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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의 어머니, 신지식 선생 하늘로

이강기 2020. 3. 17. 19:26

'빨강머리 앤'의 어머니, 신지식 선생 하늘로

    조선일보,  2020.03.17 15:11 | 수정 2020.03.17 17:11

대표작 ‘하얀 길’ 남긴 1960~70년대 한국 청소년 문학계의 별
김훈 "내 소년시절의 위안 신지식은 슬픔의 힘으로 슬픔을 위로했다"
이화여고 교사였던 1960년대 초 ‘앤’ 번역해 국내 처음 소개
12일 지병으로 세상 떠, 14일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러

‘빨강머리 앤’과 친구 다이애나가 즐겨 걷던 ‘기쁨의 하얀 길’이 천국에도 있을까. ‘앤’을 국내 처음 소개해 ‘빨강머리 앤의 어머니’로 불리는 번역가이자 원로 작가인 신지식(90) 선생이 지난 12일 돌아오지 못할 먼 길을 떠났다. 비보(悲報)를 전해 들은 소설가 김훈(72)이 17일 짤막한 조사(弔辭)를 보내왔다. "신지식의 글들은 짓밟히고 배고팠던 내 소년 시절의 위안이었다. 신지식은 슬픔의 힘으로 슬픔을 위로했다. 내 소년 시절에는 신지식의 ‘하얀 길’과 마크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있었다."

조카 신순호씨는 "고모님이 지난해 11월 지병으로 쓰러져 넉 달간 투병했다. 세상을 뜨기 전 돌아가신 당신 어머니와 오빠를 많이 찾았다. 우한 코로나 사태로 조문객을 받지 않고14일 가족장으로 조용히 모셨다"고 했다. 세 조카 명호·순호·주호 씨가 가는 길을 지켰다.


2014년 3월 18일, 서울 자택에서 창조사에서 나온 ‘빨강머리 앤’ 초판을 손에 들고 있는 신지식 선생. 그는 “번역을 많이 했지만 ‘앤’처럼 주인공이 수다스러운 책도 없었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2014년 3월 18일, 서울 자택에서 창조사에서 나온 ‘빨강머리 앤’ 초판을 손에 들고 있는 신지식 선생. 그는 “번역을 많이 했지만 ‘앤’처럼 주인공이 수다스러운 책도 없었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70년대 문학계 ‘별’이었던 ‘하얀 길’의 작가

 신지식은 1960~1970년대 한국 아동·청소년 문학계의 ‘별’이었다. 고등학생 때인 1948년 전국 여학생 현상 문예에 단편 ‘하얀 길’이 수석 당선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56년 첫 소설집 ‘하얀 길’을, 1958년 ‘감이 익을 무렵’을 출간하며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가 김훈은 지난 2014년 본지 통화에서 "가난하고 억눌렸던 60년대 초 신지식 선생의 소설은 ‘한없이 순정한 눈물’같은 이미지로 중학생이었던 우리를 사로잡았다. 우리 남학생들은 신지식 소설의 여주인공을 몽상 속 애인으로 여기기도 했다"고 말했다.


2014년 3월 18일, 서울 자택에서 창조사에서 나온 ‘빨강머리 앤’ 초판을 손에 들고 있는 신지식 선생. 그는 “번역을 많이 했지만 ‘앤’처럼 주인공이 수다스러운 책도 없었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2014년 3월 18일, 서울 자택에서 창조사에서 나온 ‘빨강머리 앤’ 초판을 손에 들고 있는 신지식 선생. 그는 “번역을 많이 했지만 ‘앤’처럼 주인공이 수다스러운 책도 없었다”고 했다. /이덕훈 기자

◇1963년 ‘빨강머리 앤’ 국내에 처음 소개

1963년 캐나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강머리 앤’을 국내에 처음 번역해 소개한 일은 집필활동 외에 신지식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 휴전 직전인 1953년 봄, 이화여고 국어 교사였던 그는 인사동 헌책방에서 손바닥만 한 문고판 일본어책을 발견한다. '赤毛のアン(빨강머리 앤)'. 독신 남매 매슈와 마릴라에게 입양된 고아 소녀 앤이 상상력으로 절망을 이겨내는 이야기였다. 홀린 듯 읽던 신지식은 호주머니를 털어 그 책을 샀다. 그는 1960년대 초 이화여고 주보(週報) '거울'에 이 책을 번역해 연재했고, 1963년 창조사에서 정식 출간했다. '빨강머리 앤'은 그렇게 처음 한국에 소개되며 '소녀들의 필독서'로 자리 잡았다.


'빨강머리 앤'의 배경인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섬 풍경. /캐나다 관광청
'빨강머리 앤'의 배경인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섬 풍경. /캐나다 관광청

◇ "절망 같은 시절을 ‘앤’으로 위로하고팠다"

2014년 본지 인터뷰(http://premium.chosun.com/site/data/html_dir/2014/03/21/2014032103135.html)에서 신지식은 "심장이 약했던 어머니가 내가 열여섯 살때 피란 열차 안에서 돌아가셨다. 그 때부터 마음속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박혔다. 부모가 없는데도 발랄하고, 상상력 풍부하고, 세상을 아름답게 보는 앤이 내겐 실존 인물처럼 느껴졌다"고 했다. 책을 번역해 소개한 이유에 대해서는 "정말로 절망 같은 시절이었으니까. 6·25 직후라 부모 잃은 아이, 집 없는 아이, 불행한 학생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그들에게 내가 위로받았던 ‘빨강머리 앤’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했다. 1963년 봄 초판 서문에 그는 썼다. "'앤'과 같은 불쌍한 고아가 많은 우리나라에서, 저는 이 책이 조금이라도 그러한 소년 소녀들에게 웃음과 희망을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보람 있을까 생각하면서, 나의 사랑스러운 친구 '앤'을 소개합니다."

맹렬한 독서광이었다. 80대 접어들면서 녹내장과 황반변성으로 눈이 불편해졌지만, 아침 신문을 읽는 걸 일생의 낙으로 삼았다. 평생 독신이었다. "외롭지 않냐"는 주변 물음엔 "아. 외롭지. 그럼 당신은 안 외로워? 그런 거잖아"하며 호탕하게 웃었다.


'빨강머리 앤'의 배경인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섬 풍경. /캐나다 관광청
'빨강머리 앤'의 배경인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섬 풍경. /캐나다 관광청

◇"굽은 길의 끝에 반드시 좋은 것이 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찾는 꿋꿋한 소녀 ‘앤’을 우리 곁에 데려와 준 그는 ‘빨강 머리 앤’ 중 맨 마지막 장 ‘길이 굽어지면’을 가장 좋아했다. "거기서 앤이 보여주는 긍정이 참 좋아요. 팔십 평생 살아보니 삶이란 그런 것 같아요. '아, 이건 끝이구나' 싶다가도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새 길이 열리기도 하고."

친아버지 같은 매슈가 죽자, 앤은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교편을 잡기로 결심한다. 마음을 굳힌 앤의 말을 신지식은 이렇게 번역했다. "내가 퀸 학원을 졸업하고 나올 때는, 내 앞에 길이 똑바로 뚫려 있는 것처럼 생각되었어요. 몇 마일 앞까지도 뚫어볼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지금은 굽어진 모퉁이에 온 거예요. 이 길이 굽어지고 나면,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는 없어요. 하지만 반드시 나는 좋은 것이 있으리라고 생각해요." 장지는 경기도 용인공원. (031)334-3484

'빨강머리 앤'의 무대인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그린 게이블스' /프린스 에드워드 섬=곽아람 기자
'빨강머리 앤'의 무대인 캐나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의 '그린 게이블스' /프린스 에드워드 섬=곽아람 기자
'그린게이블스'에 꾸며진 앤의 방. 방문에 걸린 부푼 소매의 갈색 원피스는 부푼 소매 옷을 입고 싶어하던 앤에게 매슈가 준 선물이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곽아람 기자
'그린게이블스'에 꾸며진 앤의 방. 방문에 걸린 부푼 소매의 갈색 원피스는 부푼 소매 옷을 입고 싶어하던 앤에게 매슈가 준 선물이다. /프린스 에드워드 섬=곽아람 기자
프린스에드워드 섬 캐번디시에 있는 '빨강머리 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묘지. /프린스 에드워드 섬=곽아람 기자
프린스에드워드 섬 캐번디시에 있는 '빨강머리 앤' 작가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묘지. /프린스 에드워드 섬=곽아람 기자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17/20200317027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