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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대전 때도 못 봤던 풍경” 이탈리아 봉쇄가 바꾼 일상

이강기 2020. 3. 11. 15:01

“2차 대전 때도 못 봤던 풍경” 이탈리아 봉쇄가 바꾼 일상




10일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한 우체국에 들른 시민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로마=AFP 연합뉴스© 제공: 한국일보 10일 이탈리아 수도 로마의 한 우체국에 들른 시민들이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안전거리를 유지한 채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로마=AFP 연합뉴스 
 

“제2차 세계대전 때 전 소녀였지만 이 정도 상황은 본 적도 없어요.”


이탈리아 수도 로마에서 동쪽으로 80㎞ 떨어진 아브루초 산악지대 마을에 사는 82세의 밀로미나 가스파리는 10일(현지시간) “이 모든 게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어 불안하다”며 이렇게 말했다고 미국 CNN방송이 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이날 자정부터 전국을 이동 제한 지역(레드존)으로 지정하는 사상 초유의 봉쇄 조치를 단행했다.


이탈리아 전역에 사실상의 봉쇄령이 내려지면서 유명 관광지엔 발길이 끊겼고, 활기찬 분위기였던 바와 카페들도 손님 몇몇이 드문드문 거리를 두고 앉아있을 뿐이라고 CNN은 전했다. 영국에서 이탈리아로 휴가를 온 아드리안 톨은 “로마의 모든 광장과 식당에 정말 발길이 다 끊겨 아무도 없다”면서 “고군분투하는 이탈리아 국민들의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수도 로마 내에 위치한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과 그 광장 주변으로 10일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다. 로마=AP 연합뉴스© 제공: 한국일보 이탈리아 수도 로마 내에 위치한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당과 그 광장 주변으로 10일 바리케이드가 세워져 있다. 로마=AP 연합뉴스


이탈리아 정부는 최근 코로나19 확산세가 가팔라지자 업무와 건강 등 불가피한 사유를 제외하고는 국민들의 이동을 제한하기로 했다. 내달 3일까지 전국 모든 문화ㆍ공공시설이 폐쇄되고, 음식점과 주점도 오후 6시까지만 운영할 수 있다. 이탈리아 보건부에 따르면 10일 오후 6시 기준 확진자와 사망자는 각각 1만149명, 631명으로 집계돼 중국 다음으로 상황이 심각하다.


‘공공장소에서 최소 1m 간격을 유지하라’는 정부 지침에 따라 주점과 식당들은 가게 바닥에 테이프로 안내 표시를 붙이거나 테이블 간격을 더 띄워 놓았다. 로마의 한 주점에서 일하는 바텐더 비아기오 만카(25)는 “(지침에 따라) 테이블을 1m 간격을 두고 옮겼지만 손님이 적어서 그럴 필요도 없었다”면서 “전반적으로 아포칼립스(대종말)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전역에 이동 제한령이 내려진 10일 오전 이탈리아 동북부 도시 파두아의 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한산한 노천 카페 옆을 지나가고 있다. 파두아=EPA 연합뉴스© 제공: 한국일보 이탈리아 전역에 이동 제한령이 내려진 10일 오전 이탈리아 동북부 도시 파두아의 한 거리에서 사람들이 한산한 노천 카페 옆을 지나가고 있다. 파두아=EPA 연합뉴스


사람이 붐비는 곳은 생필품 등을 사기 위해서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약국과 상점 정도다. 영국 가디언은 “사람들이 물과 파스타, 소독제를 사기 위해 상점에 몰려든 것과는 별개로 10일 아침 대부분의 도시 거리는 고요했다”고 전했다. 재택근무 중인 컨설턴트 사비나 콜롬보는 “오늘과 어제의 로마는 정말 다르다”면서 “어디서도 마스크를 구할 수 없어서 나갈 때면 비닐장갑이라도 끼고 나간다”고 말했다.


시민들 대다수가 사실상 자가격리 상태에 놓이면서 ‘인터넷 세계’는 오히려 활발해지고 있다. CNN은 “배달 애플리케이션 딜리버루가 ‘집에 계세요: 딜리버루가 움직일게요’란 홍보 문구를 내세우며 호황을 맞고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도 집에서 책을 읽거나 요리하는 사진들이 ‘나는 집에 있습니다(#iostoacasa)’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수도 없이 올라오고 있다.

이탈리아 전역에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10일 남부 나폴리 누오보성의 한 전시실에서 방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나폴리=EPA 연합뉴스© 제공: 한국일보 이탈리아 전역에 이동제한령이 내려진 10일 남부 나폴리 누오보성의 한 전시실에서 방역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나폴리=EPA 연합뉴스


이처럼 대다수 이탈리아 국민들은 새 조치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 중이지만, 아직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고 규칙을 준수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 코디네이터인 페데리카 몬탈바는 “내가 가장 걱정하는 건 사람들의 무지”라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행동하는 이들도 있다”고 토로했다. 밀로미나 할머니의 남편 에미디오(86)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계속 포옹ㆍ키스로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 탓에 코로나19가 계속 퍼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탈리아 정부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과감한 조치를 단행하기는 했으나 아직 검역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부 움부리아 지방에서 살고 있는 미국인 토니 드벨라는 이렇게 지적했다. “(이탈리아 정부 지침에 따르면) 집에 있어야 하는데 술집은 또 연다. 대중교통은 운영 중인데 아무 데도 가면 안 된다고 한다. 너무나도 혼란스럽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