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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그냥 놔두면 된다” 26년 전 이건희의 인터뷰

이강기 2019. 11. 15. 17:07
“기업은 그냥 놔두면 된다” 26년 전 이건희의 인터뷰
[광화문에서/김현수]

김현수 산업1부차장
동아일보
2019-11-15 03:00수정 2019-11-15 03:00


김현수 산업1부 차장

아직도 생생하다. 딱 10년 전인 2009년 11월 28일. 마침내 아이폰이 한국에 상륙했다.  

한국 정보기술(IT) 업계는 폭탄을 맞은 것 같았다. ‘아이폰 쇼크’란 말이 딱 맞았다. 기업은 자기반성에 나섰고, 언론은 세계 1등을 자랑했던 한국 휴대전화 산업이 위기를 맞았다며 기획 시리즈를 쏟아냈다. 정치권은 IT 컨트롤타워가 없는 탓이라며 정보통신부 부활을 논의했다. 

당시 전자기업들의 기자간담회도 비장했다. “아이폰이 들어와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 적어도 국내 시장에서는 애플보다 더 잘할 자신이 있다.”(신종균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장) “아이폰 잡고 자존심을 지키겠다.”(박병엽 팬택 부회장) LG전자는 2010년 2월 스페인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에도 불참했다.


당시의 기억이 떠오른 건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서 열린 삼성개발자콘퍼런스(SDC 2019) 현장에 갔기 때문이다. 5800여 명이나 되는 전 세계 개발자들이 299∼599달러를 입장료로 내고 온 것부터 신기했다. 이틀 연속 진행된 SDC 프레젠테이션에서는 삼성과 협력 중이라는 온갖 기업들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인텔, IBM, 마이크로소프트처럼 익숙한 IT 기업에서 의료기기 업체 메드트로닉, 화상회의 업체 블루진, 블록체인 업체 이더리움 등까지. 화면에 로고만 등장한 기업도 수백 개는 됐다.



적어도 SDC에서 본 삼성은 소프트웨어 회사였다. 10여 년 전에 개방과 협력, 개발자 친화적으로 체질부터 바꾸겠다는 선언이 현실이 된 현장을 보니 감개무량했다. 이날 깜짝 공개한 위아래로 접히는 새 폴더블폰 역시 개발자들에게 미리 ‘힌트’를 주기 위해서였다.  


10여 년 전 ‘한국은 소프트웨어가 문제다’ ‘정부가 IT 컨트롤타워가 돼 대안을 내놔야 한다’고 썼던 기사 몇 줄을 이제는 지워내도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기업은 놔두면 알아서 변한다는 진리를 새삼 깨달았다.


지난 10년 동안 많은 기업이 변하려고 몸부림을 쳤다. 팬택의 연구원들은 회사에서 먹고 자며 일하다 응급실에 실려 갈 정도로 ‘베가’ 스마트폰 개발에 매달렸다. 2011년 세계 최초 3차원(3D) 스마트폰을 만든 LG전자 엔지니어들을 인터뷰했을 땐 그들과 함께 기자도 눈물을 흘렸다. 170명이 넘는 사람들이 450일 동안 한마음으로 똘똘 뭉친 간절함이 느껴져서다. 비슷한 시기에 만난 삼성전자의 한 엔지니어는 한 달 만에 갤럭시탭 두께를 0.2mm 줄인 에피소드를 전해줬다. 갤럭시탭이 먼저 공개되고 아이패드2가 나왔는데, 아이패드2가 더 얇은 것으로 확인되자 협력사까지 매달려 어떻게든 아이패드보다 진일보한 사양을 만들어 낸 것이다. 

물론 모두가 성공하진 못했다. 하지만 실패한 시도들이 모여서 한국을 ‘IT 강국’으로 빛나게 해주지 않았을까. 없어진 회사도 있지만 카카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 같은 기업도 생겼다.  

“과거 50년 동안 세상이 바뀐 것보다 앞으로 10년, 20년 동안 바뀌는 것이 더 클 것입니다. 기업은 그냥 놔두면 됩니다.” 1993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신경영 선언’ 직후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진리다.

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