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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위험한 부작용 ‘권위주의 팬데믹’ 우려

이강기 2020. 4. 23. 14:13

코로나19의 위험한 부작용 ‘권위주의 팬데믹’ 우려

      

김회권  국제·IT칼럼니스트 judge003@gmail.com

주가조선 [2604호] 2020.04.20          

▲ 지난 4월 14일(현지시각) 인도 프라야그라즈에서 한 경찰관이 검문에 불응하고 차를 멈추지 않은 한 여성 운전자를 체포하고 있다. photo 뉴시스
중국 정부가 우한을 봉쇄했을 때만 해도 모두들 이렇게 생각했다. ‘독재 국가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권위주의 국가는 도시 봉쇄를 결정하는 것도, 사람의 이동을 제한하는 것도 신속하게 할 수 있다. 서구권에서는 중국이기에 그런 조치들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고 개인의 기본권을 쉽게 틀어막는 정치적 후진성을 평가절하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전체주의적 감시 체제를 비웃던 유럽의 여러 국가들이 외출을 통제하고 벌금형을 언급하며 개인의 이동권을 제한하는 방법을 뒤따라 시행하고 있다. 비록 코로나19를 막기 위한 일시적 조치라고 해도 말이다.
   
   사람들의 불안, 그리고 바이러스에 대한 본능적 공포는 시민의 통제를 용인한다. 공권력이 통제를 선호하는 지금과 같은 비상사태에서 기본권 보장을 요구하라는 목소리는 철없는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다. 저서 ‘사피엔스’를 쓴 유명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파이낸셜타임스 기고문이 새삼 주목받는 건 이런 분위기 탓이다. 그는 “각 정부가 맞닥뜨린 위협을 대응하는 과정에서 전체주의적인 감시가 강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라리 교수는 코로나19라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면서 일부 국가는 모범적으로 극복하겠지만 그외 많은 국가들은 시민을 강하게 통제하며 이 심각한 상황을 벗어나려 할 거라고 내다봤다. 그게 훨씬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이후다. 현대사회는 인류가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겪는 상시 감시 사회다. 위기 상황에서 전체주의적 감시와 통제가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온다면 코로나19가 극복되더라도 비슷한 흐름이 계속될 수 있다. 압박을 동반한 통제로 위기를 넘기는 국가가 많을수록 그런 흐름은 더 힘을 받게 된다. 하라리 교수는 “생체 감시와 같은 테크놀러지가 긴급한 경우에만 사용되는 거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다.
   
   
   국민 감시 11개국, 집회 규제 72개국
   
   숫자로도 광범위한 통제들이 증명된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국제비영리법률센터(ICNL)는 코로나19가 발생한 뒤 정부의 법률적 조치가 국민의 자유와 인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ICNL에 따르면 현재 비상사태를 선포한 국가는 68개국이다. 이 중 표현의 자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조치를 도입하고 있는 나라는 9개국이다. 국민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국가는 11개국이고, 집회 등에서 규제를 도입한 국가는 무려 72개국에 이른다.
   
   문제는 이 중 모범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움직임이다. 바이러스로 발생한 위기를 ‘기회’로 보는 정부들이 속속 등장했다. 당장의 위기를 모면한다며 빅브라더를 택한 정부가 이후에도 그 편리한 권력을 놓기 쉽지 않다는 게 하라리 교수의 지적이다. 당장 그의 모국인 이스라엘에서는 정보기관이 법원의 영장 없이도 휴대전화 정보를 수집하고 활용해 국민들을 추적할 수 있도록 했다. 코로나19 감염자 추적을 위한 조치로 등장했는데 원래는 테러를 막기 위해 개발된 기술을 다른 용도로 돌렸다. 올해 3월 2일 열린 총선에서 5선 총리를 노리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연립정부 구성에 실패하면서 정치적 위기를 맞았고 뇌물수수와 배임 등의 혐의로 재판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이유로 법원 폐쇄 명령이 내려졌고 3월 17일 열려야 했던 그의 재판은 5월로 미뤄졌다.
   
   헝가리의 비상사태 조치는 유럽연합(EU)의 비판을 받으며 유명해졌다. EU 집행위원회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이 직접 성명을 내 “필요한 부분으로만 제한돼야 하고 엄격하게 비례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언급할 정도였다. 지난 3월 30일 헝가리 의회는 코로나19 방지법을 찬성 137표, 반대 53표로 통과시켰다. 의회에서 투표가 이뤄지기 전 10만명 이상의 국민이 반대 서명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이 법은 정부에 광범위한 긴급조치를 명령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이제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국가비상사태를 무기한 연장할 수 있게 됐고, 총리의 행정명령만으로 새로운 법률을 만들 수 있고 기존 법률이 힘을 잃을 수도 있다.
   
   헝가리에서 비상사태는 시작됐지만 이 비상사태를 끝낼 수 있는 권한 역시 유일하게 오르반 총리만 갖게 됐다. 여기에 더해 정부의 대응을 방해할 수 있는 정보를 퍼뜨릴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표현의 자유도 억누를 수 있게 됐다. 정보의 방해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검사의 권한도 대폭 강화됐다. BBC는 “헝가리 정부가 독립 언론에 압력을 가하고 있고 기자들의 경계심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모든 선거 역시 비상사태를 이유로 중단됐다.
   
   
   터키의 소셜미디어 통제 법률
   
   유럽 내 또 다른 나라 터키는 에르도안 대통령이 집권한 뒤 세속주의 대신 이슬람주의를 내걸며 점점 권위주의로 치닫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소셜미디어 통제를 활용해 시민들의 고삐를 죄어왔다. 코로나19는 이런 흐름에 좋은 빌미가 됐다. 지난 4월 7일 터키 내무부는 “코로나19에 관해 근거 없는 도발적인 메시지를 공유한 616명을 조사했고 이 중 229명을 구금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이틀 뒤인 4월 9일 소셜미디어를 통제하는 법률 초안을 발표했다. 초안에 따르면 1일 100만명 이상 사용하는 소셜미디어는 법원의 콘텐츠 게시 중단이나 접속 차단 명령을 실행할 수 있는 터키 내 담당자을 반드시 두도록 했다. 담당자는 72시간 내에 콘텐츠나 계정 삭제 요청에 응해야 하고 3개월마다 삭제된 콘텐츠를 모아 보고해야 한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글로벌 서비스라 하더라도 터키인 사용자들의 데이터를 저장하기 위한 별도의 서버를 터키 내에 두도록 한 점이다.
   
   터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아르메니아는 코로나19가 발생하자 비상조치를 시행했다. 여기에도 역시 표현의 자유를 틀어막는 조항이 강화됐다. 공영방송인 아르메니아 퍼블릭TV는 “이란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10분마다 한 명꼴로 발생하고 있다”는 CNN 기사를 인용했다가 경찰의 요구로 기사를 삭제해야 했다. 아르메니아의 한 유명 의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도 예레반의 거리에 여전히 사람이 많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정부가 더 노력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경찰이 삭제를 요구했고 그는 따라야 했다. 정부에 대한 건전한 비판도 모니터링하고 감시하는 역량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아르메니아 동쪽에 맞닿은 아제르바이잔은 아들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대통령직을 수행 중인 나라다. 아버지인 게이다르 알리예프가 구소련 붕괴 뒤 30년 가까이 대통령을 지냈고 2003년부터 아들인 일함 알리예프 대통령이 이어받았다. 그는 현재 4연임 중이다. 코로나19가 발생하자 알리예프 대통령은 직접 연설에 나서 “바이러스 퇴치를 위해 정부에 대한 반대를 단속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신과 정치적으로 적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국민 건강을 위태롭게 하는 암적 존재’라고 규정했다. 연설 며칠 뒤인 지난 3월 23일, 아제르바이잔 사정 기관은 야당과 재야 운동가들의 신망을 받는 한 원로 정치인을 체포했다. 국제인권단체인 휴먼라이트워치는 “코로나19에 대처하기 위해 고안한 조치들이 야당 탄압에 활용될 것이라고 대통령이 발언한 지 며칠 만에 이뤄진 일”이라고 밝혔다.
   
   코로나19 사태를 정적 제거의 기회로 활용하는 일은 남미 볼리비아에서도 벌어졌다. 지난 3월 18일 아르투로 무리요 볼리비아 내무장관은 인터넷 감시를 선언했다. 코로나19를 대중에게 잘못 알리는 사람들을 정부가 기소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댔다. 특히 그는 야당 정치인들을 향해 잘못된 정보를 알리지 말라며 공개적으로 경고했는데 자니네 아녜스 임시 대통령의 라이벌인 루이스 아크를 직접 언급했다. 볼리비아는 지난해 11월 에보 모랄레스 전 대통령이 사퇴하면서 올해 5월 대통령 선거를 치르기로 했지만 코로나19를 이유로 연기했다.
   
   
   캄보디아의 ‘비상사태 시 국가 통치 특별법’
   
   동남아시아나 남아시아는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내전과 테러 등을 여러 차례 경험해왔다. 개발 독재를 지향하는 군사 정부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코로나19 방지를 ‘전쟁’처럼 다룬다면 이 지역 사람들에게는 과거 종종 있어왔던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부가 권위주의적 조치에 나서기에 익숙한 조건인 셈이다. 캄보디아 국회는 지난 4월 10일 훈센 총리에게 코로나19에 관해 제한 없는 권력을 부여하는 ‘비상사태 시 국가 통치 특별법’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심의와 표결은 1시간 내에 이뤄졌고 속전속결로 처리됐다. 코로나19를 이유로 훈센 정부는 정치, 사회 및 경제생활 등 모든 측면에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원거리 통신에 대한 무제한 감시, 미디어 및 소셜미디어에 대한 통제 권한이 부여됐고 집회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권한, 계엄령을 선포할 수 있는 별도의 조항도 추가됐다. 이런 권한에 대한 감독이나 견제는 없으며 정부의 재량권만 법안에 포함됐다.
   
   태국에서는 지난 3월 23일 푸껫의 한 아트갤러리에서 다나이 우싸마라는 예술가가 체포됐다. 그는 3월 16일 스페인에서 태국으로 돌아왔는데 “나를 포함한 비행기 승객들은 공항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지 못했다”고 페이스북에 썼다. 태국 경찰은 이 글이 대중에게 혼란을 유발할 수 있다며 컴퓨터 범죄법을 적용해 체포했고 법원은 그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2014년 5월 쿠데타를 통해 집권을 시작한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와 집권당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위해 긴급 법안을 이미 발효한 상태다. 이들이 부여받은 핵심 권한 중 하나는 필요한 경우 미디어를 검열하거나 폐쇄하고 소셜미디어를 통제하는 것이었다.
   
   코로나19에 대적하기 위해 만든 과도한 법들과 조치는 시한부라는 꼬리표를 달고 등장했지만 시민 감시를 확대하고 권력자에게 과도한 권력을 집중했다. 이들은 코로나19라는 쇼케이스에서 폭정의 효율을 증명하려고 노력 중이다. 문제는 폭주는 해도 브레이크가 없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는 “일부 정부가 보건 위기를 앞세워 코로나19와는 무관한 새로운 권력을 휘두르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문제는 이런 권력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하라리 교수의 지적처럼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이 코로나19 이후의 뉴노멀(New Normal)로 자리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