르바이트생에게 된통 당했다고 합니다. 평소 불성실했던데다 끝맺음도 좋지 않았나 봐요. ‘밀린 임금을 달라’고 하기에 ‘받아가라’고 하고 10원짜리 동전으로 전부 줬답니다. 오죽했으면 그렇게라도 분풀이를 하고 싶었겠습니까? 영세업자들 중에서 사회적으로 호칭한 ‘을’에 한 번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거야말로 ‘을질’ 아닙니까?”
공정위에서 석 달 만에 무혐의 처분받기까지 서류만 15번 제출
커피배달전문점 프랜차이즈 업체인 C사(社)의 김 모 대표는 가맹점주가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에 ‘본사에서 가맹점에 제품 공급을 제때 하지 않는다’며 고발한 탓에 공정위를 몇 번 들락거렸다. 그의 얘기다.
“저희 본사에 원재료를 납품하는 공장에서 상품 공급이 중단됐습니다. 공장에서 본사에 줄 물량이 없으니까, 당연히 본사도 가맹점에 물건을 줄 수가 없었습니다. 가맹점주에게 ‘공장에서 공급이 중단됐는데 3일 후에 납품받을 수 있다’고 설명을 했는데 바로 공정위에 ‘프랜차이즈 본사의 주문-발주 거절’이라면서 신고를 했습니다. 한 번은 ‘본사가 가맹점을 오픈하면서 인테리어 마진을 지나치게 많이 남긴 것 같다’고 고발했습니다. 본사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소명하기 위해서 공정위에 여러 차례 다녀왔습니다.”
― 직접 공정위에 가보니 어떻던가요.
“프랜차이즈 업체는 원가(原價) 공개를 하는 일이 드문데, 저는 너무 억울해서 공정위에 원가도 털어놨습니다. 결국 가맹점에서 제기한 불공정거래 3건에 대해 전부 ‘혐의없음’을 받았습니다. 그 기간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공정위에서 일주일에 5~6번씩 전화를 해서 자료를 요청했고, 저희가 서류만 15번 정도 보냈습니다. 다른 가맹점들도 수두룩하게 있는데 공정위에 제출할 서면 답변을 준비하고 응대하는 데 시간을 너무 많이 뺏겼습니다. 무혐의 처분을 받기까지 석 달이 걸렸습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갑질을 한다는데 저는 가맹점들이 오히려 무섭습니다. 본사를 믿어주는 가맹점주들도 있지만, 일부는 ‘하나만 걸려봐라’는 식으로 눈에 불을 켜고 있는 것 같아서요.”
공사 시작해 놓고 추가비 요구하며 올스톱하는 ‘을’들
불과 10년 전까지만 해도 ‘갑’과 ‘을’이라는 호칭은 소장(訴狀)이나 계약서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주종(主從) 관계의 뉘앙스가 있기는 했지만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단어는 아니었다. 하지만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맏딸인 현아씨가 이륙을 준비 중이던 비행기를 회항시키는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 등 사회적으로 ‘가진 자들에 의해 저질러진’ 일들이 불거지면서 ‘갑질’이라는 단어가 널리 알려졌다. ‘갑질’은 권력의 우위에 있는 ‘갑’이 권리관계에서 약자인 ‘을’에게 하는 부당 행위를 말한다. 갑의 무한(無限) 권력을 꼬집어 ‘슈퍼 갑’ ‘울트라 갑’이라고 한다. 갑처럼 군림하려는 사람들은 ‘갑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고 부른다. 오늘날 ‘갑질’은 널리 통용되는 고유명사처럼 사용되는데 이에 못지않게 ‘을’로 인해 가슴앓이를 하는 사람들도 많다.
서울시 종로구의 한 거리를 지날 때마다 B씨의 속은 타들어 간다. 예정대로라면 그는 지금쯤 지하 2층, 지상 2층 규모의 건물주이자 자기 사무실을 가진 사업자여야 한다. 하지만 현재 어설프게 건물의 외형만 서 있는 흉물이 됐다. 빌딩을 짓는 과정에서 시공사와 다툼이 생겨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시공사는 B씨가 대금을 제대로 납입하지 않았다면서 현재 땅(지대)에 대해 가압류를 설정한 상태다.
“지난해 땅을 매입해 건물을 올리기로 했습니다. 2층은 가정집으로 사용하고, 1층은 개인 사무실로 쓸 생각이었습니다. 건물은 처음 올려보는 것이라 몇 군데에서 견적서를 받았습니다. 아는 선배로부터 회사를 소개받았는데 가격이 가장 저렴했습니다(5억4000만원 정도). 한 다리 건너서 아는 사람이니까 계약서에 적시된 것 이외에 자질구레한 일들을 서비스처럼 해주겠다고 하기에 계약을 체결하고, 1억4000만원을 선금으로 입금했습니다. 공사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 문제는 언제부터 시작됐습니까.
“며칠 땅을 파다가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면서 추가 비용 1억원을 요구했습니다. ‘무슨 소리냐’며 강하게 반발을 했는데 작업 기계 등을 전부 그대로 둔 채 입금될 때까지 이동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알아보니까 간혹 바탕 공사를 할 때 그런 사례가 있다고 하고, 일단 건물을 올린 뒤에는 예상치 못한 특이사항이 잘 없다고 하기에 추가로 비용을 건넸습니다. 당시에는 먼저 건넨 1억4000만원을 날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더 컸습니다. 공사가 재개됐는데 진행이 계속 더뎠습니다.”
― 계약서를 세세히 작성하지 않았습니까.
“건물 올리는 것이 처음이고 중간에 아는 사람이 있었기에 믿고 사인을 했습니다. 계약서에 도장 찍기 전에는 다 해줄 것 같던 사람들이 공사가 시작되니까 태도가 바뀌어서 몇 번 얘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급하다고 읍소도 했습니다. 오히려 업자에게 ‘제가 뭐 도울 일이 없느냐’고 묻기까지 했습니다. 나중에는 제가 돈을 지급하고 건물을 올리는 사람인지, 건물 올리는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인지 헛갈릴 정도였습니다. 추가 비용이 계속 들어갔고 공사기간은 늘어났고, 인근 주민들의 민원은 심해졌습니다. 제가 ‘계약해지’를 운운하니까 여태 작업한 것은 다시 고스란히 되돌려 공사 이전 상태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건물을 반쯤 올리다가 다시 부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시공사가 대금 지급 지연을 빌미로 땅에 대해 가압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사기와 ‘을질’이 교묘하게 합쳐진 케이스라고 생각합니다.”
불성실 근무로 해고했더니 오히려 고용노동부에 신고한 알바생
중소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D씨는 얼마 전 근무태만 등을 이유로 알바직 직원을 해고했다. D씨는 “고용했지만 업무 태도가 너무 불성실했다. 근무시간 내내 휴대폰을 붙들고 있었고, 출퇴근 시각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며 “의류 디자인 업무를 맡기기 위해 일시적으로 고용한 알바생이었기 때문에 그동안의 약속한 수당을 지급하고 해고를 통보했다”고 말했다. D씨가 알바생을 해고한 지 석 달 정도 지났을 때 알바생의 반격이 시작됐다. 알바생은 “사장님이 원하는 디자인이 나오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불성실하게 근무한 적이 없다. 회사에서 4대 보험조차 들어주지 않았다”고 고용노동부에 신고를 했다. 소상공인들이 흔히 겪는 ‘을질발(發) 4대 보험’의 문제다. D씨의 얘기다.
“단기 파트타임 직종이라고 하더라도 일정 기간 동안 고용하면 정규직처럼 4대 보험을 들어야 합니다. 고용보험, 산재보험 등에 가입을 해야 하는데 오히려 단기 직종을 하는 사람들이 이를 거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 4대 보험에 들면 좋을 텐데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업주가 보험료의 절반, 직원이 절반의 비용을 부담해야 합니다. 파트타임 직원이 자신의 신용, 자산 등이 낱낱이 알려지는 것이 싫다면서 보험 가입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험에 가입하면 납입해야 하는 국민연금도 내기 싫다면서요. 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등 재해의 위험이 있는 곳은 4대 보험을 드는 것이 좋지만, 일반 사무직은 상대적으로 재해의 위험이 적기 때문에 서로의 합의하에 보험 가입을 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문제는 직원 측에서 이를 문제 삼을 때 생깁니다.”
― 어떤 문제가 생깁니까.
“해고된 직원이 뒤늦게 실업급여를 신청한다고 칩시다. 4대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습니다. 고용노동부에 ‘본인은 4대 보험 가입을 하고 싶었지만, 비용에 부담을 느낀 사장(고용주)이 보험 가입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신고를 합니다. 고용주 입장에서는 ‘서로의 합의하에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고 주장을 하지만 곧이곧대로 들어주지 않습니다. 고용노동부 측에서 ‘사장이 고용인에게 보험을 들지 않도록 강요했을 것이다’고 판단을 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이렇게 판단할 경우 고용인에 대한 4대 보험료는 고용자와 고용인이 5대 5로 내는 것이 아니라, 고용자 측에서 100% 부담해야 합니다. 만일 알바생을 1년 동안 고용했다면, 1년에 대한 4대 보험료 전액을 고용주가 뒤늦게 납입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장은 50%만 내면 됐을 보험료를 나중에 100% 내고, 직원은 실업급여를 받는 겁니다. 서로의 합의하에 보험 가입을 하지 않지만, 문제가 생겼을 경우에는 사업주가 100%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출근 거부 문자 통보, 고용노동부 신고, 가게를 공개적으로 비난
‘최저임금 인상’ ‘알바 추노 등장’ 등으로 소상공인들의 설 자리가 더 좁아지고 있다. 지난 2018년 7월 12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소상공인연합회. |
서울시 강남구에서 요식업을 하는 K씨는 저녁 시간에 7~8명의 파트타임직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하고 있다.
“일부 아르바이트생 사이에서 ‘알바 추노’는 놀이의 형태로까지 변질되고 있습니다. 서로 얼마나 심하게, 가혹하게 했는지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으며 경쟁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나쁜 마음을 먹으면 고용주 입장에서 여간 당혹스럽지 않습니다. 며칠 근무를 하고 문자 메시지로 그만둔다고 통보하고, 고용노동부에 신고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심지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나 가게 홈페이지에 공개적으로 가게를 욕하는 글을 적기도 합니다.”
― 고용주가 얼마나 큰 잘못을 했기에 그런 억하심정을 품었을까요.
“알 수 없죠. 아르바이트생에게 친절한 고용주도 있고, 까칠한 고용주도 있고 사람 나름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알바생이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삼는 순간 소상공인 고용주는 무조건 ‘을’입니다. 알바생의 인권을 위한 제도와 단체는 많지만, 자영업자의 얘기를 들어주는 곳은 없습니다.”
“여태까지의 거래가 모두 투명했는지 보겠다”는 협박
중소기업 중에서도 곤욕을 치르는 곳이 많다. 얼마 전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중소기업단체를 만난 자리에서 “‘을’도 법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얼핏 들어보면 ‘을’이 ‘갑’에게 ‘을질’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들리지만 그것이 아니다. “중소사업자들이 더 작은 영세사업자를 대상으로 불공정 행위를 하면서 정부에 보호를 요구하는 것은 모순”이라는 것이다. 갑을병정 관계에서 중간에 끼인 ‘을’이 ‘병’에게 권력을 행사하지 말라는 소리다. 일부 ‘을’은 “‘갑질’에 당하고 ‘병’에게도 잘해주라고 하면 우리는 누구에게 애로사항을 호소하느냐”고 한다. 대기업의 1차 벤더업체 대표가 하루는 대기업을 찾아와 한동안 푸념을 하고 갔다. 그의 사연은 이랬다. 대기업에서 발주하는 물량이 줄어들어 그도 2차 벤더회사에 적게 주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2차 벤더업체 대표에게 양해를 구했더니 “알겠다”고 했다. 납품 계약을 하기 위해 1차 벤더와 2차 벤처회사 대표가 만났다. 정상적이었다면 두 사람의 대화는 “대기업이 잘돼야 우리 형편도 나아질 텐데 큰일이다”로 흘렀을 것이다. 결과는 의외였다.
“얘기를 하는데 ‘그 가격에는 납품을 못 한다’고 하는 겁니다. ‘주문 물량을 줄였으니 그만큼 단가를 올리겠다’는 겁니다. 계약 체결은 통상 양측에서 서류에 사인을 하면 되는데 그 자리에서 가격 조정을 해서 놀랐습니다.”
― 비상식적인 일 아닙니까.
“비상식적이죠. 그동안 1차 업체로서 모든 거래가 공정했는지 한 번 살펴보자고 하더군요. 자신들이 2차 벤더로서 대기업에 직접 검토를 요청할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대기업이 협력업체와의 상생을 목적으로 1차 벤더, 2차 벤더들에 대한 관리, 감시를 강화하는 편입니다. 제가 무슨 부정행위를 일삼은 것은 아니지만 원칙대로 다 들이대자고 하면 사업하는 사람 중에 안 걸릴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저희도 대기업에 목줄을 걸고 있는 협력사이기 때문에 2차 업체들이 1차 업체를 대기업에 고발한다고 하면 위축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1차 업체 벤더는 2차 업체의 요구대로 물품당 단가를 높여서 발주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으로 ‘갑’은 ‘을’보다 강자이고, ‘을’은 ‘병’보다 강자이고, ‘병’은 ‘정’보다 강자라는 패러다임 구조에서 ‘약자’는 늘 보호의 대상이기 때문이다.
프랜차이즈업체 대표의 항변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주의 계약서. 이들은 현재 ‘가맹점 해지’를 두고 소송 중이다. |
〈원고는 피고 김 모씨가 개인사업자로 등록한 가맹본부와 거래를 해왔다. 피고는 원고들에게 안내도 없이 갑자기 2018년 4월 4일 주식회사 ×××××를 만든 뒤 가맹 계약에 따른 대금 거래를 피고 김씨가 아닌 주식회사 ××××명의의 계좌로 이체하도록 변경을 요구했다. 영업양도(제33조)에 따르면 갑(가맹본부)이 가맹사업을 타인에게 양도하는 경우, 을은 가맹 계약을 종료하고 계약관계에서 탈퇴할 수 있다. 피고 김씨는 과도한 허위·과장된 정보를 제공했다. 또 가맹본부로서의 의무를 해태(懈怠·행동이 느리고 일하기 싫어하는 태도)했고, 가맹본부로서 불필요한 감시와 통제를 했다.〉
복잡한 소장의 내용을 간단히 풀어보면 “더 이상 가맹점을 하기 싫으니 가맹점 계약을 해지해 달라. 우리가 이렇게 결정한 이유는 본사 대표 김씨 때문이다”로 볼 수 있다. 김씨는 “소장을 받고 당황했다”고 말했다.
“처음에 프랜차이즈를 제 명의의 개인 사업자로 냈습니다. 조금 지나니까 가맹점을 차리겠다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법인으로 전환하는 것이 훨씬 사업을 투명하게 키울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 법인을 만들었습니다.”
―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한다는 얘기를 했습니까.
“초창기에 가맹점을 오픈한 사람들은 거의 제 지인이었기에 구두(口頭)로 설명을 했습니다. ‘개인사업자보다는 법인사업자가 훨씬 투명하고 사업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하고 앞으로 부가세(10%)를 꼬박꼬박 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송을 건 이 중 한 명은 ‘본사가 커지면 더 좋은 거죠. 잘됐네요’라고까지 말을 했습니다.”
― 가맹점주들의 소장을 보면 김 대표가 사전에 통보하지 않았다. 계약 위반이니까 가맹 계약을 해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통보를 했습니다. 저는 아직 계약기간이 남아 있지만 가맹 계약을 해지하기 위해서 억지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
“프랜차이즈 가맹점을 하는 분들은 창업은 하고 싶은데 장사를 시작하는 법, 장사하는 노하우를 모르는 분들이 많습니다. 가맹점으로 등록해서 장사를 하다 보면 가게 오픈, 장소 노하우도 알게 되고, 본사에서 주는 레시피를 익혀 재료손질, 위생 노하우 등을 터득합니다. 본사에 지급하는 로열티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고 가맹점이 아니라 개인 카페를 내도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쿠팡’ 같은 온라인 쇼핑몰 업체에서 재료를 납품받으면 더 이득이라는 생각이 들 겁니다. 저희가 거래처에서 최대한 물건을 싸게 받아서 가맹점에 납품하려고 하지만 ‘쿠팡’ 같은 대형 업체보다 싸게 주기는 힘들 거든요. 그렇다 보니 무조건 ‘쿠팡가’랑 비교를 해서 ‘본사가 물건을 비싸게 납품한다’고 사실을 호도합니다. 불만이 시작되면 ‘다른 프랜차이즈는 이거 해주는데 우리는 왜 안 해주나요. 해줘야죠, 본사니까’ 이럽니다. 결국 이런 불만들이 쌓이다 보면 본사에 불만을 갖고, 본사에서 가맹점에 정기 검사를 나가도 ‘지나친 감시다’며 트집을 잡습니다. 누가 옳은 소리를 하고 있는지를 소상히 따져야 하는데 그럴 수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은 가맹점주를 약자, 본사를 강자라고 생각해 얘기를 하기도 전부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