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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기우는 한국의 저울

이강기 2019. 10. 2. 09:08

[朝鮮칼럼 The Column]

중국으로 기우는 한국의 저울

조선일보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입력 2019.10.02 03:17

미·중 갈등 10개 이슈 중 6개에서 한국은 미국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는 선택
중국 편드는 한국의 결정은 진영을 초월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빅터 차


                

역사적으로 미·중 관계는 한반도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1950년 가을 중국의 6·25전쟁 참전으로 한반도를 하나로 만들려 했던 미국의 노력은 실패했다. 1970년대 닉슨과 마오쩌둥(毛澤東)의 화해는 동맹에서 버림받을 것을 우려한 남북이 일시적이나마 그들만의 화해를 추진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현재의 미·중 관계, 즉 중국과 전략적 경쟁을 불사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 재임기의 미·중 관계는 한국에 끔찍한 결과들을 초래할 수 있다. 안보 후원자(미국)와 거대한 이웃(중국)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압력을 점점 더 거세게 받게 될 것이다.

그동안 한국은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했다.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면서 워싱턴과 베이징의 희망 사항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한국에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다. 세 가지 딜레마 때문이다.

첫째 국가 간 힘의 문제이다. 한국이 처한 전략적 현실은 중국이 절대 사라질 수 없는 거대한 이웃이라는 점이다. 중국의 덩치는 정말 위협적이다. 국방비는 한국의 6배이고, 경제 규모는 9배에 달한다. 민주주의와 독재정권처럼 체제가 다른 국가가 이웃해 있는 경우, 상대방을 위협적이라고 생각한다는 건 역사가 말해준다. 최근 아산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의 66%는 중국이 위협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이 중국 부상에 맞서려고 동지를 끌어모을 수도 없는 상황이다. 다른 두 가지의 딜레마가 얽혀 있기 때문이다.

둘째는 경제적인 것이다. 한국이 미국과 전략적 관계를 유지한다 해도, 중국 경제와의 관계를 끊을 순 없다. 1992년 이후 한·중 무역은 37배나 커졌고, 2003년에는 중국이 한국의 최대 무역 파트너가 됐다. 이어 양국은 2005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 교역 상품의 90%에 대해 관세를 철폐했다. 한국은 자신의 경제적 미래가 한데 묶여 있는 중국에 어깃장을 놓을 수 없다.

셋째는 남북통일 문제다. 한국인들은 남북통일을 실현하기 위해선 중국의 묵인과 전략적 이해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지금의 한·미 동맹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중국의 이해를 구해야 할 것이고, 한반도 북쪽 국경 안보를 위해 중국의 협조가 필요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북한 비핵화 협상에 미국이 필요한 것처럼 한반도 통일에 중국을 필요로 한다.

이런 딜레마 때문에 중국에 대한 한국의 정책은 아주 복잡하고 미묘할 수밖에 없다. 그곳은 흑백이 아니라 수많은 회색 영역이 존재한다. 이런 사정을 미국이 속속들이 이해하긴 쉽지 않다.

작금의 미·중 간 전략적인 경쟁은 한국이 움직일 수 있는 여지를 크게 줄이고 있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이 갈라서는 그곳에서 어느 쪽으로 갈 것인지 선택하라고 종용받고 있다. 미국엔 불행하게도 한국의 선택은 미국 이해관계에서 점점 더 멀어지는 쪽인 것 같다.

지난 6년간 미·중이 갈등하는 10개의 이슈 중 6개에서 한국은 미국 이해관계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했다. 중국을 편드는 한국의 결정은 진영을 초월했다. 즉 보수와 진보 정권 모두 중국을 택했다. 지난 2013년 중국이 동중국해에서 일방적으로 방공식별구역(ADIZ)을 선포하자 미국과 일본은 반대에 나섰다. 당시 박근혜 정부는 이어도를 중국 ADIZ에서 제외하는 양보를 중국에서 얻어내려 조용하게 움직였다. 한국이 공개적으로 중국 ADIZ에 반대한 것은 중국이 한국 요구를 거절한 다음이었다. 올해에도 미국은 개방적이고 국제규범에 입각한 인도·태평양 질서에 대해 한국의 지지를 요구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중국을 소외시키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면서 지금까지 공개적인 지지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상황은 갈수록 꼬이고 있다. 최근 5G와 관련, 미국은 한국 기업에 화웨이와 관계를 끊으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통신산업 쪽에 별다른 지침을 내리지 않고 있다. 동맹은 악화될 수밖에 없다. 트럼프 행정부가 더 나아가 중국에 대한 반도체칩 수출 금지 등을 동맹국에 요구하게 될 경우, 한국 정부와 기업은 대단히 어려운 결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그 결정은 미국에 우호적인 것은 아닐 것이다.

미국이 안보·무역 분야에서 중국과 대치하면서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동맹국이 부수적으로 입게 될 피해 등에 대해 비용·편익을 면밀하게 분석해 정책에 반영할 필요가 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9/10/01/201910010317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