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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시대와 종말론 - 페스트가 몰고온 종말론 광풍… 수만명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이강기 2020. 3. 25. 09:13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11]

페스트가 몰고온 종말론 광풍… 수만명 마녀사냥이 시작됐다

조선일보
  •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입력 2020.03.25 03:00

[위기의 시대와 종말론]


1337년 시작된 英·佛 백년전쟁… 농사 기반 무너뜨려 대기근·질병 불러
절망에 빠진 사회, 사악해져 폭력화… 이단 몰아 고문·화형

- 선페스트가 훨씬 독한 폐페스트로 변이
14세기 전쟁·기근·질병 한꺼번에 닥쳐 '조만간 말세 오고 세상이 뒤집힌다' 요한계시록 20장 근거로 종말론 판쳐
- '14만4000명' 원문대로 해석, 기이한 결론
상징·비유 가득한 문구를 자의로 해석 '현세 파괴해 빨리 예수 재림 맞자'… 섹스 통해 처녀성 회복 아담 숭배까지
- "악마 사주받은 마녀들, 신생아 지옥 보내"
'천국 숫자 거의 다 차자 사탄 발악… 아이 세례 못받게 보모로 둔갑' 소문… 집단 광기로 과부 등 잔혹하게 처형

주경철의 히스토리아 노바
재앙은 홀로 오지 않는다. 지난 시대에 사회 전체를 뒤흔든 위기는 대개 전쟁·기근·질병의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 세 가지는 사실 내적으로 얽혀 있다. 전쟁은 농사의 기반을 파괴하여 기근을 낳고, 군대가 이동하여 전염병을 퍼뜨린다. 다른 한편 기근은 정치적 불안을 초래해 전쟁의 원인이 되는 동시에 사람들의 신체를 허약하게 만들어 병을 더 퍼뜨리기 십상이다. 유럽 역사상 최대의 위기가 발생한 14세기 상황이 전형적이다. 이때에는 백년전쟁(1337~1453), 대기근, 페스트가 함께 찾아왔다. 서유럽 중심부에서 백년 넘게 전쟁으로 대혼란이 지속되는 동안 선(腺)페스트는 병독성이 훨씬 더 강한 폐페스트로 변이를 일으켜 엄청난 피해를 줬다. 이런 현상들 이면에 구조적인 농업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오늘날과 달리 전통 시대 농업은 지속적인 생산성 향상이 불가능했다. 인구는 늘어나는데 식량 생산이 지탱해주지 못하는 한계 상황에 이르면 참혹한 대량 아사 사태를 피할 수 없다. 이 모든 일이 한 번에 터진 14세기에 유럽은 자칫 문명의 붕괴를 걱정할 정도로 큰 위기를 맞았다.

재앙의 시대에 나타난 천년왕국주의

사회적 위기는 또한 정신적 위기를 동반한다. 이런 시대에 빈발하는 대표적 현상 중 하나가 종말론이다. 우리 시대의 고난은 이미 예견되어 있던 일이며, 조만간 말세가 찾아오고 세상이 뒤집히리라는 주장이다. 종말론 자체는 원래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 중 하나다. 중세에는 요한계시록 20장을 근거로 마지막 날들에 사탄이 일시 승리를 거두지만 그리스도가 그를 제압한 후 천년 동안 이 땅에서 그리스도가 통치하는 시대가 이어진다고 해석했다. 천년이 지난 후 사탄이 풀려나면 신에 대항하는 마지막 전투를 벌이다가 패배하고 그 후 최후의 심판이 일어난다. 이런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 소위 '천년왕국주의(millenarianism)'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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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시대 화가 루카 시뇨렐리가 이탈리아 오르비에토 대성당에 그린 벽화 '세상의 종말'(1504년) 일부. 중세에 '최후의 심판'을 주제로 그린 이 프레스코화는 죄지은 자들이 악마에게 받을 여러 가지 벌을 나열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재앙의 시대에는 이런 교리를 기묘하고도 과격하게 해석하여 사회에 불을 지르는 사람들이 자주 등장한다. 대개는 기성 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 망상에 가까운 교리에 집착하는 수도사 출신 인사들이기 십상이다. 기근 상태에 빠진 농민이나 도시 빈민이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해 분출하는 격렬한 욕구가 모든 것을 일시에 해결해 주리라는 환상적 메시지와 만나면 때로 걷잡을 수 없는 폭력 사태가 벌어지기도 한다. 자신이 예언자이며 하느님의 전사(戰士)라고 자처하는 카리스마적인 인물은 순결하게 재생될 새로운 세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이 세상의 하찮은 질서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자신은 이미 세속의 도덕을 초월해 있으며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타락 이전의 순결한 상태로 되돌리기 위해 오히려 섹스를 통해 처녀성을 회복시켜 준다는 야릇한 '아담 숭배' 의례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더 나아가서 예수의 재림 왕국을 더 빨리 맞이하기 위해 차라리 폭력을 휘둘러 현재의 사회를 파괴하자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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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마녀사냥을 묘사한 그림. 종말론은 악마의 주장을 따른다는 마녀들을 찾아내서 처형하는 근거로도 써먹혔다. /위키피디아
이런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성경의 일부 구절을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최근 감염병 사태로 우리 사회에 문제를 야기한 한 교회에서 구원받을 사람은 자기 교회의 신자 14만4000명이라고 주장하는 게 유사한 사례다. "내가 봉인된 자들의 수에 대하여 들었는데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지파에서 봉인된 자가 십사만 사천이더라"(요한계시록 7:4) 하는 구절과 관련이 있을 터인데, 상징과 비유로 가득한 텍스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처럼 기이한 결론을 얻게 된다. 그 교회 신자만 이미 수십만명인데 그러면 당장 그 가운데 일부는 구원받고 나머지는 구원을 못 받는 모순이 발생한다. 애초에 이 구절은 12×12=144와 10×10=100의 두 수를 곱한 것으로서 완벽함과 전체를 상징하는 두 수(10과 12)를 이용해서 믿는 사람 모두가 구원받는다는 것이 일반적 견해라 한다.

종말론과 '마녀사냥'

종말론의 또 다른 양상은 근거 없는 전승을 이용해 기묘한 교리를 만든다는 것이다. 예컨대 중세 유럽에 널리 퍼진 전승 하나는 사탄이 하늘에서 추락할 때 모든 천사 중 10%가 함께 떨어져 악마가 되었다는 견해다. 이 주장은 천국에 들어간 사람 수와 천상에 남아 있는 90%의 천사 수가 같아질 때 종말이 온다는 특이한 주장으로 이어졌다. 이 이상한 아이디어는 중세 말부터 근대 초까지 과격한 이단 교리로 차용되었고, 동시에 교회와 세속 당국이 '마녀'들을 찾아내서 처형하는 근거로도 사용되었다. 그동안 천국에 들어간 사람들이 계속 있어 왔으므로 결국 정해진 숫자가 거의 채워져서 이제 말세까지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악마들 자신이 지옥으로 떨어질 때가 가까이 오니 무슨 수를 쓰더라도 천국에 들어가는 의인이 더 이상 늘지 못하도록 막으려 할 것이다. 악마들은 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죽게 만들어 세례를 못 받게 만들었다. 세례를 못 받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마녀들이 악마의 사주를 받아 임산부들을 돕는 척하면서 신생아들을 죽였다는 주장이 기승을 부렸다. 이런 허무맹랑한 논리로 애꿎은 여성들 수만명이 마녀로 몰려 죽임을 당했다. 위기가 닥쳤을 때 우리의 정신이 황폐해지면 사회 전체가 자칫 절망적으로 사악해질 수 있다.

14세기에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을 담은 그림.
14세기에 영국과 프랑스의 백년전쟁을 담은 그림. 전쟁과 함께 대기근, 페스트로 혼란이 지속됐다. /위키피디아
위기 상황에서 정부가 잘 대처하여 국민을 보호하는 나라, 시민들이 협력하며 서로를 지켜주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시련을 겪는 현재, 지금까지 선진국이라 치부하던 국가들이 휘청거리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한때 정치권의 잘못된 결정으로 큰 위기에 빠졌지만 성숙한 시민 정신으로 비교적 잘 헤쳐 나오고 있다. 이 위기를 겪고 나면 우리는 사회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한 단계 더 발전해 가리라 기대해본다.


[똑같이 전재산 나눠주고 예수를 따랐는데 프란치스코는 성인, 왈도는 이단, 왜?]


누군가를 이단이라 규정하고 비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실제로 정통과 이단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중세 유럽 사회를 뒤흔든 가장 심각한 이단 중 하나인 왈도파를 보자. 창시자 왈도(Waldo, 프랑스어로는 Vaudès)는 리옹시(市)에서 금융업으로 큰돈을 번 사람이다. 어느 날 그는 시장에서 음유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크게 감동했는데, 예수가 부유한 젊은이에게 "가진 것을 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마태복음 19:21)"고 했다는 내용이었다. 왈도는 이 내용을 문자 그대로 실천했다. 두 딸을 수녀원에 집어넣고 전 재산을 빈민들에게 나누어준 다음 걸식으로 연명하며 설교하고 다녔다. 곧 그를 따르는 무리가 모여들어 제법 세가 커졌다. 사실 스스로 부(富)를 버리고 청빈을 선택한 것은 칭찬받을 일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부유하고 타락해 가는 기성 교회에 우회적인 비판이 될 수 있다. 1179년 왈도파가 교황청에 자신들을 수도회로 인정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거부당하자 교황의 명령을 거부하고 비난했다. 결국 이들은 1215년 라테란 공의회에서 이단 판정을 받았다.

왈도파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겪고 난 후, 이번에는 프란치스코라는 인물이 등장했다. 그 역시 부유한 상인이었으나 깨친 바가 있어서 모든 재산을 버리고 스스로 걸인이 되어 설교하고 다니다가 교황청에 와서 수도회 설립을 승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왈도와 그야말로 판박이처럼 비슷한 사례가 아닌가.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는 처음에 의심하다가 결국 수도회칙을 승인했는데, 어쩌면 또다시 이단 문제가 터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작용했을 것이다. 그 후 프란치스코는 가톨릭 교회에서 최고 반열의 성인으로 숭앙받게 되었다. 거의 똑같은 내용을 주장하는 두 사람 중 한 명은 중세 최대 이단 수괴로 낙인찍혔고, 다른 한 명은 최고의 성인으로 추앙받는다. 성인과 이단의 차이는 어쩌면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그런 만큼 이단의 문제는 미묘하고도 어려운 일이다. 일시적인 분위기를 타는 여론이나 권력이 쉽게 규정할 게 아니라, 종교계와 사회가 긴 흐름에서 정리하는 게 맞을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25/202003250007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